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09화 (109/350)

109화

* * *

“두 번 연속 기절해 본 기분이 어떻냐?”

당불퇴가 깨어나자마자 들은 소리가 저거다.

어떻게 혼절해 있다 막 깨어난 사람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뾰쪽하게 입술이 튀어나온 당불퇴지만,

“어허, 입술 안 넣냐? 내가 직접 넣어주랴?”

주먹을 불끈 움켜쥔 당유혼의 선언 앞에 얌전히 입술을 오므렸다.

“…두 번 연속 기절이 뭐 어때서 그러십니까?”

수련할 때는 일주일 내내 기절했던 적도 있는데.

“또 처맞고 와서 기절이나 한 주제에 당당하구만?”

“뭐… 이번엔 별로 부끄러운 패배는 아니었잖습니까.”

당불퇴는 마지막 순간 닥쳐오던 그 푸른 구름과 붉은 노을의 아름다움을 떠올렸다.

그거 하나만큼은 뇌리에 각인되듯 선명했고, 패배했지만 이렇게 후련할 수 있을까 싶었다.

“솔직히 대형도 인정하시죠?”

“인정은 무슨. 처맞고 왔으면 처맞고 온 거지.”

그리 말하는 당유혼이지만, 사실 그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기는 했다.

‘청성파 새끼들 요즘 하는 짓거리보고 완전히 실전된 줄 알았는데… 녀석의 유지가 이어지긴 했나 보군.’

청운적하검.

진혁수가 펼쳤던 그 쌍검술 자체는 당유혼도 처음 보는 검법이었지만, 개중 청운이라 불리는 그 푸른 기운은 여전히 당유혼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무공을 잃었다 들었는데… 그래도 돌아가서 후인을 남긴 걸 보면 말이야.’

청운(靑雲).

당유혼이 인정하는 청성의 몇 안 되는 무인 중 하나.

마지막 길이 달랐기에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옛 기억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하는 이름에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되뇄다.

“…진혁수라 했던가?”

“그 되지도 않는 삿갓 쓴 녀석 말입니까?”

“그래. 그 녀석… 기억해 둬야겠더라.”

“헷, 그렇죠?”

첫 만남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두 번째로 부딪쳐 보니 호적수라 여길 만했다. 그런 녀석이 대형의 인정을 받았다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사연 많은 녀석 같긴 한데… 세상에 사연 없는 녀석은 또 없을 테니.’

적당히 때의 기억을 되새기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당주 형님은 뭐 하신답니까?”

“참 빨리도 물어본다.”

쯧쯧, 혀를 찬 당유혼은 오히려 되물었다.

“너 이번엔 며칠이나 잤는 줄 아냐?”

“…얼마나 잤는데요?”

“오늘이 결승 날이다.”

“예?”

“그리고.”

척―

당유혼은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주변 공간이 낯선 걸 알아챔과 동시에 저 밖에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가 귓가에 꽂혀 든다.

“이제 막 결승전이 시작하려 하고 있는 중이지.”

청성파의 의약당.

그곳에서 깨어난 당불퇴는 깜짝 놀라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고, 막 대전이 벌어지려는 비무장을 볼 수 있었다.

* * *

“와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환호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사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열화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지금, 그 가운데에 선 당지명은 천천히 자신의 상대를 마주했다.

“…하나?”

“음?”

“나를, 원망하나?”

환호 소리에 가려 상대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자, 삿갓인은 친절하게도 다시 물어주었다.

그에,

“아아.”

당지명은 싱긋 웃었다.

“어째서 말이오?”

“…네 동생을, 그 꼴로 만들었지 않나.”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했다 들었다.

장로들이 어깨를 두들겨 주며 잘했다 하는 말에 진혁수는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표정과 반대로 무척이나 상쾌해 보이는 당지명은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감사하게 여기고 있소.”

“…어째서지?”

같은 말이지만 다른 물음에 당지명은 적당히 기지개를 켜며 답했다.

“그 녀석, 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잠자고 있더군. 후련해 보이기도 하고… 이리저리 만족스러운 승부였던 듯싶소. 워낙에 무(武)에 진심인 녀석이라… 형의 입장에선 오히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바요.”

“고맙다고?”

그 말에 진혁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나 같은 무명소졸에게 패배하여… 너희 가문의 명예에 누가 되었을 텐데?”

“명예라…….”

그러고 보니 대형이 그런 말도 했던 것 같은데…….

당지명은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워낙 없던 것이라… 새삼스레 그리 얘기해도 난 모르겠단 말이지.’

그런 건 대형이나 가주님, 총관님 정도나 신경 쓸 요소지, 자신 같은 무지렁이는 아직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별로. 그 녀석은 우리 가문에선 패배의 상징이라 치부되는 녀석이거든.”

“…본인 말로는 푸른 야수라고 하던데?”

“…그건 좀 잊어주시오.”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로 얼굴을 붉힌 당지명이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옆에 놓인 창대에 손을 올렸다.

