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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22화 (122/350)

122화

어쨌거나, 둘의 사담은 그렇게 일단락되고, 적웅은 본론을 꺼내며 양팔을 벌렸다.

“중단전의 쓰임에 대해 설명해 주겠네. 우선, 그 답부터 미리 말하자면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거야.”

“호오, 무공과 비슷하네요?”

“아니, 그건 아닐걸세.”

중단전이라 해서 하단전으로 사용하는 무공과 비슷하겠거니, 하고 묻는 말에 적웅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 무림인의 무공이란 걸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무공이란 신체를 강화하고 권장에 내기를 싣거나 검, 도, 창 등의 병장기에 덧씌워 강화하는 맥락 아닌가?”

“크게 보면… 그렇죠?”

“그래. 하지만 중단전을 사용하는 방식은 달라.”

우우웅…….

적웅의 등 뒤로 붉은 기운이 서렸다.

“하단전이 내공을 어찌 다룰지 직접 결정한다면, 중단전은 그것을 단지 사용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네. 왜? 중단전을 사용하는 이들은 그 힘을 어찌 다룰지 결정할 권한이 없으니까.”

“예?”

자기가 자신의 힘을 어찌어찌 다룰지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그렇다네. 비유하자면, 그대들은 힘을 짜내 틀에 넣는다면 우리들은 이미 틀에 넣고 짜여진 힘을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

생겨난 붉은 기운은 거대한 곰의 형상이 되었다.

비록 그 윤곽이 불분명해 정확히 ‘곰이다!’라고 할 수는 없어도, 기감이 극도로 발달한 당불퇴는 그것이 분명 곰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빌려오는 힘이니까. 원자재로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다 만들어진 완성품을 다루는 것이지. 그걸 어떻게 하면 잘 빌려오고, 어떻게 하면 잘 다룰 수 있냐는 게 강함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네.”

말하자면 돈을 융통할 때 얼마나 큰 돈을 빌려오냐는 게 능력의 고하를 가른다고나 할까?

뭔가 멋없지만 아주 잘 와닿기는 하는 비유에 당불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저희보다 자유도가 더 없는 것 아니에요?”

그게 어째서 더 무궁무진한 거지?

이해할 수 없어 묻자 적웅은 헐헐 웃음을 흘렸다.

“왜냐하면, 자네들은 마음껏 틀을 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이 사용 가능한 영역 내로 한정이 되어 있기 때문일세.”

“그럼 중단전을 사용하면 다르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네. 왜냐면, 우리는 뭐… 상위 존재의 힘을 빌려오니까.”

- 크르르…….

적웅의 등 뒤로부터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자네들의 무공이란 결국 개인의 강화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이리 말하는 나 역시 같은 방식으로 중단전을 사용하고 있지만, 기실 중단전을 사용해 발휘하는 진정한 위력은 이런 강화 같은 게 아닐세.”

“그럼?”

“세희. 그 아이의 비술은 무엇일 것 같나?”

“적 소저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적세희 역시 일족의 비술을 익히고 있다 들었다.

그게 적웅과는 다른 계열이라 들었기는 한데,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음… 모르겠는데요?”

“그렇겠지. 아마 상상도 못 했을 터. 그 아이가 가진 비술이란 바로 예지(叡智)라네.”

“예? 예지요? 그… 미래를 예측하는 것?”

“허허, 그렇게 말하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말하자면 뭐라 할까…….

“이 일을 했을 때 옳게 될 것인지, 그릇 될 것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음에 가깝지. 일족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특히 그 아이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지. 하지만 그게 만능인 것은 아니야.”

오히려 한계가 명확하다고나 할까.

“자신이 감히 대응할 수 없는 정도의 사건에는 심히 무력하지. 속한 집단을 통틀어 예지를 한다면 더더욱 그 힘은 약해진다네. 예를 들자면, 마침 자네들과 만날 때도 그 아이는 이민족 사냥꾼들에게 납치당한 상태가 아니었나?”

이어지는 부연 설명으로 그 한계가 있다 말하는 적웅이었지만,

‘음…….’

당불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납치는 당했지만, 그 덕에 우리들과 만났으니 일족 전체의 입장으로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에 가까운 이득 아닌가?’

