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12화 (112/350)

112화

함께해 줄 수 있냐는 선현진인의 물음.

자연스레 시선이 쏠린 당위혼은 관중의 관심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 소년이 당가의 가주?”

“아직 어린데?”

“사고가 있었다잖아.”

수군거리는 군중의 속삭임은 소음이 되어 울려 퍼졌다.

“당가의 가주시구려. 청성의 장로 선현이 인사드리오.”

그에게 먼저 포권을 취하며 인사하는 선현진인이었으나, 그걸 들은 다른 방계들의 표정은 일제히 일그러졌다.

‘저 자식…….’

다름 아닌 당가의 가주다.

한 가문의 얼굴이자 대표라 할 수 있는 이가 가주인데, 저렇게 처음 본다는 식으로 말하면 자연스레 그를 무시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반갑습니다. 당대 당가의 가주, 당위혼입니다.”

하지만 당위혼은 그에 크게 내색하지 않고 마주 포권을 하고 비무대에 올랐다. 이미 관중의 이목과 관심이 집중된 지금, 그걸 거부하면 그림이 이상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당위혼이 비무대에 오르자 선현진인은 자연스레 가주 앞에 마주 서게 되었다.

‘이, 이런…….’

그 모습에 당지명은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사천비무대회에서 당가가 우승하고, 자신이 그 우승자로서 말할 기회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젠 청성의 장로와 신흥 세력의 가주가 만나는 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주께서는 무척이나 헌앙(軒昂)하십니다. 전대 가주께서 보았다면 무척이나 기뻐하실 듯하십니다.”

“…선친을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이 늙은이가 의기에 차 강호를 주유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은 분이지요.”

겉보기에는 그의 아비이자 전대 가주를 존경하는 듯하지만, 그 말의 속뜻은 자신이 당가의 가주보다 웃어른이라고 못을 박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이야기의 주도권을 이끌게 되자 사람들은 과연 청성이 사천의 기둥이니, 뿌리 깊은 나무니, 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좋군.’

그에 선현진인은 속으로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 출신도 비루한 놈이 모든 것을 망칠 뻔했단 말이지.’

사천지회, 그리고 사천비무대회.

이것은 청성, 점창, 아미가 돌아가며 개최하는 사천 최대의 축제이며, 동시에 그 주인공이 정해진 축제였다.

매년 그 주최자가 항상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고, 올해는 그 주최자가 청성인 만큼 당연 모든 관심이 청성에 쏠려야 했다.

‘역시 비루한 녀석에게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이 내가 직접 수습했기에 망정이지…….’

이 축제가 끝나면 진혁수에게 주어진 청성일검의 별호를 회수하자는 안건을 타진해야겠다 생각한 선현진인은 계속해서 자신이 주도하는 대화의 흐름을 이어 갔다.

“이리 헌앙한 모습을 보니 무인으로서 한때 불타던 혈기가 다시 떠오를 정도입니다. 어떻습니까, 가주. 비록 우리가 가진 무게와 위신은 쓸데없이 높으나, 이 기쁜 날 사천인들을 위해 한 번 그걸 내려놓아 보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허허, 별 뜻 아닙니다. 그저, 아주 가볍게 친선 비무를 하자는 것이지요.”

친선 비무.

간혹 행사를 벌이면 일반인들은 평소 보기도 힘든 수준 높은 무인들이 다른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벌이는 그런 비무를 일컫는다.

그리고 그걸 이 자리에서 벌이자는 선현진인의 제안에, 당위혼의 표정은 딱딱히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자…….’

거부해야 한다.

기껏 사천당가의 명성을 높일 자리에 왔으나, 아직 자신은 선현진인에게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구나.’

실력은 부족해도 한 집단의 장이 다른 집단의 장도 아닌 장로에 불과한 자의 비무 제안을 거절했다가는, 그 실력 차가 두려워 비무를 피했다는 오명을 덮어쓸 수밖에 없다.

