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맨땅에 포격이 쏟아졌다.
바다도 아니고 선상도 아닐진대, 육상에서 일제히 쏘아진 포격은 팔초어 마수의 거대한 몸체에 퍼부어졌다.
쿠쿠쿠쿵!!
- 그오오오오…….
“과녁이 크니 대충 쏴도 적중률이 높군.”
귀청을 찢을 듯 울려오는 마수의 흉성과 대조되는 덤덤한 목소리.
그 주인은 다름 아닌,
‘육언?’
백경채의 천재 군사, 육언이었다.
“군사님! 효과가 있습니다!!”
“아무렴. 어찌 된 괴력난신(怪力亂神)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인간에게 해를 끼침은 스스로도 인간에게 해를 당할 수 있다는 뜻. 이곳에서 난 것을 이곳으로 돌려주도록.”
“알겠습니다!!”
육언의 지시에 따라 백경채의 수적들은 신명 나게 대포를 발사했다.
“먹어라, 이 괴물놈!”
“우리 백경채랑은 질적으로 다른 흑룡채산 대포이시다!!”
콰콰콰쾅!!
다시금 폭음이 울려 퍼지며 포탄 세례가 하늘을 뒤덮었다.
팔초어 마수는 괴로워하며 촉수를 뽑아댔지만, 암만 촉수가 길어봐야 대포의 사정거리보다 길지는 못했다.
“젠장, 믿고 있었다고!! 군사!!”
백경은 환호성을 내질렀고, 당유혼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흘리다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이거, 될지도 모르겠잖아?’
파팟!
포탄 세례가 마수의 시선을 끌어주는 틈을 타 육언에게로 접근했다.
“군사 나리. 이렇게 보니 엄청나게 반가워.”
“어떻게 된 겁니까? 와보니 저 괴물이 날뛰고 있고, 사람의 깜냥으로는 비빌 수 없는 듯하여 곧장 수하들을 이끌고 흑룡채의 대포들을 털어왔습니다.”
육언 판단력 실화냐?
‘진짜 육언은 전설이다.’
마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을 텐데 이렇게 해주다니. 진짜 머리라고는 목 위의 장식품으로밖에 안 쓰는 놈들이랑 있다가 이렇게 알아서 척척 해주는 녀석을 만나니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괜스레 삼십 년 전 녀석들이 그립다. 그때는 녀석들이 평균 이하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선녀가 따로 없잖아?
진작 잘해 줄걸. 내가 미안해, 흑흑.
“잘 봤어, 군사 나으리. 저건 흑룡왕이 화한 마수다.”
“마수?”
그렇게 정신 나간 놈 보는 눈빛으로 보지 말아줄래?
일반인의 시선으로 믿기지 않겠지만, 저건 진짜 애기 흑룡왕이 변한 마수란다.
“…괴이하군요. 하지만 저 존재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보았으니… 오히려 사람이라고 부르는 게 더 괴이하긴 하겠군요.”
절대 납득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육언은 있는 그대로 사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렇지 않을 여유도 없긴 하거든.
여하튼, 두 명의 의견이 어느 정도 합의점을 보자 대화의 수순은 당연히 다음으로 향했다.
“해서, 저걸 해치울 방법이 있습니까? 보아하니 포격은 저 존재의 발걸음을 지연시킬 뿐 확연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포격이 끊임없이 온몸을 두들겨 패고 있는 이 와중에 흑룡왕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 그오오오……!!
놀랍게도 팔초어 마수는 끊임없이 자신의 수하(였던 것)들을 처먹고 있었다.
‘재생에 필요한 자원을 충당하고 있는 건가?’
마수나 영수나 불로장생(不老長生)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고, 인간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신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코 그들은 불로불사(不老不死)가 아니며, 능력에도 한계와 제한이 있다.
걔들도 칼 맞으면 뒤진다는 소리다.
“탄환은 얼마나 남았지?”
“재생 속도로 봐서는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계속 관측하니 그 속도가 더더욱 빨라지는 것 같군요.”
맞는 말이다.
마수는 이제 막 껍질에서 나온 새와 같다.
직후가 가장 뼈와 살이 덜 여물었을 때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진다.
“혹시, 이걸 할 수 있나?”
