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당가에 돌아오고 난 뒤 강렬히 느낀 게 있다.
‘사람이 더럽게 없다.’
그래, 그게 또 문제다.
‘장강에서도 이놈의 인재가 발목을 잡더니, 사천에서도 잡는구만. 아니, 여기가 원래 먼저 잡았나?’
지금이야 금이야 옥이야 얼씨구 절씨구 키워서 그나마 쓸 만한 놈들로 몇몇 키워냈지만, 그전에는 진짜 답도 없었다.
암만 좋은 토양을 가꾸어 놔도, 종자부터 글러 먹었다면 한계에 부딪치기 십상.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만한 놈이 없단 말이지.’
진혁수.
눈빛 삐딱하고 말하는 본새가 실로 한 대 쥐어박고 싶게 생긴 이 녀석은 그동안 원해 왔던 완벽한 인재상에 부합한다.
재능만 따진다면 상품은 개뿔, 중상에 간신히 미칠까 말까 하지만, 다른 놈들에게는 악과 근성이 있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이를 부서져라 물고 아등바등거릴 수 있는 근성!
그것이 재능이라 친다면, 이 녀석은 분명 특상품이 분명했다.
‘굴리면 굴릴수록 더 맨들맨들해져서 잘 굴러갈 놈이로다.’
겔겔겔!!
‘…진짜 미친놈인가.’
한편, 구자진언을 외우며 향로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진혁수는 진지하게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암만 강해져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지만 저 미친놈에게 뭔가를 배운다는 게 옳은 것인가?
“야, 인마! 손 똑바로 안 뻗어?”
“…….”
“아니, 돌리라고! 회전 몰라, 회전?”
“…….”
“이야, 아주 곧기도 하셔라. 대나무야? 쪼개줘?!”
한마디 가르침을 주면 열 마디 띠꺼운 소리가 같이 날아온다.
좋게 말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입 좀… 닫아, 제발!’
듣다 보면 혈압이 먼저 터져버릴 것만 같다!
그렇다고 당장 발 돌려서 나가자니,
‘빌어먹을 맹세!’
하필 스승님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기에 도저히 깰 수가 없었다.
거기다,
‘효과가 아예 없다면… 아니, 적당히 있기만 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문제는 저 아니꼬운 놈에게 배울 때마다 스스로도 체감이 될 정도로 청운적하검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
‘진짜, 억울할 정도로 잘 가르치잖아……!’
한마디 가르침이 뼈에 새길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다른 열 마디 사람 돌아버리게 만드는 말들조차 정말 속이 뒤집힐 정도로 옳은 말들이라는 게 문제다.
조금만 엇나가도 곧장 튀어나오는 것들 덕에 청운적하검의 검로는 아주 미세한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정도(正道)를 향해 나아간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참된 가르침에 하루에도 극락과 지옥을 수십 번 오가는 것을 경험하는 진혁수는 부서져라 이를 악물었다.
‘강해진다, 강해지고 만다!!’
딱 한 번, 딱 한 번만 저놈의 턱주가리를 후려갈길 수 있도록!!
맹렬히 타오르는 적의가 불꽃처럼 활활 피어올랐으니,
‘아이구, 잘 탄다! 더 타라, 더 타올라!’
뒤에서 낄낄거리는 놈은 박수를 치며 부채질했다.
* * *
향로를 온전한 법구로 만드는 데에는 구십구 일이 걸린다고 했다.
즉, 완성되려면 아직 한참은 남았다는 이야기.
그래도 당장 급할 것은 없었기에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가르침을 주입하고 있자니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사천성주와의 면담 일정이 잡혔다고?”
“그렇습니다요!”
드디어 때가 왔구만.
‘사천성주와의 독대라.’
몇 달 전에 한 번 보았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강했지.’
지금까지 보아왔던 무림인들 중에 가장 강한 이를 따진다면 당연 독비어옹이었다.
참고로, 흑룡왕인지 흑지렁이인지 하는 놈은 더러운 마교도 마물놈이니까 제외하고.