물론 적웅의 설명이 있으니 거기까지 큰 그림이 이어졌다고 봐야 할지는 긴가민가했다.

그래서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자니, 적웅은 두 손을 짝 하고 부딪히며 등 뒤에 생겨난 붉은 형상을 흐트러지게 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지만, 그만큼 중단전은 빌려오는 힘에 따라 무궁무진하다는 거야. 하위 종족인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래서 그 쓰임 역시 각기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럼 얘는 뭘 쓰는 건데요?”

“흐음, 백문이 불여일견. 한번 보여주겠나?”

문자 쓰는 이민족 전사의 말에 삑삑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날개를 파닥였다.

그건 마치 앞으로 닥쳐올 상황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고,

“삐이잇―”

실제로도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중단전을 개발시킨 삑삑이는,

“삑!”

파팟 하고 치솟아,

“삐웁―”

천막의 천장에 틀어박혔다.

“헉? 삑삑아!!”

“삐웁― 삐웁!”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뱃살부터 아랫다리만 밖으로 내놓은 채 버둥거리는 삑삑이의 모습에 당불퇴는 화들짝 놀라 위로 솟구쳐 올랐다.

빼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천막에 구멍 하나 뚫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저, 그게…….”

개인 시간 방해도 모자라 기물파손이라니.

“이, 이건 반드시 배상을 해드리겠……!!”

당불퇴가 다음 달 용돈을 총관님께 가불로 받기 위해 어찌 싹싹 빌어야 하나 머리를 돌리고 있을 때,

“호오, 놀랍군.”

자기네 집 천장이 부서지는 걸 지켜보던 적웅은 크게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을 흘렸다.

“…배우러 온 주제에 집 천장 부순 거요?”

“아니. 그 잠재력이 말일세.”

적웅은 지은 죄에 날개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있는 삑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감히 깃든 존재의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그 그릇이 무척이나 놀랍군. 결코 우리 일족이 모시는 분의 아랫급이 아니야.”

“…그렇게 말해도 돼요?”

거의 조상신을 폄하하는 게 아닌가 싶어 묻자 적웅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틀린 말도 아닌데 문제 될 게 뭐가 있겠나? 우리가 모시는 윗분, 혈웅께선 그렇게 도량이 좁은 분이 아닐세.”

“그, 그래요?”

우리가 모시는 대형은 밴댕이 소갈딱지만큼 좁은 분인데.

만약 면전에서 저 말을 했다면 당장에 천골저가 다발로 날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내가 알아낸 바를 말해 주자면 이 친구의 중단전은 강신형에 가깝네.”

강신형이라면 강신형이고 아니라면 아닌 거지, 가깝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

그 의구심 어린 표정을 읽은 적웅이 껄껄 웃었다.

“당장 나와 우리 전사들이 강신형이지. 하지만 강신형은 이렇게 유지 시간이 짧지 않네. 오히려 유지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 효율이 매우 좋은 편이지. 하지만, 이 친구는 효율은 썩 좋지 않아 보이지만… 그 가능성이 매우 무궁무진해 보이는군.”

“삑?”

삑삑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그사이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군. 자네가 무인이니, 도움을 준다면 체술과 무투의 영역에서밖에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 한순간에 불과해도 그 순간만큼은 초심자가 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수련한 무인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면 이해가 되겠나?”

“…삣?!”

“헛?!”

두 마리 짐승이 동시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야.’

이 작은 아기 새가 높이 솟구쳐 천장을 뚫고 박혔다는 건, 인간이 한 번의 도약으로 다섯 장의 높이로 뛰어올랐다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그건…….

‘나도 지금 안 되는 거잖아.’

아무리 내공으로 신체를 강화했다 해도, 다섯 장이나 뛰어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그 이상은 나도 잘 모르겠군. 하지만 자네의 표정을 보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가락이 잡힌 것 같은걸?”

“…예, 대충은요.”

무언가 알 듯 말 듯 했다.

“다만… 몇 번 더 봐야 할 것 같아요. 발현이라고 해야 되나? 그 순간을 좀 봐야 뭘 가닥을 잡을 것 같은데…….”

“그것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네.”

