소설리스트

당가유혼-98화 (98/350)

98화

“허허. 저 병신 새끼.”

“등신 같은 새끼.”

“죽일까요?”

“삑삑.”

몰래 지켜보던 사람 세 명과 새 한 마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후우…….”

“허허……. 참, 그렇게 곰 같던 남자가 어찌 이 중요한 순간에는 참새 같단 말인가…….”

나란히 함께 엿듣던 한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장년인 역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런 놈이 형제라서 죄송합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밥에 독을 타버릴까요……?”

“삑…….”

어느새 같이 있던 적철성과 적웅에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방계들과 아기 새 삑삑.

그에 적웅은 먼 산 바라보듯 시선을 멀리 던졌고, 적철성은 껄껄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닐세. 대호가 나타나도 두 주먹으로 맞서 싸울 호걸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봄날 들판의 민들레와도 같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결론은 민들레같이 나약한 새끼라는 말이지만, 당유혼은 평소라면 왜 자기네 가족 욕하냐 바락바락 소리칠 말에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판을 다 깔아줬는데도 이러냐…….’

당유혼은 언젠가 날 잡고 재교육을 실시해야겠다 다짐하며 적철성을 향해 말했다.

“저놈은 언젠가 제가 날 잡고 쥐어패도록 할게요. 그럼, 그 외의 이야기인데…….”

“이주 제안을 말하시는군.”

“그렇죠.”

동생이란 놈이 저렇게 용기를 내는데, 형님 된 입장에서 마냥 손 놓고 놀 수만은 없지 않나.

게다가,

‘다른 두 녀석도 그냥 떠나기는 내키지 않은 듯한 모습이니.’

결국 대표된 이로서 당유혼은 적철성을 보며 말했다.

“저희가 집이 좀 넓어요. 빈 공간도 많고, 마침 붉은 바위 일족은 타고난 장인 일족이니… 저희와 함께 안 가실래요?”

“…함께라.”

그 제안에 적철성은 당장 답하기보다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늙은 목숨은 이제 죽고 썩어 문드러져 새 생명을 위한 거름이 되어도 후회가 없을 테지만… 새롭게 태어날 아이들에게 그와 같은 미래를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 말씀은?”

“새로운 토양에 뿌리 내릴 기회를 준다고 한다는데, 내 어찌 마다하겠나?”

두말할 것 없는 동의의 뜻.

함께 있던 적웅 역시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두 방계들의 표정이 활짝 폈다.

“좋네요. 가주 대리로서, 붉은 바위 일족의 이주를 환영하겠습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당유혼이 가볍게 포권을 취했고, 적철성과 적웅 역시 그들 일족의 인사를 취했다.

이로써, 그들 일족의 이주가 결정되었다.

* * *

이주 준비에는 별다른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천막을 설치하고 살아가는 그들은 붉은 바위산을 중심으로 계절마다 그리고 매년 기후가 변할 때마다 살기 좋은 곳으로 종종 이동하며 삶을 영위하였기에 이주 역시 많은 준비가 필요치 않았다.

그들이 가져온 수레에도 짐이란 짐은 가득 담았고, 노예 사냥꾼들에게 수탈한 수레까지 사용하니 이주에 부족함이 느껴질 일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갖춘 당불퇴가 질주 전의 말처럼 발을 굴렀다.

“자, 슬슬 출발해 볼까?”

“삑삑!”

“응? 뭐야, 너 아직 안 갔냐?”

“삑?”

어느 새부턴가 그들 무리에 섞여든 삑삑이는 당불퇴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다가 그가 왜 여깄냐는 식으로 묻자 날개로 따귀를 갈겼다.

“악! 아, 아니… 상식적으로 이상하잖아! 너네 집은 여기랑 반대편인데?”

“삑삑!”

“뭐? 너도 같이 가겠다고? 아니, 그럼 너네 어머니는 반대 안 해?”

“삑!”

“위를 보라고? 그게 뭇… 쟨 왜 저깄냐?”

