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61화 (161/350)

161화

* * *

무려 구십구 일하고도 하루.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법구 하나 만든다고 사용한 시간은, 내가 당가로 돌아온 이후에 무언가 하나에 투자한 시간 중 손에 꼽을 정도로 길었던 기간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법구만 만들고 있지는 않았다. 할 일은 많고 몸뚱어리도 바쁘니 그동안 이것저것 한 것도 많았지.

“어어? 비켜, 비켜비켜!!”

“야야야야! 넘어간다!!”

싱글벙글 사천당가의 하루는 대개 저런 소리들로 가득했다.

벌어오는 재물은 족족 창고에 쌓이기보다는 소비와 투자로 환원됐으니까.

“저 건물이 미관을 해치니 썩 마음에 들지 않는구만.”

근 삼십 년간 먼지만 차곡차곡 쌓여온 건물들.

좋게 말하면 역사와 전통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이 구식이고 유행에 뒤떨어진 건물들은 통째로 철거에 들어갔다.

“대, 대형!! 이거 진짜 밀어도 되는 것 맞습니까?!”

“선조님들의 유혼이 이 건물에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유혼은 내가 유혼이다, 인마.”

선조는 내가 선조인데 무슨 선조야?

포악한 일축과 함께 그런 목소리들은 철거되는 건축물의 잔해와 함께 파묻혔다.

물론, 그 백 일간의 여정이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암만 그동안 당가가 돈을 쓸어 담듯이 벌어왔고, 그에 따라 이 건물 저 건물들을 허물고 새로 짓기를 반복해 왔음에도, 아직 밀어버리고 새로 올릴 건물 부지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요구되는 재정과 인력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지만, 다행히도 현 당가에는 그 두 가지가 절대적으로 남아돌았다.

‘성주 양반,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하구만?’

사천성주 이군학.

하오문 사천지부장 하윤호.

장강수로상단 천재 모사 육언.

그리고 입의당의 수십의 문사들.

중간에 아니꼬운 놈이 하나 끼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부정할 수 없는 난놈들이었다.

특히나 사천성주 이군학과 장강수로상단의 육언은 확실히 시대의 천재들이라 부를 만했다.

그들이 소매 걷고 달려드니 어떤 일이든 파죽지세로 쓸려나갔다.

‘듣자 하니 벌써 장강 물류의 삼 할을 집어삼켰다지?’

사천으로 들어와야 할 물류들이 전부 장강수로상단을 거치며 그 수수료를 빨아들이다 보니 진정 흡성대법 시전하듯 중원의 금계(金界)에 영향력을 뻗기 시작했다.

‘물론, 이 와중에 잡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기존 사천성에 물건을 발주하고 운송하던 상단들이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밥줄이 위태위태하게 생겼는데 어찌 이걸 가만 듣고 있을까?

그래서 그들에게는 적절한 유화책이 주어졌다.

첫 번째는 철저한 자료와 증명에 기반한 묵직한 일격.

“음? 억울하다고? 신의가 없다고? 허허, 자네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상인의 상도이자 신의는 결국 가격 경쟁 아닌가? 이것들을 보시게.”

보따리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찾아온 이들에게 내밀어진 것은 물류 운송 내역서.

기존 중원 산지 굽이굽이진 길을 지나며 상행을 운용하던 이들과는 달리, 말먹이도 말값도, 마차 수레 비용 및 표사 운영비 등등 대부분의 각종 인건비가 필요 없이 물길이라는 자연의 동력을 통해 운행되는 장강수로상단의 운송비는 그야말로 파멸적인 것이었다.

“이, 이건……!!”

적당히 해 처먹는 걸 포기하고서라도 협상에 나서려던 상인들이 입을 쩍 벌린 채 충격 속을 헤엄치다 돌아가는 걸 본 이군학은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주었고, 간혹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두 번째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응? 아, 자네들은 그것보다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고? 저들이야 먼 곳에서 오니 물길을 이용하는 것보다 금액이 많이 나오지만, 그대들을 인근에서 운행하니 물류 비용이 적을 수밖에 없다라……. 흐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만.”

