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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10화 (110/350)

110화

언행은 거칠기 짝이 없지만 검을 휘두를 때는 더 없이 침착하다.

상반되는 두 기운을 이리 한 사람이 가질 수 있을까 싶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있긴 있구나. 우리 대형.’

당유혼.

말하는 본새는 어디 저잣거리 파락호 같으면서도,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천 리 앞을 내다보는 혜안(慧眼)을 가지고 있고.

가장 어려서 아직 스물도 되지 못한 주제에, 가끔씩 보이는 행동거지는 이미 수십 년 넘게 먹은 노인을 보는 것만 같다.

그게 너무 신기해 저도 모르게 툭 하고 묻자,

“그건 무슨 개소리냐?”

상대는 으르렁거리며 쌍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진짜 닮았네.”

“뭐라고?”

“아니. 말하고 보니 미안하군. 사과하겠소.”

당신한테.

“…뭔가 묘하게 기분 나쁘지만 최소한의 선은 지킨 것 같은 기분인데…….”

진혁수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천천히 손목을 돌리며 풀었다.

“어쨌거나, 더 보여줄 게 없으면 이제 슬슬 끝내지.”

가야 할 길이 앞으로 구만구천 리.

슬슬 끝내자는 말에 당지명은 아, 하고는 씨익 웃었다.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이신가.”

“더 보여줄 게 남았다는 뜻이냐?”

“다행히, 나도 보여줄 게 하나 정도는 있소.”

“…신기한 가문 놈들이군. 그 정도면 어지간한 놈들이면 보여줄 밑천은 이미 다 보여준 것 같은데…….”

주 무공이 전혀 다른 놈이 창이니, 쌍검이니, 박도니 하며, 온갖 것들을 휘두르는 것도 신기한데 또 남은 게 있다라…….

진혁수로서는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당지명은 씨익 웃으며 무언가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말 그대로, 우리 가문이 좀 신기해서 말이오. 아래 녀석들이 하루가 다르게 쭉쭉 치고 올라오니, 당주로서… 그래도 맏형으로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처질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야 엄청나게 쪽팔리잖아.

당지명은 홀로 그리 말하며 준비한 것들을 펼쳐내며 두 손을 가볍게 늘어트렸다.

그것의 정체는,

“실?”

너무나 미세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가는 실이었다.

“이름은 아직 안 정했소. 어쩌면 이것도 거쳐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일지도 모르니까.”

스스스…….

그 실은 살아 있는 듯 움직였고, 곧 바닥에 박혀 있는 무기들의 손잡이에 휘감겼다.

‘허공섭물? 아니, 그건 아니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격하고 내공만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허공섭물인가 싶다가도, 실이라는 매개체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것보다 훨씬 쉽다는 생각을 들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저게 쉬운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극세사(極細絲)를 움직여 무구를 잡아낸 당지명은 서서히 그것들을 잡아 올렸다.

“하지만 결국 그 역시 매 순간의 내가 보이는 결과일 터. 실망할 일은 없을 거요.”

“실망은 무슨…….”

진혁수는 벌써부터 느껴지는 오싹함에 저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런 그를 보며 당지명은 서서히 단전에 잠들어 있던 내공을 일깨웠다.

“그럼, 시작해 봅시다.”

그림자들이 비무장 위로 드리웠다.

극세사에 묶인 병기들이 허공으로 떠오른 것.

아득하기까지 한 그 풍경에, 진혁수는 재빨리 선 자리를 박차고 돌진했다.

콰콰쾅!!

그가 있던 자리로 중병기들이 무더기로 내리꽂히며 석판을 박살 냈다.

아슬아슬한 회피!

하지만 그걸로 완전히 피해 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으니, 진혁수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들이쳐 오는 측면을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쩌엉―!

날아들던 거대한 대부(大斧)가 튕겨 나갔다.

‘이걸 이렇게 가볍게 휘둘러?’

