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19화 (119/350)

119화

주화입마(走火入魔).

고금을 통틀어 잘만 성장해 나가던 무인이 돌연사해 버리는 원인 일 순위의 독버섯이다.

전조도 뭣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소설이었다면 뭐 이딴 엿 같은 개연성이 있을까 싶은 사유로 무인 하나 조져 버리는 게 바로 주화입마란 놈이다.

이게 당최 무엇인고 하니…….

소꿉친구가 갑자기 딴 동네에서 이사 온 잡놈이랑 눈맞아도 걸리는 게 주화입마.

열심히 익힌 무공이 알고 보니 한계가 명확한 무공이라고 주화입마.

매일 같이 내공심법을 연마하다가 오늘 아침에 먹은 떡이 목구멍을 막아 혈도를 잘못 찔렀더니 반겨주는 게 또 주화입마.

‘대체 어디선가 날아와 알박기해 버리는 것이 주화입마인데…….’

왜 하필 그걸 그나마 방계들 중 쓸 만한 머리를 가진 이놈이 걸린단 말인가?

“나도 안 걸리는 걸 왜 네가 걸리고 있냐?”

어이가 없어 기절한 당율기를 콕콕 찌르고 있자니, 주변을 휘몰아치던 독기가 난리를 부리려 한다.

- 크르르!

탐(貪)이 먹는 건가, 싶어 무거운 엉덩이를 드니 움찔해서 도망치는 게 깜찍하긴 한데…….

“둘 다 가만히 있어라.”

암만 봐도 저 독기들로 뭘 하려다 이 꼴 난 것 같은데, 탐 녀석에게 먹이면 그 노력을 허사로 돌리는 일일 게 뻔했다.

“네 녀석 줄 거 아니니까.”

으르렁거리는 탐을 잠재우고 한 손을 쭉 뻗으니, 독기가 자연스레 휘말려 온다. 꽉꽉 뭉쳐놓으니 작은 환단 모양의 것이 되었는데,

‘…잠깐, 이거.’

우연인지 아닌지 그 배열이 특히 눈에 걸린다.

아무렇게나 이런 형태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으으…….”

“일어났냐.”

이 사달을 일으킨 당사자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대, 대형?”

뭐지? 꿈인가?

그 멀뚱한 시선에 당유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할 말은 차고 넘치는데, 우선 이것부터 묻자.”

툭―

손 위에 들어 올려진 그것.

탁한 기운을 뿜어내면서도, 묘하게 영롱하게까지 빛나는 그것.

“독정(毒精). 이걸 네가 어떻게 만들려 한 거냐?”

* * *

옛날 옛날 사천에 있는 어느 가문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다.

“우리 가문은 온갖 독을 다 처먹으며 강해지기 위해 발악하는데… 왜 세상은 이런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 거야? 지들은 햇빛 잘 드는 양지에서 가부좌나 틀고 내기 심법이나 운용하며 강해지는 주제에, 우리는 사람들 잘 지나가지도 않는 습기 차고, 바닥 축축한 곳에서 독이나 퍼먹고 있는데! 대체 왜 우리는 독이나 다룬다고 멸시하는 거냐고!”

대충 전말은 이러했다.

독과 암기로 명성을 쌓아 올린 가문.

남들처럼 근본이 떳떳하고 번듯한 도문 출신이 아니라, 강해지기 위해 산과 들에 자라나는 풀뿌리라도 씹어먹고, 제대로 된 검법도 없어서 쇳조각이라도 던지며 강해진 이들이 있다.

그렇게 크고 휘황찬란해진 것까지는 좋은데, 정작 그렇게 성공하고 나니 사람들이 과거는 안 알아주고 현재만 보며 비난했다.

“뭐? 치졸하게 독이나 쓰고, 뒤에서 암기나 던져서 인정 안 해준다고?”

그것도 앞에서 대놓고 까는 거면 모르겠는데, 뒤에서 그렇게 온갖 이간질이나 하고 있으니, 가문 사람들은 미칠 노릇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강해졌는데?!”

누군 좋아서 맛도 없고, 잘못 먹으면 그대로 가버리는 독초를 씹어먹으며 여기까지 왔는가?

강해지려면 더욱 강한 독을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더욱 강한 독을 먹으면 지금껏 공들여 왔던 게 한순간에 허사가 돼버리는 꼴을 종종 보는 게 초창기의 당가였다.

