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20화 (120/350)

120화

사람은 누구나 후회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기에 종종 미련과 후회가 남게 마련이다.

그건 당유혼 역시 마찬가지.

‘고작… 고작해야 삼 년이었던가.’

삼 년, 단 삼 년만 자신이 더 빨리 깨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구할 수 있었던 목숨이 수십에 달했겠지.’

돌아오지 않을,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후회.

심장 어딘가가 짓눌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괴롭지 않다면 거짓말이요, 이 심장을 뜯어내 버리고 싶다는 것이 진실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당유혼은 오히려 웃었다.

“…해서, 그걸 네가 대신 이뤄주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슬픔도, 고통도, 비애도, 여기서 그런 것에 허덕이고 있다면 위선에 불과하다.

늙은 노강호는 지나간 시간에 얽매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망령과 같은 것에 발목이 잡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또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도.

그래서 비쭉 뒤틀린 입꼬리에서 튀어나온 것은 혹평.

“멍청하군.”

“…….”

겨울바람과도 같은 차가운 말에 당율기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가, 미련하다고 하실 것입니까?”

실패해 버린 선대를,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려는 자신을, 당신과 같은 천재는 미련하다 비웃을 것이냐고.

그 물음에,

“아니? 멍청하다니까?”

천재이자 당가의 망령은 고개를 저었다.

“선대의 유산을 잇는다. 선대가 못한 걸 내가 대신 이루겠다. 그러다가 주화입마에 빠져 생명의 위협을 갖는다. 이건 분명 미련한 일이야. 하지만, 그걸 이루어 내겠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과거에 매몰된다면 그건 분명 미련한 일이다.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스스로 정해야 하는 거야. 개인의 가치관과 인생관은 분명 개인이 가진 고유의 것이니까. 그래서 그런 길을 과거에 못다 한 선대의 의지를 잇겠다고 정한다는 건 분명 멍청한 일이고.”

하지만…….

“난 꼭 그런 멍청이를 싫어하지는 않거든.”

“예……?”

당율기의 동공이 크게 뜨였다.

“못다 한 꿈을 후대에 넘기고, 후대가 그 뜻을 받아 이루어낸다. 그런 멍청한 것들이 모여서 가족이 되고 가문이 되는 거다.”

그 뿌리가 길어진다면 명문(名門)이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왕 할 거라면 말이지. 내가 선대보다 잘난 모습을 보이겠다. 선대가 못한 걸 내가 이루어냄으로써, 당신들의 후대인 내가 이만큼이나 잘났다. 그런 정신으로 접근해라. 알겠냐? 무조건 해내 버리라고.”

“……!”

이 멍청아.

“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멍청한 모습으로 반문하는 이 동생 놈을 보고 있노라니, 대형으로서 한대 쥐어 패주고 싶다.

“끄아악!! 왜, 왜 때리십니까?!”

“아, 미안. 마음속으로 생각만 한다고 했는데.”

이게 또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랄까, 여의신(如意身)의 경지랄까. 마음이 이르면 육신이 나가는 초고수는 이래서 슬프다.

“큭,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똘똘한 놈이 왜 갑자기 불퇴 같은 행동을 하냐?”

“부, 불퇴 같다니!!”

그건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발작하기는. 일단 들어봐. 네 그 미련을 이루게 해줄 방법이 있으니.”

“…정말입니까?”

“내가 못 할 것 같냐?”

“그건…….”

미친 짓이다.

이전 세대의 어른들도 전부 실패했고, 그걸 알면서도 시도했던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독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저렇게 쉽게 나올 말은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전대는 다 실패했으니 나도 안 될 것 같아?”

“…칠 대, 금기라고 하셨잖습니까.”

“칠 대 금기라…….”

그래, 그리 전승되긴 했지.

다만,

“넌, 그게 왜 칠 대 금기라 불렸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냐? 아니, 애초에 칠 대 금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나 하냐?”

독강시가 그러했고, 만천화우가 그러했고, 독정이 그러한 이유.