경악스러운 기분이었지만,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시작해 봅시다!”

자신이 박살 냈던 것들을 제외하고, 당지명이 비무장에 올라서며 바닥에 박아놨던 십수 가지의 병장기가 어지럽게 휘둘러져 왔다.

가는 실로 저것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저것들이 허공에 띄워 엉키지 않게 휘두른다는 것은 더더욱 경이로웠다.

하나, 그에 놀라고 있을 여유는 없었으니,

“그렇게 딴생각을 품고 있어도 되겠소?”

어느새 불쑥 다가온 당지명의 발차기가 그의 가슴팍에 작열했다.

콰앙!!

‘그걸 막아?’

분명 유효타를 먹였다 싶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 검집으로 막아낸 것이다.

그렇게 뒤로 나가떨어진 진혁수는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십수 종의 무구를 손으로 직접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저런 얇은 실에 매달아 내공으로 무공을 펼치는 주제에 본인 역시 움직여 이 정도의 체술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이지?’

그야말로 정신 나간 다중 사고(多重思考).

그게 가능한가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니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 사실에 진혁수는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난관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줘야지.”

“…설마, 당신도 보여 줄 게 더 남아 있었소?”

“여기서 끝이라 생각하면 너무 섭섭하지.”

진혁수의 검과 검집이 열 십(十)자로 교차했다. 동시에, 상반되는 색채의 두 검기가 폭발적으로 피어오르니,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일몰지명(日沒之明).

그것은 해가 지기 전, 가장 밝은 순간의 빛처럼 폭발해 진혁수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윽고,

구구구구!!

그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기세가… 몇 배로 증폭되었다?’

영약을 씹어먹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내공이 몇 배로 증대되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기사(奇事)였으나, 당지명은 그게 믿기지 않는 일이라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다.

당지명.

최근 들어 그의 삶은 이제 이런 일 하나하나에 놀라 얼 타고 있기에는 그야말로 충격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럴 때 가장 최선의 대처가 무엇인지도 잘 알았다.

‘선공필승(先攻必勝)!’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데 일일이 기다려준다는 건 바보 같은 짓.

당지명은 천년혈주의 시체로부터 거두어들여 특별히 가공한 극세사를 움직여 십수 개의 병기들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하늘을 날던 중장병기들이 연무장 바닥을 박살 내며 처박혔다. 하지만 진혁수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

파파파팟!!

그의 온몸은 휘광(輝光)으로 뒤덮여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중장병기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빨라?’

번쩍번쩍하는 사이 이리저리 피해 내고 있는데, 그의 움직임은 두 눈으로도 좇기 버거울 정도였다.

‘그렇다면.’

당지명은 귀원일기공을 통해 더더욱 단전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극세사에 주입되는 내공의 양은 더더욱 많아졌고, 그에 따라 병장기의 폭격도 무시무시한 속력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에,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광야일섬(廣夜一閃).

번쩍―

한 줄기 빛이 일어난다 싶더니,

쿠쿠쿵!

내공으로 보호한 극세사 가닥 중 절반이 잘려 나가며 당지명의 조종하에 있던 병장기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

단순히 빨라진 게 끝이 아님을 증명하듯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예기에 당지명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좋아. 나도 궁금하긴 했어.’

나름대로 궁구 끝에 내린 자신의 결과가 과연 어떤 수준인지 말이다.

‘한번 바닥까지 짜낼 정도로 몸을 던져보기로 했으니까!’

쿠구구구……!!

그의 체내에서 거대한 내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지금까지 잡룡탕을 먹어오며 어마어마한 양의 내공이, 잡룡단을 먹어 더더욱 폭증했고, 그 결과가 어마무시한 현상을 만들어 냈다.

‘저건 또 뭐야?’

그건 쉼 없이 날아오던 중장병기들을 쳐내고 또 그것에 연결되어 있던 실들을 끊어내기까지 한 진혁수마저 놀랐다.

