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03화 (103/350)

103화

사천무림 대회는 사천 온 축제의 장이다.

명성을 얻기 위해 사천의 모든 문파가 참여하지만, 그렇기에 그 인원수를 줄이기 위해 한 문파 당 두 명의 인원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참여하는 인구가 엄청나게 많기에 선별하는 작업 속 대회의 무대는 여럿으로 나뉘었다.

질겅질겅―

“야, 육포 더 없냐?”

“…대형, 벌써 가져온 주머니만 여섯 개를 동내셨습니다.”

“아, 그래서 있냐고 없냐고.”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관람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관람석 한구석에선 자리를 잡은 당유혼이 돗자리를 깔고 누워 햇빛을 가려주는 양산(陽傘) 아래 방계들이 부치는 부채질을 받으며 육포를 씹어대고 있었다.

거의 자기네 집 안방과 다름없는 행동거지에 주변인들의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차마 그를 말릴 사람은 여기 없었다.

‘가주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방계들의 시선이 유일한 희망 당위혼에게로 향했지만, 차마 그조차도 쓴웃음만 지을 뿐 어쩌지 못했다.

애초에,

“가주님. 가주님도 좀 먹어봐. 이 육포 맛있어.”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함께 드러눕자고 자리까지 가져와서 탕탕 두드리는 제안을 거절하는 것만도 버거웠다.

“에잉, 맛있는데.”

결국 혼자 뒤틀린 행동거지를 하는 당유혼은 침상처럼 드러누운 채 입을 삐죽였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우리 애들은 언제 나와?”

“대진표를 보자면 이제 곧인데… 아, 저기 불퇴가 나옵니다.”

당가에서 참석한 두 명은 당지명과 당불퇴였다.

마음 같아선 직접 나서고 싶었지만, 분명 수를 꾸미고 있을 게 분명해 남은 당유혼을 제외하고 방계들 중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두 명을 내보냈다.

‘율기 녀석이 더 침착할 것은 같지만… 녀석이 다루는 건 하필 독이니까.’

이런 대회에서 극독은 당연 금지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에 이르지 않는 어느 정도의 독은 허용되겠지만, 독으로 이겨서야 명성보단 악명이 더 쌓일 게 뻔하기에 무투(武鬪)만을 사용하는 장소에서는 앞의 둘이 더 나았다.

그렇게 출전한 둘 중 당불퇴의 경기가 먼저 치러지게 되었고, 무대에 올라선 당불퇴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을 되뇌었다.

‘압도적인 승리, 압도적인 승리, 압도적인 승리.’

어쭙잖게 이겼다가는 개처럼 처맞을 게 뻔했기에 당불퇴로서는 잔뜩 긴장한 채 검을 쥐고 있는 상대를 응시하며 두 주먹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배, 백검문의 한용우입니다! 사사받은 무공은…….”

무어라무어라 말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잘 들리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관중들이 보는 대회에 참가한다는 부담감 때문은 아니었다.

‘못 하면 난 진짜 죽는다. 무조건 압도적으로 이겨야 해!’

생존에 대한 갈망과 처맞기 싫다는 두려움!

그 생각이 이성을 단단히 봉쇄하고 있어, 그를 마주하고 있는 상대에게는 오히려 만만히 보이기까지 했다.

‘뭐, 뭐지? 나보다 더 긴장한 건가?’

사천 무림의 군소 방파에서 출전한 젊은 무인 한용우.

그는 이번 대회가 자신이 속한 문파의 명성을 드높일 기회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용우야,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래, 경험만 쌓는다고 생각하고… 다치지만 말고 돌아오거라.”

걱정을 가득 담고, 이런 거대한 대회에 괜히 내모는 게 아닐까 싶어 말하던 문주님과 장로님들의 시선이 자꾸만 기억 속에 아른거렸다.

문파의 신물인 백철검까지 쥐여주는 문주님은 다치지만 말라고 하셨지만…….

‘어찌 내가 그러할 수 있을까. 우리 백검문의 존재를 사천 무림에 알려야 해!’

