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14화 (114/350)

114화

【 중단전 】

‘…뭐?’

선현진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소협… 지, 지금 뭐라고…….”

“항복한다구요.”

하지만 그런 선현진인에게 당유혼은 친절히 재차 현실을 알려주었다.

“이야, 역시 대청성파의 장로님이셔. 초필살… 크흠, 전력을 다해 부딪쳤음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이십니다요!”

저 새끼… 분명 조금 전에 필살기(必殺技)라고 말하려 했지?!

“허… 허허허…….”

정갈하던 의복이 만신창이가 된 선현진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소, 소협…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떤가? 아직 보는 이들이 많네.”

“에이, 뭘 다시 생각해요. 딱 봐도 제가 졌구만.”

“그, 그래도 우리가 일 검 정도는 나누어야…….”

“저, 칼 쓰는 법 몰라요.”

칼 쓰는 법은 몰라도 칼같이 자르는 법은 잘 아는 당유혼이 곧장 몸을 돌려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이 부족한 제가 대청성파에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 이 크나큰 영광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오늘의 행사를 함께 즐겨주신 사천 동도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폐회사(閉會辭)까지 마친 당유혼은 곧장 방계 무리 사이로 뛰어 내려가 말했다.

“가자.”

“옙?”

“어, 어딜요?”

눈만 껌뻑이는 방계들.

‘이렇게 한심하냐.’

이 꼴 났으면 갈 곳은 뻔하잖아.

척―

당유혼은 저 멀리, 청성산 봉우리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튀어야지.”

* * *

사천지회. 그리고 사천비무대회.

사천 제일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두 행사가 끝나고, 사천당문의 명성은 연일 상한가를 갱신했다.

“자네, 들었나? 사천당가에서 취급하는 물품이 사천삼주 밑의 사업체들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하더군.”

“그걸 누가 모르나? 단지 그 양반들 눈치가 보이니까 문제지.”

“에잉……. 아직도 사천삼주 눈치를 보고 있나? 단언컨대 십 년 내로 사천의 미래를 묻는다면 사천당가를 보라는 말이 떠돌고 있네.”

“…그 정도까지라고?”

그건 너무 과장 아닌가…….

듣고 있던 중년인이 의심스레 되묻자 함께 술을 마시던 남자는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장사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정보가 느려서야! 우리가 그간 사천삼주의 눈치를 보느라 그들과 접점을 만들지 못하는 사이, 이미 감숙의 광형 상단이란 곳은 당가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고 하네.”

“도, 독점 계약?”

상인이라면 눈 돌아갈 수밖에 없는 단어에 중년인은 먹던 술잔을 떨구며 소리쳤다.

“그게 진심인가?”

“물론이지! 이미 사천당가는 감숙과의 장거리 상행을 진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간 용독문에 쌓여있던 물자를 전부 팔아넘기며 원활하게 교류하고 있네.”

남자의 눈이 희번덕 빛이 났다.

“용독문이 그동안 꿍꿍이를 꾸미느라 재산을 한창 꿍쳐두고 있던 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당가는 그걸 전격적으로 상행과 성장에 투자하고 있네. 그래서 말인데…….”

딱 너만 알고 있으라는 듯 남자는 상체를 숙이고 은밀한 목소리로 술 상대에게 속삭였다.

“지금 당가는 일찍 접촉할수록 이득이라네. 더 많은 확장을 위해 먼저 계약하는 이들일수록 수수료 감면과 수익 분배, 거래 우선권 등에서 이득을 준다고 하네.”

“그게 정말인가?”

“물론이지. 게다가… 들리는 소문으론 그들이 사천성주와도 안면이 있다고 하네. 그래서, 일부 면세 혜택도 받을 수 있다더라고.”

“며, 면세?!”

수수료 감면, 수익 분배, 독점권, 면세.

그야말로 상인이라면 눈 돌아갈 단어들만 쭉쭉 나왔다.

“용독문을 갈라치기 해서 반으로 나눠 먹은 게 그들이잖은가?”

“젠장… 그럼 앞으로 사천에서 상행을 하려면 그들과 계약하는 게 필수겠군.”

“물론이지!”