잠깐 생각하다 머릿속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물었다.
내용을 들은 육언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겠군요. 하지만, 가능하시겠습니까?”
“안 되도 해야지.”
“좋습니다.”
역할을 배분하고 있자니 백경을 비롯한 나머지 삼인방도 이쪽으로 도망쳐 왔다.
“군사!!”
“오셨습니까, 주군.”
곧장 셋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다들 이게 맞나 하는 눈빛이었지만, 뭐 어쩔까.
이것밖에 수가 없는데.
“그럼, 시작해 보죠.”
대충 결정이 나고, 인원은 곧장 맡은 바 역할을 다하기 위해 흩어졌다.
마침 포탄도 잔량이 다 떨어지며 한참을 두들겨 맞던 팔초어 마수가 몸을 뒤틀며 괴성을 토했다.
- 그오오오오!!
잔뜩 화가 난 팔초어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존재를 찾기 위해 몸을 틀었다.
쿠구구구…….
바닥을 디딘 촉수를 놀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경로에 있던 것들이 쓸려 나갔고, 열 가닥 촉수를 번쩍 휘둘러 내려찍자 대포들이 풍비박산이 나서 산산이 흩어졌다.
누가 이 마수를 막을 것인가?
- 그오오오오!!
포효하는 팔초어 마수!
그런 마수에게,
- 그오오오… 쿠에엑!!
콰아앙!!
황금빛 도강이 날아와 꽂혔다.
“여기다, 이 자식아!!”
도강을 꽂아 넣은 것은 백경.
‘이, 이게 맞나.’
시선을 끄는 역할을 맡은 만큼, 크게 한 방 도강을 박아넣은 백경은 슬쩍 마수의 반응을 살피니―
- 그오오오오오오오!!
“헉!!”
몸통이 쩍―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눈알이 드러나 백경을 응시했다.
확실한 성능!
눈알이 자신을 응시하자 순간적으로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낀 백경이었으나, 곧 용왕진기가 스르르 움직이자 마비가 풀리며 운신의 여유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것이 당최 무슨 현상인가?
창졸지간(倉卒之間)에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당황한 백경이지만, 지금 그에게는 그딴 걸로 놀라고 있을 틈도 여유도 없었다.
아무튼 몸이 움직여지자마자 그는 곧장 뒤돌아 달렸고, 팔초어 마수는 미친 듯이 그 뒤를 쫓아 추격을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진짜 저게 뭐냐?!’
몸통 중앙에는 흑룡왕을 박아넣은 채, 네 가지 촉수로 바닥을 쿵쿵거리며 쫓아오는 괴물.
앞을 막아서는 것은 수십 수백의 촉수로 분쇄시키며 폭주하는 괴물은 그에게 꿈에 나올까 두려운 공포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무, 무승부로 하면 안 될까?!”
어떻게든 협상안을 내밀어 보는 백경이었지만,
- 그오오오오!!
콰아아앙!!
팔초어는 판관 포청천처럼 지엄한 몽둥이를 땅바닥에 두들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쿠구구구구…….
숨 막히는 추격전!
흑룡왕의 열등감과 분노를 양식으로 하여 탄생한 팔초어 마수는 백경만을 목표로 하여 달리고 또 달렸다.
온몸을 황금색 빛으로 물들인 목표물은 찾기도 쉬웠고, 쫓기는 더 쉬웠다.
탄생 이후로 덜 여물었던 몸체는 시간이 흐르며 더욱 단단하고 질겨져 갔고, 물이 아닌 땅을 박차고 달리는 것도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목표물이 사정권 내에 들었을 무렵,
- 죽인다.
그 하나의 일념으로 팔초어 마수는 서른네 개의 촉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저놈을 예순두 가지 고깃덩이로 갈기갈기 찢어발기리라!
사냥의 성공을 목전에 든 그 순간,
“석탑팔문금사진(石塔八門金蛇陣). 개진.”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스르르르…….
온 세상이 안개로 뒤덮였다.
* * *
“…헉, 헉… 허억……!”
“대장, 괜찮소?”
“말도 마라, 죽다 살아났다!”
목표 지점까지 당도한 백경은 곧장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주군.”
