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45화 (145/350)

145화

- 크르르르르르르!!

검푸른 빛을 띄는 용은 순식간에 그 몸의 크기를 불렸다.

처음에는 당유혼의 몸을 휘감는 게 고작이었으나, 삽시간에 백년 묵은 구렁이처럼 커져 아가리를 쫙 벌렸다.

콰직!

탐욕스러운 입은 자신의 몸체보다 거대한 촉수를 물어뜯었다.

- 구오오옷?!

그 행위에 팔초어 마수는 크게 놀라 몸을 비틀었다.

신체가 파괴되는 사건만 따지자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나, 이번 행위는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저 흉포한 아가리가 자신의 몸뚱이를 물어뜯는 순간, 자신의 힘이 뭉텅이로 상대방에게 뜯어먹힌 것이다!

“흐, 어때? 맨날 처먹기만 하다가… 먹히는 건 처음이지?”

탐이 먹어 치운 것은 마기(魔氣)였다.

‘원래는 불가능했다.’

지난번, 용독문에서 독마강시들을 먹어 치우며 독과 함께 먹어 치운 마기는 어지간한 극독으로도 해를 끼치지 못하는 자신의 육체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그때야 어쩔 수 없다 여겼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어째서 내가 마기는 흡수할 수 없는 것이지? 혼원신공은 애초에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든 무공이었지 않나?’

강해지기 위해 잡룡탕을 흡수하는 것도 한계가 있던 찰나, 마교 놈들의 부활에 대한 걱정까지 생겨나자 발상은 또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흡수할 수 없었던 건 아니야.’

마기도 흡수했고, 마공도 사용해 보았다.

‘내가 잘 못 다루는 것뿐.’

마공을 잘 못 다룬다?

고작 그딴 게 문제라면,

‘연습하면 돼.’

그때부터였다.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이어진 심상 수련.

마공을 익히는 과정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무공서 따위, 스승 따위도 필요치 않았다.

‘이미 마공에 대한 지식은 충분하니까.’

뇌에, 뼈에, 온몸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마공에 관한 지식.

“기대해도 좋아. 오로지, 네놈들만을 위해 만든 무공이니까.”

우우우우…….

물밀듯 밀려오는 힘이 느껴진다.

음습하고 파괴적이며, 또한 패도적인 이 힘.

탐의 힘도 거칠기 짝이 없지만, 이 힘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간 듯 극악무도했다.

그래서,

‘오히려 좋아.’

오히려 더 좋다.

- 그오오오오!!

자신이 먹혔음을 깨달은 팔초어 마수가 포효를 내지르며 자신의 촉수들을 들어 올렸다.

이전까지는 감히 정면에서 감당할 힘이 없어 물러서야 했지만,

“이렇게였던가?”

당유혼은 물러서긴커녕 전신에 두른 검푸른 기운을 더더욱 폭발시켰다.

폭식종(暴食宗).

월식(月食).

구체가 생겨났다.

정갈하다 표현할 만큼 깔끔하게 생겨난 구체는 빠르지도 강맹하지도 모습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일견하기에는 아무런 파괴력도 지니지 않은 것 같으나, 저것이 가진 끔찍한 파괴력은 한 시도 기억에서 지워진 적이 없다.

‘지난날, 정사의 수많은 고수들을 집어삼켰던 괴물.’

닿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폭식의 구체.

그것이, 다가오는 수많은 촉수와 부딪쳤고―

통째로, 집어삼켰다.

- 그오오오?!

수십의 촉수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

팔초어 마수 역시 깜짝 놀란 듯 몸을 떨었다.

“왜 그래, 새삼스럽게.”

흡수했던 마기가 쑤욱 빠져나갔다.

그만큼 마력을 많이 먹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인 무공!

하지만 상관없다.

‘그만한 위력만 내줄 수 있다면, 필요한 마력은 무한으로 충당할 수 있으니까.’

- 그오오오오!!

분노한 포식자가 흉포한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금 수십의 촉수를 쏘아 보냈다.

이미 잃은 촉수가 일백 개를 넘지만, 어차피 자신에게는 그 정도쯤 다시 만들어낼 자원이 충분했다.

“먹어 치워.”

수십의 촉수에 검푸른 기운이 마주하듯 뻗어나갔다.

- 그오오오!!

자신을 막아선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팔초어는 이미 뽑아낸 촉수에 다시금 수십 개의 촉수를 더했다.

그 개수가 물경 일백에 도달했을 때,

“어쩌냐.”

