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중단전?
“그게 뭔데 십덕아.”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열 가지(十) 덕(德)을 갖췄다는 뜻이다.”
아닌 거 같은데… 암만 봐도 욕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당율기는 형형히 빛나는 녹안으로 아기 새 삑삑이를 쳐다봤다.
“인간이 무공을 익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기가 존재해야 가능할 일이지. 그런 것 없이 무식하게 신체를 단련하는 것을 외공(外功)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당율기는 아기 새 삑삑이의 몸을 쿡 찔러봤다.
만약 그 행위가 당불퇴였다면 무슨 짓이냐고 힘차게 뛰어올라 회전 부리를 갈겼을 삑삑이지만, 당율기의 손짓은 마치 의원의 그것만 같아 얌전히 지켜만 봤다.
“이 몸은 너무 어리고 여려. 네놈처럼 무식하게 소림의 철사장을 연마하겠답시고 가열한 흙에 손을 집어넣는 짓 같은 것을 했다가는…….”
그날로 닭구이 한 접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공은 자연스레 필수인데, 문제는 그 신체가 너무 작아 단전을 만들어도 조족지혈이겠군.”
참 좋은 표현이야.
당율기는 턱을 괴며 고민했다.
이건 아마도 당불퇴 역시 이미 했던 고민일 터.
‘제아무리 단전이 실재하는 게 아닌, 자연지기를 끌어모아 하단전 어딘가에 만들어 내는 것일지라도. 이미 그 순간 어느 정도의 형태와 윤곽은 갖춰지게 마련. 하지만 그만한 크기도 없는 이 작은 몸뚱이에는 어찌 단전을 만들까…….’
둘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결국 이 자리까지 당도했다.
‘불퇴 녀석이라면 무공 초식은 분명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다. 인간과는 다른 새의 몸일지라도 그게 어울리는 날아 차기나 날개 치기, 회전부리 같은 것들은 분명 만들 수 있겠지. 자연지기를 인도해 신체를 강화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 다만…….’
그 이상, 그러니까 기본적인 단전조차 형성이 어려운 새의 몸에 그걸 만드는 건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기서부터는 당율기 그 자신의 영역.
그 해답으로 참 시기적절하게 얼마 전 당유혼이 주고 간 연구 거리가 떠올랐다.
“당장 힘이 없고, 스스로 쌓을 만한 평평한 땅도 없다면… 빌려오고 받아들이는 건 어떠할까 싶다.”
“빌려온다고?”
“그래. 차력(借力)이라고, 들어는 봤겠지?”
차력(借力).
이름 그대로 빌려오는 힘이다.
괜히 저잣거리 약장수들이 대못 박은 나무판 위를 걸어 다니고, 드러누워서 사람들 보고 철 망치로 두들겨 보라고 하는 걸 차력 행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근본은 결국 같다.
“개인이 쌓은 힘이 아닌 것. 외부로부터 빌어오는 힘. 그게 차력이지.”
약이나 신령의 힘을 빌려 몸과 기운을 굳세게 하는 아주 효율 좋고 편한 힘.
그건,
“사이비(似而非) 아냐?”
당불퇴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아주 일리 있는 비판적인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根本的)으로는 아주 다른 것. 정도가 아닌 사도. 그게 차력이잖아.”
좌도방문의 사술사들이나 익히는 힘.
그런 선택지를 꺼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대형 당유혼에게 처맞기 딱 좋기에 당불퇴가 의구심을 표하지만,
“너 그거 적 소저한테 다 일러바친다?”
“헙?!”
생각해 보니 지금 자신들이 누구랑 같은 지붕 살림을 차렸는지가 떠올랐다.
“…으휴, 한심한 놈. 언제까지 무공만 주야장천 팔래?”
“무인답지 않은 말인데, 그거.”
무엇보다도, 대형이 들었다면 오랜만에 천골저가 백 개는 날아왔을 거라고?
“쯧쯧, 넌 아직도 우리 대형이 순수한 무인으로 보이냐?”
“그건 또 무슨 참신한 소리야?”
너무 참신해서 병신적이기까지 하잖아.
“…쯧, 이래서 재능충들은 안 돼. 그냥 본능에 다 맡기니까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도 그런가 보다, 할 수 있으니…….”
“예에?”
그게 당최 무슨 소리이신지.
당불퇴와 삑삑이는 오늘따라 불만에 가득한 당율기의 반응을 보며 입만 멍하니 벌렸다.
