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06화 (106/350)

106화

* * *

아, 정신이 몽롱한 이 기분.

‘나 또 기절했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당불퇴는 부유해 있는 제 의식이 제자리를 찾아가길 기다렸다.

혼절하는 것도 여러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고, 이제 곧 들려올 대형과 형제들의 조롱과 함께 눈을 뜰 준비를 하는 당불퇴의 귓가에 걱정 섞인 미성이 들려왔다.

“소협, 정신이 드시나요?”

“……?!”

벌떡―

“소, 소저?!”

“정신이 드셨군요!”

평소와 같이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그의 형제들이 아닌 걱정과 안심이 공존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적세희였다.

그녀는 당불퇴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물수건을 물이 담긴 그릇에 담가 적시더니 원래 자리에 올려주었다.

턱―

시원한 수건의 감촉에 어벙벙하게 눈만 깜빡이던 당불퇴가 겨우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여, 여긴 어떻게…….”

“삑삑이가 어머니를 찾아 도움을 청했고, 저를 이리로 데려왔습니다.”

“삑삑!”

언제 왔는지, 곁에서 삑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삑!”

“…네 덕이니 고마운 줄 알라고? 그래… 엄청나게 고맙다, 진심으로.”

세상에…….

기절했다가 깨어났는데도 형제들의 조롱이 아니라 초특급 미녀의 간병을 받을 수 있다니.

‘이게… 인생인가……?’

맨날 이상한 것만 처먹고 칙칙한 남정네들 사이에서 허덕거리던 당불퇴는 처음으로 태어난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그때였다.

“쯧쯧쯧. 아주 지랄을 해라.”

잔뜩 비비 꼬인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왜 이제야 들려오나 싶은 그 목소리에 당불퇴는 히히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대형.”

“얼씨구? 어디 잘못 처맞았냐? 또 지고 온 주제에 쪼개기까지 하네?”

“아니, 이번에는 이겼거든요?”

무려 십이 대 일로 싸워 승전보를 겨누었다고 당당히 얘기하는 모습에 당유혼은 피식 웃었다.

“뭐, 일방적으로 처맞고 오지는 않았으면 됐다.”

“복수라도 해주시게요?”

“뭔 개소리야? 복수는 네가 하는 거고.”

네가 팔이 삐었냐, 다리가 부러졌냐? 직접 해, 인마.

“…그럼 뭐가 된 겁니까?”

“일방적으로 처맞고 왔으면 넌 나한테 개 맞듯이 맞았을 테니까?”

감히 이 몸에게 사사한 주제에 잡배한테 두들겨 맞고 오다니, 쪽팔려서 내가 사천 시내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겠냐?

“…아, 예. 그쵸.”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당불퇴는 다시금 침상에 몸을 기대었고, 적세희가 어디서 가져온 과일을 깎아 입에 물려주었다.

“아, 하세요.”

“아, 넵.”

욤뇸뇸.

크… 행복하다. 이게 인생이구나!

“…역시 좀 더 쥐어패 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공자님도 드실래요?”

“…줘봐요.”

자신의 서방이 두들겨 맞을 걸 방지하는 적세희의 모습에 당유혼은 한숨 푹 내쉬며 사과 조각을 받아 들었다.

“됐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알고 있냐?”

“제가 꽤 오래 기절해 있었나 봅니다.”

“내일이 네 대전 날이다.”

사강부터는 사흘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당장 내일이 대전 날이라…….

“몸 상태는 어떻지?”

“몸 상태요?”

그야 당연히…….

“최상이죠.”

씨익 웃는 당불퇴.

“자, 잠깐만요. 공자님! 공자님은 조금 더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그에 당황한 것은 적세희였다.

“의원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공자님의 내부는 현재 온 기혈이 뒤엉켜 있기에 그걸 다스리는 걸 우선 최우선으로…….”

“그러시다는데?”

“그렇다네요.”

당황하는 적세희와 달리 다른 두 방계들은 히죽거릴 뿐이었다.

그에 그녀가 답답해할 때 당불퇴가 말했다.

“적 소저.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전 괜히 허세나 부리며 몸 상태가 좋지도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자님의 상태는 누가 봐도…….”

“엉망으로 보이시죠? 하지만 이게 저희 평균이에요.”

