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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48화 (148/350)

148화

마교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당유혼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동시에 또 머릿속은 차갑게 식었으니 분노와 냉정이 뒤섞인 상태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게 맞겠지.’

웬 끈 떨어진 놈이 용독문에서 흉계를 획책하고 있고, 칠대 종파로 의심되는 놈들은 장강수로채를 말아먹으려 했다.

아무리 사파 잡놈들이라 멸시하는 당유혼이지만, 그들의 저력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곧 죽어도 사파의 거두다. 비록… 그 녀석이 없다지만 쉽지 않아. 아니, 어쩌면 그 녀석이 없는 이유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침전시키며, 이어지는 백경의 말을 경청했다.

“사실 확실하지는 않은 것인데, 지금은 어렴풋이 추측하는 게 있네.”

“무엇을 말이죠?”

“나의 스승… 그러니까, 전대 장강용왕께서는… 어쩌면 그 흔적을 쫓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 녀석이?’

장강용왕.

이제는 전대의 퇴물로 불리울 뿐이지만, 그 시대에 함께했던 당유혼은 그의 진면모를 잘 알고 있었다.

‘살아남았었구나.’

벌써 수년 전부터 세간에는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상태라고 들었다.

장강수로채 내부에서도 그의 행적은 비밀스러웠고, 종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녀석은 별동대가 십만대산으로 향하는 동안, 물길을 통해 복귀하는 마교도들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 뒤로야 살아남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살아남아 그 이후를 도모하는 듯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감이야.”

“감?”

“그래. 스승께서는, 나는 물론이고 그 누구에게도 당신께서 무엇을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거든.”

‘…그런가.’

당유혼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낯선 세상에서 눈을 뜬 뒤 알게 모르게 전대에 활동했던 이들에 대한 행적을 수소문했다.

그 시절 함께했던 이들이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일 테고, 만약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면 어째서 당가가 이리 몰락할 때까지 방치했는지… 솔직히 섭섭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 들려온 소식은 처참했다.

‘구 할 이상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소식이 끊겼다.’

처참한 전쟁이었다.

당시 천하제일가라 불리우던 사천당가의 정예들이 몰살당할 수준이었고, 그 외에 함께했던 별동대 역시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나눠진 이들도 있었지만, 천마를 상대하지 않았을 뿐, 쉬운 역할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 전쟁이었으니까.

‘자신의 시대가 지난 뒤 은거하는 이들이 무림사에서 한둘이 아니었지. 그리고 그것이 좋게 마무리된 이들은 얼마 없었고.’

은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림에서, 은퇴란 곧 죽음이다.

그것은 직접적인 원한 관계를 가진 이들로부터 도피기도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업보로부터의 도피이기도 했다.

‘그래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녀석들도 다들 사라졌다고 여겼거늘…….’

“외로운…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셨지 않나 싶네.”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며, 백경은 그리 말했다.

“용왕진기. 스승님께서 가진… 무공 이상의 신이한 권능. 이것을 물려주시던 날 그분께서는 사라지셨지.”

“남긴 말은 없으신가요?”

“남긴 말…….”

백경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너의 길을 끝까지 가라… 였던가.”

‘…녀석다운 말이군.’

진정한 뱃사람이란 말이 어울리는 녀석으로 기억했다.

당유혼은 눈두덩이를 주무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길고 긴 침묵 속 장고, 그 끝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백경이었다.

“나는… 그들의 흔적을 쫓으려 하네.”

“어째서입니까?”

“스승님이 실종된 이유와… 내 사제가 그렇게 된 이유. 그 둘이 크게 다르다 생각하지 않아.”

아직은 감일 뿐이지만.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하는 모습에 당유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요. 저도, 그럴 생각인데.”

“허, 자네는 왜… 아.”

말을 하려던 백경은 곧 스스로 그 답을 찾았다.

‘마교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 그것은 역시…….’

사천당가일 수밖에 없으니까.

“자.”

짝― 하고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시킨 당유혼은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결론은 낫네요. 이제 한고비 넘겼지만, 본격적인 것은 지금부터라고.”

“그렇겠지.”

그러니까 잘해 보자고.

둘은 두 손을 맞잡아 악수를 하며 이야기를 결론지었다.

* * *

육손과 대담을 나누고 백경과도 이야기를 끝냈지만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세상에, 병상에서 몸을 털고 일어나자마자 다 낫지도 않았는데 과로에 휩싸이다니.

오늘따라 율기 녀석이 그리워졌다.

“그래도 그 녀석이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데…….”

“공자. 데려왔습니다!”

구시렁거리고 있자니 백경채 수적 하나가 그가 있던 장원으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기다리고 있던 인원이 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오라 하자, 곧 일단의 무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 사람들이구만?’

흑룡채를 비롯해 수채 이곳저곳에 납치당해 있던 인신매매 피해자들. 그들 중에서도 특히나 귀환시켜주기 난해한 이들을 쭉 모아놓고 그들 앞에 섰다.

“보자, 혹시 한어 할 줄 아는 사람?”

어디 대표격이 있나 싶어 쭉 돌아보니―

“제가 한어를 할 줄 압니다.”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오호?’

오랜 수감 생활로 꾀죄죄한 몰골이었지만 눈빛은 정광이 가득하고, 목소리 역시 또렷하고 낭랑한 게 제법 신기했다.

“그쪽이 이들을 대표할 거예요?”

“예. 이들은 저와 뜻을 같이할 것입니다.”

묘한 표현이구만.

“뭐, 그렇다면 잘됐네요. 그럼 빙빙 돌려 말하는 건 취향이 아니니 직설적으로 말할게요. 여러분 처지는 잘 아시죠?”

