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02화 (102/350)

102화

* * *

당가에서 한창 영약 제조와 흡수로 난리 통이 벌어지는 동안, 사천 어딘가에서는 정상급 회담이 개최되고 있었다.

그 이름만 들어도 사천인은 놀라 뒤집힐 면면이 모인 어느 회의실. 그곳에서 먼저 입을 뗀 것은 청수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올해, 본파에서 개최된 사천지회는 아주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듯하오.”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는 노인의 말에 답한 것은 웃는 인상의 늙은 도사.

“성황리? 재밌는 말씀이시군요, 도장. 얼마나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으면 그들은 아직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허허허허―”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청수한 인상의 노인네는 왈칵 인상이 찌푸려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사천당가를 말씀하시는군요. 그들이 참석하고 참석하지 않고가 크게 중요하겠습니까?”

“아아, 물론 그렇지요. 하긴,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 당가에서도 귀파에서 보낸 초청장에도 이리 참석을 하지 않은 거겠지요.”

꽈악―

노인이 쥔 찻잔에 금이 갔다.

노인, 태을검객 장해광은 파들파들 떨리는 입가에 억지로 힘을 주어 입꼬리를 올렸다.

“후후후,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귀파에서는 무척 신경이 쓰이나 봅니다. 아, 하긴… 지난번 일을 맡으신 게 귀파였지요? 자랑하시던 일대 제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일패도지하(一敗塗地)셨다더니…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나 봅니다?”

“뭐, 뭐요?!”

그 말에 청성파 장로 담명의 인내심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일패도지라니! 그리고 일 대 제자들이 아니라, 이 대 제자요!”

일 대 제자는 한 명밖에 없었다고!

“허허, 아~ 그렇습니까? 역시 십 년간 수련한 이 대 제자와 일 대 제자는 큰 차이가 있지요.”

굳이 십 년을 강조하는 것은 십 년이나 수련한 애들이 당가의 방계들한테 두들겨 맞고 오냐? 라는 뜻임을 모를 수 없는 담명은 부들부들 떨었다.

거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걸 중재한 것은 아미파의 호명신니.

“자자, 두 분 모두 진정하시지요. 저희가 언쟁을 위해 모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지금 보니 당가의 어린 가주의 귀계가 아주 뛰어난 듯합니다.”

늙은 여승의 말에 둘은 겨우겨우 인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언쟁을 멈추었다.

“…현 당가의 가주가 귀계가 뛰어나다는 것은 동의하는 바요. 그의 머릿속에 든 간사한 책략이 백 마리 뱀의 그것보다 더 하다고 하더군.”

“호오, 그 말은 일패도지한 일 대 제자의 경험담이시오?”

이 새끼가 진짜?

삼십 년 수양을 말짱 도루묵으로 만들어 버리는 태을검객 장해광의 도발에 담명은 이를 악물며 답했다.

“아아, 귀파의 초청장 정도는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배포도 포함되는군요.”

“무시라니!”

아미파의 호명신니는 이마를 탁 짚고 싶은 심정에 그저 묵주를 굴렸다.

“…후우, 제가 볼 때 그가 이리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격장지계가 아닐까 합니다.”

“격장지계?”

“그렇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이렇게 태을검객의 심기를 어그러트렸지 않습니까.”

속을 아주 뒤집어 놓았다, 라고 하고 싶지만 애써 참고 그리 표현하자 장해광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침중히 답했다.

“그 어린 가주의 간사함이 확실히 사파들의 무도함에 버금가기는 하구려.”

“크흠… 그건 동의하는 바요. 우리 아이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진작 우리들의 행사를 눈치채고 각종 함정을 준비시켜 놨다고 들었소.”

지난번 상행을 습격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일 대 제자 진혁수는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있었던 일, 없었던 일, 전부 다 둘러댔다.

“독은 물론이고, 암기와 활, 창까지 가득 무장해 놨다고 하더이다.”

“활과 창? 허, 그것은 국법으로도 금하고 있을 텐데.”

불법 도검 소지자들의 단체인 무림이지만, 활과 창은 국법으로 특히 엄중히 다루는 병기였다.

다른 병기와 달리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고, 며칠만 연습해서 모아놓으면 순식간에 쓸 만한 군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란의 소지가 있다 하여 특히 금지하고 허용해도 엄격히 다루어지는 게 활과 창이기에 모인 이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모를 일이지요. 어차피 들키지 않으면 합법이라 생각한 것인지, 사천성주가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을지.”

