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21화 (121/350)

121화

* * *

아기 새 삑삑이.

붉은 바위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살며, 어미 새가 잡아 오는 먹이만 옴뇸뇸 하며 무럭무럭 살을 찌우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친구 따라 이사를 결심했고, 어미 새와 함께 사천당가에 새 둥지를 짓고 눌러앉았다.

원래도 있는 사랑, 없는 사랑 전부 받고 자라던 아기 새였지만 사천당가에 와서 그 사랑의 크기가 폭증했다.

왜?

“호오, 네가 그 신령스러운 벽력조의 새끼란 말이지?”

“많이 먹고 자라거라.”

우선 붉은 바위산 일대에서 영물로 취급받는 벽력조의 혈통이란 그 출생이 가산점을 먹고 들어갔고,

“허허, 네가 우리 일족을 도와준 친우의 아기 새구나.”

“이것도 먹거라.”

당불퇴의 친구라는 점이 보증 수표로 작용했다.

덕분에 붉은 바위 일족의 사랑을 독차지해 버린 아기 벽력조는 사방팔방에서 들어오는 후원의 물결에 휩싸였다.

삑삑이 주거욧!!

맨날 먹던 야생 짐승의 노린내 나는 살코기가 아니라, 잘 다듬어진 육포나 다디단 과일 열매 등이 쏟아지자 삑삑이는 절제라는 단어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한없이 그것들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어난 현상은 연일 상한가를 치듯 부풀어 오는 뱃살!

가뜩이나 아기 새인지라 작은 날개는 비행을 하기에 턱없이 작은데, 몸뚱이는 끝없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다. 삑삑이는 더 이상 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 날았어?!”

그런 삑삑이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깜짝 놀란 당불퇴가 버럭 소리치자,

“아니야! 자세히 봐, 저건 솟구쳐 오른 거야!”

“뭣……?!”

당율기의 냉철한 지적.

과연, 삑삑이의 날갯짓은 파닥이는 것보다는 퍼덕이는 것에 가까웠으니, 그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유하고 있는 몸체의 균형을 어떻게든 유지해 보기 위한 발악에 가까웠다!

그걸 알면 좀 도와라! 이 자식들아!!

“삐이이익!!”

아기 새 삑삑이의 애달픈 외침은 통했는가?

다행스럽게도 제한 시간이 다 되었는지 떨어지는 추락지점은 당불퇴의 머리 위였고, 한숨을 돌린 삑삑이는 그런 당불퇴의 머리를 죽어라 부리로 쪼아댔다.

“악! 아악!! 왜 그래?!”

분노의 회전 부리는 당불퇴의 머리에 새집 하나를 만들어 내고 나서야 겨우겨우 멈추었고, 그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당율기가 입을 열었다.

“신기한 일이군. 중단전을 개방했을 때 벌어질 일이 개인마다 큰 편차가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끙… 이 녀석이 내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회전 부리를 익힌 거?”

“그거겠냐? 조금 전처럼 하늘로 솟구친 것. 그건 분명 새의 비행이라 하기에는 결코 그 결이 다른 것이었으니까.”

그거야 그렇긴 한데… 대체 조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둘은 조금 전 광경을 떠올리며 느껴졌던 감각을 반추했다.

‘중단전은 다른 무언가가 깃드는 것. 그렇다면 조금 전 깃들었던 것은…….’

가장 유사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함께 고민하던 둘은 곧 동시에 같은 답을 떠올렸다.

“하늘?”

“하늘…이지?”

무척이나 막연한 표현인지라 스스로들 말하고도 어처구니가 없긴 했다.

하지만 그만한 표현이 또 없는 것도 사실.

“삑?”

아직까지 얼떨떨함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삑삑이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삑삑아. 너 좀 전에 했던 거,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 거냐?”

“삑삑.”

“그래?”

그 말에 당불퇴는 고개를 주억거렸고, 함께 있던 당율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뭘 이해하고 있는 거냐?”

“오래는 유지 못 한다는데?”

“허허.”

