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56화 (156/350)

156화

“…저, 마음에 드시지 않으십니까요?”

하윤호가 조심히 눈치를 살폈다.

실시간으로 일그러지고 구겨지는 당유혼의 표정을 보자니 덜컥 걱정이 앞섰다.

‘이 괴팍하고 싸가지 없고 더럽고 치사한 놈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중이다!’

그렇게 되면 온갖 핍박이 쏠리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에 허겁지겁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은 당사자는,

‘마음에 들지 않냐고?’

아주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숙일 놈들이 없어서 그놈들한테 숙여야 해?’

뿌리 깊은 사파 멸시와 더불어 뿌리 깊은 정파 혐오가 당유혼을 이루는 두 개의 축이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젠장, 그렇다고 또 다른 수가 없다는 게 문제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돈으로 부릴 수 있는 도사나 법사다.

그런데 이 둘의 공통점은 진짜 제대로 된 이들은 세속에서 벗어나 물욕에 관심을 끊었다는 것이다.

그럼 결국 물욕과 세속으로 범벅이 된 놈들은 돈 주고 부려야 하는데, 그런 것에서 제일은 아청점 동맹일 수밖에 없다.

“끄응… 다른 수는 없겠지?”

“…찾아봅니까요?”

“됐어.”

사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떠올리기 싫어서 무의식의 한 구석에 처박아 뒀던 것뿐이지.

“…그럼 그건 그놈들한테 수배해 보고, 또 하나 맡길 일이 있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대충 치워두며 가지고 온 고려청자를 탁자 위에 올렸다.

“어엇? 이건?!”

단박에 그 정체를 알아본 하윤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려청자 아닙니까요? 이제는 멸국(滅國)의 유산이 된 것인지라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구한 거 아니야. 만든 거다.”

“예? 하지만 고려청자의 제조법은 분명 실전(失傳)되었… 아, 설마?”

하윤호의 머릿속에 몇 주 전 당가에 대규모의 무리가 유입되었다는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장강수로채에 잡혀 있던 노예들을 당가에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중 잃어버린 제보법을 알고 있는 장인들이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실로 말도 안 되는 우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하윤호는 이미 일어난 일에 그 희박한 가능성을 따지기보다는 그것이 가져올 영향력에 주목했다.

“유통망을 찾으십니까요?”

“아니, 그건 정해 뒀어. 그보다는, 이걸로 사천성주와 자리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군.”

“예? 그건 좀…….”

고려청자가 대단한 물건이기는 하지만, 사천성주는 더 대단한 인물이다.

사천성 정도면 전 중원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대도시이며, 그곳의 주인쯤 되면 고려청자 정도는 몇 개나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단순히 이걸 뇌물로 바치는 것에서 끝낼 이야기가 아니야.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 너는 자리만 마련해 줘.”

“소협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무슨 짓을 할지는 모르지만, 굳이 더 따지지 않기로 했다.

눈앞의 해괴한 놈이 어디 이해 못할 짓을 한 적이 한두 번이어야지.

‘그런 거 다 따질 만큼 내가 여유로운 상태도 아니고.’

지금도 이미 주어진 일로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

의문 따위는 가볍게 넘긴 채 마지막으로 되물었다.

“하면, 시일은 언제로 하는 게 좋겠습니까요?”

“가능한 한 빨리.”

할 일이 많다.

가능하면 빨리하고 치워야지.

* * *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렇게 말한 만큼, 하윤호의 일 처리는 확실히 빨랐다.

‘고작 사흘 만에 도사놈을 구해줄 줄은 몰랐으니까.’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반신반의했는데 그렇다고 사흘 만에 사람이 구해질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놈이 또 네놈이라는 것은 신기하네.”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더니.

눈앞에 놓인 삐딱한 눈빛의 젊은 도사를 바라보며 혀를 차자 마찬가지로 맞은 편에 있던 도사도 살벌한 눈빛을 던졌다.

“누군가 했더니 그놈들의 우두머리였나.”

도사답지 않은 언행의 주인공은 바로 진혁수.

자신 역시 여기 있는 게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팍팍 풍기는 그 모습에 당유혼이 기가 차서 바라보고 있자 진혁수는 짜증을 내면서도 가져온 향로를 앞에 두고 가부좌를 틀어 앉았다.

“일단 의뢰를 받았으니 바로 착수하지. 방해되니 꺼져라.”

보패를 만들기 위해 미리 구비해 둔 묘옥 속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진혁수의 모습을 보자 당유혼은 쯧쯧 혀를 찼다.

