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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43화 (143/350)

143화

죽을 뻔했다.

‘평화에 찌들어 있었나?’

삼십 년 후의 지금에 눈을 뜬 뒤로, 목숨을 건 싸움은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목숨을 건 싸움 정도’는 그 이전엔 밥 먹듯이 하는 것이었다.

‘목숨은 당연히 걸어야 하고, 그럼에도 답이 없었던 전투들.’

마수가 판을 치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인간이란 마수보다 더욱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린 놈들만 남은 전장.

그곳에서 살아가다 지금처럼 고작해야 평범한 규격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행해 왔던 자신은 꽤 많이 무뎌 있었던 것 같다.

고작해야, ‘촉수 하나가 수십 갈래로 나뉘어 날아드는 공격’ 정도에도 목숨의 위기에 처할 정도로.

“클클클. 괜찮나, 젊은이?”

“…덕분에요.”

절체절명의 순간, 섬전(閃電) 같은 ‘찌르기’가 촉수들을 꿰뚫었고, 그 틈에 촉수 무더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만, 미안하게 됐네요. 계속해서 노리고 있을 기회였을 텐데.”

흑룡도에 오른 후 독비어옹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라면, 독비어옹이 작정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었다는 뜻.

그건 아마도,

‘흑룡왕에게 입힐 치명적인 비수를 준비했었다는 뜻.’

살수란 자신의 존재감을 감출 때 가장 날카로워지는 법.

이미 스스로를 드러낸 살수란 그 예리함을 대폭 상실할 수밖에 없다.

“흘흘, 이미 벌어진 일일세.”

괘념치 말라며 손을 젓는 독비어옹의 눈이 옆으로 길에 찢어졌다.

“다만… 저 괴물은 쉽지 않을 듯하네. 거죽이 너무 질겨 이 노인네의 꼬챙이로는 제대로 박히지도 않겠구먼.”

분화한 촉수조차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몸통보다 굵다.

그것들이 수십 수백 개씩 꿈틀거리고 있으니, 살수인 독비어옹에게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할 수 없지.’

“기회나 노려주세요. 틈은 제가 만들 테니까.”

“방법이 있겠나?”

“만들어봐야죠.”

슬슬, 일어나라.

‘게으름뱅이.’

쿠구구구…….

엉덩이 무거운 놈이 틀었던 똬리를 틀며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거대한 내공이 전신혈도를 휘몰아쳤다.

‘큭……!’

탐이 고개를 들자 함께 밀려온 내공은 노도(怒濤)와 같이 넘쳐흘렀다. 그동안 온갖 잡룡탕을 먹으며 강화시켜 놨던 세맥이 미처 버티지 못하고 찢어질 정도였으니까.

하나, 그만큼 낼 수 있는 출력은 몇 배로 상승했다.

“젊은이, 자네…….”

그 놀라운 변화를 두 눈으로 목도한 독비어옹이 당혹성을 흘렸으나, 그에 답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럼, 먼저 갑니다!”

파팟―!

정면에서 쏟아지는 수백 개의 촉수를 향해 미친 듯이 박도를 휘두르고 있는 백경이 보였고, 당유혼은 검푸른 기운을 휘감고 그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조(爪).

허공에 다섯 개의 궤적이 새겨졌다.

검푸른 궤적은 거대한 맹수의 발톱처럼 사정없이 팔초어의 옆구리를 후벼팠고, 수십 개의 촉수가 터져나갔다.

- 그오오오오오!!

그 공격은 팔초어 마수에게도 효과가 있었는지 녀석은 고통스러운 흉성을 내질렀고, 백경이 그 모습을 보며 반색했다.

“좋아!”

틈이다, 싶자 용왕진기로 일 장여에 달하는 도강(刀罡)을 박도 위에 만들어내 휘둘렀다.

콰가가가각!!

황금빛 기운이 검은 촉수들을 잘라내고, 양쪽에서 치명적인 일격을 받아낸 팔초어의 몸통이 모습을 드러냈다.

“흘흘흘.”

그 사이로 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절독수(穿絶獨手).

일점혈(一點穴).

어느샌가 나타난 독비어옹이 꼬챙이를 겨누자 검붉은 강기가 맺히며 예리한 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꼬챙이 끝에 응어리진 검붉음은 섬뜩하기 그지없었고, 팔초어 마수 역시 본능적으로 부르르 떨었다.

