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52화 (152/350)

152화

‘역시, 그건가?’

당연한 말이지만, 하윤호가 무엇을 말하는지쯤은 진작 알고 있었다.

백경채에서 보답으로 육언에게 받아온 막대한 금은보화가 바로 그것.

‘내가 끌고 온 수레가 이미 녀석의 정보망에 들어갔거나, 아니면 어차피 받아낼 거라 짐작했던가. 둘 중 하나겠지.’

어차피 없을 수가 없는 것이었기에 어찌 알아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당유혼의 입장에서도 당장 그 보물들은 애물단지 신세기는 했다.

‘보화가 좀 많아야지. 당장 다 팔기에도 한 번에 풀면 시장에서 시세가 흔들릴 만큼의 양이기도 하거니와, 그 출처가 수적채를 털고 나온 것들이라 하면 또 정식 경로로 팔기는 애매하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하오문과 협업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굳이 삐쭉거린 이유는 하나,

‘그냥 이놈 좋은 일 시켜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별로란 말이지.’

한마디로 심술만 잔뜩 부린 셈.

“장물? 뭔 장물?”

“에이, 이미 소문이 파다합니다요. 수래 세 대에 금은보화가 가득하다지 않습니까요?”

그 정도면 거래 수수료만 해도 어마어마하겠지.

군침을 흘리는 하윤호의 모습에 당유혼의 표정은 더더욱 삐딱해졌다.

“그렇긴 한데, 그게 뭐 어쨌다고. 우리에게는 대황상(大皇上) 광형상단이 있다고.”

“소, 소협!!”

하오문을 통해 거래하는 게 제일 효율이 좋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기분이가 나쁘잖아?

‘내가 피똥 싸며 구해 온 걸 앉아서 날름하려고 들어?’

그렇게 쉽게는 못 넘겨주지.

“감정적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요! 장물 거래에 저희 하오문만 한 곳이 있겠습니까요?”

“왜 없어? 흑상은 노냐?”

“그, 그건…….”

이미 한번 패배한 적 있는 경쟁 상대의 등장에 하윤호의 눈망울이 안쓰럽게 흔들렸다.

“너무하십니다요! 암만 그래도 어떻게 그런 애들이랑 비교를…….”

“걔네들이 너희보다 정보 빠르던데?”

윽…….

하윤호의 가슴이 아팠다.

“저, 저희는 그래도 신뢰가 있지 않습니까요?!”

“풉, 신뢰? 내가? 너희랑?”

어디 사파 새끼들이 신뢰를 언급하니?

“큭… 제, 제가 이 생활을 일곱 때부터 시작했습니다요! 그 나이 때 달건이 시작한 놈이 백명이라 치면… 지금 저만큼 사는 놈은 저 혼자뿐일 겁니다요! 이놈, 하윤호. 오로지 신뢰 하나로 먹고 살았습니다요!”

“응, 다음 사파.”

뿌리 깊은 사파 멸시!

찔러봐도 피 한 방울 나올 눈빛에 하윤호의 눈에 그렁그렁 물방울이 맺힐 때,

“뭐, 좋아. 가져가라.”

지금껏 실컷 때리던 당유혼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휘적휘적 저었다.

그 순식간에 일어난 태세 전환에 하윤호가 눈을 껌뻑껌뻑거렸다.

“옙?”

“가져가라고. 가져가기 싫어?”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두 번 물었다가는 귀여운 금궤들이 순식간에 흑상으로 살처분 당할 기세였다.

허겁지겁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품속으로 인양하기로 한 하윤호는 히히 웃으며 손을 비볐다.

“하면… 대가는 뭐로 치르면 되겠습니까요?”

“대가라…….”

당유혼은 손가락으로 탁자 끝을 두드렸다.

‘이 녀석도 끼워도 되려나.’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삼십 년 이후의 세상인 이곳에서 눈을 뜬 뒤 처음으로 진심 전력을 다할 사업이다.

장강까지는 이미 내부의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하윤호에게 맡기는 것은 결국 자신의 비수로서 그를 택하겠다는 뜻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습군. 처음 이 녀석과 계약을 할 때는 내가 놈들의 복검이 되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그 반대가 된 꼴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갈등의 요소는 하나.

