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 장강(長江) 】
시간은 바야흐로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쿠당탕탕!!
“주인장 나와!!”
“…그렇게 돈 떼인 대금업자처럼 찾아오지 않으셔도 어디로 안 도망칩니다요.”
분명 볼 때마다 자신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주지만, 그렇다고 또 종종 보고 싶지는 않은 불청객의 방문을 받으며 하윤호는 읽던 서책을 덮었다.
탁―
비밀 안가.
원래는 자신만을 위한 비밀 공간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취급이 박해져 버린 걸까?
덧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당유혼은 권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의자를 끌어다 앉고는 당당히 말했다.
“돈. 돈이 필요해!!”
“…돈 말입니까요?”
진짜 급전이라도 당기려고 온 건지…….
“이미 사천에 있는 돈을 쓸어다 담다시피 하시지 않습니까요?”
당가는 사천삼주가 관리하는 사업체의 비리를 고발하여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이권을 신명 나게 강탈하고, 그 과정에서 사천성주와의 인맥 관계를 보여주며 기존 상인들을 이쪽으로 끌어당기는 등. 사실상 어디 개천에 뚫린 구멍처럼 금전의 흐름을 빨아들이고 있는 사천당가의 실세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것보다 더 돈이 필요하니 그렇지.”
“예? 어째서 그렇습니까요? 들어오는 돈이 어마어마할 텐데?”
“허허, 우리 하 사장. 감이 다 떨어지셨네. 당연히 들어오는 돈보다 나갈 돈이 더 많으니까 그렇지.”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는 당유혼이지만, 하윤호로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천이라는 거대한 성도의 물류 흐름을 장악한 주제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거지?’
“…혹시,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요?”
“영약. 영약을 만들어야 해.”
이게 다 하는 것은 없이 저 돈만 축내는 쌀벌레 같은 놈들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단전을 쉽게 개통하고, 또 조화롭게 성장시키는 데 그걸 단시간 내에 이루려면… 역시, 약발뿐이다.’
지금까지도 온갖 독초를 떼와 잡룡탕이니 뭐니 하며 먹여댔지만, 그보다 더한 영약, 영초, 독단들이 필요로 했다.
“아아… 이해했습니다요.”
중단전에 대한 이야기야 알지 못하는 하윤호였지만, 그 역시 정보를 다루는 인물. 단편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당유혼의 생각을 추측할 수는 있었다.
“당문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고수의 숫자. 이번처럼 외부 인사를 끌어들여 숫자를 불린다고 해도 고수의 수가 부족하면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터… 영약의 힘을 빌려 그 시간을 당기려 하십니까요?”
“잘 알면서 더 말해 뭐 해.”
시간을 돈으로 산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 많은 돈이 필요로 했다.
“돈을 벌어야 해. 사천 내에서 끝날 게 아니라, 전 무림을 범위로 잡고 갈퀴로 쓸어 담아야 한다고!!”
당유혼의 두 눈에 탐욕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한데, 그건 좀 어불성설이지 않습니까요?”
“뭐가?”
“시간을 돈으로 사련다고 하시면서, 정작 돈을 벌려고 다른 지역까지 일을 알아보려 하신다면… 정작 방계분들이 수련할 시간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요?”
그야말로 본말전도(本末顚倒).
그 부분을 지적하자…….
“뭔 개소리야?”
“옙?”
“누가 놈들까지 데려간다고 했어?”
방계들은 싹 다 가문에 처박아놓고 지옥 수련을 시킬 예정이다.
“돈 벌러 가는 건 나 혼자다. 난 천재라서 어디서든 수련을 하고 강해질 수 있거든.”
그야말로 광오한 자신감.
그게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대단하기는 한데,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요……?”
혼자 가서 천문학적인 돈을 따온다?
그딴 건 도박장에 가서 돈을 쓸어 담아와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안 되냐? 어디 암살 의뢰 같은 거 없어?”
이 양반, 진짜 정파가 맞긴 한 걸까?
“절대 안 됩니다요.”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이제 절박해진 건 당유혼이었다.
“진짜? 하 사장, 다시 생각해 봐. 하 사장이라면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요?! 어디 가서 구천의 수장 중 하나의 목이라도 따오려 합니까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벌떡―
진짜 당장에라도 출발하려는 당유혼의 모습에 하윤호의 정신이 아찔해졌다.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요!!”
