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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23화 (123/350)

123화

“웜마?!”

당불퇴는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삑삑이를 집어던졌다.

“삑!!”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재주 좋게 그걸 받아낸 적웅이 물었다.

“자네 괜찮은가?”

“모, 목소리! 목소리 못 들었어요?!”

“목소리?”

“이 녀석, 말하는 거요!!”

“삑삑!!”

그게 뭔 소린지.

적웅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내 눈엔 지금 자네의 친구가 새소리를 내며 자네를 열심히 쪼아대는 것밖에 안 보이는군.”

“그, 그럴 리 없는데?”

이젠 부리 공격도 익숙해진 당불퇴가 멍하니 서 있자, 적웅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거, 면이 서질 않는군. 기껏 자신만만하게 나섰는데 말이야.”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삑삑 소리를 내는 아기 새를 보며 당불퇴도 조금 전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뭔가 굉장한 일이 벌어진 것 같던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끙… 내 생각보다 이 친구의 잠재력이 더 대단한 덕분이지.”

“얘가요?”

“삑!”

삑삑이가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힘껏 부풀렸다.

내가 이 정도라고?

‘…부정하고 싶은데.’

차마 부정할 수 없는 건, 그 순간 당불퇴 역시 느낀 게 있기 때문.

그리고…….

“또한, 그 덕분인 듯한데… 자네도 얻은 게 있지 않나?”

“아저씨도 느낀 거예요?”

“모를 수가 없지.”

그의 시선이 당불퇴의 심장 어림에 닿았다.

‘역시.’

무언가 뻥 뚫린 것 같은 감각 속, 그 구멍으로부터 무언가가 한껏 토해지는 이 기분.

“중단전을 개통한 걸 축하하네. 자네들 무림인은 이를 이렇게 부른다지?”

기연을 얻었다고.

‘율기 녀석이 말한 거랑 비슷한 기분이라더니…….’

우연치 않게 얻은 힘은 어찌 다뤄야 하는지 당장은 막연하지만, 왠지 이후에 크게 쓰일 것 같긴 했다.

“자네 역시 중단전을 개통하는 데 성공했으니 더 이상 내 도움은 필요 없을 것 같군.”

워낙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당불퇴니까.

그 말에 당불퇴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면서도 한 가지를 첨언했다.

“그래도 이따금 도와주세요.”

“비무를 해달란 말인가? 그건 언제나 환영일세.”

그 정도야 얼마든 좋다고. 아니, 오히려 우리들도 원한다고.

승낙의 말에 당불퇴는 씨익 웃었다.

“알겠어요. 다음에 또 보죠.”

* * *

돌고 돌아 다시 원점.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당불퇴는 삑삑이와 나란히 마주 앉았다.

“…아니 그런데, 이 녀석 진짜 말한 것 같은데…….”

“삑삑?”

뭔 개소리냐는 반응에 당불퇴는 억울해 팔짝 뛸 것 같았다.

“진짜 너 아냐? 너 맞는 것 같은데? 너 같은데?”

“삑!”

결국 날개로 한 대 맞고 나서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끝까지 아니라 하는데 어쩔 도리가 있어야지.

“…그래, 원래 목적대로 가자.”

사천당가 한 바퀴를 순회 공연하듯 돌고 돈 목적은 삑삑이를 위한 무공 만들기.

단편적인 편린만 얻었을 뿐, 어느 하나 시원한 해답을 얻은 곳은 없었지만 당불퇴는 그 조각난 것들을 기워 하나로 엮어냈다.

“내가 볼 때, 네가 우리 애들처럼 평범하게 무공을 익히는 것은 무리 같다.”

“삐…익?”

“아, 아니 잠깐만! 벌써 실망하지 마! 좀 들어봐!”

절망이라는 단어를 표현하듯 두 날개를 축 떨구는 모습에 당불퇴는 황급히 두 손을 휘둘렀다.

“말했잖아. 평범한 무공은 무리라고. 음… 그러니까…….”

‘뭐, 뭐라 말해야 하지?’

머릿속에 온갖 단어들이 우르르 쾅쾅 쏟아졌다.

하지만 자신의 절망적인 어휘력에 새삼스레 감탄한 당불퇴는 ‘역시 말보다는 행동이지.’라는 생각에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 봐봐. 보통 무공은 단전에서 시작된 내기가 정해진 혈도를 타고 쭉 뻗어져 나가 주먹이나 발에서 폭발하는 것이거든? 이걸 위해 평소에 운기조식을 하며 혈도를 닦는 거고. 그런데, 넌 그게 필요 없을 것 같다.”

“삐익?”