여하튼, 그러든 말든 삑삑이의 전신 여기를 꾹꾹 눌러보던 당율기는 다시금 손을 떼며 말했다.
“중단전은 그릇이다. 하단전도 그릇이지만, 두 가지 차이점은 누굴 위한 그릇이냐가 다르겠지.”
“누굴 위하다니?”
“하단전은 나를 위한 그릇이다. 내가 쌓은 내기가 담기고 성장할 곳이 하단전이지. 하지만 중단전은 아니야. 빌려올 힘, 외부에서 들어오는… 그게 약이든, 신령이든, 악귀든, 상위 존재든.”
중간에 불건전한 존재의 이름이 섞인 것 같지만, 당율기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일시적이지만, 발동 그 순간만큼은 확실하게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그리고, 따라서 하단전처럼 그리 큰 그릇도 당장에 필요하지는 않은 곳. 이 아기 새가 무공을 익히려면 중단전을 개발해야 한다.”
“오오…….”
확실히 자신 혼자 머리를 굴렸다면 아직도 답은커녕 실마리도 못 찾았을 텐데, 벌써 방향성이나마 제시된 것 같다.
그런데, 가만 듣고 있자니 생기는 궁금증이 하나.
“그런데 네가 그걸 어찌 알고 있는 거냐?”
중단전이라니.
당불퇴 입장에선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는, 무림인으로서 기본 소양에 불과한 걸 이 녀석은 어찌 이리 잘 알고 있을까?
그런 건전한 물음에,
“당연한 걸 묻는군.”
당율기는 쯧쯧― 혀를 차며 자신의 심장 어림을 가리켰다.
“당연히, 내가 그걸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
* * *
시간은 사흘 전으로 돌아간다.
사천비무대회가 끝난 뒤, 당유혼이 또 그 시기에 맞춰 흑상에게 얻어온 정보를 하오문에게 넘겨주고, 하오문이 그걸 또 사천성주와 합작해 사천삼주들에게 정치적 공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당가의 방계들은 사천비무대회에서 있었던 일에 작게든, 크게든 충격을 받고 있었다.
‘대체… 그건 뭐였지?’
당지명과 당불퇴가 보인 활약도 그들에게 충격이기는 했다.
그들이 차양당 방계들 사이에서도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차이가 벌써 이만큼이나 벌어졌을 줄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당율기에게 가장 컸다.
‘저 둘…….’
솔직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저 둘과 묶여서 별 격의 삼인방으로 취급되는 것 정도는.
하지만,
‘그런 나보다… 훌쩍 앞서 나가고 있잖아?’
이래서는 안 된다.
단순히 열등감 같은 게 아니었다.
형제의, 가족의 발전은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무공을 열심히 익혀 입신양명의 꿈을 꾸는 게 아니다.
몰락한 당가의 재건.
전대의 차양 당주님과 웃어른들이 남겨준 한줄기 붉은 의지가 그들의 가슴 속 한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다른 이들이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는 현실은 반대로 자신들이 그만큼이나 나태해져 있지는 않은가, 에 대한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강해져야 해.’
그 때문에 방계들은 돌아오는 즉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신들끼리 박 터지게 수련을 시작했다.
삼삼오오 삼재진을 이루고 한바탕 싸우는 게 아주 기본적인 출발점, 하지만 그곳에서 당율기는 홀로 동떨어져 나왔다.
‘내가 저기 있어 봐야 내게 올 성장의 이득은 극히 낮아.’
사람이란 게 몇 번 굴러보면 견적이 뽑힌다. 자신에게 주어진 무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불퇴 녀석이 평소에 성능 확실한 욕받이 담당을 하고 있지만… 무에 대한 재능만 따지면 녀석은 차양당 평균보다 몇 배는 앞서 있을 거다.’
평소 워낙 타격감 좋은 욕받이 담당을 해서 그렇지, 그런 녀석과 똑같은 걸로 경쟁하려 해서야 답이 없다.
그렇다면, 내게 남는 장점은 무엇인가?
‘독(毒). 대가리 깨져도 독이다.’
대깨독이 되어버린 당율기는 곧장 골방에 틀어박혔다.
애당초 독이란 걸 다루는 이상, 남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수련을 할 수가 없다.
마음 같으면 당장 인적 드문 산천초목에라도 달려가 틀어박히고 싶었다만, 그러기엔 가문 내에 새롭게 입수된 독이 너무나 많았다.
“우리 가문이… 이제 진짜 잘나가긴 잘나가는구나.”