‘이놈을 믿을 수 있을까인데…….’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질없다고 조소를 흘리는 당유혼이었고, 장강수로채의 채주들에게 꾸역꾸역 극독을 먹이고 오는 길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우스운 일이지만, 결국 이 이상의 일을 하는 데는 믿음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장고에 빠지자 하윤호 역시 덩달아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뭐지? 이 사람이 이 정도로 진중하게 여기는 일이라고?’

이래서야, 수십 관에 달하는 금궤의 거래 수수료 정도는 부차적인 거스름돈에 불과할 뿐이 아닌가.

하윤호의 눈빛도 달라지는 게 보이자, 당유혼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는 것을 멈췄다.

결정이 내려졌다는 신호.

화아악―

잠시 후, 당유혼을 중심으로 무형의 파동이 뻗어나가더니 방 전체를 감싸는 기막이 되었다.

“이제부터 할 말은, 한번 들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될 거야.”

소리가 방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한 당유혼이 서문을 떼어내자 하윤호는 예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헤헤, 이놈이 언제는 소협의 말을 헤프게 흘리고 다닌 적이 있습니까요?”

“그래서 하는 말이지.”

언제나 방정맞게 말하는 행동거지와는 달리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하니까.

다만,

“또한, 그래서 미리 경고해 두는 거야. 알게 되면, 너 하나 죽는 걸로 안 끝날 수 있으니까.”

“옙?”

“사천지부 전부가 불에 타고, 네가 지키려 했던 하층민 모두가 고통스럽게 죽을 거다.”

“…….”

하윤호의 웃음이 딱딱히 굳었다.

“…협박이라기에는, 이런 걸 하실 분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냐고 쏘아주고 싶긴 한데… 맞아. 이건 협박이 아냐.”

오히려,

“경고일 뿐이지.”

위험하니까 손 뗄 거면 진작에 떼라고.

그 말을 끝으로 당유혼은 앞에 놓아진 차를 들이켰다.

이미 자신의 장고로 식어버린 찻잔을 비우고 다시금 채운 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 연기가 대기의 차가움에 온기를 잃고 숨이 죽어갈 때쯤,

“그렇습니까요…….”

하윤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겠습니다요.”

“경고는 분명 해둔 것 같은데…….”

너 혼자 끝날 일 아니라고.

그에,

“물론, 그래서 고개를 끄덕인 것입니다요.”

“어째서지?”

당유혼이 이유쯤은 듣고 싶어 묻자 하윤호는 다시금 예의 웃음을 찾으며 답했다.

“천하의 소협께서 제게 이만한 경고를 해주신다는 것은, 이미 그만한 일이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요? 모른 척, 눈 돌리면 안 엮이고 살 수 있다는 말은… 언젠가 그 일이 눈 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다가왔을 때는 항거할 여유조차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럼 더 할 말이 없다.

더 해봐야 사족밖에 안 되는 것을 알기에 곧장 본론을 꺼냈다.

“마교.”

단출한 하나의 단어.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던 하윤호였지만,

“…무슨, 설마… 마교가 부활했다는 것입니까요?”

직후 그 뜻을 이해한 하윤호가 경악하며 되물었다.

하나,

“그건 몰라. 그들이 부활했는지, 이제 겨우 고개를 쳐들고 있는지를.”

“그게 무슨… 아, 설마 장강?”

정보 단체의 수장답게 하윤호는 순식간에 정보의 편린을 취합해 갔다.

“장강에서 있었던 백경채와 흑룡채의 정보는 경천동지할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다는 말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정보가 세어 나온 것이 없었지요. 물론, 구천의 일좌에서 벌어지는 권좌의 다툼에 대한 정보가 쉽게 새 나갈 리 없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 이후 당유혼은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게 진실이다.

“흑룡채를 제외한 다른 수채들은 생각보다 형체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고, 그렇다면 마교의 잔당이 손을 뻗은 것은 오로지 흑룡채의 경우에서만 해당할 일. 즉…….”

추측은 확신으로 전환시키며 하윤호는 말했다.

