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32화 (132/350)

132화

【 금적금왕 】

들려온 목소리에는 날 선 적의가 가득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최소한의 손님 대우, 아니, 은인에 대한 대우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냥 적을 대하는 눈빛이었다.

‘하긴, 보통이라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

몰락했다고 하나 사천당가는 정파를 대표하는 오대세가의 일익(一翼).

뿌리 깊은 사파의 거두인 장강수로채라면 경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보통이라면 말이지.’

후룩―

날 선 눈빛과 쏟아지는 적의 속에서도 여유롭게 찻잔을 들이킨 당유혼이 싱긋 웃었다.

“재미없는 연기라면 이쯤 하지.”

“…연기?”

“아무렴.”

다 들통났다고 이 사람아.

“사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정체불명의 수상한 외부인이니, 정파의 끄나풀이니 이런 자잘한 의심 따위가 아닌,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라고.”

“…….”

육언의 입이 닫혔다.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지만, 재촉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하수나 범할 하책(下策).

가만히 찻잔만 들이켜며 기다리고 있자니 육언의 입이 먼저 열렸다.

“…재밌군요.”

어느새 그의 표정에는 온도가 사라져 있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각을 가득 채우던 적의 역시 씻은 듯 사그라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분노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는 것처럼, 무표정한 가면을 쓴 듯 돌아온 육언을 보고서도 당유혼은 놀라지 않았다.

원래 그럴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는 듯 빙긋 웃을 뿐이었다.

그에 육언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 입술을 달싹였다.

“좋습니다. 주군에게 제안하셨다는 건은 전해 들었습니다.”

백경에게 말할 때야 약 냄새 풀풀 풍기던 사업 계획이었지만, 육언 정도 되는 이가 듣기에는 단순한 운수 사업이 아니었다.

“장강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운수 사업. 평범한 표국이 뭍 위를 인마(人馬)를 통해 물류를 운송한다면, 공자께서 그리는 사업이란 수상에서 선박을 통해 물류를 운송하는 사업이 되겠지요.”

여기까지만 본다면 이제 막 시작하는 신생 사업체의 밑그림과 같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겉보기에 불과한 것.

“처음 주군께 전해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했습니다. 하나, 직접 공자를 뵙고 대담을 나누니 확신이 들더군요.”

비록 길지 않은 대화였으나, 육언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공자는 천재입니다. 범인(凡人)의 사고방식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자이며.”

번뜩이는 안광이 폭사하며 당유혼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었다.

“천하라는 백지(白紙)에 자신의 화폭을 담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광인(狂人).”

즉,

“저와 동류(同類)라는 것을.”

씨익―

어느새 육언의 입꼬리는 기괴할 정도로 비틀려 있었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정도로 힘껏 미소를 지은 그가 말했다.

“아주 재밌는 계획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숨이 가빠졌다.

자신의 주군을 배신했냐는 말에도 덤덤히 답하던 책사가 지금 이 순간에는 그 흥분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광기 어린 모습을 보며 당유혼은 생각했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완전 무섭네.

‘동류는 뭔 동류야?’

나 같은 정상인을 이런 미친놈과 같은 부류로 엮다니, 실로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장강이란 전 중원의 젖줄. 그 일대를 장악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크게 셋.”

하나 당유혼이 그리 생각하든 말든 육언은 자기 할 말만 하며 세 손가락을 펼쳤다.

“첫 번째는 곡물 지배. 제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지닌 무인도 결국 무언가를 먹어야 하고, 무림에서 소비되는 식량 대부분은 공자께서 언급한 듯 장강 유역에서 생성되기 마련. 그걸 손에 틀어쥐는 것만으로도 어디 한 세력 정도는 싸우지 않고도 목줄을 움켜쥘 수 있겠지요.”

그리고 두 번째.

“다음은 물류의 흐름과 그에 따른 정보의 선점. 물류의 흐름을 장악한다는 것은 그 해 어떤 사업이 가장 호황(好況)을 맞이했음을 쉽게 알 수 있음이며, 뿐만 아니라 부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각 세력의 흥망성쇠를 미리 짐작할 수 있다는 뜻.”