기혈이 엉키고, 사지 중 하나가 부러진다? 그런 건 당가의 방계들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무슨…….”

적세희는 적웅과는 계열이 달라도 붉은 바위 일족의 비술을 익혔다.

비술을 익힌 덕분에 그녀는 사람의 눈을 보았을 때 그가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비술이 비추어 오는 것은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

“그러니까, 저는 지금 최상의 상태입니다.”

다시 한번 웃으며 말하는 당불퇴.

그에,

“…저는 몰라요!”

“저, 적 소저?!”

적세희는 울면서 뛰쳐나가 버렸다.

뭐, 뭐지?!

“대형. 저 뭐 잘못했습니까?”

“그럼 안 한 것 같니?”

“예에에에?!”

“쯧쯧, 불퇴야, 불퇴야. 이 어린 것아. 네가 여심을 알기야 하겠니?”

네가 제일 어리다니까?!

마음속으로 그런 외침을 내질렀지만, 입밖에 튀어나온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잡아야지.”

“…예?”

“뭘 멍청하게 ‘예?’ 하고 있냐? 가서 잡으라고. 여자는 일단 잡고 보는 거야.”

그게 뭔 개소린지…….

당불퇴는 도통 알 수 없었으나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잡기 위해 달려가기로 했다.

그의 야수 같은 직감이, 이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몰라도 그녀를 놔두는 건 안 된다고 소리쳤으니까!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후다닥―

이불을 던지고 나선 당불퇴는 곧장 적세희가 달려 나간 방향으로 쫓아갔다.

‘어디 가신… 아, 저기 있다!’

다행히 적세희를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적 소저!! 여기서 뭐 하는… 아이구야!”

그녀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일족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화장을 번지게 한 상태였다.

“…여기까지는 왜 오셨어요. 몸도 안 좋으신 분이.”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

어쩌다 여기까지 온 지 모를 당불퇴는 속이 타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여기서 그리 말했다가는 진짜 큰일 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답했다.

“소저가 걱정돼서 찾아왔습니다.”

“치…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어요.”

‘귀, 귀엽다…….’

화장이 번져 엉망이 되었지만, 그녀의 눈웃음은 살인적으로 귀여웠다.

“저… 그, 저는 진짜 괜찮습니다.”

그 살인적인 귀여움이 비수가 되어 명치라도 꽂힌 듯 당불퇴는 침묵 상태에 빠졌다.

원래 상황 안 가리고 잘만 말하던 그가 말문이 턱 하고 막히자 장내에는 무거운 고요가 깔렸다.

쿵쿵쿵―

심장 박동 소리만 터질 듯 울려 퍼지는 이 순간.

차양당의 마적 떼들이 휘두르는 칼날 앞에서도 머릴 들이밀던 배짱의 당불퇴도 지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눈치만 봤다.

‘아, 안 돼. 이렇게 있으면……!’

그의 야수 같은 직감이 말하고 있다.

이대로 가만히 입 닥치고 있으면, 진짜 영원히 입 닥치고 있어야 할 것만 같다는 것을.

백 명의 검수에게 맨몸으로 덤벼드는 것보다 더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당불퇴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 소저.”

“네, 공자님.”

“화가… 많이 나셨습니까?”

“그렇게 보이시나요?”

“음…….”

넹.

그렇게 말할 뻔한 당불퇴지만, 왠지 모를 직감이 그의 입을 꾹 다물게 했다.

그래서 은근슬쩍 눈치만 보고 있자니, 적세희가 천천히 눈을 돌려 당불퇴를 마주 보았다.

움찔!

“공자님.”

“네, 넵?”

부드럽게 뻗어온 손이 당불퇴의 손을 마주 잡았다.

“제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요?”

“그렇습니다. 감히 공자님께 드릴 말은 아니지만… 저는 하나뿐인 혈족을 잃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너무나 선명합니다.”

“아…….”

당불퇴는 모르는 감정이다.

천애 고아인 그가 어찌 세상 유일한 피붙이가 떨어져 나가는 심정을 알 수 있을까?

다만,

‘형제들을 잃는다면… 비슷한 심정일까?’

어렴풋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는 감정에 반추하여 그녀를 바라보자, 참으로 깊디깊은 두 눈망울이 슬픔과 기쁨, 걱정과 두려움, 미안함과 고마움의 수많은 감정의 조각을 그러안고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뭐, 뭐가 말씀이십니까?”