‘하지만 그 영역을 관으로까지 확대한다면 단연코 사천성주가 최고였다.’
사천성주 이군학.
만남은 한 번뿐이었지만, 당유혼 그에게도 짙은 인상을 남긴 사내.
‘그 정도라면, 삼십 년 전에도 이름 좀 날릴 만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진정 난놈이요, 천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존재를 떠올리며 당유혼을 몸을 일으켰다.
“좋아, 곧장 가자고.”
어디 그 잘난 낯짝 한 번 보러 가자고.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려는 순간,
“그럴 필요 없네.”
바깥에서 덤덤히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그들이 있던 안가의 문이 벌컥 열려 젖혀졌다.
“……?!”
깜짝 놀라 일어서는데,
“아, 굳이 일어날 필요 없네. 그냥 앉아 있으시게.”
허공섭물의 활용으로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척척 걸어와 당유혼의 맞은 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하…….’
“여기 안가가, 언제부터 보안이 이리 허술했지?”
“딱히 허술하지는 않을 걸세. 그러니 본관이 직접 행차한 것 아니겠나.”
물은 것은 하윤호지만 답은 다른 곳에서 돌아왔다.
그 말에 당유혼은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안면이 있는 방문자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성주를 뵙습니다.”
사천성주 이군학, 그가 하오문의 암가로 직접 찾아온 것이다.
“허례는 됐네.”
그 인사를 아무렇지 않게 받은 이군학이 빙글 웃었다.
“어차피, 지금 그런 인사나 하자고 만든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이런 웃음도 지을 줄 알았던가?’
지난번 보았을 때는 오만하기 그지없어 사람 머리 위에서 노닐 것 같은 양반이 이렇게 웃으니까 영 어색하기가 짝이 없다.
“왜,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어색한가?”
“썩, 편치는 않습니다만.”
“어쩌겠나. 높게 난 가지는 바람 잘 날이 없으니, 특히나 고귀한 피를 지닌 이들은 천 가지 가면과 백 가지 얼굴을 지녀야 하는 법이지.”
고귀한 피.
단순 전대 사천성주의 혈족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전대 사천성주 역시 황가의 피를 이었었지.’
비록 황궁에 있지는 않더라도 황위 계승권을 지녔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피곤한 삶을 살아온 삼십 대 중반의 사내는 껄껄 웃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잔에 스스로 차를 따랐다.
“자네라면 왠지 이해할 것도 같은데 말이지.”
그리고 은근한 시선을 던지니,
“…저 같은 소인이 어찌 그 뜻을 이해하겠습니까.”
뭘 더러운 눈알로 꼬나봐?
눈깔 안 치워?
당유혼은 학을 떼며 진저리를 쳤다.
“쩝, 경계가 짙군. 보통 내가 이리 저속한 면모를 보이면 다들 조금 편해지던데 말일세.”
이번엔 안 통하는구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천성주가 이내 다른 잔에도 찻물을 부어 당유혼에게 권했다.
“그럴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최, 어찌 여길 찾아오셨는지도 의문입니다.”
“이 장소를 어찌 알아냈냐는 물음인가? 그렇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질문이군.”
애초에,
“사천에서 일어나는 일을 본관이 모를 리가 없잖나?”
이군학의 눈이 기묘한 빛을 발했다.
그건 마치 상대의 전신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고, 언제나 우위에 선 자 특유의 여유가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분 더럽네.’
누군가 머리 위에서 노니는 기분이라니.
점점 머리에 열이 받기 시작하는 당유혼이었고, 그걸 지켜보던 하윤호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딱 봐도 가만 놔두면 뭔가 X될 것 같은 기분!
‘차, 참으십쇼! 참으라고!! 이 자식아 한 번만 참아!!’
어떻게든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지만,
“아하~ 그렇습니까?”
잔뜩 뒤틀린 탄성은 하윤호에게 한 가지 답을 알려주었다.