“크하아아압……!”

괴성에 가까운 기합과 함께 당지명이 띄워 올린 것은 수십 개의 극세사에 연결된 수십 개의 비도.

그냥 던지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싶지만, 당지명은 그 무식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발상과 그걸 시현하기 위한 노력 끝에 운남에서 겪었던 무시무시하고도 끔찍했던 수법을 구현해 냈다.

무공명(武功名) 미정(未定), 거미의 춤 광란(狂亂).

수십 개의 극세사와 수십 개의 비도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비무대 전체를 범위로 두며 휘둘러지는 것이다!

콰콰콰쾅!!

‘이런 미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겠다면, 그냥 전부를 휩쓸어 버리겠다는 것인지.

그야말로 정신 나간 공격, 아니, 폭격에 진혁수는 나아갈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나,

‘길이 없다면, 만들면 그만.’

언제는 평평 대로를 걸어왔던가.

무아지경으로 휘두르는 두 검기가 날아드는 비도의 폭격을 막아내고 쳐내고 베어버리며, 그가 걸어 나갈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나아간다!’

콰콰콰콰콰콰쾅!!

무수한 굉음과 폭음 속 적색과 청색의 검기가 이리저리 얽히며 앞으로 향했다.

열 걸음.

아홉 걸음.

여덟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목표를 향해 나아갈수록, 비도의 난무 속에 보이지 않던 상대방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고,

주륵―

핏물이 흘러나오는 입가를 비틀어 지은 미소는 한층 더 뚜렷해졌다.

여섯 걸음.

다섯 걸음.

네 걸음.

‘끝이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받은 싸구려 철검은 날이 다 상했고, 그와 함께 받은 검집은 휘감은 수실이 엉망진창으로 풀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했으나,

‘내가, 이겼다.’

진혁수는 고작해야 세 걸음걸이로 좁힌 거리 안에서 자신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카캉!!

마지막 비도까지 모두 쳐냈다 싶은 그 순간, 이제는 검만 휘두르면 되는 그 간극에서 진혁수는 보았다.

이제 패색이 짙어야 할 상대의 얼굴에서,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투지가 느껴지는 것을!

‘뭣?’

그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진혁수는 마지막 남은 내공을 짜내어 쌍검을 휘둘렀다.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적멸일섬(赤滅一閃).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은 깔끔한 베기!

그러나,

스으으…….

당지명의 손이 유려한 곡선을 만들며 움직였고,

‘나는 뛰어난 게 없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당지명의 마음은 침착하기 그지없어서,

‘그렇기에, 항상 배워야 했다.’

원(圓)을 그려 시계(視界)를 점철하는 붉은 색채에 공간을 만든다.

‘윗사람에게도, 내 동생들에게도.’

그렇게 만들어 낸 공간 속에서 불끈 움켜쥔 주먹에 내공이 담긴다.

‘저 자세는……?’

그것은 진혁수도 한번 본 적이 있는 기수식.

무공이라기에는 형(形)도, 식(式)도 단순무식하기 그지없으나, 그렇기에 더더욱 머리에 깊게 새겨졌던 누군가가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겼던 일권(一拳).

‘불퇴야, 보고 있냐?’

둘은 동시에 한 사람을 머릿속에 그렸고, 당지명은 장전했던 주먹을 힘껏 내뻗었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가진바 잘난 재주가 없어, 죽어라 혈투를 벌였던 천년혈주에게서 배우고, 끝도 없이 갈구던 대형에게 배우고, 언제나 든든한 동생에게 배우는, 차양당의 당주이며, 사천당가 방계들의 대형인 당지명이 날리는 일권이 적색 세계를 꿰뚫고 나아간다.

‘아…….’

그것이 이제 붉은 세계를 꿰뚫어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워오는 걸 바라보며 진혁수는 결국 웃어버렸다.

‘내가, 졌구나.’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비무장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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