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66화 (166/350)

166화

마을 사람은 보부상으로 변장한 일행을 촌장에게로 안내했다.

촌장의 집은 마을 중앙에 있었는데, 주변 건축물보다 좀 더 크고 오래되어 보일 뿐, 이렇다 할 특이점이 없었다.

“촌장님. 보부상 일행이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똑똑똑―

나무 문을 두드리며 마을 사람이 소리치자, 곧 안쪽에서 늙수그레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보부상?”

촌장은 일행을 발견하자 의외라는 듯 눈을 몇 차례 깜빡였다.

“이 마을에는 딱히 팔 게 없소만…….”

“촌장님. 이들은 거래를 위해 들른 것이 아닙니다.”

일행을 안내한 마을 사람이 촌장에게 대신 상황을 설명했고, 한 차례 사연을 들은 촌장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려. 하면, 하룻밤 묶어갈 곳을 제공해 주면 되겠소?”

“아이고, 그래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요. 사례도 섭섭지 않게 해드릴 테니…….”

“허허, 괜찮소. 사해가 동도라는데 돕고 살아야지. 그리고 제공해 드린다고 한 곳도 실은 마을의 공용 창고로 쓰던 곳이오. 그리 대단할 것도 아닌 곳이지.”

손사래를 친 촌장은 다시금 마을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곳으로 안내해 드리게.”

“예, 촌장님.”

* * *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요. 다만, 밤중에는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마을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있어서 큰 소리에는 깜짝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공용 창고라는 곳으로 안내한 마을 사람은 그리 말하고 떠나갔다.

과연 마을 전체에서 공용 창고로 쓰인 곳이라 그런지 건물 내부는 꽤 컸고, 바닥에는 짚이 두텁게 깔려 있었다.

습기가 지고 쾨쾨한 냄새가 났으나 밤이슬을 피해 하룻밤 묵어가기에는 충분한 곳, 딱 그 정도 평가로 결론 지을 만한 곳에 도착하자 당불퇴는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주변을 휘적휘적 둘러보았다.

“흠, 나름 쓸 만한 곳이네요.”

“쯧쯧, 이놈 불퇴야. 너는 불안하지도 않느냐? 그리 편히 앉게.”

당지명이 핀잔을 주자 당불퇴는 억울한 듯 항변했다.

“아니, 저도 불안하거든요? 딱 봐도 수상한 양반에 수상한 사람들이 안내해서 기분이 뒤숭숭한데. 그래도 그렇다고 뛰쳐나갈 수는 없으니 체력이라도 보존하는 겁니다.”

“응? 수상하다고? 무엇이 말이더냐?”

당불퇴의 볼멘소리에 당지명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 그, 그건 뭐라 딱 짚어 말하기 곤란한데… 음, 그냥 마을 사람들 전부 다 엄청 수상하지 않았습니까?”

“…뭐, 느낌적으로 그렇다는 소리냐?”

“아니!! 진짜 엄청 수상했는데?!”

마땅히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수상하다는 말에 당지명의 시선이 차갑게 식자 당불퇴는 억울함이 폭발해서 손을 붕붕 저었다.

물론, 그럴수록 신뢰도는 바닥을 치달았지만.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당불퇴의 구원군은 존재했다.

“그건 나도 소형제의 말에 동의한다네.”

“대전사님?”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둘러보던 적웅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하지만 나 역시 마을 사람들을 보며 굉장한 이질감을 느꼈다네. 뭐라 할까, 산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나 할까?”

“예……?”

그 말에 당지명은 더더욱 혼란스러워했고,

“정확한 표현이시군요.”

그 종지부를 찍은 것은 홍수월이었다.

“산 사람이 아니기에 그리 느끼신 것입니다. 과연 감이 좋으십니다.”

섭선을 펄럭이며 느긋하게 말하는 홍수월이었으나, 그 내용은 결코 느긋할 수가 없었다.

“사, 산 사람이 아니라니요?”

“정교하게 흉내 내어 정확히는 느끼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죽은 이들, 혹은 인간이 아닌 이들이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은인?”

