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당유혼은 사람을 크게 믿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사람 역시 본질은 하나의 짐승이라 생각했다.
욕망에 휘둘리고, 욕망이 향하는 곳으로 나아가려는 그 모습이 본질적으로 짐승과 뭐가 다를까?
그래서 사람을 부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확신했다.
‘사료, 그리고 채찍.’
신상필벌(信賞必罰)이란 것도 별것일까. 잘한 놈 쓰담쓰담해 주고 못한 놈 찰싹찰싹해 주면 그게 다 신상필벌이지. 사람을 다루는 것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여겼다.
‘그리고, 사파 놈들을 다루는 데는 그걸 더 확실하게 해주면 되는 거고.’
웃차―
쭈그려 앉은 자리에서 일어선 당유혼이 채주들을 둘러보았다.
딱딱히 굳은 얼굴.
평생 자신들 개인의 쾌락과 영달만을 위해 살아온 이들이 저마다 뱃속에 독이 들었다는 걸 알게 되니 심장이 쿵쿵 뛰는 기분이겠지.
“자자, 여길 보세요. 여러분.”
짝짝―
이제 본격적으로 약을 팔아볼까.
“이게 보이시나?”
뒤적뒤적 품에서 대나무로 만들어진 죽통 하나를 꺼냈다.
저것이 무엇인고, 하는 표정으로 해적들의 시선이 몰리자 당유혼은 그 봉인을 풀어 내용물을 보였다.
다들 두근두근한 시선으로 보는 게 해독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하는 눈빛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허어억?!”
“저, 저게 뭐야?”
대신 귀여운 지네를 드리겠습니다~
“거 반응들 너무하네.”
캬르르륵―
당유혼은 날카로운 소음을 내는 녀석의 머리를 쳐 다시금 죽통으로 들어가게 했다. 중간에 손가락을 무는 가소로운 반항을 하긴 했지만, 머리를 앞통수와 뒤통수가 닿기 직전까지 짓눌러주자 얌전히 보금자리에 틀어박혔다.
“우리 가문에선 이 정도면 귀여운 애완동물인데 말이지.”
“사, 사천당가…….”
침음을 삼키는 채주들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일반적인 지네라면 온갖 험한 꼴을 다 겪은 그들이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조금 전에 본 것은 그들이 살아생전, 아니 이후에 볼 것까지 합쳐서 가장 끔찍하게 생긴 지네일 것이다.
그리고 또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들 고독(蠱毒)이라고는 들어봤겠지? 항아리 속에 온갖 동물을 집어넣어 싸우게 만들고 그중 살아남은 놈은 가장 지독한 독성을 지니게 되지. 그리고, 그놈을 특수한 방법으로 사육하면 자고(子蠱)를 낳게 된다.”
흔한 금제 중 하나였다.
“알다시피 자고(子蠱)는 모고(母蠱)의 지배를 받는다. 모고를 조금만 괴롭혀줘도 나타나는 특별한 파장이 자고를 죽게 만들고, 모고가 뒈지면 자고도 함께 뒈지는 거지.”
“……!!”
갑자기 벌레 하나와 운명 공동체가 되어버린 채주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물론 걱정 마. 이 모고는 워낙 지독한 놈이라 잘 키우면 수백 년은 거뜬하게 살아남으니까. 너거들 남은 수명 전부 합친 것보다 더 긴 놈이 이놈이야. 뭐, 문제라면 그 자고라는 녀석이 중간중간 내뿜는 독이 워낙 독해서 너희들은 진정제를 주기적으로 먹어 줘야 된다는 거지만.”
낄낄낄― 당유혼의 웃음소리가 장내를 채웠지만 결코 채주들은 유쾌할 수가 없다.
당장, 그 고통에 몸서리치는 동종업자들이 옆에 부르르 떨고 있으니까.
물론,
‘다 거짓말이지만.’
자고와 모고의 존재는 분명 맞는 말이다.
실제로 당가에서도 그렇게 키우는 독물이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없지.’
워낙 존재가 끔찍해서 전전대 가주가 자신의 대에 그 생산을 대규모 축소해 버린 게 첫 번째 이유고, 그만큼이나 귀한 놈이라 삼십 년 시간에 묻혀 다 사라져버렸다.
당유혼이 돌아온 즉시 가문을 회복시키고 독물을 생산했지만, 고독까지 만들어 놓을 시간은 없었다.