이주를 마친 그들 위에는 벽력조가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출발 준비를 기다리는 듯한 그 모습에 당불퇴는 어처구니가 없어 허허 웃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 같이 가자. 우리 동네 뒷산도 꽤 살기 좋아.”

“삑삑!”

사실, 이쯤 되면 벽력조 모자와도 정이 들어 헤어지기 힘든 당불퇴였다.

그때,

“준비는 다 되셨나요?”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의 수레에 마련된 전용석 위에 앉은 적세희가 묻자 당불퇴는 납작 허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물론입죠, 마님… 아니, 적 소저!”

“제가 무겁지는 않으실까요?”

“에이, 깃털처럼 가볍습니다요!”

허리가 부러져라 숙이는 당불퇴.

“삑삑.”

애쓴다, 애써.

지켜보던 삑삑이가 수고가 많다며 날개로 그의 정수리를 툭툭 쳤고, 그 모습을 보던 당유혼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선언했다.

“자, 그러면 출발합시다. 이랴~”

시원한 채찍 소리와 함께 수레들은 일제히 전진을 시작했다.

붉은 바위 일족은 새로운 이주지로 간다는 사실에 아직 긴장이 역력해 보였지만, 그런 당불퇴의 모습에 적잖이 미소를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물론, 모두가 미소를 짓는 것 아니었지만.

찰싹찰싹―

“아오! 그만 좀 치십시오!”

“안 때려도 출발합니다!”

아직까지 인마(人馬)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방계들의 아우성이 가득한 대 이주는 그렇게 출발하였다.

* * *

사천당가 가주의 집무실.

예전에는 먼지 쌓인 낡은 물건들만 가득하던 곳이었지만, 총관 당궁상의 강력한 주장 아래 각종 물품들이 하나씩 놓이더니 이제는 그럴듯한 가주의 집무 공간이 된 곳이었다.

“가주님. 이번 하오문의 정보지가 도착했습니다.”

“음, 거기 두세요.”

한창 집무에 바쁘던 가주 당위혼은 총관 당궁상이 가져온 수북한 문서를 보고 한쪽을 가리키며 지시한 뒤 크게 기지개를 켰다.

“후우… 총관이 항상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무렴. 제 일인 것을요.”

하오문과의 협업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정파인 그들이 사파 중에서도 거두라 불리는 하오문과 협약을 맺었다는 게 전해지면 명성이 중요한 한창의 신생 집단으로서 큰 문제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궁상이 직접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받는 정보지를 수거하여 당위혼에게 가져다주었고, 그것들을 당위혼은 하나하나 정독하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하고는 했다.

“총관도 읽어보셨나요?”

“가주께서 읽지 않으셨는데 어찌 제가 먼저 내용을 확인하겠습니까.”

손자뻘인 자신에게 언제나 깍듯한 그를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는 당위혼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읽으시지요.”

집무실 책상에서 벗어나 중앙의 탁자로 향해 첫 번째 정보지부터 읽었다.

“장강에서 일어난 전란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하는군요.”

“많은 인구가 그곳으로 몰린다는 것은 지난달에도 보고 받았습니다. 장강십팔채의 내란이 점점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스륵―

하오문의 정보지는 질과 양적인 측면 전부에서 최상급의 정보를 제공했다. 그렇기에, 사천에 앉아서도 저 멀리 떨어진 지역의 사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구천에서도 이미 절반 이상이 한 발씩 거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동맹과 대립을 반복하던 이들. 이번 기회에 장강수로채의 전력을 약화시켜도 좋고, 나중에 한쪽에 줄을 대고 승리한 쪽에서 이득을 취하기도 쉬울 테니 끼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겠군요.”

그들은 두런두런 정보지의 내용에 대한 담화를 나누었다.

“이들의 내란의 여파가 사천에도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하십니까?”

“다른 정보지의 내용을 보면 이미 충분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합니다. 강을 건너야만 얻을 수 있는 물자들이 벌써 부족 현상을 보이는군요.”

장강은 중원의 허리라 불릴 정도로 거대한 강이다.

중원 중심부를 관통하며 장대한 물류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기에 그곳에서 일어난 분란은 싫든 좋든 모든 문파의 촉각을 곤두서게 했다.