당연히 알 리 없어 벙찐 표정을 짓는 당율기를 보며 당가의 전전대 노고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래, 몰라도 돼. 어차피 그것들까지 일일이 알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하나 알아야 할 건.”

우우우…….

가볍게 들어 올린 손 위로 검푸른 기운이 응어리졌다.

“네가 기존에 알던 대부분의 지식을 갈아 끼워야 한다는 거다.”

“설마…….”

그것이 무엇인지 당율기는 알지 못했다. 지금 감히 그의 수준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었고, 저것이 어찌 존재할 수 있는지조차 그의 지적 능력으로도 감히 짐작하기 불가능했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살아 있는 것만 같다.’

단순히 내공을 덩어리로 뭉쳐 놓은 것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맥동하는 그 검푸른 불꽃에 당율기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게…….”

“그래, 네 짐작이 맞다.”

선대가 파헤쳤던 삽질과는 과정도 결과도 다른 것. 그럼에도 진정 그들이 원했던 것의 구현.

“이게 바로, 순수한 독의 정화. 그리고, 독의 정령.”

당가 칠 대 금기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린,

“독정(毒情)이란 놈이다.”

* *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우적우적―

항시 챙겨 다니는 육포를 꺼내 먹으며 흥미진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당불퇴.

그리고 그런 당불퇴의 머리 위에서 함께 육포 쪼가리를 먹으며 그 가루를 사정없이 흘려대는 아기 새 삑삑이가 두 눈을 빛냈다.

그에,

“어떻게 되긴 뭐 어떻게 돼? 그랬다는 거지.”

당율기는 두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뭐요?”

관객들의 눈이 돌아갔다.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단 거냐?”

예고편이야, 뭐야?

“거기까지 말했으면 본편이 있어야 할 것 아냐, 본편이! 그래서 독정이란 게 대체 뭐냐고!”

“삑삑!”

“난들 알겠냐.”

하지만 당율기는 반응은 요지부동이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독정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고 했지, 내가 그걸 얻었다고는 안 했다?”

“응? 그걸 얻은 게 아니라고?”

“그래. 금기라고까지 불리는 걸 내가 하루 만에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냐?”

“아…….”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이다. 독정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당가 칠 대 금기라고까지 불리는 걸 보면, 당가에 전해지는 어지간한 상승 무공보다 훨씬 윗줄에 놓이는 존재일 터.

그걸 요 며칠 사이에 얻었다는 게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일.

그래, 분명 그렇긴 한데…….

“잠깐. 그럼 네 그 눈알은 뭐여? 녹색 번쩍번쩍한 그거.”

“이거? 이건 그 시작 과정이지. 정확히는, 나도 수련 중인 거고.”

스르르―

가볍게 눈가를 쓸자, 녹색으로 빛나던 두 동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검은 색으로 돌아왔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네가 여기 온 건 너의 그 새 친구에게 익힐 무공을 위해서였지?”

“그랬지.”

“그걸 위해 중단전이 필요했고, 내가 중단전을 열게 된 계기를 설명한 것뿐이다.”

마침 당율기는 중단전 수련을 통해 독정에 대한 해석을 진행 중이었고, 그때 당불퇴와 삑삑이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사연을 들어보니 중단전이 필수적이란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조금 전 내 눈의 색이 변했던 건 중단전을 개방한 영향으로 추측한다. 아직 연구 중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뭐, 지금은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

거기까지 말하며 흘러갔던 대화를 다시 원점으로 돌린 당율기는 육포 기름으로 부리가 번들거리는 삑삑이를 바라봤다.

“이 녀석의 중단전은 개방하는 게 우선순위가 될 테니까.”

“아, 맞다.”

“삑.”

그제야 자신들이 당율기를 찾아온 목적을 떠올린 한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새, 그냥 두 마리의 짐승이 각자 손바닥과 날개로 이마를 딱 하고 두들겼다.

“여기까지 말하면 짐작했겠지만, 내가 중단전을 열게 된 건 순전히 대형 덕분이야. 하지만 요령은 알았기에 나 역시 이 아기 새의 중단전을 개방시켜 줄 수 있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바로 시작하기 위해 당율기가 손을 뻗었지만,

“잠깐!”