차례는 지금까지 가히 있던 당유혼에게로 넘어갔다.

“뭐… 그렇죠. 둘이서 그리 느낄 만한 이유도 있고.”

“대형까지 무섭게 왜 그러십니까……. 그, 그리고 이유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쯧, 넌 못 느꼈냐?”

한심하단 시선을 한 번 쏘아준 뒤 말했다.

“우리를 안내해 준 마을 사람들이나, 그 촌장이라는 양반. 그리고 마을을 지나다니던 모두.”

그 전부가,

“아무도 숨을 쉬고 있지 않았잖아.”

“……!!”

당지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혀, 형님?! 아니, 정신 차려 보십쇼!!”

“으어어…….”

눈이 돌아가며 혼절해 버렸다.

‘저 새끼는 또 왜 저런다냐.’

어휴, 한심한 녀석.

저 혼자 기절해 버리는 녀석은 대충 당불퇴에게 맡겨버리고, 말이 통할 만한 홍수월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보고 있어요? 숨을 안 쉬는 걸로 봐서는 이미 망자일 것 같은데. 강시술이라 치기에는 관절의 움직임이 너무 부드러웠거든요.”

금술로 불리는 강시술은 인간의 능력을 생전보다 몇 배는 폭증시켜 주지만, 그 대가로 비인간적이게 변하는 제약이 몇 붙는다.

대표적인 게 피부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고 근골의 강인함을 억지로 쑤셔 넣다 보니 움직임이 뻣뻣해진다는 것인데,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런 특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무공의 영역은 아닌 듯합니다. 사령술의 일종이 아닐까 싶은 게 저의 추측이지요.”

“사령술?”

“영과 백을 조종하는 것. 이지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망자가 생전에 가지고 있던 행동 습관을 고스란히 복습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투력의 상승은 크게 없지만, 흉내 내기에는 적합합니다.”

“흉내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자니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당지명이 끼어들었다.

“대, 대형… 저, 정말 저들이 산 사람이 아닙니까? 그럼 대체 왜 우리를…….”

“끌어들인 거지.”

생각해 보면 수상한 점은 많았다.

“의아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더냐?”

“그야 인심 좋은 마을이라…….”

“인심? 하. 지명아, 지금이 인심이 좋을 수 있는 시대냐?”

현시대는 만가장패라 불리우는 범대륙적 개판이다.

협의가 바닥을 굴러다닌다는 나타 협의를 지나, 온갖 집단들이 이득을 위해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양민들의 생활이 고달파진 그런 시대.

“그런 시대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리 쉽게 공간을 내줘? 아니, 하다못해 주변 사람이 실종되고 있다는 이 시기에?”

“아…….”

그 얘기를 의도적으로 숨긴 것까지, 분명한 의도가 느껴진다.

“대체 그들은… 아니, 이 일을 꾸민 이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글쎄다. 적어도 하나는 알겠군.”

“그,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를 안내한 양반의 말을 떠올려 봐.”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요. 다만, 밤중에는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마을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있어서 큰 소리에는 깜짝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이전까지 이어진 친절한 행동. 그리고 아기가 있으니 소란을 자중해 달라. 분명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해달라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 말을 듣고도 진짜 사람을 부를 생각은 못하겠지.”

“그럼…….”

“우리를 여기 가둬두는 것. 그게 이 일을 꾸민 놈의 목적이겠지.”

“……!!”

당지명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드는 순간,

덜컹! 덜컹!

“대, 대형!! 여기 문이 안 열립니다!!”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듯 문 입구로 향한 당불퇴가 문고리를 열어젖히려 했지만, 문은 바깥에서 단단히 잠긴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철컹―

갑작스레 기관 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어억?!”

그들이 선 바닥이 아래로 쑥― 꺼져버렸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그때, 홍수월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풍월주(風月主).

돌개바람의 춤.