“구질구질하게 이거 왜 이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하윤호는 진실로 위기감을 느끼고 소리쳤다.
“잠깐! 잠깐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십시오!!”
“주면?”
“…예?”
“시간을 주면, 뭔가 방법이 나오나?”
“…아.”
당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하윤호는 허허 웃었다.
‘역시, 이 새끼는 사파가 더 어울려.’
* * *
비렴(蜚蠊)이라는 벌레가 있다.
이 벌레는 신기한 특성이 하나 있는데, 위험에 처하면 지능이 폭발적으로 상승한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왜 꺼내냐면, 하윤호가 바로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저,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요.”
“역시, 우리 하 사장은 다 계획이 있구나?!”
그래, 있을 줄 알았어. 사람이 뒤져보면 꼭 하나씩 뭐가 나온다니까?
“그래서, 무슨 계획인데?”
“…계획까지도 아닙니다요. 인생이 다 그렇듯, 위험 부담이 클수록 배당이 엄청나게 높은 그런 일이 하나 있습니다요.”
사천 물류 흐름을 빨아들이는 현재보다 더 큰 돈을 따낼 만한 도박. 그건 바로…….
“장강(長江)입니다요.”
청해와 서장 사이에서 시작하여, 중원을 관통해 동해까지 이르는 거대한 강.
그리고, 중원의 허리라 불리는 그 강의 이름에 당유혼은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라면, 지금 난리 난 곳 아니야?”
“바로 그렇습니다요.”
원래라면 장강수로채가 장악한 공간이지만, 지금은 전란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그곳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여러 번 정보지를 보내드린 일이 있었습니다요. 혹시, 읽어보셨습니까요?”
“아니?”
“…….”
바빠서 안 읽었다고 당당히 말하니 할말이 없다.
“원래 장강수로채는 구패(九覇) 혹은 구천(九天)이라 불리는 아홉 세력 중에서도 꽤 근본이 있는 이들이었습니다요. 하지만, 지금은 그 후계 다툼으로 큰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요.”
“와, 이제는 뭔 수적 새끼들도 하늘이니 뭐니 하냐? 이제는 하다 하다 너희들도 구패라고 하겠다?”
“…모르셨습니까요?”
저희도 일단은 구천인데…….
그 말에 당유혼은 어처구니가 없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진짜 개나 소나 하늘을 갖다 붙이네?”
“…….”
한참을 씩씩거리던 당유혼이 물었다.
“그래서, 그게 어떻게 돈 되는 일인데?”
“…예, 뭐. 전쟁이 벌어졌는데, 돈 되는 일이 별거 있겠습니까요?”
“전쟁 상인?”
“…대협, 진정 정파인이 맞기는 하십니까요?”
보통의 무림인이라면 이럴 때 낭인(浪人)이나 용병(傭兵)을 떠올린다. 하지만 눈앞의 자칭 정파인이라는 양반은 거기다 병장기를 팔아먹는 전쟁 상인부터 떠올리고 있으니…….
‘…전쟁 상인은 진정 사람의 머릿수를 숫자로만 볼 수 있는 천생 장사치나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하윤호가 감탄 또 감탄하고 있자 당유혼은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뭘 또 그런 칭찬까지야.”
칭찬이겠냐고!!
“…아쉽게도, 그건 불가합니다. 전쟁이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만큼 상인은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요.”
“에잉, 그래? 사파놈들은 전쟁을 부추겨 싹 다 죽어야 하는데.”
당유혼은 뿌리 깊은 사파 혐오를 내보이며 팔짱을 꼈다.
“그럼 역시, 남은 건 용병일 뿐인가?”
“그렇습니다요. 현재 장강의 전세는 전대 용왕(龍王)의 둘째 제자와 셋째 제자가 경합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셋째 제자, 삼 공자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요.”
“첫째는 뭐 하는데?”
“일 공자는 이미 갔습니다. 삼 공자가 보내버렸지요.”
화끈하구만?
“해서, 당연히 삼 공자 쪽에 붙으라는 것은 아닐 테고… 이 공자 쪽에 붙어야겠지?”
“그렇습니다요. 하지만 사실 저는 절대 이 방법을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요.”
“왜?”
“사실상 이제 와서 이 공자가 삼 공자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요.”
하윤호는 단언했다.
왜냐하면…….
“장강수로채. 달리 장강십팔채라고 불리는 열여덟 개의 수채 중 열일곱 개의 수채가 삼 공자에게 붙었기 때문입니다요.”