무식하게 무력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상인에게는 상인다운 방책을 제시했을 뿐.

“하면 이건 어떤가? 본관이 아는 상단이 있는데, 이곳에 맡기면 물류를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운송시킬 수 있다네?”

바로 역제시!

진짜 인근에서 물건을 떼오는 이들이라면, 차라리 그들 물건을 장강수로상단에다 싣고 다른 지역에다 끼어 팔기 전략을 내민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장점인가? 기존 자네들이 상행을 운용하기 위한 비용과 시간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네. 특히, 물류를 지키기 위한 인건비가 대폭 줄어들게 될 것이고, 그 보증과 신용도 본관이 책임을 지겠다네. 물론, 단가 자체야 낮게 책정되겠지만… 그보다 물자의 순환이 더욱 빨라짐이 주는 이득이 더 크지 않겠는가?”

사천성주 이군학.

그도 대단한 인물이기는 했다.

무려 성주에나 해당되는 인물이 직접 사천 상계의 반발을 진압하겠다고 나서서 협상을 진행했으니, 중간 관리자 여럿의 번거로운 승인 절차를 전부 생략하고 즉석에서 일 처리를 완료했다.

덕분에, 장강수로상단 입장에서도 힘들게 물자를 발주해 올 필요 없이 중계 수수료만 받아 챙겨도 충분히 이득이었다.

자고로 표행이란 산을 지나며 잘 닦이지 않은 길을 지나느라 부서지는 수레 비용, 산적들을 만났을 때 협상 비용, 그게 잘 안 될 때 칼춤 한번 시원하게 추어줄 표사 운용 비용 등등이 큰 비율을 차지하는데, 애초에 장강수로상단에는 그딴 비용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걔네들이 전직 수적들이잖아.’

이제는 과거를 청산한 장강수로채다.

피 묻은 손은 씻는다고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고로 이 무림에 살아가는 이들 중 핏값에 자유로운 이가 몇몇이 될까?

칼 잡던 손을 놓고 그 위에 표물을 들어 올려주었으니, 이제 다른 상단이 장강을 이용한다 해서 괜히 그들을 겁박할 리는 없으나 이전까지의 두려움이 남아 있는 상단들은 장강을 쉬이 이용하지 않아 결국 독점 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나중에 가면 장강수로채에 대한 악명이 완연히 씻겨 나가겠지. 그것은 곧 장강수로상단의 신용이 일정 수위 이상을 넘어가는 시기가 될 터.’

그때 가서 다른 상단이 하나둘 장강을 이용하기 위해 나선다 한들 별 상관은 없다.

이미 그때까지 쌓인 신용만으로도 장강수로상단은 대부분의 상행과 표행을 따놓을 수 있을뿐더러, 그들보다 물길을 더 잘 아는 이들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장강수로상단의 발족과 재정적 부담이 동시에 해당되었으니 남은 것은 가문을 재건축할 인력 부분이었고, 이건 당연하게도 재정적 부담보다 더 쉽게 해결되었다.

“밀어버려.”

손끝으로 가리킬 때마다 절정 무인 서른세 명이 달려들어 낡은 건축물을 허문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이 감각!

손짓 턱짓만으로 산이라도 허물 수 있는 권력의 달콤함이란.

‘진작 이렇게 살았어야지!’

일반인들을 도저히 불가능한 파멸적인 철거 속도로 옛 잔재들을 밀어버리고 나면 그 위로 새로운 건축물들이 뚝딱뚝딱 만들어졌다.

“좋아좋아. 역시 여러 번 하니 익숙해지는구만?”

전문 목공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일 년 넘게 자급자족 생활을 시켰더니 차양당 방계들은 숙련 목공 수준으로 손재주가 불어났다.

원래라면 못할 것들도 내공의 도움으로 밀어붙이는 덕에 빠르게 작업 속도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빨랐다.