평소 새 대가리라 놀렸더니 진짜 종족이 바뀐 건지, 삑삑이의 말을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그건 처음이라 어쩔 수 없지. 다만, 중요한 건 그걸 다시 할 수 있냐는 거야.”

“어때?”

“삑삑.”

그 감각을 기억하고 스스로 중단전을 개방할 수 있겠는가. 그 물음에 삑삑이 역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꿀꺽―

당불퇴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모두의 이목이 한점에 집중된 가운데, 정신을 집중하던 삑삑이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그 몸이 아까처럼 위로 치솟았다.

그리고,

“삐이익!!”

곧장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뭐야 이거?”

“이건… 암만 봐도 비행은 아닌데?”

굳이 표현하자면 날아오른다 싶을 만큼 힘껏 뛰어올랐다가 그 힘을 다 가누지 못해 추락하는 듯했다.

“삑삑!”

그걸 왜 잡아주지 않냐고 항의하는 삑삑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둘은 회의를 시작했다.

“네가 보기엔 어떠냐?”

“흠, 한순간 폭발적으로 힘을 발산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대신 유지력이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

“동의해. 하지만, 일반적인 잠력 폭발과는 달리 한 번 발동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그리 큰 것 같지도 않단 말이야.”

참 특이한 구조였다.

일반적으로 하단전에 내공을 쌓고 신체를 단련한다는 것은 전반적인 신체 능력의 향상과 같았다.

검법을 사용하거나 보법을 발동시킬 때 그 파괴력이나 이동 속도가 특히 상승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신체 능력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특수한 무공만이 짧은 순간에 신체 능력의 변화를 주고, 그 대가로 후유증을 앓고는 했는데…….

“이건 특정 순간에 신체 능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것 같단 말이지.”

보통의 무공 체계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

그 생각이 이어지자 둘은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 아저씨 같네.”

“비술인가 하는 그거랑 똑같군.”

평소에는 그냥 덩치 큰 아저씨 같지만, 한번 일족의 비술을 발동시키는 순간,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녔던 머리가 망나니처럼 산발이 되고 두 눈에서는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낸다.

“너도 이거랑 같냐?”

“나는 비슷하지만 좀 다르지.”

다만 그게 당율기 자신과는 경우가 달라 혼란했다.

“이렇게까지 폭발적이지는 않아도, 이렇게까지 지속시간이 짧지는 않아.”

“그래? 그럼…….”

“나보다는 붉은 바위 일족에게 도움을 받는 게 좋을 듯하군.”

나보다는 저쪽이 잘하겠다.

그렇게 내려진 결론.

당불퇴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 * *

“…해서, 우리를 찾아왔다는 거군.”

이야기를 들은 적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도 그의 두 어깨는 태산처럼 든든했다.

“예. 그런데… 어째 잘못 찾아온 것 같네요.”

다만 그의 등 뒤로 쓰러져 있는 일족의 다른 전사들을 보니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게 맞나 싶었고, 삑삑이 역시 당불퇴의 등 뒤로 숨었다.

“아아, 이건 괘념치 말게. 얼마 전에 의욕을 자극받을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게 차마 자신들의 자랑이요, 긍지라 생각하던 일족의 비술을 쓸 틈도 없이 너희 형님한테 개 맞듯이 처맞았고, 그게 분해 다들 지옥 훈련에 돌입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유?”

“그렇다네.”

본인들이 그렇다는데 뭐 어찌할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당불퇴의 앞에서 적웅은 척, 하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새를 위한 무공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실로 참신하군.”

“음, 그렇죠?”

지금까지 무림사가 아무리 길고 길었다지만 자신 같은 도전을 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일단 할 이유가 없는 게 가장 클 터다.

하지만 뭐랄까…….

‘뭔가 하고 싶네.’

합리적인 이유 같은 건 없어도 그냥 하고 싶으면 한다. 무지성 도전이 가능한 남자, 그게 바로 당불퇴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자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군.”

“오, 정말이십니까?”

“삐삑?!”

의욕에 찬 삑삑이의 날개가 확 하고 치켜세워졌다.