차라리 다른 식으로 제안이 들어왔다면 거절할 만도 한데,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밀어붙여 이러니… 당위혼은 진퇴양난의 상황을 느꼈다.

“어떻습니까?”

그런 당위혼을 다시 한번 난관으로 밀어붙이는 제안.

이제 모든 사천인들이 승낙이라는 정답을 정해 놓고 그것이 입 밖으로 꺼내지기만을 기다리는 순간이 되었다.

그때였다.

“어떻긴.”

그 제안에 대한 대답이,

“아주 개같지.”

전혀 다른 곳에서 들려온 것은.

* * *

‘이 새끼가?’

당유혼은 사천비무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자리에 앉아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 같으면 질겅이고 있는 육포 쪼가리를 집어 던지고 싶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제 사천당가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그 이름을 떨치는데 항상 자신이 앞으로 나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늙은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다른 녀석들이 언제 크겠어?’

말은 비무대회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못 하면 갈아 마셔 버리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하나하나 이기는 모습에 사천당가의 씨앗이 다시금 폐허에서 싹을 트고 있다 여겼다.

하지만,

“본 도인의 이름은 선현. 비무대회의 우승자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요.”

‘저, 저 새끼가?’

선현진인의 등장에 당유혼은 자신의 인내심에 대한 중대한 도전장을 받게 되었다.

“이리 기쁜 날, 사천의 홍복을 알리기 위해 가주를 뵙고 사천인들에게 당가의 이름을 알리고 싶은데… 혹 가능하겠소?”

‘이 새끼가 미쳤나?’

네가 뭔데? 저가 뭐라고 감히 대사천당가의 이름을 알리고 말고 하는가?

‘그게 가능한 건 고금 제일 가주 당사유…의 직계인 고금 제이 가주 당위혼밖에 없다고!’

당유혼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꾹 참아냈다.

어쨌거나 이 자리는 후손들이 나설 자리이며, 처음으로 당위혼이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사천인들에게 각인시키는 자리니까.

하지만,

“그저, 아주 가볍게 친선 비무를 하자는 것이지요”

마침내 선현진인이 그 제안을 하는 순간,

뚜둑―

당유혼의 귀에는 분명히 들렸다.

자신의 머릿속 무언가가 끊기는 소리가.

* * *

“어떻긴. 아주 개같지.”

오연히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관중들의 귓가에 흘러 들어가고, 모든 사천인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건 선현진인 역시 마찬가지.

그는 웃는 낯 그대로 안색을 딱딱히 굳힌 채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모가지가 돌렸다.

‘뭐,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절정의 끄트머리에 오른 고수가 자신의 신체 능력에 지대한 이상이 발생했나 의심이 떠오를 무렵,

“아주 개같은 제안을 하는구만?”

아주 친절하게도 그 의심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터벅―

건조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비무대에 오르는 누군가. 그게 아직 청년도 되지 않은 소년임을 깨달은 선현진인은 너무나 당황해 눈만 껌벅이며 물었다.

“소협은…….”

“나?”

그에 당유혼은 엄지를 척 세워 자신을 가리키더니 목을 삐딱하게 꺾었다.

“특별히! 청성파에서 ‘간곡한’ 초청을 받아 ‘대사천당가’에서 친히 와주신 ‘직계’이자 ‘대사천당가’의 ‘대형’ 당유혼 ‘님’이올시다.”

뭐지… 이 새끼는?

특정 음절을 강조하는 게 무슨 노래라도 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분노도 치솟지 않는다고, 살아생전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 몰랐던 선현진인은 눈만 깜빡거리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당…유혼 소협?”

“그렇다니까. 혹시 가는 귀가 먹으셨수?”

그런 선현진인에게 친절히 건강 상태까지 걱정해 주는 말을 하자, 마침내 선현진은 제정신을 되찾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가, 감히!! 그 무슨 무도한 말이오!!”

