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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67화 (167/350)

167화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당지명은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믿기지 않아 눈을 몇 차례 깜빡였다.

하지만 우수수 무너지는 창고 잔해는 그것이 분명 현실임을 인지시켜 주었다.

그리고,

“정신 차려.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그 비현실적이 현실을 만들어낸 당유혼은 곧장 위로 솟구쳐 올랐다.

삼 장의 높이를 도움닫기 한 번으로 뛰어넘어 버리는 당유혼의 다음은 적웅이었다.

“호쾌하군.”

짧은 감상을 남긴 적웅 역시 콰앙! 하고 땅을 박차고 치솟아 밖으로 빠져나갔다.

“흐음,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그다음은 홍수월.

그는 또다시 신묘한 술수를 부려 바람을 일으키더니, 그 바람에 몸을 싣고 위로 솟구쳤다.

“형님, 저희도 나가죠.”

“…그래, 그러자꾸나.”

더 놀라서 뭐 할까.

당지명도 결국 이 공간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휘릭―!

손을 한번 휘두르자 소매에 숨겨져 있던 은사가 쏘아져 저 위에 박혔고, 그걸 밟고 곡예 하듯 함정을 탈출했다.

그러자,

“…이런.”

그들을 반기는 것은 어느새 창고였던 것을 포위한 마을 사람들.

“으으으…….”

“크르르…….”

이젠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는 듯, 이지를 상실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싸워야… 합니까?”

“그럼, 가만히 당해 주게?”

“그건 아니지만…….”

도저히 손을 쓰기가 꺼려져 주먹만 꽉 움켜쥘 때,

“갈(喝)!!”

적웅이 한 걸음 나서더니 쩌렁쩌렁 함성을 내질렀다.

함성은 파동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고, 포위망을 형성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푹푹 허물어졌다.

“이건……?”

“미리 말해 주지 않아 미안하네. 섣불리 경고했다간 저들을 부리는 이가 듣고 대비할까 어쩔 수 없었다네.”

그 놀라운 기사를 만들어낸 적웅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고, 지켜보던 홍수월이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중단전을 이용하여 심령에 타격을 주는 술수이군요. 심령으로 이어진 실을 끊어낸다면, 괴뢰 상태의 이들은 그대로 허물어질 테니.”

“완전히 죽은 것인지, 아니면 술법에 당한 것인지 모를 이들과 싸우기는 영 속이 불편하지 않겠소.”

순식간에 주변이 정리되자 방계의 두 형제들을 그저 얼떨떨했고, 당유혼은 쯧쯧 혀를 차며 장내를 둘러봤다.

“암만 봐도 다들 괴뢰 인형인 것 같고… 수확이라 할 만한 건 없네요. 어때요, 뭐 좀 알아볼 만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홍수월은 쓰러진 이들 중 하나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며 진언을 외웠다.

그러자 검은 연기가 치솟더니 허공에서 형상을 이루었다.

“흠.”

그 놀라운 광경에도 홍수월은 당황하지 않고 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던졌고, 부적은 검은 연기에 휩싸이더니 타닥타닥 타올라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것 참.”

검은 형상과 부적이 함께 소멸하는 것을 본 홍수월은 곤혹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제물이군요.”

“제물?”

“의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 마을을 전체로 한 대규모 의식입니다.”

“하… 꼭 안 좋은 쪽은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더니.”

예상대로인가?

당유혼은 머릿속에 세워두었던 가정들이 안쪽으로 맞아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최소한 사교도의 의식 현장에 들어온 것 같은데… 실종된 이들은 아무래도 제물로 바쳐진 것 같죠?”

“그런 듯합니다. 다만, 아직 그들 모두가 제물로 바쳐진 것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근거는요?”

“이들 마을 사람들에게 새겨진 술법의 잔향이 상당히 오래된 듯합니다. 아마 최초로 사법에 당한 이들 같은데, 그들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제물의 가공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뜻합니다.”

실종 사건이 생겨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최초의 사법 희생자들이 이렇게 이지를 잃고 괴뢰 인형처럼 부려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식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꽤 복잡한 작업이라는 뜻이었다.