‘위험하다.’

다른 것들은 몰라도 저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구구구구구!!

그 순간 폭발하듯 촉수가 추가로 생성되었다.

독비어옹의 찌르기는 핵을 감싸는 촉수가 분화되며 나타난 수십 갈래 촉수 세례를 꿰뚫는 데 그쳤다.

‘클클… 이런…….’

찌르기는 일점 집중에 그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것.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공격력을 가질 수 있어도,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떨어지는 방어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분노를 토하듯, 수십 개의 촉수를 뽑아 든 팔초어 마수가 그를 노리자 독비어옹의 머릿속에도 ‘죽음’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영감!!”

그런 독비어옹을 구한 것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흑사어.

다른 셋과 달리 저 괴물 같은 놈의 본체에 파고들 자신은 도저히 들지 않아 주변만을 맴돌고 있던 그는 튕겨 나온 독비어옹을 발견하고 뛰어올라 그를 받아냈다.

“클… 고, 고맙… 쿨럭!!”

“영감, 괜찮아?!”

짧은 격돌이었으나 독비어옹은 심각한 내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백경과 당유혼의 공격이 이어져 추가타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독비어옹은 사경을 헤맬 뻔했다.

“…클클, 검은 상어 꼬맹이. 네게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젠장! 입가에 피나 닦고 말해!!”

백경채에서부터 친밀한 사이였던 둘이기에 흑사어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가뜩이나 흑룡왕은 자신이 칼 한 번 휘두르기 힘든 상대였는데, 저렇게 괴물같이 변하니 더더욱 답이 없었다.

‘저 괴물은 진짜 뭐야? 그리고, 저런 괴물을 상대하는 저 둘은?!’

자신이 따르는 우두머리, 백경이야 원체 자신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많아서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하지만 당유혼이라는 저 어린놈은 당최 믿기지가 않았다.

‘유효타를 먹이는 것만 따지면, 저쪽이 더 한 것 같은데?’

저 검푸른 기운에 베이고 잘리고 터질 때마다 팔초어가 괴로운 듯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괴물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 시각―

‘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

당유혼의 뇌는 실시간으로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거,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잖아?!’

퍼엉―!

검푸른 기운에 뒤덮인 오른손을 휘둘러 날아드는 촉수 하나를 터트렸다.

그때마다 팔초어가 괴로운 듯 몸을 뒤튼다.

외부에서 보자면 자신이 적에게 고통스러운 일격을 선사했을 것처럼 보이지만,

‘젠장, 그렇게 쉽게 돌아가면 얼마나 좋아?’

핵과 인접해서 싸우며 벌써 육십 개도 넘는 촉수들을 터트린 당유혼이기에 알 수 있었다.

‘괴로운 건 내 공격에 촉수가 터져 나가서가 아냐.’

하나의 촉수가 수십 갈래로 갈라지고, 그 촉수들이 또다시 수십 갈래로 분화한다.

인간으로 따지면 저 촉수는 손가락 같은 게 아니라 손톱이나 머리카락과 다를 바가 없다.

잘려도 쑥쑥 자라나는 그런 것!

‘그리고, 그것들은 대개 다시 자라나며 더욱 질겨지고 단단해진다. 그럼에도 이 녀석이 저리 몸을 비트는 것은 외부의 요인이 아니라 내부의 요인 때문이겠지.’

자신이 그러하듯, 내면에 잠재하는 힘을 끌어내는 반작용.

팔초어 마수는 처음 여덟 개의 촉수를 뽑아낸 뒤로 추가적으로 촉수를 뽑아낼 때마다 그동안 잠재워져 있던 힘들을 함께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흑룡왕.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체내에 저만한 힘을 잠재하고 있었던 것이지?’

저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은 결국 핵이 되는 흑룡왕 본체.

영약 한두 가지 먹는다고 나올 수 없는 이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믿기지 않는 사실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 그오오오오오!!

팔초어 마수가 갑작스레 흉성과 함께 자신의 촉수를 사방팔방으로 뻗어냈다.

‘새로운 유형의 공격인가?’

뭔지 몰라도 붙어 있어 좋을 것은 없겠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몸을 뒤로 쭉 빼냈을 때,

푸화아아아악!!

뻗어나간 촉수는 쭉쭉 나아가 그들의 머리 위를 넘어서까지 당도했다.