“딱 생각만 해봐. 중단전을 발동시킴과 동시에 네가 할 수 있는 동작을. 너 같은 경우는…….”

이 녀석은 뭐가 좋을까?

평소 삑삑이의 행동거지를 생각해 봤다.

원래 최초의 무공은 인간이 맹수의 행동을 흉내 내며 만들어졌다고 했으니, 삑삑이의 행동을 잘 떠올려 보면 맞는 무공의 형(形)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듯했다.

‘그러니까…….’

“삐비빅!!”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 누군가가 주는 육포를 받아먹는다.

“삐빅!!”

뭐만 하면 뛰어들어 부리로 쪼아댄다.

“삑!”

마음에 안 들면 날개로 퍽 하고 친다.

“…싯팔, 이거 가능한 거 맞아?”

어마어마하게 무리가 있는 난이도잖아?

“삐익…….”

“야, 야!! 시, 실망하지 마!!”

다시금 절망하는 녀석을 일으켜 세웠다.

‘그래, 내가 뭐 다른 형제들처럼 화려한 무공을 만들 수 있겠어?’

수백 개의 비도를 일시에 날린다든가, 수십 개의 은사에 중장 병기와 비도를 매달아 휘두른다든가, 독무로 형상을 만들어 내 퍼붓는다든가…….

그딴 것은 기대하지 말고 삑삑이에게 가장 맞는 무공을 고르자면…….

“이건 어때?”

그리 대단한 건 아닌데.

“삑?”

“자, 이거야. 당가박투술이라고 불리는 건데.”

당불퇴는 그 자리에서 번쩍 뛰어 옆차기를 갈겼다.

“어때? 그냥 옆차기 같아도, 우리 가문에서 암기나 독이 다 떨어졌을 때를 상정하고 만든 박투술이야.”

가장 효과적으로 치명적인 효과를 내기 위한 최적화된 동선의 발차기라고나 할까?

물론, 당불퇴도 말하고도 약팔이 같아서 슬쩍 눈치 보고 있는데,

“삐삑……!!”

삑삑이의 눈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좋아?”

“삑!”

어서 빨리 가르쳐달라고 날개를 펄럭인다.

“허허,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삑삑이가 격한 반응을 보이니 당불퇴도 기분이 좋아져서 당가박투술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아기 새의 짧은 다리로 뭘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나름 성심성의껏 가르쳤다.

“자, 들어봐? 이건, 이쯤에서 뛰어서 파팟! 하고, 파파파팍! 꽂아야 되는 거야, 알겠지?”

“삑… 삐비삑!!”

“바로 그거야!”

만약 누군가 본다면 저게 뭔가 싶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방계들이 보았다면 이마를 탁 짚으며 통탄을 금치 못했을 무공 전수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둘 다 핵심 요결의 전수가 완료되었다 싶을 때.

“삐삑!!”

“좋아, 가자!”

삑풍당당.

아기 새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똑바로 섰다. 그 뒤에선 당불퇴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보여줘! 너의 천조류(天鳥流)를!!”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인 채, 삑삑이는 한쪽 벽을 노려봤다.

“삐잇……!”

짧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삑삑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서서히 중단전을 개방시켰다.

번쩍―!

다시금 두 눈이 뜨일 때,

천조류(天鳥流), 천둥 차기(雷脚).

콰아아아앙!!

한 줄기 천둥이 벽면을 강타했고,

쿠구구궁…….

“삐… 삑?”

이게, 내가 한 것이라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로 흘러들어 오는 햇빛 속에서 삑삑이는 자신이 만들어 낸 광경을 믿기지 않는 눈으로 돌아보았다.

“벽이……!”

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 * *

꽈광―!!

“뭔 소리야?”

한편, 동일한 시각 당유혼은 발걸음을 옮기다 한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놈의 가문. 하여튼 바람 잘 날이 없구만?”

누구보다 그 현상에 높은 기여를 하는 당사자는 에잉 쯧 하고 불편하게 혀를 차며 속도를 올렸다.

어차피 끽해 봐야 당불퇴나 당지명 둘 중 하나가 수련하다가 돌담 하나 무너트렸지 않았을까 하면서.

그렇게 걸음을 옮긴 당유혼이 도착한 곳은,

“끄아아아아아!! 다시!!”

“들어와!! 들어와!!”

“…뭐야?”

오늘도 어떻게 하면 혁신적으로 차양당 방계들을 굴릴 수 있을지 생각하던 당유혼조차 멈칫하게 만든 풍경.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라고, 누가 시키기라도 했나?”

어느 날 갑자기 역병이 돌아 미쳐 날뛰기라도 하는 방계들은, 다행히 누군가 그만― 이라고 외치자 일순간에 멈추더니 땅바닥으로 거꾸러졌다.

