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17화 (117/350)

117화

* * *

붉은 바위 일족의 전사들이 멸망을 경험할 동안, 당가의 방계들이라고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천삼주가 연이은 사천성주의 핍박으로 허덕이고 있는 동안 얻게 된 이 귀환 자기 발전의 시간. 방계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들을 빡세게 굴리며 강해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당불퇴의 입이 댓 발 튀어나온 것은.

“에잉, 이놈의 가문. 왜 이렇게 재미없어졌냐.”

예전이면 그래도 개인 시간에 비사치기 하거나 구슬 놀이라도 하며 같이 유희를 즐기거나 했을 텐데, 요즘은 다들 개인 시간이 생긴다, 하면 전부 수련하느라 바쁘다.

“당주 형님은 뭘 이상한 실 만지느라 바쁘고…….”

비천은사라고 했던가?

당지명은 천년혈주에게서 추출해 온 모낭을 통째로 철기방주님에게 바치고, 그 대가로 받은 이상한 은사를 가지고 노는 게 일과였고,

“율기 녀석은 골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고…….”

당율기는 독이란 독은 하나씩 다 가져가서 골방에 처박혀 있다.

뭐 하나 싶어 찾아가 볼까도 했지만, 입구에서부터 풀풀 풍기는 독 향이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여서 깔끔히 포기하기로 했다.

“나머지 형제란 놈들은 어째 나 왕따시키는 것 같고…….”

“니들만 세지냐?”

“우리도 강해질 거다!”

“기만충 죽어!”

“왜 나만 기연 없어? 왜 나만 기연 없어? 왜 나만 기연 없어? 왜 나만 기연 없어? 왜 나만 기연 없어? 왜 나만 기연 없어? 왜 나만 기연 없어?”

어딘가 잘못되어 버린 듯한 형제들을 보며, 당불퇴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필 적 소저도 바쁘다시니…….”

“죄송해요. 이곳에 다시 일족의 비술을 계승시킬 터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혼자가 된 당불퇴.

그는 옆에 남은 삑삑이 머리나 쓰다듬었다.

“삐익!”

“악! 뭘 네가 제일 마지막이야?”

“삑!”

“짜, 짬 처리라니!! 원래 맛있는 건 아껴뒀다가 제일 나중에 먹는 거 몰… 아, 아니, 그렇다고 진짜 먹는 건 아니고!”

“삑삑삑!!”

분노의 쪼기를 당하는 당불퇴.

그는 오늘도 한참 동안 아기 새 삑삑이랑 아웅다웅하다 발라당 드러누웠다.

‘이 자식, 새 아냐. 진짜.’

제 자리에서 방방 뛰며 날개 치기니, 발차기니, 부리 쪼기를 갈겨대는 삑삑이는 오늘도 건강했다.

“삑삑.”

그런데 한동안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고 있자, 자신에게서 관심 돌린 삑삑이가 어느 먼 곳을 바라보다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조류 독감이라도 걸렸나?’

“삑삑―”

파악― 팍! 훅훅!

슉― 슈슉. 슉― 슉… 슉슉. 슈슉. 슉―

보고 있으면 뭔가 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무언가. 괜스레 어울리지도 않게 짧은 다리를 학처럼 휙 하고 들었다 훅하고 뻗기도 하는 그런 것.

그러다 저 혼자 다리에 쥐가 났는지 바닥에 거꾸러져 부르르 떤다.

‘뭐지? 이게 바로 븅신 새… 아, 아니지.’

“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자 탁 하고 날개로 쳐온다.

방해하지 말라는 듯 부리로 콕 쪼기까지 한 아기 새 삑삑이는 쥐가 풀리자 다시금 먼 곳을 바라보며 똑같은 몸짓을 시작했다.

‘대체 뭘 보는… 엥? 설마.’

저 멀리 있는 것은 자신을 왕따시키고 저희끼리 모여 수련하고 있는 방계들.

설마 싶어 삑삑이와 그들의 동작을 보자,

“…너, 설마 무공 익히고 있는 거냐?”

“…삐익… 삑!!”

알면서 뭘 물어? 힘들어 죽겠으니까 말 걸지 말라는 듯한 그 모습에 당불퇴는 어이가 없어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야, 그게 되겠냐?”

“삐익… 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아니, 멋진 말이긴 한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벅벅 머리를 긁은 당불퇴가 툭 하고 뱉었다.