“하면, 그러면서도 아는 걸 보니… 성주님께서도 큰 욕심이 있으신 듯합니다.”
“큰 욕심이라면?”
“예를 들자면, 황위 계승에 대한 열망 말입니다.”
‘아…….’
이미, X됐다는 걸.
“…허어?”
한 박자 뒤늦게 흘러나온 탄성.
이를 악물고 천장을 바라보며 못 들은 척하는 하윤호가 애처로울 정도로 사천성주와 당유혼은 두 시선은 서로를 강하게 이끌고 있었다.
“황위 계승에 대한 열망이라……. 자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예? 그건 참 신기한 질문이군요.”
“신기한 질문이라니?”
“아니, 성주님이 역천을 꾀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답이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
이번에는 사천성주마저 눈을 크게 부릅떴다.
‘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
지켜보던 하윤호는 완전히 정신이 어질어질해져 어디론가 나가버릴 것 같았고, 장내에는 무겁다 못해 가내 집기를 다 박살 낼 것 같은 압도적인 중력의 침묵이 감돌았다.
“…하.”
그것을 찢어발기며 흘러나온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실소.
“…보통이 아닌 사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면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 아닌가?”
이군학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탄성을 흘리며 물었다.
“자네, 혹시 목숨이 두 개쯤 되는가?”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있겠습…….”
…있나?
“큼큼, 아무튼. 이건 저 역시 살길을 찾자고 하는 겁니다.”
“그런 이가 쉽게 담을 말은 아닐 듯하네만.”
“쉽지 않게 담았습니다.”
쉬울 리가 있나.
“요즘 세상이 그럽니다. 뭔 다들 앞다투어 달려가기들 바쁜지, 저는 가만히 있고 싶은데 그럼 알아서 뒤처지더랍니다.”
“그것이 세상의 섭리이지 않겠나?”
“예, 그런 세상이니 어쩌겠습니까. 뒤처지기 싫으면 앞으로 나가야지요. 한데, 또 애매하게 앞으로 나아가려니 옆에 있던 놈들이 경쟁자랍시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가장 앞서서 치고 나가야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군학은 문득 눈앞의 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대담을 떠올렸다.
“내가 뭐 하려고 이 자리까지 올랐는데. 나는 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 자리까지 올랐다네.”
“권력…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자네는 권력이 무엇인지 아는가?”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남이 하기 싫은 것을 강제로 하게 하는 힘. 그게 권력 아닙니까?”
…권력인가.
“딱히 권력을 탐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마음 같으면 그걸 탐하지 않는 이가 있냐고 묻고 싶지만…….”
사실 맞다.
귀찮다.
‘권력 그딴 거, 가져봐야 신경 쓸 것이나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어떻게 알아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권력은 별로 싫네요.”
권력이 필요하기는 한데, 그걸 내가 가지고 싶지는 않다.
“하면, 본관을 후원하겠다는 것인가?”
“쓸 만한 돈줄 하나 있으면 좋잖아요. 그게 상단이면 더 좋을 테고.”
“상단이라…….”
확실히 권력이 생기면 재력은 따라온다지만, 권력이 생기기 위해선 재력이 있어야 한다.
“듣자 하니, 아직 전속 상단을 고르지 않으셨다더군요.”
“흐음…….”
그것을 어찌 알았을까.
이군학의 시선이 하윤호에게로 향하자, 하윤호는 괜스레 옆을 돌아보며 헤헤 웃었다.
“…하긴, 모르는 게 이상하겠지.”
바로 옆에 사천 제일의 정보통이 있는데.
“해서, 자네에게 맡겨 보라는 건가?”
“마침 괜찮은 상단을 소개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괜찮은 상단? 그건 마치, 이제 막 만들어진 상단이라 들리는데…….”
“아휴, 새로 만들어진 상단이라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존 상단이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통해 세상에 이제 막 이름을 선보이는 참이거든요?”
일단 한번 잡수어보라고.
“장강수로상단. 장강 전역을 장악한 상단이 하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