한용우 역시 자신의 주제를 잘 알았다. 우승은커녕 수상조차 힘들다는 것 역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표는 본선 진출! 본선만 나가도 우리 백검문의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거야!’

백철검을 쥔 두 손에 힘이 더해졌고,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심판이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에 한용우는 검을 꼭 쥐고 달려 나가며 기합을 내질렀다.

“하압!!”

백검문의 절기 백검이십팔수 중 최고 절초가 펼쳐졌다.

긴장과 집중이 최고조로 오른 한용우이기에, 그의 일생에서 이보다 완벽하게 펼칠 수 있나 싶은 검법이 펼쳐졌다.

‘됐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했다.

이 검초라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카앙―

문득, 그의 고막에 때려 박히는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이윽고,

따앙… 땅… 데구루루…….

부서진 쇳조각이 땅바닥을 굴러다닌다.

“어… 어…….”

검을 내리 휘두른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한용우의 고개만이 고장 난 맷돌처럼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아… 아아…….”

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제발……!!

“시, 신물이… 문파의 신물이……. 배, 백의검이…….”

그곳에 있는 것은 부서진 백의검의 칼날.

주룩―

뜨거운 무언가가 그의 눈가 주변에 가득 흐르고…….

“승리! 압도적 승리!!!”

주먹을 내뻗은 자세로 맹렬히 소리치는 당불퇴의 목소리만이 연무장 위를 채웠다.

“…사천당가 소속 당불퇴, 승리.”

그 모습을 본 심판은 차마 한용우를 보지도 못하고 그리 선언했다.

* * *

예선전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당불퇴가 있는 연무장에서는 비슷한 소리만 울려 퍼졌다.

쩌엉―!

“아, 안 돼!! 문파의 신물인 흑철창이!!!”

뻐억!!

“아악!! 문파의 보물인 혈염검이!!”

까앙!

“안 돼!!!!! 가문의 가보인 대력도가!!!”

사천무림 대회를 위하여, 아끼고 아끼던 문파와 가문의 보물을 가져온 이들의 절규와 비명이 잇따라 울려 퍼졌다.

당불퇴는 압도적인 승리를 달성하려면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바로 상대의 무기 부수기였으니…….

‘어… 뭐지? 이게 맞나?’

대충 다섯 명째 부쉈을 때쯤엔 이성이라 할 만한 게 돌아온 당불퇴는 자신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무인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미, 미안하게 됐수…….”

“으흐흑… 가문의 가보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된 걸 깨닫고 손을 내밀어 보지만,

“썩 꺼져라!! 이 악귀!! 어찌 사람이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아, 악귀라니!! 말이 심하잖아!!”

하는 말들마다 자신들이 대형에게나 쏟아붓던 말임에 상처받은 당불퇴가 열심히 항변했지만,

“우우우우!!!”

“또 저놈이다! 또 문파와 가문의 신물을 부쉈어!”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해!”

“아주 악독한 놈이구만!”

굳이 독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온갖 악명을 선사 받은 당불퇴는 연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쯧쯧.’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당지명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 자식은 대형에게 돌아가면 처맞을 게 확실하군.’

명성을 쌓아오랬더니 악명을 쌓아온 모습에 그 미래가 그려진 당지명은 조용히 그의 명복을 빌어줬다.

아니, 혹시 아는가?

‘대형 성격이라면 오히려 잘 됐다고 낄낄낄 웃을지?’

생각해 보면 또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당유혼의 겔겔 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던 당지명의 상념을 깨준 것은 대전 상대로 나온 검수의 목소리였다.

“…흥, 내가 그리도 가소로워 보이시오? 대전을 앞두고 다른 쪽을 보고 있다니. 아주 여유가 넘치군.”

“아.”

그제야 당불퇴에게서 시선을 돌린 당지명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포권을 취했다.

“미안하게 됐구려. 사천당가의 당지명이오.”

압도적인 승리라고 하지만, 당불퇴처럼 무식하게 상대방의 무기를 부술 생각은 없었다. 사천삼주에게 죗값을 물어야지, 청운의 꿈을 품고 대회에 참가한 다른 이들에게 감정을 가진 것은 없으니까.