“그건 안 해봐도 알지. 너는 새고 쟤들은 사람이잖아. 신체 구조가 다른데… 같은 동작을 한다고 되겠니?”

그 순간,

“…삑?”

아기 새 삑삑이의 몸이 우뚝 굳더니,

“…삐, 삐빅……?”

삑삑이의 고개가 한 백 년쯤 방치되어 이끼가 잔뜩 끼어 억지로 돌아가는 맷돌처럼 부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나, 무공 못 익혀……?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 아니… 그렇게 보면 좀…….”

덤덤하게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세상 두 쪽 난 듯한 표정을 지어오는 아기 새 삑삑이의 반응.

갑작스레 죄책감이 몰려오자 당불퇴는 당황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꼭 안 된다는 것은 아니고…….”

“삑……?”

“바, 방법이 있는지는 나도 모르지. 그래도 궁리하다 보면…….”

“삑, 삐빅! 삑!!”

“야, 야, 멈춰!! 새가 어떻게 이딴 동작이 되는 거냐?”

인간이 극상의 예를 표하듯, 두 날개를 두 손이라도 된 듯 지면을 짚고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삐빅… 삑… 삑……!!”

“뭐? 이게 새 사이에서 전해져 오는 절 중에 최고봉으로서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 행하는 행위……? 뭔 새소리야… 그게?”

장대한 절이니 웅대한 절이니, 저 작은 몸으로 더 하다가는 날개에 심각한 손상이 오지 않을까 싶어 호다닥 삑삑이의 자세를 원 상태로 되돌렸다.

“삑?”

그래서, 무공 가르쳐줄 거야?

“끄으으응… 아니, 내가 뭘 해봤어야…….”

“삐익?”

“야, 야… 잠깐만. 난 대형처럼 무공을 막 창안하는 천재는…….”

“삐빅… 삑…….”

“아니,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말고!!”

결국 소리 빽 내지르고 고개를 푹 숙이는 당불퇴.

힘없이 고개를 든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래, 시도는 한번 해보자.”

* * *

새가 익힐 수 있는 무공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당불퇴.

하지만 그라고 마땅히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대형처럼 무공 하나 척척 만드는 천재가 아닌걸?’

요새 새롭게 시도하는 무공이 있긴 하지만, 그건 무공이라 부르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머리 돌아가는 놈들한테 부탁해야지.’

그래서 당불퇴는 곧장 자기가 아는 제일 머리 잘 쓰는 형제한테 달려갔다.

“율기야!!”

“삐삑!”

그건 바로 골방에 처박힌 당율기.

사천에 남아도는 빈 전각 중, 지하실 딸린 어느 전각 앞에 나무 팻말까지 박아놓고 폐관 수련에 빠져든 녀석.

[일반인 출입 금지]

[*당불퇴 특히 출입 금지]

자신의 이름만 특히 빨간색으로 강조한 게 여간 불만스러운 게 아니었는데, 이게 기회라고 당불퇴는 곧장 문을 뻥 차고 들어갈…….

“아, 아니지.”

들어가려다 멈칫한 당불퇴는 아기 새 삑삑이를 머리 위에서 들어다 열 걸음 밖으로 내려놓았다.

“넌 위험하니 여기 있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독기가 자신마저 어질어질하게 할 정도였다.

대체 무슨 무시무시한 마공을 연성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기 새 삑삑이는 저 안에 들어갔다가 ‘지금까지 아기 새 삑삑이의 모험을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삶의 막을 내리게 될 것만 같아 얌전히 먼 곳에 대기시켰다.

그렇게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간다! 율기야!!”

전력 질주로 내달려 발차기를 갈기며 문 안으로 쳐들어가는 당불퇴.

콰아앙!!

폭음과 함께 문이 부서지며 그 안으로 들어갔고,

“꺄우우우울!!”

한 줄기 비명과 함께 달려 들어갔던 것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당불퇴가 날아와 삑삑이의 곁에 처박혔다.

날개로 쿡 찔러보는 삑삑이.

“…삑?”

살아 있니?

* * *

“…그래서, 나를 찾아오셨다?”

한바탕 난리 후.

열린 문 안으로 독기가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어가고, 당율기는 이마에 혈관을 돋우며 흉신악살과 같은 표정으로 당불퇴에게 다가가다 옆에 있는 삑삑이를 보고 멈칫했다.

이후, 전후 사정을 들은 뒤에서 한숨과 함께 둘을 둘러보며 그렇게 물었다.