“하긴, 지난번 용독문의 재물을 흡수할 때도 사천성주가 뒤를 봐줬다는 말들이 있으니…….”

진실은 이런저런 편집 작업을 거듭해 이리저리 왜곡되었다.

“하면, 이번 대회(大會)에 그들은 참석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소?”

그들이 준비한 함정이자 연일 고점을 갱신하는 사천당가의 명성을 고꾸라트릴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 것인가?

누군가 걱정스레 묻자 호명신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듯합니다.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니, 아마 대회 때부터 그들은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흠, 그건 다행이군. 아니, 다행한 게 아닌가? 어떻소, 진인. 이번에도 실패하지는 않겠지?”

“실패라니!!”

지난번 실패의 설욕 겸, 복수를 위해 직접 함정을 준비한 청명파의 담명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두고 보시오. 지난번과 같은 간사한 귀계로 넘어갈 수는 없을 테니.”

잔뜩 으르렁거리는 담명, 그 모습에 장해광은 그저 빙긋빙긋 웃을 뿐이었다.

“아무렴, 잘하시겠지. 이 장모는 청성파를 굳게 믿고 있소이다.”

“…….”

이게 과연 고고한 도인들의 대담인지.

생각해 보면 저 자신 역시 세속에 물든 땡중인 주제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우습다고, 호명신니는 덤덤히 눈을 감고 손에 쥔 묵주만을 굴렸다.

* * *

그렇게 어디선가 무수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때 당가의 방계들은 땅바닥에 드러누워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으으으……. 주, 죽겠다…….”

“사, 살아들 있으십니까?”

“몰라… 죽은 것 같아…….”

함께 모여 삼재진을 운용해 잡룡단의 힘을 흡수한 방계들은 다들 곡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넙죽 엎드린 당유혼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으르렁거렸다.

“…진짜 다 뒈지고 싶냐?”

“…….”

웁―

그들에게 잡룡단을 흡수시키느라 중앙에서 가장 고생했던 당유혼인 걸 알기에 나머지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이 손 많이 가는 놈들. 진짜 죽겠다, 죽겠어.’

당위혼에게 잡룡단을 흡수시킬 때도 힘들었지만, 서른세 명에게 그 힘을 흡수시키는 건 진짜 사람이 할 짓이 못 되었다.

그나마 하나하나 하다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삼재진의 힘을 빌렸는데도 진짜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진을 침묵 속에서 숨만 헐떡이며 쓰러져 있던 당유혼이 입을 열어 두 명의 이름을 불렀다.

“당지명. 당불퇴.”

“넵!”

“넵!”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자마자 벌떡 일어선 둘은 부동자세로 지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여전히 엎드린 상태로 꿈쩍도 안 하는 당유혼이 으르렁거렸다.

“이번 대회의 중요성은 알겠지?”

“아, 알고 있습니다!!”

“무조건 우승이다. 못 하면 니들을 통째로 가마솥에 넣고 영단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진심으로 갈아 마셔 버리겠다고 선언하는 그 나지막한 말에 둘은 바짝 얼어서 덜덜 떨었다.

‘무, 무조건 우승해야 돼……!’

‘못하면 진짜 가마솥에 처넣을 거야… 저 괴물은……!’

대회.

달리 사천무림 대회라 불리는 그것은 사천지회의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사천삼주가 개최하여, 청성, 아미, 점창의 세 문파는 참석하지 않지만 사천의 전 문파의 무인들이 참석해 겨루는 무림대회였기에 그 우승자는 엄청난 명성을 얻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막대한 상금은 물론이고, 무려 세 문파의 무공 중 하나를 견식할 기회까지 주어지기에 우승자가 속한 문파는 비약적인 도약을 할 수 있는 거대한 행사였다.

물론, 당가에서 그 무공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 대회 초청의 의미.

‘아주 간사한 새끼들이야. 역시 위선과 가식의 상징 명문정파. 뭘 꾸미나 했더니 그런 치졸한 술수나 꾸미고 있었다… 이거지?’

사천무림 대회에 초청장을 보냈다.

이건 참석과 불참석 둘 다 쉽게 고르기 힘든 외통수였다.

‘불참한다면 당가가 겁먹은 것으로 보일 것이고, 참석한다면 결국 당가는 사천삼주 아랫급으로 놓이게 되는 한 수. 그걸 공개적으로 당가에 보냄으로써 우리의 명성에 이미 흠을 그어놓았다.’