즉, 그걸 근거로 할 수 있는 해석은 두 가지였다.

“사람을 제물로 바쳐 이루어지는 인신 공양 의식이 벌어지고 있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파훼하자면 지금이 바로 적기라는 것이지요.”

시기를 적절히 잘 맞춰 왔다고 해야 할지, 고약한 상황에 말려들었다 해야 할지.

당유혼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매우 짧았다.

“확실히, 지금이 적기군.”

뭔진 몰라도 한창 의식이 진행되는 중이고, 의식을 막을 병력이라고 만들어놓은 것은 시간이 꽤 지난 상태다.

만약 이것이 전장이고 이곳이 적들의 병영이면 무장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는 걸 의미했다.

“홍수월. 원거리에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술법이 있나요?”

“있습니다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이 일대에 설치된 기이한 기류가 원격으로 행해지는 술법의 교류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에잉, 쯧.”

예상한 답안이지만, 직접 들으니 영 입맛이 썼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나머지는 여길 지켜줘요. 내가 저 안으로 들어갔다 와볼 테니까.”

“예? 대, 대형!!”

“잠시만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렇게 되자 당황한 건 방계 두 명이었다.

“설마 대형, 그 토굴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이십니까?”

“미쳤습니까?!”

“지극히 제정신이시다.”

당지명과 당불퇴가 깜짝 놀라 소리치든 말든, 당유혼은 가져온 짐들을 풀어 무장을 하고는 말했다.

“들어서 알겠지만, 뭔가가 우리 발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딱 봐도 송장 썩는 듯한 악취가 풍겨 나오는 게, 어디 더러운 사교도놈들이 무시무시한 흉계를 꾸미고 있겠지.”

그리고 난 그걸 가만두고 봐줄 만한 심성이 악한 사람이 못되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걸 왜 혼자 가시냐는 겁니다.”

“왜냐고?”

당연한 걸 묻네?

“너희는 약하잖아.”

“아…….”

명치로 꽂히는 묵직함!

방계 두 명이서 허망한 표정을 지을 때, 당유혼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뭐, 농담이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너희도 제법 쓸 만해졌으니 함께 간다면 안에서도 도움이 되겠지.”

“그럼 왜…….”

“문제는, 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거다.”

원래 흉악한 사파 새끼들은 어떤 짓거리를 저지를지 모르거든.

“기껏 들어갔던 비밀 통로는 항상 뒤에서 닫히고,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병력들이 몰려오지. 그게 유서 깊은 사파놈들의 전통이거든.”

외형은 이제 막 성년이 된 청년이지만, 그 속은 닳고 닳은 노강호.

무림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시비비에 다 얽매였던 만큼, 사람을 함정에 빠트리는 수법은 질리도록 겪었다.

“많은 걸 할 필요는 없다. 딱 여기서 지키기만 해. 나도 목숨 걸고 안에서 싸울 생각은 없으니, 답 안 나오면 튈 거거든.”

그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짝―

거기까지 말한 당유혼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잡설과 사족은 여기까지.

무시무시하고 구리구리한 사파 놈들의 소굴 앞에서 이 이상의 사담은 나눠봤자 의미가 없다.

‘자고로 사파 놈들을 대처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세상에서 제일 빨리 달려가 대가리를 깨버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세상에서 제일 빨리 달려가 대가리를 깨버리는 것이며, 세 번째도 세상에서 제일 빨리 달려가 대가리를 깨버리는 것이니까.’

확고한 방침이 내려지자 결국 방계 두 명도 힘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럼, 얘들 좀 부탁할게요.”

“걱정 마십시요.”

“무사히 다녀오시게.”

그래도 든든한 홍수월과 적웅이 있어서 다행이다.

최소한 퇴로는 확보했으니,

‘자, 어떤 흉악한 놈이 도사리고 있는지 한번 볼까?’

즐거운 사교도 토벌 시간이다.

* * *

“후… 역시.”

토굴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자연스레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불쾌감이 느껴졌다.