육언이 다가와 헌 수건을 건넸고, 그것으로 땀을 닦은 백경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군사, 진정… 이걸로 된 건가?”
이게 맞는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들이 입안한 작전은, 평소의 백경이었다면 웃기지 말라고 발작을 일으켰을 조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먼저 꺼낸 이가 보통이 아니었고, 나타난 적도, 현 상황도 보통이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차오르는 걱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묻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육언은, 언제나처럼 덤덤히 답했다.
“저희가 할 일은 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젠 결과를 기다릴 분이지요.”
그의 시선이 저 너머를 향했다.
그곳엔, 광범위한 안개가 피어올라 있었다.
* * *
- 그오오오오?
팔초어 마수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은 분명 눈앞의 목표물을 향해 쭈욱 달려왔고, 그 끝에 결실을 보기 직전에 이르러 있었다.
작디작은 목표물을 자신의 거대한 촉수로 찢어발기기까지, 겨우 한 걸음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짙은 안개와 함께 시야는 흐려졌고 목표물은 사라져버렸다.
- 그오오…….
멍하니 그 자리에 정체된 순간,
“뭐 하냐? 여기다.”
- ……?!
화끈한 감각과 함께, 아래쪽에서 촉수 서넛이 찢겨졌다.
- 고오오오오오!!
고통에 대한 분노가 밀려왔다.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선사한 존재를 찾기 위해 팔초어 괴수가 거칠게 몸을 틀 때,
“느리긴.”
파지지직!!
이번에는 또 다른 방향에서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멍청하긴.”
당유혼은 차가운 조소를 흘리며 놈의 팔초어의 거대한 몸통을 돌았다.
당궁상에게도 전수해 주었던 천잠무흔이 극성으로 발휘되어 그의 존재감을 숨겨준 덕분이었다.
그 틈에 팔초어의 거체를 이리저리 찢어발기면서 생각했다.
‘중단전의 공능으로 천잠무흔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꼭 그것 덕분만은 아니야.’
마수란 말 그대로 인간이란 종족을 상회하는 상위 종족이다.
그런 마수가 이렇게 지근거리에 있는 데다 몇 번의 공격까지 받아놓고 자신의 존재감을 쫓지 못하는 게 어디 그것 덕분이기만 할까?
‘절대 아니겠지.’
석탑팔문금사진.
육언이 펼진 이 운무진이 자신의 존재감을 숨겨준 게 두 번째 이유였고,
‘이놈이 제 상태가 아니라는 게 결정적인 이유다.’
단서는 사실 처음부터 주어졌다.
흑룡왕이 아직은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을 때도, 놈은 가진 힘과 격에 비해 유달리 기습을 쉽게 허용했다.
‘그때부터 감각에 이상이 있었던 거야.’
어쩌면 그때부터 흑룡왕은 사람을 잡아먹었을지도 모른다.
마공이란 대게 비틀려 있고, 그중에서도 이놈의 정체가 특히 그런 놈이니까.
‘마교의 일곱 종파. 그중 탐식종(貪食宗)의 마수.’
끊임없는 식욕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잡아먹으며 꾸역꾸역 몸을 불리는 것이 탐식종에 속한 마인들의 마공이었으며, 그들을 수호하는 마수 역시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감히 비교 불가능한 괴력을 지녔지.’
무공이란 자연에서 그 모습을 따와 만들어진 기술이듯, 탐식종에 속한 마인들이 익히는 마공 자체가 마수에게서 따와 만들어진 것이다.
탐식종의 모든 마인들이 익히는 마공의 원류가 되는 이능을 지닌 게 저놈이기에, 그들이 가진 능력의 원본을 지니고 있다.
하나,
‘그렇다고 보기에는… 또 너무 약해.’
만약 저게 진짜 원본이 되는 놈이었다면, 감히 이곳에서 일대일 대결을 펼치겠다 자신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있던 ‘놈’에 비해, 훨씬 불안정하고 아득하게 약하며, 안타까울 정도로 열화된 개체.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이다.
“어떨까. 너에게서 일부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 녀석과 싸우는 것은.”
- 크르르르…….
등 뒤로 검푸른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먹어 치워라, 탐(貪).”
콰콰콰콱!!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