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청성의 일대 제자 진혁수.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첫 기억이란, 모든 게 다 타버린 어느 마을에 홀로 서 있던 그에게 누군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었다.
“…나와 함께 가겠니?”
주름지고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 손.
세상에 이렇게 고되게 살아온 이가 또 있을까 싶은 손을 바라보며,
“…네.”
진혁수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 * *
뒤늦게서야 알게 된 것은, 자신이 따라 들어온 곳의 이름이 청성파라는 것이었다.
그 문파가 구파일방이라 불리는, 전 중원에서도 손에 꼽을 대문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더 이후의 일이었지만, 그게 진혁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스승님. 식사하시지요.”
이른 아침.
새 지저귀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전에 일어난 진혁수는 매일 같이 상을 차려 스승이 머무르는 묘옥을 찾았다.
“혁수 왔구나.”
문이 열리고, 장년인이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들어오거라. 아침 공기가 차갑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차림. 깨끗이 씻은 나물과 갓 지은 쌀밥, 그리고…….
“이 녀석아. 도사라는 녀석이 고기반찬이 말이 되더냐?”
자신의 쪽에 수북이 쌓인 고기반찬을 보며 장년인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에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의원이 말하기를, 기력이 쇠한 환자에게는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게 제일이라고 합니다.”
진혁수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또박또박 그리 대꾸했다.
“헛… 고얀 녀석. 제자란 것이 스승에게 면박을 주느냐?”
“…그러니 스승님께서 빨리 쾌차하십시오.”
그 말에 장년인은 음… 하고 침음을 흘리다 이후 헐헐, 너털웃음과 함께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진혁수는 씁쓸한 표정을 짓다 이내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스승님.’
그의 스승은 청성파에서도 장로의 직급을 가진 인물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딱, 직급만을 가진… 허울뿐인 위치이시다.’
본래 장로라고 하면 문파의 장(長)인 장문인과 동일한 항렬이거나 바로 그 아랫급은 되는 이들이다.
진혁수의 스승 역시 그들과 동일한 항렬이기에 장로의 직위를 받았으나, 가진 것은 그 직위뿐. 그 외의 혜택은 없다 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스승님께서는… 무공을 잃으셨으니까.’
스승님은 패잔병이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예전에 마교라는 강대하고도 극악무도한 이들이 있어 그들이 전쟁을 일으켰고 자신은 그 전쟁에서 도망쳐 온 패잔병이라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무공을 잃었고, 무공을 잃은 무인은 무림 집단에서 찬밥 신세일 수밖에 없다고…….
뒷말은 스승님께 들은 것은 아니었으나, 고아 출신인 진혁수는 살아남기 위해 여기저기서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자라나며 주위 사람들의 소리를 엿들으며 자신과 스승의 신세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다. 어떻게든 강해지기 위해 노력한 것은.
‘무림에서 최우선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결국 무공이다. 강해지면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다.’
스승이 모든 것을 잃은 것은 무공을 잃었기 때문이라면, 자신이 무공을 얻는다면 모든 것을 돌려줄 수 있으리라.
그렇기 위해 진혁수는 이후 동일한 항렬의 사형제들이 주는 굴욕에도 꿋꿋이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저 독한 놈. 아직까지 수련을 하는군.”
“큭큭, 그래봤자 제대로 된 무공 하나 못 익힌 놈 아닌가?”
“어쩌겠나? 스승이 무공 하나 익히지 못한 반푼이… 어억? 이놈, 왜 이래?!”
“야, 놔! 이거 안 놔?!”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만 듣는다면 양반이지, 알게 모르게 그의 스승을 모욕하는 놈들도 있었다.
“뭐라? 우리 용수가 청운 사제를 모욕했다고?”
“어허, 내 제자의 말은 다른 듯한데…….”
“다른 아이들 모두 너와 말이 다르구나.”
욱해서 싸울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불이익뿐.
이미 반쯤 내쳐진 것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스승과는 달리, 이미 똘똘 뭉친 저들 장로들과 그 제자들은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죄인으로 몰 뿐이었다.
“저놈, 저거… 독한 것 보거라.”
“끝까지 잘못했다 시인하지 않는군.”
“에잉, 쯧…….”
눈물을 삼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비를 맞은 날들이 몇 날 며칠인지 셀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진혁수는 노력해야 했다.
그들의 말마따나, 무공을 잃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나 무공을 배울 뿐인 그는, 남들 다 먹는 영약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그는… 할 수 있는 게 노력뿐이 없었으니까.
“이놈, 혁수야. 왜 그렇게 떫은 표정이냐?”
“…스승님.”
그런데 어느 날 수련하던 중, 그의 스승이 찾아왔다.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모질게 수련을 하는 그의 하루하루는 스스로에게 가혹한 고문과 같았다.