‘뭐지? 하도 처맞아서 뇌가 곤죽이 되어버린 건가?’

합리적인 추론의 과정이 머리를 스칠 때,

현실은 그 답안을 두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흑룡왕이시여!!”

미친.

뻗어나간 촉수는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갑자기 괴물로 변해버리자 어찌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던 이들에게 퍼부어졌다.

꾸득꾸득꾸득꾸득

수십개의 촉수는 수십의 수적들을 휘감았다.

촉수로 수적들을 단단히 휘감고 잡아당겼고,

쩌억―

본체가 갈라져 생긴 입속으로 그것들을 통째로 털어 넣었다.

“저… 저, 미… 미친……!”

“클… 오래 살아 못 볼 꼴 다 본다더니…….”

“정신 나간 놈이!!”

저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백경채의 삼인방은 혐오감에 가득 차 말문이 턱턱 막혀왔으나,

“…아, 그렇구나.”

이 자리에 단 하나,

“너였구나.”

당유혼만큼은, 그 존재를 알아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크, 크흐흐… 크하하하핫!!”

너였던 거구나?

씨익―

기괴하리만치 양 끝으로 벌어진 입술이 잔혹한 미소를 그렸다.

보고 싶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누군가에 대한 열망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마음속에 이글거리는 그 감정을 한데 모아 길쭉한 암창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쥐고 뛰어들었다.

푸확!!

내찌른 창격이 촉수들을 문풍지처럼 찢어발겼다.

- 크르륵?!

식사 시간을 방해받은 팔초어가 사납게 몸부림치자 수백 개에 달하는 촉수가 허공을 뒤덮었다.

“소협!!”

그 광경을 발견한 백경이 전신에 용왕진기를 뒤덮으며 달려들어 당유혼의 몸을 빼냈다.

촉수들이 그 자리를 강타한 것은 아주 간발의 차이!

“자네 뭐 하는가! 저놈은……!!”

“비켜요.”

기함하며 소리치려는 그의 말을 차가운 목소리가 끊었다.

“나, 저거 죽여버려야 하니까.”

“……!!”

백경은 온몸에 소름이 듣는 걸 느꼈다.

‘무슨 살기(殺氣)가…….’

살다 살다 이 정도의 살기를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 손을 놓을 뻔한 백경이지만,

“큭!! 멈추게!!”

두려움을 극기(克己)로 이겨낸 백경이 다시금 당유혼의 앞을 막아섰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저놈은 감정에 휩쓸린 채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치 않아!”

그렇게 소리치는 와중에도 팔초어는 맹렬히 요동쳤다.

쿠구구구!!

날아드는 수백 갈래의 촉수는 끊임없이 그들을 노리고 있었고, 또 다른 수백의 촉수들은 아직 도망치지 못한 수적들을 잡아다 쩍 벌어진 입에다 처넣고 있었다.

백경 역시 말하다 말고 박도를 휘둘러 그것들을 쳐내야 했고, 그의 속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제,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더냐!’

흑룡왕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속이 더더욱 쓰라려 올 때,

“…확실히, 감정에 휩쓸린 채로 잡을 수 없는 놈이긴 하네요.”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흠칫하여 돌아보니, 입가에 핏물을 줄줄 흘리는 채로 전신에 휘감은 검푸른 기운을 몇 배로 부풀린 당유혼이 보였다.

“하지만, 저놈 저거… 지금 아니면 절대 못 잡거든요.”

어떤 변수라도 만들어지지 않는 한, 지금 당장 뛰어들어 저 핵을 박살 내야 한다.

뿌리 깊은 증오와 검게 물든 살심(殺心)과는 별개로… 차갑게 식은 마음이 내리는 최적의 판단.

‘무리를 해서라도, 지금 당장…….’

그 판단을 속행하기 위해 나서려는 순간,

“사마위강 왈(曰) 거안사위(居安思危)하면 사즉유비(思則有備)되어, 유비즉무환(有備則無患)이라.”

저 멀리서부터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혼원신공의 힘으로 신체 능력이 강화되었기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먼 거리에서 포착된 평온한 목소리.

그리고,

“발사.”

이후 이어진 것은,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쾅!!

굳이 강화되지 않았어도 충분히 들릴 만한 폭음!

수십 발의 포격이 팔초어의 거체(巨體)를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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