가는 귀가 먹어? 개 같은 말?

한마디 말도 입밖에 뱉는 순간, 어떤 난리가 벌어질지 모르는 말들이다.

특히, 무림에서 저런 말들이 뱉어지면 그 자리에서 칼부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하나, 이런 공식 석상에서 파격적인 언행을 일삼은 당유혼은 한점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되물었다.

“그럼? 당신이 우리 가주님이랑 비무를 벌이는 것은 괜찮고?”

“뭐, 뭐라고?”

“어떻게 일개 문파의 장도 아니고 간부급인 장로 주제에 감히 대사천당가의 장인 우리 가주님에게 비무를 걸 수 있지? 당신네 문파는 고작 장로가 무려 장문인에게 비무도 툭툭 신청하는 개족보를 가지고 계신가?”

“개, 개족보?!”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

하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닌지라 선현진인의 인상을 사정없이 찌푸려졌고,

“그러고 보니…….”

“가주가 장로에게 비무를 신청하는 거면 몰라도…….”

“장로가 가주에게 비무를 신청하는 것은 선 넘지…….”

군중들은 또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잖은 새끼.’

어디서 여론전이야? 군중심리를 이끌어 내는 여론전?

닳고 닳은 노강호에게 그 정도 경험은 밥 먹는 것만큼이나 익숙했다.

“그런 개족보 같은 제안을 하니 개같은 제안이라 했지. 뭐가 틀리오? 게다가…….”

“게, 게다가?”

할 말이 더 남아 있다고?

“나는 분명 대형이라 말했지. 우리 가주님보다 내가 대형이라, 공식적으로는 내가 태상 장로와 같다고 할 수 있소. 한데, 당신은 장문인보다 더 윗사람이신가?”

“그건 아닌데…….”

“그럼 왜 하대요? 그리고 뭐, 소협? 거… 청성은 위아래가 없나?”

이 미친놈이 진짜?!

대담을 나누는 선현진인과 그걸 지켜보던 방계들은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미, 미쳤어! 저 새낀 진짜!!’

‘어떻게 우리 상상을 매번 넘어설 수 있지?!’

대형이랍시고 가장 나이가 어림에도 유세를 부리는 건 자신들 한정일 줄 알았건만, 타 문파에도 저런 언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방계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하나, 그들이 그러든 말든 대담은 진행되어야 했고 선현진인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 그럼 뭐라 불러야 한단 말이오?”

“소협 말고. 당 태상 정도는 불러줘야지.”

“…다, 당 태상?”

생긴 건 이제 스물도 안 된 놈이 무슨 태상의 이름을 논해?

어처구니가 없어 가주인 당위혼을 돌아보았지만…….

“…….”

나는 몰라. 묻지 마.

이미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버린 당위혼에게서 답을 들을 수는 없을 듯했다.

결국,

“다, 당 태상. 말씀이 아주… 거침없으시구려.”

선현진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그리 응했다.

“허허, 뭘 그런 칭찬까지.”

‘칭찬이겠냐?!’

머쓱하다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당유혼의 모습에 그는 자신의 인내심의 한계를 새삼스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긁어대던 당유혼이 입을 열었다.

“그리 칭찬까지 해주면 이 ‘대사천당가’의 ‘태상’으로서 응해 드릴 수밖에 없겠군.”

“…무엇을 말이오?”

“친선 비무 말이오. 비록 나 역시 장로와 비무를 하기엔 격이 좀 맞지 않지만… 수많은 사천인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응해 드릴 수밖에 없지 않겠소?”

되지도 않는 하오체에, 너 따위가 나에 비해 급이 달리지만 특별히 응해 준다는 말투.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 모습에 선현진인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하하, 이것 참. 우리 군중들이 너무 많이 기다리는 듯하니. 어쩔 수 없구만.”

당유혼은 그딴 것 모른다는 듯 낄낄 웃었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