“한낱 어리광에 불과한 이런 제 치기 어린 행동들을… 공자님께서 따스하게 받아주신, 그 모든 것을 말입니다.”

포옥―

부드럽게 안겨 오는 적세희.

그녀는 별이 뜬 이 한밤중에도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지만… 동시에 지독한 한기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적 소저…….’

그 감정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 슬픔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당위혼처럼 자상하지도 않고, 당유혼처럼 뛰어나지도 않고, 당지명처럼 섬세하지도 않은 당불퇴는 그 답을 알 수가 없어,

꾸욱―

그저 자신의 작은 품으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지랄을 한다. 아주 지랄을 해.”

“씨이팔, 이게 나라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계들을 통탄을 금치 못했다.

“기껏 깨어났다고 병문안이나 와주려 했더니…….”

“복수? 시잇팔, 복수는 개뿔. 여기 피해자가 누가 있어?”

암만 봐도 저 새끼가 가해자다.

오히려 저놈이 양패구상했다던 복면인들을 찾아가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해야 강호의 도리에 맞지 않을까?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 떨어졌어.”

“역시 청성파야. 명문 정파가 잘못할 리 없지. 암, 고렇고말고.”

이미 하오문을 통해 당불퇴를 습격했던 복면인의 정체가 청성파라는 것은 알아낸 뒤였다.

당시 당유혼은 그 정보를 가져온 하윤호에게 “이야, 요즘 정보는 강도한테 다 털리고 나서 그 강도가 누구인지 알려주나 보네?”라며 죽도록 갈궜지만…….

“됐다. 일 텄다.”

“잠이나 자러 가자.”

밤중에 청성파 산문이라도 넘으려 했던 이들은 짜증스레 가져온 복면을 집어 던졌다.

오늘도 사천당가는 평화로운 듯했다.

* * *

한편, 그 화기애애한 당가와 전혀 반대되는 분위기로 줄초상 난 듯, 대기가 착 가라앉은 곳이 있었다.

“열둘이 습격했다가… 양패구상하여 돌아왔다고?”

“그, 그게…….”

“사형, 그놈은 괴물…….”

“시끄럽다!”

청성파 일대 제자 진혁수의 일갈에 이대 제자 제형우는 주눅이 들어 입을 꾹 다물었다.

당불퇴 습격 작전에 실패한 그들은 그가 자신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강자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사형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쪼르르 몰려왔지만…….

‘이… 한심한 놈들. 내 체면을 아주 맷돌에 넣고 갈아버렸구나.’

멍청이가 아닌 이상 당가에서도 습격을 사주한 것이 자신들임을 알 터였다.

아니,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청성파가 주최하는 사천지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창피한 일이었다.

‘설욕을 위해 꼴같잖은 복면을 두르고 삿갓까지 덮은 채 참전했건만…….’

사강까지 진출한 의문의 삿갓인이 진혁수라는 건 사실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혹여 사천당가가 선전하며 결승까지 진출했을 경우, 그들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기 위해 청성이 준비한 한 수가 바로 진혁수였다.

“네놈들의 한심한 행각 때문에… 이젠 이겨도 낭패가 되지 않았느냐!!”

“그, 그게…….”

“저희는 사형을 위해서…….”

“입 다물어라!!”

사나운 일갈에 가뜩이나 좋지 않던 이대 제자들의 안색이 더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당장 꺼지거라. 꼴도 보기 싫으니까!!”

추상같은 축객령에 이대 제자들은 허겁지겁 진혁수의 방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렇게 홀로 남은 진혁수는 괜스레 자신의 애검을 힘주어 쥐었다.

‘멍청한 것들…….’

검병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의 그 분노가 진정 이대 제자들의 어리석은 행각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철검십이진을 홀로 파훼했다? 웃기지 마라. 저놈들이 어수룩했을 뿐이겠지. 그걸 실력으로 파훼했을 리가 없다.’

설욕을 위해 치욕을 감수하고도 참여한 이 대회에서, 오히려 더더욱 깊은 곳까지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진혁수는 떨리는 감정을 짓이기듯 눈을 꼭 감았다.

저 한밤중의 하늘보다 더욱 깜깜한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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