성질 안 좋기는, 이쪽도 밀리지 않거든.

- 크르르르르……!!

탐(貪)이 울부짖었다.

타고난 포식자의 숙명은 이쪽도 밀리지 않기는 매한가지.

사냥감 따위가 자신에게 날을 세운다는 게 여간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탐은 더더욱 자신의 몸집을 부풀렸다.

- 그오오오오!!

- 크르르르르!

검푸른 용과 팔초어 마수의 대결.

팔초어 마수가 먼저 용의 몸체를 자신의 촉수로 휘감으면, 검푸른 용은 포악한 입을 벌려 그 촉수를 뜯어 삼켰다.

- 크르르!!

그때마다 검푸른 몸의 동체는 몇 배로 커졌고, 팔초어는 자신의 몸체가 뜯길 때마다 그보다 몇 배로 많은 촉수를 뽑아내 검푸른 용을 옭아맸다.

- 그오오오오!!

팔초어의 몸체가 쩌억― 벌어지며 포악한 입이 드러났다.

자신만 먹힐 수 없다는 듯, 자신이 원조 포식자임을 드러내듯 검푸른 용을 삼키려 한 것이다.

그에,

“어딜.”

폭식종(暴食宗).

월식(月食).

어느새 생겨난 검푸른 구체가 대신 입에 처박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 그오오오오오!!

원래라면 닿는 것은 무엇이든 통째로 소멸시키는 폭식의 구체지만, 팔초어 마수가 지닌 힘이 얼마나 강대한 지 다 흡수하지 못해 역류한 폭발이었다.

그 틈에 검푸른 용이 팔초어 마수의 몸통을 물어뜯었고, 팔초어는 또다시 몸부림치며 촉수를 내리 휘둘렀다.

콰아앙!!

팔초어의 등장과 함께 처음부터 달려있던 여덟 개의 촉수.

그것이 가진 위력은 다른 분화한 촉수들보다 훨씬 강맹해서 탐(貪) 역시 얻어맞고 내동댕이쳐질 정도였다.

- 크르르르!!

“쿨럭……!!”

죽겠네.

탐으로 녀석의 일부를 잡아먹고, 그렇게 얻은 마기를 통해 마공을 발휘한다.

말만 들으면 무한 동력에 가까운 행위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냥 탐의 기운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 몸뚱이는 감당치 못해 피를 토하는데, 마기까지 끌어들이려니 죽겠군.’

합당한 마공으로 최대한 부하를 줄인다 해도, 탐까지 실체화시켜 운영하니 탐이 받는 피해량 역시 함께 몰려온다.

- 그오오오…….

“큭, 웃냐?”

받은 피해를 계산하고 있자니 팔초어의 몸통에 있는 균열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이젠 마수 따위가 날 비웃네?

“나 때는 상상도 못한 일인데 말이야.”

- 크르르르…….

한 대 얻어맞고 화가 잔뜩 난 탐 역시 머리를 꼿꼿이 세웠다.

“결정했다. 네놈의 촉수들을 전부 숙회로 무쳐주마.”

폭식종(暴食宗).

천체정렬(天體整列).

일곱 개의 검푸른 구체가 생겨났다.

하나하나가 월식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지닌 구체.

그것들이 일제히 쏘아짐과 동시에 탐 역시 팔초어를 향해 솟구쳤다.

- 구오오오오!!

최초의 여덟 촉수와 분화된 수백 개의 촉수가 일제히 몸부림쳤다.

구체에 맞닿는 촉수들이 차례로 소멸되었고, 그 틈을 타 탐이 팔초어의 몸통을 물어뜯었다.

- 구오오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팔초어가 다시 최초의 여덟 촉수를 움직였다.

개중 둘은 일곱 구체에 휘말려 소멸했지만, 살아남은 여섯이 탐을 움켜쥐고 본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콰직!!

- 크르르르!!

탐이 팔초어를 물어뜯든, 팔초어 역시 자신의 본질을 증명하듯 탐을 물어뜯은 것이다.

구구구…….

그러자 흑색 일색의 팔초어의 몸에 검푸른 빛이 띄기 시작했다.

‘탐식종의 마수라 이거지?’

상처받은 탐은 더더욱 사납게 몸부림치며 자신을 쥔 촉수를 물어뜯었지만, 팔초어는 자신의 촉수가 물어뜯겨도 제 입을 벌려 탐의 몸통을 물어뜯었다.

서로가 서로를 먹고 먹는 끔찍한 인외대전(人外大戰).