“저희를 해방시켜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쵸. 저희도 가능한 인도적 차원에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거든요. 흑룡채는 나쁜 놈들이지만, 우리는 뭐… 그렇게 나쁜 놈들은 아니라서요.”

물론, 그렇다 해서 좋은 이들이라고 표현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저희도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요. 알죠?”

“저희가 감히 많은 것을 바랄 수 없는 처지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좋네요. 그래서, 하나 제안을 하려고 하거든요?”

집으로 돌려보내 주기도 힘들고, 동정호 일대에 있기도 불안함이 있다면,

“괜찮다면 우리 집으로 따라올래요? 우리 집도 쫄딱 망했다가 이제 서까래니 주춧돌이니 하나하나 세우고 다듬는 처지라서 일손이 좀 필요하거든요. 아, 물론 그에 합당한 보수도 지급할 예정이구요.”

“…저희를 피고용인으로 고용하신다는 뜻입니까?”

“정확한 표현이네요.”

그게 딱 당유혼 스스로가 해줄 수 있는 한계선이었다.

가만 놔두기는 찜찜하지만, 또 그렇다고 한도 이상의 것을 베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자선 구원 단체 같은 이가 아니었으니까.

“혹시, 귀 가문께서 어떤 곳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 집요? 흠흠, 아직은 가문이라 하기도 뭣 하기는 한데…….”

같은 중원인이라면 모를까, 외국 사람들한테 직계도 고작해야 하나… 아니, 둘 남은 집안을 가문이라 하기도 좀 쑥스러웠다.

그래도 뭐,

“사천당가라고. 아시려나 모르겠네.”

왕년에는 그래도 이름 좀 날렸는데, 허허.

그런데,

“…예?”

상대의 반응이 상당히 격정적이었다.

무리 중 대표로 나선 이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건 경악에 가까웠고,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수준이었다.

“다, 당가 말씀이십니까? 사천의?”

“응? 알아요?”

우리 집이 외국에도 유명했나?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 질문에 청년은 형언하기 힘든 표정으로 말했다.

“천하제일 협의지문. 사천당가를…….”

“…그 표현을 안다고?”

이제는 잊혀진, 삼십 년 전에 당가를 수식하던 문장을 뱉는 청년의 모습에 이젠 당유혼이 더 놀라서 물었다.

“당신, 누구예요?”

“다시 한번 소개올리겠습니다.”

청년은 한 걸음 물러서더니 정광이 또렷한 시선으로 말했다.

“저의 이름은 홍수월. 지금은 패망해 버린 율도국의 왕자이자, 간악한 조선왕에게 살아갈 곳을 잃은 이들을 이끄는 목자입니다.”

‘…율도국이라고?!’

그 말에 놀란 것은 오히려 당유혼이었다.

‘풍사(風師), 홍길동의 후계라고?’

그리고,

“율도국이… 망했다구요? 아니, 어째서?”

이어진 말이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그건, 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여기서 다 말하기는 기나긴 사연이 있음인지, 말끝을 낮추는 모습에 당유혼은 눈을 한참 껌뻑거리다 이내 표정을 굳혔다.

‘어째서 그 녀석의 나라가 망한 거지? 설마, 거기도 마교가?’

머리가 복잡해졌고 물어볼 말이 많았지만, 여기서 할 말은 아니었다.

“후, 쉽지 않네요. 우선, 저도 다시 소개할게요. 사천당가의 둘 뿐인 직계, 당유혼입니다.”

“예? 둘뿐인 직계라니…….”

“그쪽이 사정이 있었듯, 저희도 많은 사정이 있었거든요.”

“아…….”

한때 찬란했으나 이제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린 두 집단의 후계자들은 제각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어쨌거나 저희가 그나마 상황이 나은 것 같으니 제시하겠습니다. 사천당가에 의탁할래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릴 일입니다.”

다시금 둘은 서로 마주 인사하며 우선적인 향방의 결정을 내렸다.

물론, 모든 것을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삼십 년, 마교와의 대전이 끝나고 둘 사이의 연락이 끊긴 동안 각자에게 일어난 일들은 고작 몇 번의 만남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우선은 수채에 부탁해 호위 인력을 붙여 그들을 당가로 향하게 했다.

직접 서찰도 썼고, 오기 전에 만들어놓은 따끈따끈한 직인을 찍어 보냈으니 그들의 처우가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남은 건 내 문제인가.”

백경 때도 느꼈지만, 이번에 율도국의 생존자들을 보니 이전까지는 차일피일 미루어놨던 의혹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삼십 년 전 헤어진 이들은 이제 어디로 갔는가?

의문이 머릿속을 채웠지만, 동시에 그 사이로 조심스러운 마음가짐도 바로 했다.

‘아무래도, 그사이 먼저 부활한 것은… 저 광신도 놈들인 것 같으니까.’

이미 장강수로채에도 큼지막하게 영향을 끼치는 마교가 이제 와서 사천당가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야 사천성주도 있고, 사천삼주 놈들이 역으로 방파제 역할을 해줘서 그들의 위협을 받지 않았겠지만…….’

사천삼주의 뚝배기를 깨버리고 외부로 뻗쳐 나가면 그들과 부딪치는 것도 필연에 이르리라.

즉,

“…이제 놀자판은 끝이구나.”

그래도 환자랍시고 비싼 기루에서 탱자탱자 놀던 시간은 끝났다.

“아, 진짜 일하기 싫다.”

이제는 자신 역시 육언과 백경채에 떠맡겨 놓은 일을 거두어야 할 차례.

“이놈의 수적놈들. 다 죽었어.”

그가 가장 잘하는 일.

바로, 사파 기강 다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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