게다가, 그렇게 유명해지고 나니 이미 쌓아온 명성의 근본이 독과 암기라 다른 걸 손대기도 애매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 한번 해보자 이거지?”

강해지기 위해 독초라도 씹어먹었던 독한 놈들이라 그런지, 다른 걸로 노선을 트는 게 아니라 진정 독으로 천하제일가의 자리를 노리려 한 것이다.

그럼 그걸 어떻게 하냐는 것인데,

“우리가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그건 절대적인 힘이 부족한 게 아닐까?”

대체 누구의 머리에 나온 참신한 발상인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고, 그 어떤 놈도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강력한 독이 있다면 그 인정이란 걸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게 의견에서 끝났다면 다행인데…….

“절대적인 힘? 그게 뭔데?”

“나는 모르지. 우리한테는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한테 없으면 다른 곳에서 영감을 받아오면 되잖아.”

독한 놈들 아니랄까 봐, 그 정신 나간 의견이 꾸역꾸역 진행되기 시작한다.

“찾았다!!”

“북해빙궁(北海氷宮)에 빙정(氷精)이라는 신물이 있는데, 이놈이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 천년설삼(千年雪蔘)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 어마어마한 힘의 결정체라고 하더군!”

“그걸 만들어 보자!”

천하제일의 힘을 만들겠다.

그 이름도 촌스럽게 원판에서 딱 한 글자만 바꾼 독정(毒精).

누가 봐도 정신 나간 것 같은 이 미친 계획은 어디… 어정쩡한 가문도 아니고, 사천이라는 대도시에서 제일 잘나가는 가문이 주도하였기에 진행될 수 있었다.

덕분에 천하에 존재하는 독물이란 독물은 그 물류 흐름이 한 번 뒤 바뀌는 상황까지 벌어졌으니, 황궁에서 보고 반란 모의라도 일어나는 게 아니냐며 황군까지 보낼 뻔한 이 사건은…….

아주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 * *

“애초에 그게 되겠냐고.”

빙정이 무엇인가.

인간의 역사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긴 세월, 경이로운 자연의 흐름이 만들어 낸 북해의 정수다.

하다못해 경쟁자란 놈들도 천년을 먹은 설삼이니, 만년을 먹은 하수오니, 하며 린간의 수명이 아닌 국가 단위의 수명으로도 비교하기 힘든 놈들이 목록에 올라있다.

그런데 그걸 인공적으로 만든다고?

“고작 성도 하나에서 꺼드럭거리는 사천당가가 아니라, 중원 전체를 일통한 황궁이 나서도 안 될 일이지.”

덕분에 처절한 실패를 맞이했고,

“당가 칠 대 금기로 등재되어 웬만한 장로는 물론, 직계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그마저도 가주를 포함해 두셋 정도만 아는 그런 신세가 되었다.”

한데…….

“그런 걸 너는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주화입마를 겪을 뻔한 당율기가 퀭한 눈빛으로 그리 물어오는 당유혼을 쳐다봤다.

‘그러는 대형은 어떻게 알고 있는데요?’

의도가 다분한 시선이지만,

“뭐.”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알아도 자신은 답할 생각 없는 건지… 한결같이 뻔뻔한 대형의 모습에 당율기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만 알고 있는 겁니다.”

“뭐?”

“말 그대로 이 수법은 가주님을 포함해 몇몇은 알고 있다는 것이니까, 결국 전승은 계속되었다는 뜻이겠죠.”

“그건…….”

속여 무엇 할까.

당율기는 덤덤히 자신이 아는 바를 털어놓았다.

“당가 칠 대 금기? 이런 게 여섯 개나 더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당대 독정의 비밀에 대한 계승자가 저입니다. 그뿐인 이야기입니다.”

“이런, 미친.”

‘물려줄 게 없어서 이런 애새끼한테 그걸 물려줘?’

당장 지금만 해도 뭣도 모르고 시도하다 주화입마에 걸려 죽을 뻔했다. 하지만, 전승을 받았다면 자신이 오기도 전일 터, 그때의 그… 애새끼도 못된 응애한테 알려줘?

“어떤 미친놈이 그딴 짓을 한 거야?”

“…미쳤다라,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허탈하게 씁쓸하게, 당율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분은, 아니, 그분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뭐……?”