그 여파는 모조리 당유혼에게로 돌아와 검붉은 피를 폭포수처럼 토해 내게 만들었다.

“꾸에에엑!!”

죽겠다, 죽겠어.

정신이 어질어질한 게 먼저 간 삼십 년 전의 녀석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 그오오오!!

그걸 느꼈는지 팔초어 마수 역시 더더욱 기세 좋게 포효를 터트렸다!

하지만,

“…웃지 말라고 했지, 이 자식아.”

그 순간,

- 그오오오? 그오… 그오옷!!

팔초어 마수는 갑작스레 몸을 뒤틀더니, 허겁지겁 자신의 촉수들을 회수해 몸통을 휘감았다.

그건 마치 터지기 직전의 무언가를 허겁지겁 붙잡는 것만 같았고, 구멍이 생겨 물이 새어 나오려는 항아리를 막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이나 다급한 몸동작이었지만,

“늦었어.”

푸화아아악!!

겨우겨우 임시방편으로 막아놓았던 부분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 그오오오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몸부림치는 팔초어였지만, 붕괴를 시작하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지 연신 녹아내리고 무너져 내렸다.

“네놈의 마기도 독하기는 하지만… 지독하기로 따지면, 우리 쪽이 더 하거든.”

좋다고 물어뜯고 먹어 치웠던 탐의 육신.

혼원신공으로 빚어 만들어진 그 검푸른 동체는, 사실 전부 다 극독(劇毒)이었다.

“어리숙한 게, 역시 넌 아직 갓 태어난… 미완성품에 불과하구나.”

지난 마교와의 대전 당시, 수많은 인명 피해를 만들어냈던 게 마수라면… 또다시 그런 마수들을 중독시켜 죽였던 게 당유혼의 독이었다.

천하의 마교 광신도들도, 그들에게 가호를 내리던 마수들도 치를 떨며 지독(至毒)하다 말했던 것이 자신의 독일 텐데 그걸 집어삼켜?

- 크르르르!!

적이 약해졌다는 것을 깨달은 탐이 거칠게 달려들어 마수를 물어뜯었다.

마수가 괴로워하며 난리 쳤지만, 이미 최초의 여덟 촉수까지 뚝뚝 녹아내릴 정도로 붕괴한 육체는 분노한 탐의 맹공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운이 좋았네.’

처음 만난 게 이렇게 불완전한 애송이여서.

철벅, 철벅…….

떨어지는 검은 액체를 밟고 나아가 녀석의 핵 앞에서 멈춰 섰다.

그곳에 있는 건 지금껏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는지 덜덜 떨고 있는 흑룡왕.

“나… 나는…….”

“딱 봐도 말단 같은 놈이 알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묻는데, 어디서 이 힘을 얻었냐?”

“모… 몰라……. 어느 날… 가, 갑자기… 흐, 흑의인들이… 나, 나는……!”

‘흑의인들?’

한 놈이 아니라 이 말이지?

‘용독문 때는 고작해야 떨어진 끄나풀에 불과했다. 하지만, 마수를 이 무림 땅에 만들어 낼 정도라면…….’

끈 떨어진 개인이 아닌, 최소한 어느 정도 규모를 지닌 집단일 확률이 높다.

“사, 살려줘… 제, 제발!!”

생각에 빠져 있자니 흑룡왕이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와 발목에 매달렸다.

“나는… 나는 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 그래…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이미 다 죽어가는 주제에 발악하는 모습.

아까까지만 해도 광오하고 오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그 행태에 당유혼은 쭈그리고 앉아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 나도 묻자. 넌 네가 죽인 이들 중 살려달라 하는 이들을 살려준 적이 있냐?”

“그, 그건…….”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혀온다.

‘내가… 그런 적이 있었던가?’

말을 잇지 못하던 흑룡왕은,

“있다!! 이, 있어!! 나도, 분명 살려준 기억이……!!”

발작적으로 외쳐보지만,

“개소리하네.”

서걱―

휘두른 비수에 베이며 허망한 목숨이 바닥으로 굴어떨어졌다.

서서히 색을 잃어가는 눈동자를 보며 당유혼은 손을 털며 일어섰다.

“제 부하조차 먹어 치우는 놈이, 살려달라는 이들을 살려줬을 리 없잖아.”

- 그오오오…….

핵을 잃고 붕괴가 가속화되는 마수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 크르르르!!

그런 마수를 더더욱 거칠게 물어뜯는 탐의 흉포한 울음소리도.

“끝이군.”

길었던 전쟁의 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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