독과 암기의 (구)명가 아니랄까 봐, 가세가 다시금 정상화되자마자 남아도는 자금으로 온갖 독과 금속을 사 모으고 있다. 오로지 서적으로만 접했던 독들의 칠 할 이상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것들을 보며 당율기는 대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당가가 부활할 수 있게 된… 핵심적인, 아니, 그냥 그 이유 그 자체.’
특히나, 사천비무대회의 마지막에 펼쳐 보였던 그 장면은…….
“지명 형님이나 불퇴, 둘이 준 게 충격이라면… 대형이 보여준 것은 가능성이요, 우리의 미래이며, 꿈이었지.”
단순히 당지명이나 당불퇴만을 보았다면 충격에 시름시름 알았겠지만, 무려 청성의 장로나 되는 이를 몰아붙였던 당유혼의 그 신위는 방계들의 심장을 벌렁벌렁 뛰게 만들었다.
“다른 형제들에게 뒤처지는 것은… 사실 그럴 수 있어. 형제들이 그만큼 잘나간다면 욕 한 번 박고 축하해 주면 될 일이니까.”
하지만,
“대형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눈물 나는 일이잖아.”
지금 살아남은 당가의 방계들은 이미 한 번씩 빛을 잃은 이들이다.
전대 차양 당주님을 비롯해, 그때 어떻게든 무너지는 당가를 받치며 아등바등하시던 그분들.
거지처럼 밖으로 나가 돌며 적선이라도 해와 당시 어린 방계들을 먹여 살리던 그분들은 현 방계들에게 있어 빛이요, 인도자였다.
그리고 한 번 놓쳤던 이들이었다.
‘그 사건.’
전대 방계들이 깡그리 쓸려나갔던 대사건.
몰락하던 당가가 완전히 멸문지화(滅門之禍)에 가까운 일을 겪게 된 그 끔찍한 사건.
더 이상 빛을 잃기 싫은 방계들이, 누군가의 뒤를 바라만 볼 수는 없게 된 방계들이, 그 자신의 빛을 쫓아가기 위해 달려가려 할 때, 당율기는 스스로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제가, 그 의지를 이루겠습니다.”
당율기는 주먹을 꼭 쥐어 심장 어림에 가져다 대고 가져온 독들을 훑어보았다.
그 종류도 다양하고, 형태도 가지각색의 것들을 바라보던 당율기는 천천히 손을 들어,
콰창―
단번에 그것들을 깨버렸다.
화악―!!
몰려나오는 독기가 화끈하게 몰아쳤다.
“와라.”
그 순간 귀원일기공을 발동해 곧바로 소규모 삼재진을 형성했다.
독류를 조종하는 독류진(毒流陳)이 발동하며 몰아치는 독기의 기수를 잡아챘고, 당율기는 그 고삐를 조종하여 자신의 주변에서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도록 이끌었다.
‘방계들 중에서도 이걸 아는 사람은 나뿐.’
“율기야. 이건 너만 알고 있거라.”
당가에 내려오는 비기 중, 금기(禁技)라고까지 칭해져 버린 금단의 영역.
차양당의 당주인 당지명조차 모르는 당가가 잃어버린 옛 힘.
당유혼이 보였던 당가의 전설적인 암기술인 만천화우에 버금가는 것!
‘내가, 부활시킨다.’
의지로 가득 찬 당율기가 크게 호흡을 들이마셔 독의 흐름을 빨아들이자,
쿠구구구구…….
노도와 같이 몰아치는 독의 흐름이 당율기의 체내를 타고 질주했다!
“오… 오오……. 오…….”
어마어마한 힘이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은 흐름 속에 당율기는 온몸이 저 높은 곳으로 떠오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형이상학적인 부유감.
거대한 흐름 속에서 모든 게 하나하나 녹아 내려갔고, 그 속에는 당율기라는 개인의 의식도 있었다.
그 자신도 모르게 그 흐름에 휩쓸려 버린 당율기의 의식은 정말 눈 깜짝할 새도 없이 녹아 버렸다.
“오오… 오…….”
살짝 비틀린 입술 사이로 기음이 흘러나오는 그 순간,
콰앙―!!!
갑자기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오오… 오… 오ㅇ… 꾸에에엑!!”
뭔가가 쏜살같이 날아와 그대로 당율기를 뻥 차버렸다.
“와,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독기 가득한 골방에 난입한 불청객.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당유혼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일 멀쩡해 보이던 애가, 왜 갑자기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고 난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