이제 보니 중앙에 거대한 모래시계가 있었고, 그게 다 될 때까지 싸우는 구조인 듯했다.

“뭐 하냐?”

“…헉!”

그들에게 다가가 툭, 하니 묻자, 누워 있던 방계들이 경기라도 일으키듯 반응했다.

“자, 잠깐 대형!!”

“저희 진짜 지금은 못 합니다!!”

“으르르르르……!!”

게거품을 물기까지 하며 발작하는 모습들.

‘…내가 뭐 했다고.’

대체 이놈들은 위대하신 대형을 뭘로 생각하는지…….

“그래서, 뭐 하고 있었냐?”

고개만 발딱 들고 버럭버럭거리던 방계들은 저 악귀 같은 대형이 오자마자 수련이나 시킬 줄 알았는데 대화 분위기를 조성함에 서로 눈만 껌뻑이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요새 너희가 당지명, 당불퇴, 당율기 그놈들 셋보다 딸리는 거 같아서 자체 특별 훈련을 하고 있었다?”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건 맞지.”

“아니…….”

암만 그래도 그걸 대놓고 인정하는 게 맞나?

“흐음…….”

방계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든 말든 당유혼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보아하니 딱 그 세 놈만 없군.’

당지명, 당불퇴, 당율기.

특히나 성장이 빠른 셋과 성장이 더딘 나머지 서른의 방계들.

‘애초에 비슷해 보이는 놈들 모아놔도 결국 한두 놈씩 뾰족한 놈들이 튀어나오게 마련이지.’

처음에야 다 똑같이 차양십이수와 귀원일기공을 익히게 했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벌어지면 특색은 날수밖에 없다.

그런 이들을 동등하게 가르친다는 게 오히려 어불성설(語不成說).

“좋아. 차라리 잘됐어.”

“…뭐가 말입니까?”

“눈빛이 불안한데…….”

자신들을 바라보는 당유혼의 눈빛에 방계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모의했다.

‘도망칠까?’

딱 봐도 가만있어 봐야 좋은 꼴은 못 본다는 확신!

경험이 말해 주는 위기 감지 신호가 그들에게 경종을 울렸지만…….

“어이, 너희들 강해지고 싶지 않나?”

그보다 한발 앞서, 거부할 수 없는 미끼가 던져졌다.

솔깃!

“강해질 수 있는 방법……?”

“어, 어이! 멈춰! 거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함정이야!”

누군가의 귀가 쫑긋거리고, 또 깨어 있는 누군가가 경고성을 내뱉었지만…….

“하지만… 강해진다잖아.”

“강해질 수 있다잖아?”

젠장, 이미 틀렸어?!

요술 같은 ‘강함’이라는 단어에 홀려 버린 방계 몇의 눈은 이미 초점이 풀려 있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쭉쭉 앞서나가는 방계 삼인방에 뒤떨어질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며 지옥 훈련을 하고 있는 나머지 방계들로서는, 강함이라는 단어에 매혹될 수밖에 없는 노릇.

‘다 넘어왔구만.’

그 모습에 당유혼은 씨익 웃으며 요 며칠간 연구가 끝난 이름을 입에 올렸다.

“너희, 중단전이라고 들어봤냐?”

* * *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요?”

“응? 아… 그럴 일이 있어서.”

이제는 익숙해진 하오문 사천지부의 비밀 안가.

사실상 당유혼과 하윤호의 전용 회담 장소가 된 그곳에서 당유혼은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방계들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잘하겠지. 내가 없어도.’

어디 보석 같은 놈들이라 애지중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것도 아니고, 거칠게 자랄 투계(鬪鷄)로서 적당한 방목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였다. 당유혼이 떠날 결심을 한 것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요. 마침, 저희 역시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요.”

“그러니까 불렀겠지.”

아닌데 불렀으면 뒈지는 거고.

읏차―

기지개를 켜며 일어선 당유혼은 곧장 한쪽에 챙겨진 보따리를 챙겨 들었다.

“…끄응, 그런데, 진짜 가셔야겠습니까요?”

“그럼 진짜 가야지. 가짜로 가겠냐?”

‘진작에 저놈의 복면을 내다 버렸어야 했는데…….’

하윤호는 보따리 위로 빼꼼 내밀어진 검은 복면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이 양반도 제정신은 아냐.’

하윤호가 앞으로 닥쳐올 일에 오만상을 찌푸리든 말든, 당유혼의 시선은 벽면 한곳에 걸린 지도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곳에 적힌 거대한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장강(長江)이라…….”

당유혼은 실로 오랜만에 향하는 그곳 생각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기다려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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