말해 뭐 할까, 이곳에 가득한 기운은 사람의 심신을 혼란케 하기에 충분했다.

‘침입자에 대한 저주가 가득하군. 잘도 이딴 걸 지하에 만들어 놨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유해한 기운과 복잡한 술법이 적용되어 있는 게 확실했다. 그래서 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이 정도 시설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을 테니, 만든 놈도 어지간해선 무너트리지 않겠지.’

대체로 사교도란 사람이길 포기한 놈들이 많지만, 그런 놈들일수록 어지간한 인간보다 욕망에 솔직하다.

놈들도 이리도 공들여 만든 걸 쉽게 잃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들어올 때 제일 걱정했던 건, 수틀리면 이 자식들이 토굴을 무너트려 암매장당하지나 않을까 싶었던 것들인데…….’

다행히 그런 걱정은 덜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실까.’

스르륵―

삽시간에 당유혼의 기척이 사라졌다.

천잠무흔(踐潛無痕).

당궁상에게 전수해 주었던 잠입술이 펼쳐진 것이다.

외부로 드러나는 기척을 완전히 감춘 채로 안으로 쭉쭉 들어갔다.

토굴은 기다란 통로로 되어 있어 외벽에는 일정 간격을 두고 횃불이 걸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도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갈수록 동굴 내부에서 풍겨 나오는 향과 기운이 더더욱 짙어졌다.

‘이건 뭐, 아편인가?’

단순히 사술만 펼쳐져 있을 뿐아니라 약물까지 동원한 듯한 것이 더더욱 사교도스러웠다.

‘미친놈들. 사천 앞마당에서 이딴 짓을 벌여?’

얼마나 간 큰 놈들인지, 그 낯짝이 점점 궁금해질 때 마침내 통로는 끝이 났다.

그리고,

‘제단?’

나타난 것은 거대한 공간.

중앙에 무언가 의식을 위한 단이 차려져 있는 제단이 높게 있었고, 그 아래 계단으로는 관들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하아…….”

암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도, 코앞에 이런 놈들이 성행할 동안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실로 한탄스러웠다.

그에 한숨을 푹 내쉰 당유혼은, 곧장 몸을 돌려 일권을 내뻗었다.

쩌엉!!

머리 뒤쪽에서 날아들던 무언가가 주먹에 부딪쳐 튕겨 나갔다.

제법 묵직함이 느껴지는 일차 기습을 튕겨 내자, 검은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쇄도해 왔다.

쐐액―

쾌속한 검격!

어지러이 검영(劍影)을 만들어 내는 검의 궤적이 시야를 흩트렸지만, 당유혼은 침착하게 그 사이의 빈틈을 꿰뚫고 손을 내뻗었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뇌명타(雷鳴打).

“커헉―!”

검영이 사라지고, 명치에 일격이 꽂힌 습격자는 비명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졌다.

“어떤 놈이 감히 이 몸 어르신을 습격했는지, 그 낯짝이나 볼까?”

뒤편에 누군가 숨어 있다는 것쯤은 이미 제단에 입장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뭐 하는 놈일까 싶어 가만 놔둬 보니 칼부터 휘둘러 오는 게 더러운 사교도놈일 게 분명했다.

과연 그 정체가 무엇인지, 이딴 곳을 만들고 무슨 더러운 술수를 획책하고 있는지 그 낯짝이나 한번 볼까 싶어 가는데,

“…엥?”

머리를 덮고 있던 거적때기가 바닥을 나뒹굴며 벗겨지고,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네가 왜 여기 있냐?”

“큭… 그,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입가에 피를 주륵주륵 흘리면서도 그 더러운 성질머리와 싸가지 없는 눈매는 조금도 굴함이 없었으니,

“설마 묻는데, 네가 여기 더러운 사교 의식을 진행하는 사파 잡놈은 아니겠지?”

“그 입 닥쳐라!! 나를 뭘로 보는 것이냐!!”

한 대 처맞고도 바락바락 목소리 크기는 정정한 청년 검수.

진혁수가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그러는 네놈은 왜 거기서 나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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