그 손길을 당불퇴가 막아섰다.

“뭐야?”

“네가 그걸 대형께 얻게 된 것까진 알겠는데, 그래서 그게 뭔진 모르잖아. 힘을 빌려오고, 그걸 담는 공간이라는 건 이해했지만 그 힘이 정확히 뭔지 모르는데 이 녀석에게 담게 할 수는 없어.”

쉽게 말해 미심쩍다는 뜻이었다.

그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기에 당율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해. 하지만 나도 이걸 정확히 설명할 자신은 없어.”

“연구가 덜 돼서?”

“그것도 맞긴 해. 그렇지만 그것보단 뭐랄까…….”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필설로는 형언하기 힘든 그런 감각.

“이건 개인마다 다른 것이니까. 어디서 무언가를 빌려오는가에 따라 다른 그런 것…….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붉은 바위 일족의 전사들도 사실 중단전을 사용하는 이들이야.”

“그 곰 같은 아저씨들이?”

“그래. 그러나 그들이 힘을 빌려오는 대상과 내가 빌려오는 대상은 다르지. 그리고, 이 아기 새도 다를 거야.”

말 그대로 빌려오는 힘이니까.

“그럼 넌 어디서 빌려오는데?”

“난… 글쎄. 이걸 어디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이 설명하기 난해한 가장 큰 이유.

독에 대한 지식과 이해, 탐구만큼은 당유혼에게도 인정받은 당율기이지만, 이제 자신의 의지로 중단전을 개폐할 수 있게 된 지금도 이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에,

“거참,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냐.”

당불퇴는 콧김을 한 번 흥 하고 내뿜으며 물었다.

“그래서, 이걸 해도 될 것 같냐?”

“말했듯이 그건 나도 설명을 잘…….”

“아니,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고.”

내가 물은 건 다른 거잖아.

“해도 될 것 같은지 아닌 것 같은지. 네가 말해 달라고.”

‘…이 자식.’

굳이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단지, 네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걸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 강한 신뢰가 기반된 말에 당율기는 순간 움찔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해도 돼.”

“그렇다면야.”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당불퇴는 삑삑이를 흘깃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 거냐?”

“삑.”

그 인간에 그 새라고 해야 할지. 삑삑이 역시 뭘 묻냐는 듯 짧게 울음소리를 내고는 톡 하고 당불퇴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헛.’

깜짝 놀란 당율기가 손을 뻗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 위에 곧장 당율기를 올려다보았다.

“삑!”

어서 해줘!

“…허 참.”

처음에는 멋대로 하려 했던 주제에 이렇게 되니 무안해져 버린 당율기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곧바로 시작하지. 다만, 그전에 이걸 미리 알아둬라.”

삑삑이의 작은 가슴 부위 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중단전은 그릇이지만, 하단전처럼 쌓아두고 담아두는 그릇은 아니야. 활짝 열린 대접과도 같은 것, 무엇인가가 찾아와 담기기 쉽게 되어 있기에 그건 그러니까…….”

그리고, 그 설명을 이어 가려는 당율기의 손 위를 작은 날개가 포옥 덮었다.

“삑―”

싯팔, 뭔 소린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하기나 해.

“아.”

내가 새의 표정을 읽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될지는 몰랐는데.

혹시나 싶어 당불퇴를 슬쩍 보자,

“그냥 하라는데?”

“…오냐.”

그렇다는데 뭐 어쩔까.

많은 말이 필요 없게 된 당율기는 결국 피식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 끝에 내공을 실어 가볍게 콕 하고 찔렀다.

그 기운은 삑삑이의 가슴팍에 닿으며, 중단전이 곧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흐르며 혈도를 개통했고, 그에 무언가가 뻥 뚫린 듯한 감각이 삑삑이를 휘감는 순간,

“삐빅, 삐이익?!”

번쩍하고 삑삑이의 눈이 크게 뜨이며,

“오오오옷?!”

“삐비비빅!!”

“날았어?!”

삑삑이의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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