하나가 아닌 여럿?

그 말에 당유혼은 뒤통수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둔중한 충격을 느꼈다.

“설마…….”

“예, 그렇습니다. 제게 이것을 일러주신 분은 전대 차양 당주님이십니다. 그리고 함께 이것을 부활시키려 하셨던 분들은… 얼마 남지 않았던 전대의 어르신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듯, 매번 방계들과 떠들고 놀 때와는 다른, 회색으로 바랜 눈빛으로 당율기는 말했다.

“그분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에게는… 대형과 같은 이가 없었으니까요.”

* * *

삼십 년 전, 천하제일 세가가 있었다.

원래는 한 지역에서만 완장 좀 차고 우두머리라 거드럭거리는 가문이었는데, 수십 년 동안 벼락이라도 열 번 연속 맞았는지 불세출의 천재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들의 성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었고, 중원 뿌셔! 하늘 뿌셔! 하며 연일 상한가를 갱신했다.

그러다가… 진짜 나타났다. 천마(天魔)라는, 하늘이 내린 마(魔)가.

천마는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와 함께 중원을 덮쳤다.

그쯤 되니 천하제일세가라는 이들도 아찔해졌다.

자신이 천하제일인 줄 알았는데, 나타난 놈들은 천하가 아니라 천상계(天上界)에서 노는 놈들이었다.

게다가, 놈들이 얼마나 잔혹한지, 자신들의 천마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라면 무림인이고, 황군이고, 민간인이고, 할 것 없이 싹 다 죽여 버렸다.

결국 그 패악질에 맞서 천하제일세가는 무림의 동도들과 별동대를 짜 천산에 올라 일생일대의 대전을 펼쳤으니.

그 결과는 모두가 알게도 공멸(共滅)이었다.

‘유일신 천마가 죽었으니 마교에서는 난리가 났고, 핵심 수뇌부가 깡그리 몰살당한 당가 역시 난리가 났겠지.’

물론 어느 쪽이 더 난리가 났느냐, 묻는다면 당연 압도적으로 전자 쪽이 문제였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지.’

[오늘부로 천마님 숭배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숭배 관계에서 벗어나 천마님과 나는 한 몸으로 일체가 된다.]

[천마님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그야말로 자신의 삶이 천마요, 빛이 천마인 마교도들에게 천마의 사망 소식은 정신줄 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남은 병력들을 전부 다 그들의 신을 죽인 천하제일세가에 꼬라박는다는 선택을 내렸는데, 여기서 천하제일세가가 앞장서 지켰던 이들은 그들 역시 골 때리는 선택지를 택한다.

‘원래, 잘난 놈이 답도 없이 잘나면 존경의 대상이지만… 손에 닿을 수준으로 잘나면 시기의 대상이 되는 법이지.’

무지성으로 들이박는 마교의 세력.

다른 이들이 한 손씩만 내밀어 줬어도 천하제일 세가가 그만큼 몰락하지는 않았을 텐데…….

실로 차디찬 현실은, 그들에 의해 구원받았던 이들이 그들에게 등을 돌리며 얼마 남지 않았던 직계들이 모두 쓸려나가는 미래를 맞이했다.

그리고…….

‘거기다 더해, 방계들 중 일부가 뒤통수를 치고 얼마 안 남은 재산을 훔쳐 달아나 바로 옆에다 세력을 차리기까지 했으니…….’

반백 년도 되지 않는 사이, 천하제일이라 불리던 가문에 이리도 안 좋은 일만 불어닥칠 수 있나 싶은 것들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라.’

당유혼은 씁쓸함이 짙게 느껴지는 입맛을 다시며 당율기에게 들은 그 이후의 사건을 곱씹었다.

“…독정이라. 그걸 흉내 내려 했다고.”

“어쩌겠습니까. 전대의 어른들에게는 대형과 같은 불세출의 천재가 없었던 것을. 가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직계가 쓸려나가는 거야 그렇다 쳐도, 방계 정도는 몇몇이라도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일정 이상 항렬의 방계들은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곤 아직 꼬꼬마들뿐인, 무늬만 차양당인 방계들뿐.

“불완전한 독정. 당가가 건재할 때도 실패했던 그것을 시도한 전대의 방계들은 결국…….”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것이 불과 삼 년도 되지 않은 과거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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