“가장 중요한 것을 이미 하고 왔지 않나.”

“가장 중요한 것?”

“자네들 표현대로 말하자면 중단전의 개방, 우리 식의 표현대로 한다면 가슴을 열어 정(精)을 통하게 하는 것이지.”

벌써부터 머리 아픈 말이 나온다.

자연스레 쥐가 나는 머리를 짚는 두 마리 짐승 앞에서 적웅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까지 굳이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네. 그리고, 내가 볼 때 둘은 자세한 원리는 이해하지 못해도 감각적으로 중단전의 존재를 꽤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

“그거야 뭐…….”

만약 중단전을 무인의 하단전과 같다 가정하고, 그로부터 흘러드는 기(氣)를 내공과 동일선상에 놓자면 삑삑이는 무공을 익힌 지 하루 만에 기의 존재를 뜨기고 단전을 만든 뒤 내공을 쌓아 그 수발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당불퇴 역시 그게 뭐 어찌 된 구조인지 정확히 필설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대략적으로 어찌 돌아가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럼 쉽겠군. 자, 따라오게.”

언제까지고 둘을 마당에 세워둔 채 설명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적웅은 우선 둘을 자신의 천막 안으로 초대했다.

* * *

일족의 대전사.

그리고 현재는 전사장의 역할을 겸임하는 데다, 뭇 전사들의 스승이자 교관이라 할 수 있는 적웅의 처소는 실로 소박했다.

“별로 볼품없지? 예전에는 그래도 사냥한 마수들의 박제를 전리품 삼아 놔두고는 했는데… 대이주를 하다 보니 쓸데없이 거추장스러워 다 버렸네.”

“예? 아뇨, 뭐… 저희 대형이랑 똑같은걸요.”

“은인이 말인가?”

당유혼의 처소는 당불퇴도 뻔질나게 들락거린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것은 참, 뭐가 없다는 점.

“예. 저희 가문이 빈곤할 때나 어느 정도 성세를 갖추고 부유해졌을 때나 바뀐 건 침상 하나 정도일걸요?”

잠은 꿀잠을 자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침상 하나만큼은 최고급으로 바꿨다만, 그 외에는 이렇다 할 변경점이 없었다.

일례로.

“형님. 찻잔이 너무 오래된 것 같아 새것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엥? 굳이?”

어느 날 찾아온 가주 당위혼이 부서지고 금이 간 목기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날이 부유해지는 가문의 성장세와 달리 당유혼의 방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이번에 들어온 최고급 찻잔들이 있습니다.”

“아니, 그걸 왜 나를 줘?”

하지만 당유혼은 단박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난 이게 좋아.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잖아? 이 편한 걸 놔두고 왜 새 걸 써? 그리고, 그렇게 비싼 건 저기 사천성 내 양반들한테 바치고 이권이나 더 따와.”

자고로 사치품은 모든 부유한 자들의 필수품이라, 그리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필수품을 향유하지 않는 모습에 당위혼은 한숨을 푹 내쉬었고,

“자자, 들어, 들어… 응?”

그런 당위혼을 설득하려고 뜨거운 차 한잔 직접 달여주다 손잡이가 뚝 떨어져 버린 나무 주전자를 본 당위혼의 동공이 심각하게 흔들린 것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허어… 과연.”

그 말에 적웅은 깊이 있게 감탄했다.

“윗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아랫사람이 따른다고. 그 말은 한낱 문명의 외곽에 살아가는 나 같은 이민족도 들어본 바 있지만, 그걸 직접 실천하는 이는 들어본 적이 없거늘. 과연 은인의 기개는 비범하기 짝이 없구나.”

실로 훌륭하다고 연신 감탄하는 적웅.

그 모습에,

‘음… 그래서, 그거 다 필요 없다고 말하고 산 새로운 고오급 침상이 엄청 비싸다는 말은 할 필요 없겠지?’

그 침상의 가격이 어지간한 사천 내 관리들에게 들어가는 한 달 뇌물 비용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는 사실.

당불퇴는 굳이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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