이제야 알았냐고, 남자는 술상을 쾅쾅 두들겼다.

“그러니 어서 광형 상단에 함께 가보자고.”

“광형 상단은 왜 그런가?”

“당가가 모든 사업적 접촉은 그들에게 일임했다는군.”

“허… 그럼 이제 와서 접촉해 봐야 늦은 거 아닌가?”

“에끼, 이 멍청한 양반. 지금 당장 달려가야지!”

술에 잔뜩 취해 얼굴을 붉힌 남자는 이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앞으로 사천의 모든 거래는 광형 상단과 사천당가가 중심이 될걸세. 이미 실제로 대부분의 물류 흐름이 그들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네!!”

알겠는가?

“광형 상단과의 거래는 무적일세! 사천당가는 신이고!”

거의 광신도에 가까운 외침.

그 정신 나간 외침은 이미 사천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 자연 발생적인 현상은 아니었으니…….

“반응은 좀 어때?”

“아주 폭발적입니다요!!”

사천 성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규모 언론전(言論戰)을 작당하고 주도하는 두 인물은 오늘도 하오문의 비밀 안가에서 음흉한 흉소를 흘리고 있었다.

“낄낄낄. 돼지 놈들. 아주 배때기가 갈라지는 기분일 거다!”

“암요, 암요! 놈들이 지금껏 독과점하고 있던 사업체 대부분이 뜯겨나가고 있지 않습니까요.”

사천 전역에 돌고 있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전부 하오문이 바람잡이들을 풀어 만들어 낸 이야기였다.

원래 뒷소문 만들어 내는 것에는 명실상부 이 바닥 일인자라 할 수 있는 하오문이었기에, 이 정도 언론전은 별것도 아니었다.

물론, 단순히 이것들이 소문을 퍼트리는 것만으로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주 속이 터져 죽을 기분일 것입니다요. 뻔히 이런 소문이 도는데, 그놈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지켜보고 있어야 할 테니.”

당연하게도, 사천삼주가 병신이라서 지금 일어나는 사태를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천삼주는 지금 이 여론전을 헤쳐 나갈 방법이, 아니, 여유 자체가 없었다.

“사천성주가 실시한 강도 높은 세무 조사를 받고 있을 테니… 아주 혼이 썩 빠져나가는 기분이 아니겠습니까요!”

겔겔겔겔.

하오문 사천지부장 하윤호.

단언컨대 요즈음은 그에게 있어 최고로 행복한 나날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하오문을 아주 쥐잡듯이 탄압하던 놈들이 그 상황을 역으로 겪어보면 어떤 기분일까요? 크헤헤헤헤헤!!”

각종 비리 장부와 유착 증거를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사천성주 직속 명령의 세무 조사.

그것들이 사천지회가 끝나는 즉시 진행된 덕에 사천삼주는 하오문과 당가의 여론전에 대응할 여유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쥐어팰 때의 이 기가 막히는 손맛!

그에 하윤호는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데…….

“아주 즐겁습니…….”

“즐겁냐?”

“넵? 그야 당연히……?”

들려오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에 하윤호는 재빨리 분위기를 파악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즐거워? 시잇팔, 그래, 즐겁겠지. 명색이 정보 집단이라는 놈들이, 남이 피, 땀 흘려서 개처럼 굴러 얻어온 정보로 꿀을 빨고 있으니 아주 즐겁겠지. 안 그려?”

“그, 그건……!!”

사천삼주를 구석에 몰아넣고 쥐어팰 수 있는 정보, 그 출처는 바로 당유혼이 흑상으로부터 얻어온 ‘정답’을 알고 하오문이 뒷조사를 해낸 결과물이었다.

“아니, 생각해 볼수록 화나네? 네놈은 어떻게 하오문 사천지부장이란 놈이 같은 사천에 사는 놈들이 해 처먹는 걸 외부 세력보다 늦게 아냐?”

‘아니…….’

억울하다. 미칠 듯이 억울하다.

‘우리가 그럴 여유가 어딨었겠냐고!!’

사천당가가 그간 눈물의 역사를 써 내려왔듯, 하오문도 그에 뒤지지 않는 눈물의 역사를 써 내려왔다.