당연하지만, 이 역시 불만의 목소리는 많았다.

“대형!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이걸 왜 해야 합니까?”

“허허, 왜 해야 하냐고? 이야, 대단하네. 이젠 이유도 물을 줄 알고?”

고기반찬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뼈가 튼튼해진 걸까.

이 반골 종자를 어찌 저며줄까 고민하고 있자니 당지명은 화들짝 놀라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효율이 나쁘지 않습니까!!”

처맞기 싫은 당지명은 필사적이었다.

“저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천에 고용할 인부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걸 굳이 저희가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당가는 결국 무림에 속한 무가(武家)! 무가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는 소속원들의 무(武)의 수준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 이제 혓바닥 좀 굴러간다?”

이젠 기름칠을 해놓았는지 제법 혀를 굴릴 줄 아는 모습에 당유혼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려 주었다.

“좋아. 나 없으면 네 녀석이 가문의 중대사를 봐야 하니 답해 주마. 그래, 우리에게는 분명 그만한 금전적 여유가 있다. 사천이라는 대도시에는 그 금력으로 고용할 인부들도 많겠지.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다.”

그래, 그게 문제다.

내가 괜히 이놈들 편히 노는 꼴 보기 싫어서 굴리는 게 아니라, 진짜 시간이 문제다.

“우리는 이미 성장 궤도에 올라탔다. 장강수로상단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그야… 이번에 대형께서 장강에 다녀오시더니 하나 만들어놓으신 그 상단 아닙니까?”

“그래. 사실 말이 장강수로상단이지 지분의 삼 할쯤은 우리 가문에 속한 상단이라 봐도 무방하지. 그게 현재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어… 그런데요?”

“하아… 이 무지한 놈을 어찌할꼬.”

좁다.

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그런지 아직도 천하 정세를 보는 눈이 좁다.

“말했잖냐. 지분이 삼 할쯤 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 가문이 그들 상단을 대표하는 곳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이야 작은 거래나 기존에 유지되고 있던 거래들만이 지속될 뿐이지만, 훗날 갈수록 점점 큰 건수들이 유치될 게다. 그런 거래는 대게 본가로 직접 와서 진행되겠지.”

“아! 그때 본가의 모습이 곧 얼굴이 된다는 뜻이군요!”

“그래, 바로 그거다.”

이미 장강수로상단의 확장성은 비탈길에서 굴린 눈덩이와 같다.

불어가는 속도가 점점 클 수밖에 없고, 몰려오는 큰 건수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잠깐 미뤘다가 다음에 다시 하자고?

‘개뿔. 기회가 어디 항상 주어지나.’

원래라면 성장에 맞춰 천천히 내실을 다지려 했지만, 성장세가 너무 가파르다 보니 내실을 다지는 속도 역시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러기 위해선 무공을 익히지 못한 일반인 대신 무인들이 투여되어야 했다.

그러기에 딱 좋은 인력도 있었고.

“좋게 생각해. 운동도 되고 좋잖아?”

새벽에 철근 차고 절벽 오르며 약초 캐는 것과 같은 맥락 아닐까?

“이건 운동이 아니라 노동인 것 같은데…….”

그리 설명하고도 당불퇴 등에게서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뭐? 잇팔, 운동이 아니야? 이야, 이 자식들 몸이 가볍나 보네? 지명아, 뭐 하냐! 우리 불퇴 몸이 가볍단다!”

“아, 아니 형님!! 그, 그게 아니라!!”

“빨리 차, 이 자식아!”

괜히 한소리 했다가 팔뚝에 차여진 쇠수갑의 무게만 늘어나는 당불퇴였으나, 다른 방계들은 변호해 주긴 개뿔, 자신들도 괜히 무게만 늘어날까 봐 서둘러 사지를 붙잡고 수갑들을 채웠다.

“여하튼, 그리 알고 열심히들 짓고 있어라.”

뚝딱뚝닥.

건물 짓는 소리와 당불퇴의 곡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오늘도 평화로운 싱글벙글 사천당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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