그런 그를 멈춰 세운 스승이 내민 것은,
“흘흘, 먹거라. 아주 달아.”
“이건…….”
“홍시(紅枾)다. 원래는 지금 네 표정처럼 아주 떫은 땡감이지만… 시간이 흘러 이리 달게 되었지.”
제자에게 주기 위해 두 품에 곱게 안고 온 말랑말랑하게 무르익은 감이었다.
“받으라니까? 어서.”
“스승님…….”
그리고 그걸 받는 순간…….
“큭…….”
결국, 진혁수는 참고 또 참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흑… 스승님… 크흑…….”
사나이 눈물이 비루하고 한심하다지만, 뜨겁게 뜨겁게 새어 나오는 그것은 차마 자신이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진혁수를,
“…….”
그의 스승은 말없이 꼬옥 안아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중천에 떴던 해가 저 산등성이 너머로 저물 때가 돼서야 진혁수는 고개를 들었다.
“스승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저들이 스승님을 멸시하는 것입니까? 어째서 저들 따위가 스승님을 무시하는 것입니까? 들어 알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유일하게 스승님만이 저 무시무시한 마교와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웠다는 것을. 그렇기에 홀로 무공을 전폐하여 이리되신 것을.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혁수야.”
스승은 덤덤하게 진혁수를 불렀다.
그 부름에 멈칫했던 진혁수는 이내 입술을 꼭 깨물며 말했다.
“스승님은… 힘드시지 않습니까? 괴로우시지 않습니까? 저는…….”
“헐헐, 내가 힘드냐고?”
울음과 같은 외침에도 스승은 언제나와 같은 여상한 웃음을 지었다.
“힘들었지. 괴로웠다. 부끄러웠고, 창피했으며, 분했고 또 죽고 싶었다.”
그렇게나 나온 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만 짓던 무골호인(無骨好人)과 같던 스승의 입에서 나온 것은 분명 너무나 충격적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헐헐 웃었다.
“하나, 이제는 아니다. 그래, 인생사 모든 것이 다 그렇더라.”
“어째서…….”
“네 덕분이다.”
“…예?”
상상도 못한 말에 진혁수는 눈만 깜빡였다.
“너를 만난 이후, 내 삶이 이 홍시와 같이 변했느니라.”
딱딱하고 떫기만 하던 땡감이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홍시가 되듯,
“내 후회와 오욕으로 점철된 삶이 이리도 즐겁게 변한 것은 전부 네 덕이란다, 혁수야.”
흐르는 시간 속에 자신의 분노가 씻겨 나가고 행복이 찾아오듯, 자신의 제자도 그리될 것이라며 그의 스승은 해가 저무는 저 산등성이를 가리켰다.
“보거라, 혁수야. 청운(靑雲)이 가고 적하(赤霞)가 찾아왔구나. 푸른 구름은 푸른 구름의 멋이 있지만, 저 붉은 노을 역시 그 나름의 운치가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내 너에게 줄 것이 많이 없어 아쉬웠는데 마침 좋은 것이 있구나. 청(靑) 자 배의 내 다음 항렬인 적(赤) 자 배의 네 도호로 적하(赤霞)를 사용하는 것은.”
청운이 가도 적하가 있듯.
청운이 가면 적하가 오듯.
그리 제안하는 스승의 제안에, 이 사문이 준 유일한 선물에…….
“…알겠습니다, 스승님.”
진혁수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이 세상에, 청운이 가고 적하가 오는 것을 알리겠습니다. 그리고, 적하가 가면 다시 청운이 오는 것을. 그 둘을 세상이 꼭 기억하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다짐했다.
비록 그 대답에 다시금 답해 줄 이는 세상에 없으나.
웃으며 떠나간 스승의 비석에 진혁수는 그리 다짐했다.
* * *
우우웅…….
푸름과 붉음이 공존하는 그 아름답고도 처연한 검기에 당불퇴는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되뇄다.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젠장, 너무 멋있잖아?”
“큭… 멋있다고?”
“어. 왠지는 모르겠는데, 끝내주게 멋있군.”
“흥. 멍청한 놈인 주제에… 그래도 하나는 아는군.”
진혁수는 두 자루 검기를 찬란히 불태우며 말했다.
“그래, 이것은 내 빌어먹을 사문이 내게 준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사문 제일이 될 검의 이름이며… 이 세상에 각인시킬 두 이름이다.”
“…그래?”
연원은 알 수 없다. 놈에게도 분명 사연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세상에 사연 없는 놈이 어디 있어?’
당불퇴는 킥― 하고 웃으며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좋아. 그럼 그 끝내주게 멋있는 걸로 마지막을 장식하자고.”