난색을 표하는 당불퇴의 모습에 적웅은 흔쾌히 나섰다.

“지금 이 친구의 문제는 격상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해 순간적으로 폭주에 이르는 것이지. 그걸 혈웅의 가호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화시켜 줄 수 있다네.”

“…가호도 내려줄 수 있어요?”

“허 참, 혈웅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

어떤 존재로 보냐니…….

‘그야 뭐… 눈 돌아가서 시뻘게지고 다 때려 부수는 존재가 아닐까?’

“…됐네. 표정만 봐도 대충 알 것 같군.”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적웅은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보인 모습에 선입견이 생긴 것은 알지만, 혈웅은 인세에 보기 드문 성웅(聖雄)일세.”

“…정말요?”

“물론일세. 그러니 세희 역시 제한적 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일세.”

그 역시 혈웅의 능력이니까.

“하긴 뭐…….”

이 이상 말해 봐야, 어차피 밑져야 본전.

혈웅의 가호 아래 삑삑이는 다시 한번 재도전을 해보기로 했고, 적웅은 곧장 비술을 발동시켰다.

우우우…….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붉은 기운이 천막 안을 가득 채웠다.

색채만 보자면 금방이라도 전장의 학살자처럼 칼부림을 벌여 피 칠갑을 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그 기운은 따스했다.

“이건……!”

“혈웅의 가호일세. 이제 다시 도전해 보시게.”

붉은 서기(瑞氣)가 삑삑이를 감싸 안는 가운데, 삑삑이는 다시금 중단전을 개발시켰다.

그러자,

번쩍―

무언가 삑삑이에게 내려꽂히더니 그 작은 체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삐익… 삑……!”

“헉?! 이 작은 몸에 어찌 이런 힘이……?!”

그에 당황한 것은 적웅도 마찬가지.

혈웅을 강신시킨 채 삑삑이의 발작을 막기 위해 집중하던 혈웅은 느껴지는 거력에 전율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뭐, 뭣이여?!’

지켜보던 당불퇴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되는 일이여?’

시작할 때만 해도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건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삑삑이의 주변에 엄청난 힘이 감돌기 시작하고 적웅 역시 그것을 다 감당하지 못하겠는지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중단전인지 나발인지는 알지 못하는 당불퇴라도 뭔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가만히 있다가는 사달이 나리라는 것도 직감했다.

‘뭘 해야……!’

가히 절체절명의 순간.

주변을 둘러보던 당불퇴는 일단 삑삑이에게 달려갔다.

당장 놔두면 터질 것같이 부르르 떨리는 게, 어떻게 붙잡아 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런 당불퇴의 두 손이 삑삑이에게 닿는 순간,

푸슉!

무언가가 인지의 감각을 초월한 속도로 쏘아져 당불퇴의 심장을 꿰뚫었다.

‘어……!’

그 순간 당불퇴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그건 마치 시간이 멈추는 것만 같은 감각이었고, 동시에 만물의 움직임이 정지에 가까운 속도로 느려졌다.

구구구…….

그 속에서 무언가가 소용돌이쳤다.

그것은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를 일순간에 꿰뚫는 벼락과도 같았고, 당불퇴의 등이 활처럼 굽어졌다!

‘아……!’

탄성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입안을 맴돌았고, 심장께에서 일어난 소용돌이는 다시금 밖으로 토해지며 광막한 감각을 선사했다.

그 감각이 얼마나 아득한지, 지금껏 죽어라 무공을 익혀온 자기 자신이 이다지도 작게 느껴질 수 있는가 싶을 정도였다.

슈욱―!

다행인지 불행인지,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그 감각은 짧았다.

터벅―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내디디는 순간, 그 기묘한 감각은 얼음이 부서지듯 사라져 원래의 현실로 돌아왔다.

동시에,

후우우우…….

장내를 감싸던 붉은 기운도, 삑삑이 내부에 꽂혀 폭발할 것 같던 기운도 전부 사그라들었다.

‘이게 뭔…….’

그러고도 혼란이 가시지 않아 두 손에 잡힌 삑삑이를 내려다보았고, 동시에 삑삑이도 그런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가 말해 왔다.

- 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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