그럼 이놈은 어디서 나온 놈이냐?
‘중단전이 이럴 때 또 쓰일 줄 몰랐다 말이야.’
중단전의 공능.
일반적인 무공으로는 하기 힘든 일들을 해내는 중단전에는 탐(貪)의 권능을 가급적 덜한 부담과 비용으로 다스리는 일들이 무궁무진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특수한 독을 다루는 것들이 말이지.’
사실상 무공이라기보다는 술법의 영역이다.
독이라는 매개체를 발동으로 원격에서 제어하는 것.
그래봐야 뭔가 복잡한 변화도 아니고 자기 혼자 펑― 하고 터져버리거나, 발작하지 않게 가만두거나 하는 정도의 간단한 술수에 불과해도 이것만으로 사람 여럿 제어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인간은 또 이런 것보다 시각적인 공포를 보여줘야 쉽게 뇌 속에 각인이 된단 말이지.’
자신이 가진 고독 중에서도, 외형으로 따지면 가장 끔찍한 녀석을 보여준 것도 그런 이유였다.
겁을 먹을 거면 팍팍 먹으라고.
“으으…….”
“우, 우리는 그럼…….”
“너무 겁먹지 마, 직업만 좀 바뀌는 거뿐이지.”
원래, 집단에 소속된 작은 사업체의 점주 입장이란 다 그런 것 아닐까.
포목상을 하다가 위에서 시키면 정육점을 하는 거고, 정육점을 하다가도 위에서 시키면 약재상도 하는 것.
“잘 관리해 봐. 말했듯이, 우리 장강수로표국의 명예를 실추시키지만 않는다면 각자의 수채… 아니, 지부에서 뭘 얼마나 해 처먹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다만,
“물론 그렇다 해서 너희가 운영을 잘할 리는 없겠지. 사람 다루는 건 몰라도, 기업체 관리는 영 불안하거든.”
그래서,
“자자, 들어들 오세요.”
그에 적합한 인재들을 모셔왔다, 이 말이지.
우르르―
당유혼의 부름에 따라 수십 명의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돌아가는 분위기가 어찌 되는지 알지 못해 겁먹은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눈에는 정광이 가득했으니,
“소개들드립니다. 저 머나먼 감숙의 대황상 광형상단에서 우리 신생 장강수로표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해 직 오신 관리 이사님들이십니다!”
짝짝짝―
많은 박수로 맞이해 달라고?
“와, 와아아아……!”
“우, 우와아아아!!”
박수 안 쳐?
눈짓 한번 주니 우리 채주님들께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었다.
“하하하, 어서들 오세요. 우리 이사님들.”
“어… 소, 소협, 저희가 진짜 여기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 물론이죠.”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입의당의 문사들.
홍연의 치료로 은혜를 받게 된 그들은 당유혼에게 언젠가 이 은혜를 꼭 갚겠다고들 맹세했고, 덕분에 단체로 코가 꿰여 이역만리 장강까지 오게 된 것이다.
‘상단에 필요한 건 역시 글을 읽을 줄 아는 유능한 인적 자원들이지. 게다가, 이들은 홍연의 해독을 위해 각종 문서 업무에 몇 달간 강도 높은 노동을 한 경험이 있으니…….’
이만한 인재를 날로 먹는다?
‘아, 이건 못 참지.’
그렇게, 만남의 장을 만들어 준 당유혼은 인원수에 맞게 채주들에게 입의당 문사들을 배분해 주었다.
서로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게 한 뒤에는 추가로 첨언했다.
“아, 참고로 모든 해독제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이사님들이 백경채에 모이면 나누어 드릴 겁니다. 혹시나 저 없다고 서로 돈독한 관계를 맺으시려는 분들은… 아시죠?”
나 없는 사이에 저들을 협박하려 하면 알아서들 각오하라고.
마지막으로 덧씌운 굴레가 잘 잠겼는지 확인한 당유혼은 박수를 짝짝 치며 자리를 파했다.
* * *
“휴, 덕분에 한시름 덜었습니다.”
한숨을 푹푹 내쉰 육언은 그사이에 또 늙어 있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니 당유혼은 자신의 마음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안 돼, 아프지 마!’
육언이 없으면 장강수로표국이 잘 돌아갈 리가 없음을 잘 아는 당유혼의 입장에선 마음이 미어질 지경이다.