그것만으로도 삼대 정보 집단에 버금가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말하는 육언이지만, 그의 흥분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

“하나, 진정 중요한 것은 마지막 것!”

콰앙―

그의 손바닥이 탁자의 정중앙을 내리쳤다.

보고 있는 입장에선 저건 좀 아프지 않을까? 싶지만, 육언은 통증 따윈 느끼지 못한다는 듯 소리쳤다.

“현시대는 바야흐로 만가쟁패(萬家爭覇)의 난세! 그 시대의 흐름에서 중앙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 일찍이 서주 시절부터 장강 유역을 제패한 초나라는 그 자체로도 북방 중원 제국(諸國)에게 위협이었고, 주의 천자 소왕(昭王) 역시 몇 차례의 원정을 강행했던 곳.”

어디 그뿐이랴?

“중원이 남방과 북방으로 나뉘었을 때도 그 세력이 격돌하는 각축장이었으며, 기라성같은 삼국 영웅의 시대에도 무수한 영웅들이 그 세를 부딪쳤던 곳일지니.”

천하를 그리는 군사로서 어찌 이 땅을 탐내지 않을 수 있겠냐고.

“단지 장악하는 것만으로도 남으로든 북으로든, 서로든 동으로든… 그것들을 겹치고 겹쳐 천하삼십육방 그 어디로도 나아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한다는 것!”

그의 두 눈이 형형이 빛나며 소리쳤다.

“이곳을 그리 쓰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그 외침에 당유혼은 생각했다.

‘이 새끼… 어지간한 설명충이구나?’

가끔 그런 놈들이 있다.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일장연설에 가까운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놈들.

자신의 뇌 속에 존재하는 지식을 이 세상에 풀어놓지 않으면 간질 발작이 일어나는 그런 놈들!

장강일대에 명성이 자자한 육언은 설명충이었던 것이다!

“안 그렇습니까, 공자?!”

“어… 어, 그… 그렇지?”

광기까지 느껴지는 설명과 동의를 구하는 눈빛에 당유혼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의 당유혼마저 한 수 접게 만드는 열기를 뿜어내던 육언이지만, 이내 고개를 수그리며 턱을 괴었다.

“하나, 이를 위해선 선결 과제가 존재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리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만사형통(萬事亨通)이란 참으로 지난한 일.

“우선 그 과제를 말하자면…….”

“아, 아니 잠깐!!”

다시금 세 손가락을 세워 보이려는 육언을 향해 당유혼은 기겁하며 두 손을 활짝 펼치며 만류했다.

그러자, 육언은 진심으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열 가지 이유나 있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고작해야 세 가지밖에 생각지 못했는데?!”

뭔 개소리야.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은 당유혼은 간신히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토론하는 건 좋지만, 우리 정도의 천재들이라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되잖아?”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쉽지 않습니까?”

육언은 진정으로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모처럼 만난 동류입니다. 공자는 그간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뭐가?”

“멍청하고 덜떨어진 놈들 사이에서 자신의 뜻을 전달할 때 말입니다.”

실로 그간의 일들만 생각하면 속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무슨 초목을 상대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아니고, 소와 돼지의 귀에다 대고 나 혼자 지껄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습니까?”

한 번 말하면 알아들어야 하는 것을, 아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되는 것을 열 번이나 말해도 못 알아먹는 놈들과 산다는 것은 얼마나 고역인지.

“공자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야말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 무인도에서 홀로 연명하는 것만 같은 답답함! 그러다가 이제야 좀 사람다운 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건 분명 공자도 동일하게 느끼시는 부분일 터.”

그러니까 조금 더 대화를 해도 되지 않겠냐고.