초청장이 당도함에 따라 당가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모여 진중히 고민하여 결론을 냈다.

무조건 이긴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유일하게 낼 수 있는 최선의 수는 오로지 그것뿐.

압도적으로 무쌍(無雙)을 보여야 그나마 당가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다.

덕분에 방계들은 달달 떨 뿐이었으니…….

“우승은 기본이다. 그건 아주 당연한 전제조건이라고. 문제는 어떻게 이기냐는 거다. 아주 처절하게,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뼈와 살을 발라 버린다는 기세로 분쇄시켜 버려. 알겠어?”

“예… 예… 물론입죠.”

“다, 당연합니다!”

사천무림 대회.

일 년 중 오로지 이날만을 기다린 사천 문파들이 수두룩하겠지만, 그들의 꿈과 희망을 전부 갈아 마셔 버리고 오라는 당유혼의 선언에 둘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못 하면, 우리가 갈아 마셔질 거잖아!!’

그렇게 차차 흘러가는 시간 속, 사천지회의 꽃인 사천무림 대회는 개최되었다.

* * *

조별 추첨식이 이루어지고, 늦게 늦게 청성산으로 올라선 당가의 무리는 아주 화려하게 치장된 청성파의 모습들을 두 눈에 담았다.

“여기가…….”

“청성파……?”

태어나서 처음 청성파에 와보는 방계들은 신기해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진짜 산속에 있는 문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청성파는 화려하고 깔끔하며 번화한 곳이었다.

“이 새끼들, 진짜 도사 맞어?”

“대, 대형?”

“그런 말은 제발 마음속으로만 하십쇼!!”

질겅질겅―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시정잡배와 같이 삐딱한 걸음걸이를 내디디는 당유혼은 온 세상이 불만인 듯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으르렁거렸다.

“니들은 안 웃기냐? 바닥에 옥판 깔아놓은 것 봐라. 아주 번쩍번쩍한 게 광이 다 나겠다. 아미파 땡중 놈들 머리처럼 반짝반짝하네?”

“대형!!!”

아무리 싸우러 왔다지만, 면전에서 청성과 아미를 모두 까는 말들을 뱉는 당유혼의 말에 방계들의 심장은 널뛰기하듯 펄떡펄떡 뛰었다.

함께 걷던 당위혼조차 차마 고개를 들지 못 할 정도의 말들을 구시렁거리는 당유혼은 누구 하나 걸려만 봐라, 하는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곤 했다.

그렇게 쭉쭉 걸어 다니는 그들은 무림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신청소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춰 섰다.

“어디서 온 분들이십니까?”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던 젊은 도사 하나가 그들을 발견하고 묻자 당유혼이 선두에 떡 하니 나서서 입을 열었다.

“대(大) 사천당가에서 오셨다.”

“…사천, 당가 말입니까?”

그 말에 젊은 도사의 인상이 찌그러졌다.

어떤 문파든 앞에 대(大)자를 붙이는 것은 상대보다 자신들이 더 잘났다 말하는 도발과 다름없었다.

그에 설마 자신이 잘못 들었나 되묻는 젊은 도사였지만,

“뭐야. 넌 젊은데 벌써 난청이 왔냐? 청성파에서는 사람 참 막 굴리나 보네?”

“나, 난청이라니!!”

이미 삐딱해진 당유혼의 언행은 거칠 게 없었다.

“대, 대형!!”

“제발 가만히 있으십쇼!!”

‘당신보다 소속원을 막 다루는 문파는 없어!!’

결국 참다못한 방계들이 억지로 당유혼을 뒤로 보내고 당위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사천당가의 가주 당위혼이오. 사천무림 대회의 초청장을 받아 참석하였소.”

대회에 참석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대들의 초청을 받아 왔음을 명확히 선을 긋는 말. 당유혼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오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말에 젊은 도사는 허… 하는 반응을 보였다.

“당가주님이셨군요.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시면 자리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암만 그들의 말에 분기를 느껴도 가주 앞에서 역정을 냈다간 문파의 위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잘 아는바, 젊은 도사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포권을 취했다.

그렇게, 당도하자마자 문파 간의 분쟁을 만들어 낼 뻔한 당유혼을 간신히 뒤로 물리고 사천당가는 정해진 자리에 안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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