“저기…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줄까?”
우리 가문이 또 그거 하나는 잘하는데.
“…거부해야 하는데, 거부할 수가 없는 제안이군요.”
본인 역시 요 근래 수명이 빠르게 줄어드는 걸 느끼는 건지 씁쓸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쨌거나, 공자의 지원은 마른 논마지기에 단비와 같았습니다. 이로써, 각 수채… 아니, 장강수로표국의 지부들이 최소한의 역할은 되겠지요.”
“그래도, 표국 영업을 정상적으로 시작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윽, 왜 사람을 도둑놈 보는 시선으로 보고 그래?
“저희가 영업을 시작한다 말한들, 세상 사람들이 쉽게 물류를 맡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선적으로는 귀 가문의 전용 사단이라 할 수 있는 광형상단의 물류만이 우선적으로 유통될 겁니다.”
광형상단이 사해에 그 위엄을 떨치는 상단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그런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물류의 흐름이 어느 정도 생성되고 유지되기 시작한다면 그 이상부터는 제법 가시적인 속도로 상승하리라 생각합니다. 장강수로채라는 전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도, 저희가 가진 힘은 믿을 테니 하나둘 물건을 맡길 수 있습니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위험이 있는 도박을 무릅쓰는 상인들은 흔한 편이니까.
“좋아, 그건 우리 군사 나리가 알아서 해주면 되고.”
그래서, ‘그건’ 어디 있을까아?
은근한 시선을 막막 던지자 육언은 피식 웃으며 품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건넸다.
슬쩍 내용물을 보니,
‘금 이백 관… 홍은석, 비취 한 무더기 등등…….’
“이번에 저희 백경채에 큰 도움을 주신 은인에게 보답하는 작은 성의입니다.”
까놓고 말해, 결코 적지는 않았다.
“허허, 아니 뭐 우리 사이에 이런 걸 또…….”
부담스럽지만, 또 은인에게 주는 작은 보답이라니 안 챙길 수는 없잖아?
은근슬쩍 권리를 증명하는 두루마리를 품에 넣고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옷 위를 두들기는 당유혼을 보며 육언이 옅게 웃었다.
“자고로 거래란 확실해야 하고, 신용도가 높을수록 그 관계의 결속은 더욱 짙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큼… 뭐, 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또, 그리 말해 주니 막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잘 먹겠다고?
버억―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배 위를 둥둥 두들기는 당유혼을 보며 육언이 말을 이었다.
“공자.”
“응?”
“공자께서 주군과 기밀한 예의를 나누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희 주군께서 지닌 숙원과도 같은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육언이 말하는 주제는 뻔했다.
‘마교구만.’
“주군을 모시는 책사로서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개인으로서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특히나, 그때 흑룡채에서 보았던 것은 제가 알던 기존 상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마수(魔獸).
그것을 본 육언은 꽤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을뿐더러, 그 존재가 얼마나 더 많냐는 것에 따라 자신이 세워야 할 기책의 가짓수는 아득히 늘어날 것이다.
“수로채에서도 특히나 믿을 만한 이들을 부려 뒤를 쫓을 생각입니다. 공자께서도 따로 추적하시겠지요?”
“…물론이지.”
백경에게 있어 마교가 스승의 원수와 같다면, 당유혼에게 있어서는 그냥 원수였다.
“알겠습니다. 하면, 앞으로도 계속 긴밀한 협조 관계를 구축하겠군요.”
육언은 그렇다면 참 다행이라 여겼다.
아직 앳된 기가 남아 있는 눈앞의 이는 자신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존재.
만가쟁패의 혼란기에 괜스레 적수로 두어 곤혹을 겪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좋아, 나도 잘 부탁한다고.”
그렇기에 둘은 서로의 주먹을 부딪쳐 인사하는 것으로 이 작은 만남의 끝을 고했다.
이 작은 만남이 추후 무림이라는 대해에 얼마나 큰 파도를 일으킬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거대한 물결의 시작점이 될 것은 확실했다.
‘자, 그럼.’
이제 장강에서 할 것은 다 했다.
구축해야 할 것들도 다 구축했고, 인원 처리까지 완료했으며, 받아 챙겨야 할 것까지 다 주머니에 쓸어 넣었다.
그렇다면?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그립고 그리운 사천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