‘양지에서는 사천성주가 사파라고 핍박하지, 음지에서는 구파일방 중 세 문파가 연합해서 용독문을 만들어 쑤셔대지…….’

양으로 음으로 핍박받는 와중에 이 정도의 정보를 캘 여유가 있을 수 있을 리가 있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외부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흑상이니까 오히려 쉽게 정보를 캐낼 수 있었던 것이지.

입이 댓 발로 튀어나올 것 같은 하윤호였지만, 그걸 말했다가는 더 까일 것 같아서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하여튼 믿을 놈이 없어, 믿을 놈이!”

탕탕탕!

책상을 두들기며 소리치던 당유혼은 그렇게 한참 동안 기강을 다지다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십니까요?”

“내가 너처럼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노닥거리기만 하는 줄 아냐?”

할 일이 아주 태산처럼 쌓여 있다.

“여론전 계속하고 있어.”

이것도 못 하면 내일부터 하오문 사천지부는 간판을 내리고 흑상 사천지부가 간판을 올리게 될 테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망치와 못을 들고 올 기세로 단단히 경고한 당유혼은 그대로 하오문 암가를 빠져나와 다음 일정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목적지의 입구가 눈에 보일 때 불평, 불만에 가득 차 있던 표정은 사르르 녹고 만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당 소협?”

마침 입구에 서 있던 청년이 당유혼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 일로 이리 직접 행차하셨습니까.”

청년의 이름은 광세운.

얼마 전 완공된 광형 상단 사천지부의 지부장 겸, 현 사천당가의 대외 사업 총괄을 맡고 있는 핵심 인재였다.

“아이고, 우리 지부장님이 할 일도 태산이신데 제가 직접 와야지요!”

하윤호를 대할 때와는 천지 차이의 반응.

두 손을 비벼대는 당유혼의 모습에 광세운은 쓰게 웃으며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소협께서 공사도 다망하실 텐데 제가 먼 길을 오게 했습니다. 이건 별것 아니지만…….”

“어허? 지부장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소협…….’

말은 그렇게 하면서, 왜 윗옷은 그리 활짝 벌리십니까…….

“험험… 이것 참… 지부장님의 따뜻한 마음씨 덕에 올해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겠군요.”

당유혼은 광세운이 직접 주머니를 넣어준 부분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레 웃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한데, 정말 어인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진짜 수금하러 온 것은 아니시죠?

“아아, 별건 아니구요.”

그제야 할 말이 기억났다는 듯 당유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지난번에 부탁드린 건은 어떻게 되고 계시나 싶어서요.”

“아하, 영약을 말씀하시는군요.”

요 근래 광형 상단은 연일 짭짤한 수익을 거두어 들이고 있었다.

사천삼주의 독과점이 만든 어마어마한 수수료에 허덕이던 사천의 사업체들은 그들이 사천성주의 탄압을 받게 되자 지금이다 싶어 광형 상단에 붙었다.

내수 시장이 아닌 외수 시장의 활로인 광형 상단의 거래는 지금껏 상상도 못 했던 낮은 수수료를 자랑했고, 그 다디단 수수료의 맛을 본 이들은 너도나도 광형 상단과 거래를 대기 위해 줄을 섰다.

그리고 자연스레 벌어진 정치 공작.

꿀 내를 풀풀 풍기는 새 거래처의 등장은 선점이 답이라, 사천 내의 상단과 표국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거래 조건을 따내기 위해 뇌물을 갖다 바치고 있고, 광형 상단이 본격적인 영업을 개시하기도 전에 그들의 창고를 두둑이 채워줬다.

이미 당유혼에게 언질을 받았던 광세운이었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넘쳐나는 제물을 당가에 돌려주려 하니 그 대표 격인 당유혼은 손을 저으며 그건 사업 자금으로 쓰라 하고 대신 다른 걸 요구했다.

“금붙이나 패물 같은 건 필요 없고. 백년설삼 이상급의 영약들은 전부 모아서 가져다주세요.”

누구의 부탁이랴…….

성실한 성격의 광세운은 영약을 보관할 창고부터 만들었고, 그 이후로 들어오는 모든 영약들을 착실히 모았다.

“모시겠습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 비고를 개방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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