“딱 봐도 하기 싫어 죽으려는 것 같은데?”

“그럼 하고 싶겠냐?”

“근데 왜 왔냐?”

“…….”

입을 꾹 닫고 등을 돌려버렸다.

더 이상은 말 섞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

그래도 맡은 일은 다 하겠다는 건지 눈을 감고 향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임병투자 개진열전행(臨兵鬪子皆陣列前行)…….”

잠시 후, 진혁수의 입술 사이로 진언이 흘러나오며 도가 특유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니,

‘육갑비축인가?’

그 정체를 알아챈 당유혼이 비죽 웃었다.

‘하는 꼴을 보니 진짜이긴 한데…….’

시장 거리에서 신선이 되는 단약이니 뭐니 하며 약팔이나 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진짜 도가에 정통한 배움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왜 여기 왔을까?’

진심으로 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너, 끌려왔구나?”

…뚝.

“…의식 받기 싫나?”

“아니, 내가 착각했다는 뜻이지.”

“뭐?”

“어이, 나랑 거래 하나 하지.”

이젠 대충 견적이 나왔다.

‘청성에서도 대충 우리 쪽이 원하는 걸 눈치챘다. 죽도록 가기 싫었겠지만, 이번에 도사놈 구한다고 쓴 돈이 꽤 컸지.’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큰돈이었다고 할까?

결국 청성에서도 사람을 보내기는 보냈지만, 자신들의 애제자를 보내기는 싫었으니 이 녀석을 대신 보낸 것이다.

‘이왕 한다면 제대로 하는 게 좋으니까.’

다른 놈들이라면 거래가 힘들지 모르겠지만, 이 녀석이라면 분명 된다.

“듣자 하니 네 무공, 아직 미완성이라며? 내가 그것에 도움을 줄 수 있거든.”

“…듣자 듣자 하니 진짜 못하는 말이 없구나.”

살벌한 살기가 흘렀다.

지금까지는 짜증 정도에 그쳤지만, 이제부터는 분노가 깃들었다.

“네까짓 게 지금 나의 스승님을 모욕하는 거냐?!”

미완성의 무공이라지만 이제 없는 스승에게 물려받은 유산과 같다. 그것을 감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건방을 떨어?

까득―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이런 관계로 만난 게 아니었다면 결코 이렇게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를 악문 진혁수는 박차고 일어섰다.

이미 의식이고 뭐고 다 때려친 기세였다.

“이대로 돌아가려고? 그럼 취급이 박해질 텐데?”

이건 청성에서 시킨 일이고, 그 일을 파토 내고 돌아간다면 돌아올 불이익은 분명했다.

하나,

“네까짓 게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딴 불이익 따위.

지금의 진혁수에게는 알 바가 아니었다.

그에,

“어휴, 외골수 같은 놈. 하긴, 그러니까 그나마 가능성이나 있는 건가?”

“헛소리는 작작해라. 더는 나도 들어주는 데 한계가 있… 큭?”

슈욱―!

참다참다 돌아보고 화내려는 순간 당유혼의 손이 뻗어졌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한 진혁수지만 이내 허리춤에 패용한 검집을 통째로 들어 쳐냈다.

‘이게 무슨……!’

노호성을 터트리려던 진혁수지만, 이내 눈빛이 살벌해지며 이를 악물었다.

“좋다, 네가 먼저 시작한 일이다!!”

기어코 피를 볼 생각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상대가 보통이 아님을 알기에 시작부터 진심이었다.

검과 검집이 따로 움직이며 휘둘러졌고, 청운적하검의 초식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렇게였지?”

다음 순간 당유혼의 양손이 동시에 뻗어 나와 검면과 검집을 후려쳤다.

워낙 빠르기도 했지만, 기괴막측한 궤도가 도저히 상상도 못한 각도를 그림 꺾여 든 덕에 채 검초를 펼치기도 전이었다.

“뭣……?”

그에 진혁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단순히 자신의 검초가 채 펼쳐지기도 전에 막혀서?

아니, 그럴 리가 있나.

그는 이미 눈앞의 상대가 감히 자신이 비비기 힘든 경지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경악한 것은,

“네놈이… 어찌 감히, 청운적하검을……?”

섬세하지 못해 과격하고, 다듬어지지 못해 거칠지만, 두 손으로 펼쳐져 제멋대로이기는 해도 그건 분명 청운적하검의 검초를 따르고 있었다.

“후우우… 이게 맞나?

대충 따라 하긴 했는데, 워낙 성격이 다른 놈이었어야 말이지.”