지음(知音)을 만났다고 할 수 있는 이 축복받은 순간을 즐기자고 하는 육언의 말에 당유혼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그러니까… 그… 우리 군사가 좀 말수가 적고… 과묵한 것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의견 전달이 잘 안 될 때도 있긴 한데……. 그, 그러니…….”

백경은 분명 그렇게 말했지만,

‘아저씨, 그게 아니에요.’

이 자식은 그냥, 사람 아닌 새끼들이랑 말 섞기 싫었을 뿐이에요…….

그나마 얘기가 통하는 자신을 만나자 방언 터진 무당마냥 지껄여대는 육언이었기에, 이대로 작두까지 타기 전에 서둘러 그를 제지했다.

“진정해. 더 이상은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되면 저 위쪽에서 우리를 바라볼 수많은 이들이 가만 듣다가 욕을 박게 된다고?”

“응? 그런 게 있소?”

“음… 뭐,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수많은 별들이 아닐까?”

“오호, 공자는 천문(天文)에도 조예가 있나 보구려. 사실 나 역시…….”

아니, 진정하라니까?

육언을 진정시키는 것에는 결국 한참이 걸렸고, 그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당유혼은 숨을 돌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지식 자랑을 해놓고도 조금도 지치지 않는 듯한 기색의 육언이었지만, 다행히 어느 정도 분이 풀리니 아주 미세하게나마 침착해진 것 같기도 했다.

“…해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역시 우선해야 할 선결 과제가 한 가지 있겠군요.”

“그래, 그렇지…….”

솔직히 이쯤 되면 사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최종 목표가 이것이었기에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

겨우겨우 고개를 든 당유혼과 육언이 동시에 그것을 입에 담았으니,

“장강의 양지화(陽地化).”

“장강의 양지화.”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다.

“어차피 수적은 자연 발생하는 필요악이지.”

“가뭄이 닥치고 세금 낼 돈 없는 이들이 산으로 숨어들어 산적이 되듯.”

“장강의 범람과 그에 의한 흉작으로 배곯고 헐벗은 이들이 자연스레 수적이 되는 것이 현실.”

둘은 교차하듯 한마디씩 뱉었다.

“그것이 계속되는 한 수적은 계속하여 탄생할 것이며, 어느 표국도 물건을 맡기지 않을 터.”

“하나, 그들을 계도하여 양지화시킬 수 있다면, 주군의 꿈 역시 단순히 몽상(夢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 테니.”

백경이 말했던 낭만을 이룰 방법과 수적을 교화시키고 그들을 향한 인식을 개변시킬 방법은 오로지 사파로 치부되는 장강을 양지화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요구되는 것은 세 가지.”

이번만큼은 당유혼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적으로 체계. 장강 전체를 아우를 물류 흐름을 운용할 수 있는 기존의 상단.”

“거기에 이 거대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막대한 자본.”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으니,

“위대한 극복인(克服人). 기존 선악 기준의 도덕관념을 초월하고,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자기가 새로이 창조한 가치에, 그 가능성의 극한까지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

둘은 동시에 한 인물을 떠올렸다.

“주군께서 이 전쟁의 승리를 거머쥐셔야 하지요.”

“백경. 그 양반이 장강수로채의 총 채주로 등극해야 될 일이겠지.”

자신의 태생에 방황하여 도망쳤으나, 다시 돌아와 그들을 옳은 반석 위에 세우려는 이.

둘의 시선이 교차하며 똑같은 웃음을 지었다.

“어때, 군사 나으리. 당신에게는 이 전쟁을 이길 만한 계책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건 공자도 마찬가지이신 듯하군요.”

서로의 수를 읽듯 두 천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이 종이에 서로의 계책에 대하여 한 글자씩만을 써서 동시에 보여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아.”

육언이 품에서 꺼낸 종이에 단 한 글자만을 적었다.

그리고 그가 셋을 세었을 때 동시에 펼쳐 보였으니,

“…왕(王).”

‘역시나.’

둘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금적금왕(擒賊擒王).”

적을 칠 때는 대장부터 잡아라.

즉,

“삼 공자, 놈을 잡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