그야말로 절망적인 소식.
거기서 끝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뿐만 아니라, 삼 공자는 외세를 끌어들여 야차전의 병력까지 용병으로 부린다고 합니다요.”
“뭐야? 그쯤 되면 남은 한 채가 등 돌리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인데?”
진작에 끝났어야 할 싸움이 아직 유지되고 있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
그에 하윤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어쩌겠습니까요. 백경채(白鯨寀)는 어차피 이 공자 백경이 죽으면 다 함께 죽은 목숨일 테니까요. 아니, 꼭 그게 아닐지라도… 백경이 그 정도 인물은 될 테니…….”
“어? 잠깐만, 누구라고?”
어째 익숙한 이름이다?
“백경을 말씀하십니까요?”
“…백경?”
그거 분명,
“훗날, 장강에 와서 백경을 찾게.”
그리 호언장담을 하고 떠났던 사내,
그러니까…….
“…이 양반, 아닌 줄 알았더니 순 사기꾼이었구만?”
“옙?”
“아니. 그런 게 있어.”
이게 결국 이렇게 되나 싶다.
“백경은 수적치고는 보기 드문, 아니, 정사를 막론하고 따져봐도 인세에 보기 드문 호협(豪俠)입니다요. 수적임에도 수적답지 않은 행동으로 장강수로채에서 배척되다시피 했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싶었는데…….”
“한 일 년 전쯤에 갑자기 나타나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응? 그건 또 어찌 아셨습니까요?”
어찌 알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전쟁을 부추긴 것 같으니까 알지.’
“자네의 말이 맞네. 말 안 듣는 가족들이라면, 두들겨 패서라도 끌고 가야 했거늘. 나는 그냥 나 혼자 고고하자고 저 정파의 위선자들처럼 가식을 부린 것에 불과했네.”
그때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거참. 안 따라가길 잘했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 나랑 함께 갈 생각 없나?”
역시 낯선 사람 함부로 따라가는 건 아니라더니.
“따라가는 건 못 하겠지만, 찾아가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는데… 설마, 장강으로 향해 이 공자의 편에 서려 하십니까요?”
“안 그럴 거면 얘기는 왜 꺼냈어?”
“아니…….”
방법 없냐길래 그냥 말이라도 해본 거였지.
“공자님.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요. 절대, 절대 절대 절대 답이 없는 전장입니다요.”
“원래 위험 부담이 높을수록 배당이 높은 거 몰라?”
배당? 당연히 높긴 하겠지. 도박판으로 따지면 승률이 일 푼은 개뿔, 일 리도 못 미칠 만한 수준이니까!
“공자님!! 단순 배당이 문제가 아닙니다요!! 거기에 무슨 신분으로 찾아가려 하십니까요?”
너 새끼는 일단 정파라고!!
정파인 당가에서 사파인 장강수로채를 도우러 갔다는 이야기가 퍼져 봐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에잉, 쯧. 너희 신분 하나 남는 것 없냐? 명색이 복검이라는 명함도 있는데?”
“복검은 숨겨놓는 칼이지 대놓고 뽑아 휘두르는 칼이 아닙니다!!”
게다가 하오문이 도와줬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다간 뒷수습이 안 된다.
그나마 이길 만하면 모르겠지만, 지는 판에 끼어들었다가 진짜 져버린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냐고!!
“쯧쯧, 쓸모없네.”
그 말에 당유혼은 기대도 안 했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그 모습은 누가 봐도 포기한 모습은 아니었으니…….
“으, 은인? 어찌하려 하십니까요?”
“신분은 됐어. 내가 좋은 거 가진 게 있으니까, 요구하는 거나 준비해 줘 봐.”
몸을 일으키는 당유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윤호는 많은 걸 내려놓기로 했다.
저 새끼, 말린다고 들을 새끼가 결코 아니다.
결국 하윤호는 자신의 최대 투자처가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그가 요구한 것들을 전부 챙겨 놓았고, 그것들을 바리바리 싸든 당유혼은 장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해서,
“…흐음, 참으로 오랜만이야.”
장강.
그 거대한 강줄기가 보이는 봉우리에 선 당유혼은 한 손에 보따리를 든 채 씨익 웃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머리에는 복면을, 허리춤에는 박도를. 완전 변장을 끝낸 당유혼은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이제 시작된 전설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추풍대주 갈무흔, 등장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