“허세 부리기는. 보아하니 어차피 이제 마지막 한 번 밖에 주먹을 내뻗을 힘이 없어 보이는데?”
“그래서, 싫냐?”
“아니, 최고다.”
이 악물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물론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자신이 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적을 맞상대하려니 그런 감상이 들었다.
그에,
‘웃기는군.’
검병을 더욱 굳게 움켜쥐며 진혁수는 자신의 그런 감상을 비웃었다.
‘그렇지 않았던 적이 어디 있다고.’
반병신 취급받던 스승의 제자에서, 결국엔 그 스승마저 죽고 없어진 일대 제자로. 인정받지 못해 무시와 괄시만 받던 그가 청성일검이란 별호를 따내기까지, 패배의 두려움이 어른거리지 않았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이번에도 다를 바는 없다.’
청운이 가고 적하가 찾아오고, 적하가 가면 청운이 찾아온다.
인생이란 흐르는 시간 속 무한한 순환의 굴레와 같은 것.
스승님이 남겨 준 단 한 줄기 깨달음 속에 창안하고 발전시켜 온 두 자루 검기를 휘휘 휘두르며 진혁수는 두 눈을 부릅떠 달려드는 상대를 응시했다.
“간다!!”
쿠쿠구구구구구!!
당불퇴를 둘러싼 푸른 기운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그에,
‘와라.’
적색과 청색의 두 검기가 진혁수로부터 피어올랐다.
저 지평선 끝에 번지는 붉은 노을과 그 위에 찬란히 펼쳐진 푸른 구름이 중단세와 상단세로 겨눈 검집과 검에 머물며 주변 공간에 번져갔다.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적하만연(赤霞萬演).
우선적으로 피어나는 것은 붉은 노을과 같은 검기의 세례.
온 지평선을 뒤덮는 붉은 노을처럼 붉은 검기가 당불퇴의 시야를 전부 붉게 물들였다.
‘이건……!’
그 검기는 실로 저 하늘에 번진 노을과 같다.
말 그대로 노을과 같이 넓게 퍼져서 이건 뭐… 어딜 쳐내야 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 떼거리로 몰려온 놈들이 펼친 검진보다 더한데?’
말 그대로 만연(漫然)하고 또 막연(漠然)해서 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쿠구구구구구구!!
붉은 검기의 세례로 뛰어드는 순간 느껴지는 것은 어마어마한 무거움!
그때 그 검진에 뛰어들었을 때처럼 막대한 중압감이 온 전신을 내리눌렀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패배를 맞이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당불퇴는 밀려오는 패배의 두려움에 매몰되기보다는 자신의 짐승적인 감각을 믿고, 그 속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갔다.
카카가각!!
내공으로 두른 육체가 사이사이에 섞인 검기에 의해 베이고 찢겨도 그의 감각은 더더욱 예리해졌다.
그리고,
‘저기구나!’
그 감각이 마침내 길을 찾아냈으니, 움켜쥔 당불퇴의 주먹에 푸른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짙게 뭉쳐졌다.
‘최후의 한 방이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그 순간 당불퇴는 스스로 그렇게 부르짖던 푸른 야수가 되었다.
붉은 노을의 파도를 거스르며, 그것을 찢어발기며 나아가는 푸른 야수!
“크아아아아아!!”
그의 외침이 터져나가며 마침내 붉은 노을마저 갈라졌다.
‘됐ㄷ……!’
마침내 쟁취할 승리가 눈앞에 다가와 당불퇴의 눈이 부릅뜨일 때,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청운유운(靑雲流運).
‘아…….’
붉은 흐름 속에서 부드럽게 흘러드는 푸른 구름들이 그의 주먹을 감싸 안았다.
‘반칙이잖아, 이건.’
자신만큼이나 거칠기 짝이 없던 녀석이, 이렇게 부드러운 검을 휘두를 수 있다니.
그것이 당불퇴의 전신을 휘감는 순간, 의식은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무명객 승(勝)!!”
끝끝내 승부의 결판은 나고, 진혁수는 묵묵히 쓰러진 당불퇴를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
마지막 순간, 분명 녀석의 주먹은 툭 하고, 자신에게 와 닿았었다.
다만,
‘그때도 분명… 기절해 있었지.’
그때 주먹에 담긴 힘이 어린아이의 그것만도 못했기에 진혁수는 저도 모르게 쓰러지던 녀석을 잡아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땅바닥에 누인 뒤 멍하니 두어 걸음 물러섰다.
심판이 승패를 결정지은 것도 그 이후였다.
“당불퇴…….”
그래서였다.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되뇐 것은.
“당불퇴라…….”
진혁수는 다시 한번 그 이름을 곱씹었다.
세상에 청운과 적하의 두 이름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처럼,
“기억하지. 네 이름을.”
그 역시 그 이름 석 자를 기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