“사천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장강의 지류 일부가 닿아있기는 합니다.”

“총관께서는 혹여 그들 중 패퇴한 일부가 사천으로 흘러들어 패악질을 일으킬 것은 걱정하시는군요.”

“추풍대의 건이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

당위혼은 그 부분을 새겨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 그들이 사천인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방계들에게 미리 대비시켜 놔야 하겠군요.”

그 말에 당궁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삼십 년 전에는 그 말이 아주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사천당가가 사천에서 대부분의 패권을 잃고 물러난 지금에서 그런 책임은 없다시피 했다.

이제 사천 민생의 안정을 책임져야 할 것은 사천삼주가 되는 게 당연하지만, 당위혼은 그러지 않았다.

‘우리에게, 힘이 생겼으니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 뻔하지만 뻔하게 따라지지 않는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눈앞의 이 어린 가주였다.

이 어린 가주가 모범을 보이니, 어찌 늙은 신하가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방계들에게 미리 대비시켜 놓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그리 답한 뒤 둘은 다시 정보지 탐독을 계속했다.

그런데…….

“음?”

“왜 그러십니까, 가주님.”

“여기… 희한한 내용이 있군요.”

희한한 내용?

“운남 땅에서… 귀족가가 운영하는 상단이 추풍대주 갈무흔과 그를 따르는 부하 셋의 습격을 받아 재물을 약탈당했다고 합니다.”

“허, 마적 떼가 이제는 운남… 잠깐,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그 마적이 스스로 이름을 밝히길 추풍대주 갈무흔이랍니다.”

갈…무흔?

“그거 분명 지난번에 우리 애들이…….”

“…추가로, 스스로 갈무흔이라 주장한 자는 절벽에서 떨어졌지만 기연을 얻어 다시금 기어 올라왔다고 합니다.”

집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한동안 서로의 눈치를 보던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따르는 부하까지 숫자가 셋이라면…….”

“대형과… 방계들인 것 같군요.”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들이……!!”

꽈악―

당궁상의 이마에 핏줄이 내천자 문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나마 당위혼은 얌전히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건… 형님께 직접 얘기를 들어야겠군요.”

대체 적철을 구하러 보낸 이들이 무슨 사고를 치고 있는지…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다시금 정보지를 뒤적였다.

그렇게 또다시 오늘의 업무를 보고 있는데,

“가주님!!”

바깥에서 소란과 함께 방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놈들! 감히 가주님의 앞에서 무슨 소란이냐!”

“초, 총관님?”

“괜찮습니다.”

분노 조절에 실패할 것 같은 당궁상을 말리며 당위혼이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인가?”

온화하면서도 위엄 있는 말에 방계들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대형! 대형이 왔습니다!”

“형님이?”

“크……. 드디어 그놈이 돌아왔군요! 제가 당장 가서 패대기친 뒤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운남 땅에 추풍대주가 출몰할 수 있는지…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달려가는 당궁상이었고,

“초, 총관님!! 잠깐!!”

“진짜 중요한 걸 말 못 했는데!!”

말하려다 시기를 놓친 방계들의 허망한 손길만이 허공을 휘저었다.

“진짜 중요한 것이라니?”

당위혼이 그들을 향해 묻자 방계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대형께서 사고를 좀 치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그게…….”

곤혹스러워 말하기 힘들어하는 방계들.

그 모습에 당위혼은 빙긋 웃으며 손을 저어 보였다.

“대형께서 사고 치시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신가. 그냥 말들 해보게.”

‘그건…….’

‘맞지…….’

묘하게 편해진다.

왠지 이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느껴졌는데, 가주의 말을 들으니 전부 내 책임은 아닌 것 같은 그런 기분.

“그… 대형께서 새로운 가솔들을 데려왔습니다.”

“새로운 가솔?”

“예. 이번에 적철을 얻으러 가신 곳에서 만난 이민족분들이라고…….”

이건 진짜 무슨 소리지?

당위혼은 눈만 껌벅거리다가,

“…일단, 한 번 가보도록 하지.”

무슨 일인지, 직접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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