“만나셨습니까요? 흑룡채에서?”

확신은 사실이 되었다.

“만났지. 그것도 끔찍한 괴물을.”

당유혼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단순히 전투가 일어난 것뿐 아니라, 거기서 만났던 마수에 관해서까지.

“마수라…….”

그 단어에 하윤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세상에 그 존재를 아는 이는 얼마 없지만, 하오문은 정보를 다루는 단체.

그 얼마 없는 이들 중 하나였다.

“양민을 괴롭히는 요괴 따위와는 비할 바 없는 저주받은 존재. 마교와의 대전 당시 수많은 무인들을 학살했던 괴물이… 진정 그곳에 있었다는 말씀입니까요?”

“있었지. 그리고, 죽였고.”

당유혼은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낡고 오래된 두루마리는 낡은 새끼줄로 봉인이 되어 있었고, 그 내용을 보지 않았음에도 흉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만, 하윤호가 보기에 그것은 아직도 열기를 간직한 불꽃이라기보다는 다 타버린 재에서 잔열이 남아 연기를 피워올리는 것과 같아 보였다.

‘즉, 아직 위험하기는 해도… 이제는 대부분의 처리가 끝난 것이렷다.’

거기까지 판단을 내린 뒤 당유혼을 올려다보았다.

“무엇입니까요?”

“마도서(魔導書).”

흠칫―

그 어감이 주는 불길함에 하윤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물론, 그러든 말든 당유혼은 계속해서 할 말을 이어 갔지만.

“아주 질 낮은 마도서에 불과하지만… 인간을 인외(人外)의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지.”

요양이 끝나고 흑룡채를 뒤지며 찾아낸 물건이다. 땅속 깊이 파묻혀 있던 것인지라 백경채가 수색할 때는 미처 찾아보지 못했지만, 당유혼은 이미 이런 것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여 직접 발품을 판 결과물이었다.

‘사람이 마물이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단순한 마물이 아닌 그 정도의 급의 마수가 되려면 마도서 정도는 있어야지.’

마도서는 단순한 무공 비급서 따위와 궤를 달리하는 물건.

그 자체에 살아 있는 생명과 같이 의지가 있으며, 무공이라기보다는 술법에 더욱 가까웠다.

“마도(魔道)라… 하면, 이건 무림보다는 술법계(術法界)와 더욱 연관이 큰 물건이 아닙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네가 더욱 신경 써줘야 하기도 하고.”

무림도 평범한 중원 속 또 다른 세상이라 불리지만, 술법계는 그보다 더한 신비(神祕)의 세상이다.

율도국을 이끌던 홍길동이 바로 그러한 술법계의 대표 격인 인물이며, 당연하게도 삼십 년 전에도 찾기 쉽지 않던 그들과의 연결고리는 지금에 있어서 다 끊긴 상태였다.

“…찾아보아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을 듯합니다요.”

“쉽지 않을거야. 그 두루마리는 이미 내가 확인했을 때 효력을 다 하였기에 위험도는 덜 하겠지만, 그만큼 단서를 찾기도 어려울 거야.”

“알겠습니다요.”

하윤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루마리를 품에 넣었다.

당유혼이 가진 마교에 대한 감정이 혐오와 증오,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분노였다면 하윤호가 가진 것은 짙은 경계였다.

‘기록에 따르자면, 마교가 나타났을 때 끔찍한 혈겁이 일어났다 했지.’

자고로 천하에 혼란이 일면 가장 먼저 죽어 나가는 것이 하오문 문도 대부분이 속한 하층민 계층이다.

하윤호라면 결코 눈앞에서 그 꼴이 벌어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테니, 당유혼은 그 부분에서 이 사파놈을 신용하기로 했다.

“하면, 소협께서는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요?”

“나도 나 나름대로 할 거야. 솔직히, 할 게 너무 많으니까.”

벌어놓은 사업이 워낙 많다 보니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심정이라고 할지.

지끈거리는 두통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그 일에 순서 정도는 정해져 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언제나 내 한 몸 챙기는 것이야 잘했으니,

“이제 밀린 집안일 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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