그와 함께 돌연 바람이 몰아치더니 일행의 추락 속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추락 자체를 저지할 수는 없었지만, 다들 몸을 가눌 여유 정도는 찾을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 무사히 바닥에 두 발을 디뎠다.

“생각보다 높지는 않군요.”

바닥을 짚풀이 풍성히 깔려 있었다.

삼 장 정도 떨어져 내렸지만, 짚풀이 워낙 무성히 깔려 있었기에 떨어져도 다리가 접질리는 정도로 끝날 듯했고 숙련된 무인이라면 그사이 낙법을 취해 찰과상 정도에 그칠 듯했다.

다만, 그게 결코 상황이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나가게 할 생각은 없었구만?”

머리 위는 바닥이었던 나무판이 양쪽으로 갈라져 벽에 붙어 있었고,

“형님! 이쪽에 통로가 있습니다!”

떨어진 곳은 삼면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에만 통로가 나 있는 형세.

이건 뭐,

“대놓고 들어오라는 뜻이잖아.”

어이가 없네.

“이럴 거면 납치라도 하지. 뭔 알아서 걸어 들어오란 거냐?”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따로 없다.

“악취미군요.”

홍수월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에 끌려온 이들은 전부 이 토굴 속으로 들어가게 설계한 구조……. 아마, 이전에 실종된 이들은 다 제 발로 이 길로 들어갔을 듯합니다.”

다들 이를 갈았다.

사람을 납치한 것도 죄질이 극악한데, 그들을 제 발로 사지로 들어가게 만들다니.

“대형. 어찌합니까? 어쨌건 사람들을 구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인 것 같은데…….”

양자택일의 상황이다.

사람을 구하려면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그랬다간 뻔히 적의 속셈대로 되는 것이니까.

사실상 답이 정해진 문제에 당지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어찌하긴 뭘 어째?”

“역시 진입합니까? 그럼 제가 선두에…….”

“뭔 개소리야?”

이 새끼 오늘따라 진짜 뭘 잘못 먹었나?

“우리가 문제 풀이하냐?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대로 따라주게?”

“옙?”

“지명아, 지명아.”

꼭 기억하렴.

“자고로 이럴 때는, 출제자가 가장 싫은 상황을 만들어주는 게 해결책이다.”

“…그게 뭡니까?”

“주변을 돌아봐라, 어때, 보이냐?”

주변이요?

“어…….”

뭐라 해야 할까?

삼면이 벽이요, 한쪽은 토굴이다.

그 위로 따지자면 사면이 흙벽으로 되어 있으며 또 그 위에는 낡은 창고였던 감옥이 있으니,

“…답이 없어 보이는데요?”

그야말로 답이 없다.

“에휴.”

“아, 아니 어쩌란 겁니까?”

진짜 억울하네!!

울상 짓는 당지명이지만,

“지명아. 답이 없으면 만들어야지. 그거 가져와 봐.”

당유혼은 한심한 듯 쯔쯔 혀를 차며 손가락을 까딱여 구석에 놓여있던 등짐을 가리켰다.

“예? 이건 어쩌시려고 말입니까?”

보부상 연기를 하며 가져온 묵직한 등짐.

연기를 위한 소품이기도 했지만, 마냥 소품으로 쓰려고만 가져온 것도 아니었으니,

“딱 봐도 여기 만들려고 고생한 출제자의 노력이 느껴지지 않냐?”

등짐을 풀어헤치니, 그 안에서 무거운 철구들이 여럿 떨어졌고,

“잘 봐둬.”

스스스…….

그것들은 이내 스르르 허공에 떠올랐다.

나선포(螺線砲).

벼락의 길.

콰콰콰콰쾅!!

아래에서 위로.

역주행하는 벼락과 같이 퍼부어진 철구의 벼락이 단번에 창고의 벽을 박살 냈다!

후두둑…….

무수히 떨어지는 ‘창고였던 것’의 잔해들.

어두운 하늘이 보이고, 별빛이 쏟아지는 아래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흙먼지들을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대충 흘려내는 당유혼이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알겠냐?”

자고로 말이다.

“깽판은 이렇게 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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