“어쨌거나,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우리 일이나 합시다.”

“우리 일이라…….”

그 말에 진혁수는 눈앞의 상대에게서 시선을 거둬 천천히 주변을 훑었다.

가장 먼저 환호하는 군중들이 보였고, 그 너머로…….

‘배부른 돼지들.’

저 멀리서, 자칭 장로라 불리는 청성의 늙은이들이 이곳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스승님을 멸시하고 업신여긴 것들.’

죽는 그 날까지 스승님을 얕잡아 보았던 늙은 돼지들이 보였다.

자칭 도문의 장로라는 것들이 추악하게 뱃살에 기름이나 차 온갖 더러운 수작질을 부리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제자들에게는 더러운 일을 맡기기 싫다며 끝끝내 자신에게 이 일을 맡긴 이들.

‘좋다. 지금은 당신들의 말에 따라주지.’

그들의 면면을 훑으며 진혁수는 자신의 검을 서서히 뽑아갔다.

“좋아. 우리의 일을 하자고.”

스릉―

날카로운 검명이 울려 퍼지며 예리한 검기가 맺혔다. 동시에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려 퍼지고,

콰아앙!!

둘은 사납게 격돌했다.

끼기긱―!!

창날과 부딪힌 검날이 서로의 영역을 밀어내기 위해 으르렁거렸다.

‘강하군.’

일반적으로 창과 검이 부딪히면 창을 지닌 이쪽이 이득을 볼 수밖에 없다.

왜? 창은 장병기니까.

‘내 쪽이 중병기의 이점을 살리고 있는데, 그걸 힘 대 힘으로 받아내고 있다고?’

지난번 상행에서도 느꼈지만, 확실히 눈앞의 남자는 강했다. 특히 기본기가 무척이나 충실했다.

‘우리 같이 무식한 수련을 하는 이들은 많이 없다 여겼는데.’

두 다리는 단단히 지면을 지탱하고 있고, 허리는 곧게 펴 수평으로 눕힌 검날을 지탱하고 있다.

머리 위로 날카로운 창날이 드리워졌으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시선. 그 아래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가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창이 주특기가 아니었을 텐데?”

“조언이 있어서 말이오.”

“무공의 궁극은 결국 자기 완성이다.”

당지명이 창을 쓰게 된 계기는, 아니, 수많은 병기들을 다루게 된 것은 당유혼에 의해서였다.

“너는 모든 병기를 하나씩 다 다뤄봐라.”

평생 주먹질과 암기만 다루던 자신이 그게 가능할까 싶어 물었지만…….

“너는 될걸?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당유혼은 묘하게 확신 어린 어투로 그리 답했다.

그래서일까?

‘나도 참, 이상할 정도로 여러 무기가 잘 다뤄진단 말이지.’

비단 창술뿐이 아니었다.

사천비무대회를 치르며 여기까지 올라올 동안 다루었던 모든 병기들이, 무공서 몇 번만 보면 지금껏 숱하게 익혀 왔던 것들처럼 손쉽게 다루어졌다.

다만,

“…특이하군. 창을 잘 다루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반푼이에 가까운 것.

“겨우 한 번 부딪혔는데 거기까지 짐작이 가시오?”

“부딪히는 건 처음이지. 다만, 휘두르는 것은 계속 봤다.”

“그렇군. 그쪽도 어지간하시군.”

남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듯한 오만한 말투와 다르게 그에게서는 확실히 느껴지는 게 있었다.

‘우리 애들이랑 비슷할 정도로 노력하는 이들의 땀내가 느껴진단 말이지.’

아마도 자신과 당불퇴가 치러온 모든 경기들을 다 본 게 아닐까?

그 사실에 당지명은 피식 웃으며 창을 거두며 뒤로 물러섰다.

“좋군. 하면 탐색전은 이쯤하고, 슬슬 놀아봅시다.”

“난 놀러 온 게 아냐. 일하러 온 거지.”

“좋을 대로 하시오!”

콰직―

땅바닥에 다시 창을 꽂아 넣으며, 이번엔 비무대의 다른 쪽에 꽂혀 있던 쌍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 비무대 주변으론 당지명이 가져온 온갖 무기가 꽂혀 있었고, 개중 쌍검을 출수한 당지명이 휘몰아치듯 진혁수에게 쇄도했다.

카캉!

“흥, 지금 내 앞에서 쌍검을 휘두른 건가?”

그에 진혁수는 비릿하게 웃으며 검과 검집을 양손에 나누어 쥐었고,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박야지무(薄夜之舞).

곧 아름다운 춤사위가 시작되며 붉고 푸른 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그 검술이구나.’

새로운 무공을 창안해 처음으로 펼쳐 냈던 당불퇴에게 패배를 선사했던 적청(赤靑)의 검기(劍氣).

대비되는 두 색채의 틈새를 향해 창극을 꽂아 넣자,

구구구…….