“어. 무공 좀 만들어 줘라.”

“…내가 왜?”

“너, 똑똑하잖아.”

자신이 아는 당가 최고의 지성이랄까?

“대형은?”

“되겠냐?”

“가주님은?”

“가볼까?”

“…아니, 됐다.”

대형한테 갔다가는 그래도 몇 없는 형제 한 놈 뒈져 나갈 게 분명하고, 안 그래도 바쁜 가주님한테 가려 했다가는 자신이 직접 쥐어패 버릴 것 같아 당율기는 결국 자신이 희생하기로 했다.

“그런데… 애초에 무공은 나보다는 네가 낫지 않나?”

당율기는 자기 주제 파악을 잘했다.

자신의 주 전공은 독(毒). 무투(武鬪)만 따지면 방계들 중에서도 하위권이다.

오히려,

“단순히 무투만 따지면 네가 방계 중 제일일 텐데?”

찾아올 상대를 잘못 찾은 걸 떠나, 찾아올 사람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그리 묻는 형제의 모습에 당불퇴는 머쓱하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흠, 갑자기 금칠해 주니 고맙기는 한데…….”

뭐랄까.

팔짱을 낀 당불퇴는 솔직 담백하게 말했다.

“난 다듬을 줄 모르겠다.”

“다듬어?”

“직감적으로 뭔가 나올 것 같은데, 그걸 남이 익히게 할 정도로 만들 방법을 모르겠다. 그리고 얘가 새라서 자신도 없어.”

‘뭐라는 건지…….’

당율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놈은 너무 짐승적이다. 감각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이성이 그걸 못 못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끝도 없이 발전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이성은 뒤처지고… 생각하고 말로 하기보다는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대로 행동하고 있지.’

그것이 계속 반복되어 온 결과가 이것.

일단 뱉고 보는 말이 중언부언해서 알아먹지는 못해도 틀린 말은 아닐 테니, 첫말과 끝말만 대충 해석해서 알아들으면 된다.

‘혼자는 못해 먹겠다는 거지?’

자신을 찾아온 이유도 직감적으로 ‘아, 이건 나 혼자는 답이 없고. 율기가 답이겠다.’라는 걸 느껴서겠지.

‘마음 같으면 냅다 까버리고 싶은데…….’

남의 집 문에 날아 차기 하며 무단 침투를 시도하는 강도 놈은 매질이 약이요, 몽둥이질이 덕담이지만, 그래도 곁에서 불쌍한 눈망울 똑똑 떨어질세라 삑삑거리는 아기 새를 보자니 또 입이 안 떨어진다.

‘빌어먹을 놈. 벌써 여기까지 예상한 건가?’

예상이란 말은 확실히 어폐가 있어서 감각적으로 느낀 게 고작일 테지만,

“좋아. 일단 한번 해보자고.”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물릴 생각도 없다.

그렇게, 새가 익힐 무공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 * *

“뭐야, 생각보다 숨 쉴 만하네?”

당불퇴와 아기 새 삑삑이는 당율기를 따라 알 수 없는 골방으로 들어갔다.

바깥까지 시커먼 독기가 풀풀 흘러나오던 곳이라 믿기지 않게, 지하실 특유의 텁텁한 공기 빼고는 특별할 게 없었다.

“숨 쉴 만한 곳이니까 있었지.”

“아까까지만 해도 가능한 독기는?”

“다 거둬들였다.”

“거둬들여? 설마… 네가?”

두 번 말해 무엇하랴.

당율기는 스스로를 척 가리켰는데, 그 위치가 단전이 아니라 심장 쪽이었다.

“얼마 전에 대형이 와서 툭 던져 주시고 간…….”

그 정체를 설명하려다 멈칫했다.

‘음, 이걸 뭐라 말해야 하지?’

은혜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선물이라 하기에는 거칠다.

굳이 따지자면,

“연구 거리 정도 될까?”

“무슨 뜻이야?”

“대형도 아직 시제품에 불과하고, 정식적으로 우리들에게 배포하기 전에 나 하나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해주신 거라서 말이야. 네 친구 아기 새에게도 무공을 익힐 방법이 있다면 딱 이게 아닐까 싶은 거긴 한데…….”

적당히 바닥 한곳에 앉은 당율기는 크게 심호흡하듯 들숨을 들이켜더니, 두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녹안(綠眼)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단전이라고, 들어봤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