그리하여, 당지명은 가져온 무기를 꺼내며 자세를 취했다.

“…또 다른 무기군.”

“음?”

“당신의 이전 비무들을 보았소. 처음은 검. 두 번째는 쌍문고검. 이번은 창이오?”

“아아…….”

비무마다 다른 무기를 꺼내는 모습에 상대가 자신을 업신여긴다 생각하며 으르렁거리자 당지명은 쓴웃음을 지을 뿐 차마 답하진 못했다.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니.’

딱히 상대방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번 대회에 앞서 당유혼이 자신을 불러내 추가로 한 말이 있었다.

“너, 이번 비무 대회에서는 각기 다른 무기를 써라.”

“예? 왜요?”

“그게 네 발전에 어울릴 테니까.”

무심한 듯 보이지만, 언제나 자신들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 당유혼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에 당지명은 당계로 돌아오자마자 당가의 비서고를 뒤져 온갖 무기들을 다루는 무공서를 익혔다.

“…변명은 않겠소. 다만, 실망시키지는 않겠소.”

당지명 창끝에 묶어 두었던 가죽을 풀어내며 그 끝을 상대를 향해 겨누었다.

“흥, 한 번 붙어봅시다.”

그럼에도 흑호도문의 유길상은 분기를 숨기지 않고 흑도의 날을 예리하게 세웠다.

비무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유길상이 선공을 가했다.

“하아아압!!”

기합과 함께 흑도가 휘둘러졌다.

그에, 당지명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빙글― 창대를 회전시켰다.

따앙―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창끝과 흑도의 날이 정확히 부딪혔다.

‘창(槍)이라는 병기가 가진 장점은 거리. 중거리 무기인 창의 이점을 살리려면 항상 거리에서 우위를 취해야 한다.’

칼날과 창날이 부딪쳐 쇳소리를 울리는 것은 생각보다 더 사람에게 긴장감을 선사한다. 실제로도 유길상의 경우 표정이 굳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하나, 당지명은 그 쇳소리와 반탄력에도 평정을 잃지 않고 덤덤히 선회하며 원(圓)을 그렸다.

‘창의 기본은 란나찰(攔拿扎)! 밀고, 누르고, 찌른다!’

창술의 기본기에 충실한 창격이 이어졌다.

날아드는 도격을 밀어내고, 그대로 눌러 빈틈을 만들어 그 사이를 노려 예리한 창격을 찔러 넣었다.

처음에는 처음 사용하는 무기로 어디까지 자신을 상대할 수 있을 지 보겠다며 흥분하던 유길상이지만, 몇 번 합을 교환하자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창 끝이……!’

계속해서 뱀처럼 휘어져 들어오는 공격은 하나하나가 묵직하고 예리하며 또 위험했다.

그 창술의 정체가 사미창(蛇尾槍)이라 불리는 당가의 창법임을 모르는 유길상으로서는 순식간에 위기에 놓이게 되어 정신이 얼떨떨할 지경이었다.

결국,

타앙―!

강한 반탄력이 손아귀에 작렬하고 무기를 놓친 유길상이 아― 하고 탄성을 내지를 때,

“끝이오.”

어느새 목젖까지 다가온 창극이 쿡― 하고 피부 위를 찔러 핏방울을 맺어내자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본가의 창술인 사미창이오. 본래는 이 끝에 독을 묻혀 사용하는 독창술(毒槍術)이기에 이걸로 그대는 한 번 죽은 것이오.”

“…하.”

변명할 수 없는 완벽한 패배.

친절히 일러주는 모습과 그 순간까지 흥분한 기색 하나 없는 상대방의 모습에 완벽한 벽을 느낀 유길상은 허망한 표정으로 두 손을 축 내렸다.

“내가… 졌소.”

사천당가의 당지명 승(勝)!

심판의 승리 선언이 이어지고, 그렇게 승리를 차지한 당지명은 유길상에게 포권을 취하고 비무대를 내려왔다.

둘의 승전보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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