일순간 두 색채가 하나로 뒤섞이는가 싶더니 해가 진 뒤 어스레한 땅거미처럼 검게 물드는 게 보였다.

‘뭐?’

변한 것은 단순히 검기의 색채만이 아니었으니, 휘둘렀던 쌍검의 날이 그 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그 강력한 인력(引力)에 당지명은 쌍검에 내공을 더 불어넣어 저항하려다,

‘…이건 글렀군!’

답이 없다는 걸 깨닫고 쌍검을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카가각!!

잠시 후 불협화음이 울려 퍼졌고, 검날이 부서지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후우우…….

“감이 좋군.”

검과 검집을 교차하듯 휘둘러 쌍검을 박살 낸 진혁수의 삿갓 아래에 미소가 맺히는 게 보였다.

“…그거 검술 맞소?”

무슨 검과 검집이 공간 한 중앙에 역장을 만들어 내 저런 짓거리를 펼쳐내는지.

“기괴하기로 따지면 너희들이 더 하지 않나?”

“…….”

생각해 보니 대형이 알려준 것보단 덜한 것 같아 당지명은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서 다른 병기를 꺼내 들었다.

“박도(朴刀). 검날이 두꺼우면 괜찮을 것 같나?”

같잖다는 듯 웃는 진혁수에 당지명은 한때 본 동작을 떠올리며 달려들었다.

“통할지 안 통할지는 부딪쳐 봐야지!”

이렇게 하는 게 맞겠지?

당지명의 몸이 거친 바람(麤風)처럼 움직였다. 그의 손에 쥐어진 박도는 그 바람을 타고 달려드는 늑대처럼 거칠게 휘둘러졌다!

카캉!!

검과 검집을 겹쳐 막아낸 진혁수가 짧게 평가했다.

“어디 마적 떼와 같은 칼질이군!”

“정확하게 봤소이다!”

이름하야, 추풍도법(麤風刀法)이라.

북방 마적 떼의 도법을 흉내 내던 대형을 따라 휘두른 검이 붉고 푸른 검기 사이를 미끄러지듯 파고들며 상대의 요혈을 노렸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되겠나.”

그마저도 한 손의 검으로 막아낸 진혁수는 또다시 인력을 발휘해 자신의 검 쪽으로 박도를 끌어당기더니, 당지명의 옆구리를 향해 검집을 휘둘렀다.

당지명은 재빨리 박도를 놓고 몸을 아래로 숙이며 피했고, 동시에 회전하듯 발차기를 갈겼다.

“흥!”

그에, 진혁수의 몸이 두어 걸음 뒤로 밀려났고, 당지명 역시 그 반탄력으로 뒤로 물러나며 박힌 창을 뽑아 들었다.

콰직!

놓았던 박도가 땅바닥에 떨어져 박혔고, 당지명은 그것을 신호로 받아들이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사미창(蛇尾槍), 독치탐혈(毒齒貪血).

파파파팟!!

창끝이 대여섯 개로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의 찌르기가 날아들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진혁수도 당장 막아낼 생각보다는 뒤로 물러나길 택했고, 그 틈에 박힌 박도의 손잡이 끝에 착지한 당지명이 창대를 힘껏 휘둘렀다.

사미창(蛇尾槍), 대반월(大半月).

콰아아아앙!!

무식한 위력의 공격이 진혁수를 뒤로 쳐 날렸다.

‘흥……!’

검과 검집을 겹쳐 막아냈기에 대부분의 피해는 흘려냈지만, 손아귀를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충격이 아직 남아 있다.

장병기의 우월함을 제대로 이용한 일격.

그래도 크게 치명적인 공격은 아니기에 재빨리 상대의 위치를 찾으려 고개를 드는데,

‘음!’

그런 진혁수의 눈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드는 박도가 보였다.

“쯧!”

혀를 차며 검을 휘둘러 쳐내자, 무시무시한 박도의 기세 뒤에서 숨어 달려드는 당지명이 보였다.

‘기세를 몰아쳐 승기를 잡으려 드는가?’

뻔한 수작이다.

다른 이들이라면 그 기세에 당황해 헛발질을 하겠지만, 진혁수가 지나쳐 온 고난의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이 정도쯤은 우습다.’

고된 압박의 연속?

청성에서 역겨운 놈들의 눈칫밥에서 살아온 삶이 그 압박의 연속이었다.

스스스…….

진혁수는 검과 검집을 눈앞에서 교차했고,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명경지수(明鏡止水).

그대로 휘두르니,

카가가각!!

‘와, 미친.’

당지명은 벌어진 일에 솔직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 대체 무슨 삶을 살아온 것이오?”

눈앞에서 박도가 날아들고, 그 뒤에 창극이 꽂혀 드는 데도 대단한 침착함으로 보인 대응.

그 결과, 당지명의 창은 잘려 나가 창대만 남았고,

“퉤.”

완벽히 방어해 내지 못해, 역류한 핏물을 뱉어낸 진혁수가 짧게 답했다.

“거지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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