“…답해라, 네가 어찌 그 검을 아는 것인지…….”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답을 얻기 위해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 같음에서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낸 것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네. 성격은 괴팍해서 제멋대로 살 것 같으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고 있어.’

그건 아무래도 눈앞의 어린놈이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이겠지.

그 가소로움에 조소를 흘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말 못 들어 봤냐? 높은 산에 오르면, 저 아래에 있는 것들이 고만고만하다는 거.”

“뭐라고? 이 자식이……!”

청운적하검을 모독하는 거냐고, 또 한 번 이성의 끈이 끊기려 할 때,

“아니, 착각하지 마. 청운적하검은 뛰어난 무공이다. 적어도 나 같은 놈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선도(禪道))의 무공이지.”

당유혼은 진심을 담아 청운적하검을 평했다.

‘…뭐?’

그 말이 결코 입에 발린 말이 아니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일까?

저도 모르게 멈칫거릴 때,

“무의(武意)는 몰라도, 무리(武理)를 따라 하는 것은 어렵지 않거든.”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도통 알 수 없는, 하지만 무언가를 꿰뚫는 듯한 답이 돌아왔다.

“말 그대로다. 높은 경지에 이르면 그 아래의 것들이 아등바등거리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지. 네가 하는 것을 보면 따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하나, 그 무공에 담긴 의지(意志)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야. 내가 한 것은 결국 반쪽짜리에 불과해.”

의지가 담기지 않은 무공은 결국 반쪽짜리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단순 무공만 놔두고 보면 내가 너보다는 잘났겠지. 보아하니 이 무공은 네 스승이 남긴 미완성의 유산인 것 같은데… 안 그런가?”

“…….”

진혁수는 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정확…하다…….’

흥분하여 참담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눈앞의 놈이 펼쳤던 것은 아름다워 보일지 언즉 속이 빈 도자기에 불과했다.

다만, 그런 도자기임에도 자신의 것에 비해 너무나 아름다워 이성을 채 유지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고, 가까스로 입을 열었을 때는 거친 숨결이 새어 나왔다.

“…내게, 내게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이지?”

“뭐, 당연한 거 아니냐?”

거래를 위함이지.

“나 정도 되면 딱 보는 순간 알 수 있거든. 이 무공은 떠나가는 어떤 이가 남겨진 이를 보며 걱정의 한숨을 팍팍 내쉬며, 제발 이놈 자식이 사람 새끼가 되길 바라며 남긴 유산이란 걸.”

“너…….”

내가 잘 알지.

‘내가 그런 심정으로 만든 무공이 한두 가지겠냐.’

암만 어르고 달래도 도통 따라오지 못하는 놈들을 위해 만든 무공이 수십 종이 넘는다.

그것이 무공에 담긴 의지, 즉, 무의(武意)였다.

‘그건 내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걸 완성시키는 것은 네 역할이 될 거다. 뭘 담을지도, 그 겉을 어떻게 장식할지도. 하지만 보아하니 넌 그걸 장식하기에는 한참이나 벅차 보이니까 내가 그걸 주겠다는 거야.”

“…그 대가는 뭐지?”

“뭐긴 뭐야.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는 거지.”

원래 노오오오력이 담긴 작품은 결과물부터가 다르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진혁수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실소를 흘렸다.

“뭘 믿고?”

“엥? 조금 전에 보여준 걸로도 부족하냐?”

그럼 진짜 눈알이 삔 건데…….

반듯하게 펴줄까? 라고 물으려던 찰나,

“나를 어떻게 믿냐는 거다.”

“아아.”

난 또.

“네가 최선을 다할지 어떻게 믿냐는 물음이냐면, 그건 간단하지.”

너같은 놈한테 진실한 답을 받아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있거든.

“맹세해라. 이 자리에서.”

“무엇을?”

“네 스승의 명예 앞에, 네가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해라.”

“……!!”

진혁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자식이…….’

아직은 사람이 못돼 짐승을 닮은 녀석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고, 이내 그 입이 짐승의 그것처럼 쭉 찢어졌다.

“…좋아. 맹세하지.”

흉포한 미소가 맺힌 것이다.

“최선을 다해 네 요구 사항을 들어주겠다. 그러니 너 역시 최선을 다해 나를 가르쳐라.”

“배우는 것도 최선을 다할 테지?”

“당연한 걸 묻는구나.”

짐승처럼 솔직한 녀석이로다.

그 모습에 당유혼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낄낄낄! 좋아. 우리, 계약 성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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