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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68화 (168/350)

168화

빼애액 괴성을 지르는 진혁수를 보며 생각했다.

‘다행히 어디 잘못되지는 않았나 보구만.’

마지막에 힘 조절을 하긴 했다지만, 명치에 제대로 얻어맞은 것 치고는 무탈해 보였다.

“나야 뭐.”

혹시나 이놈이 이미 사교도의 더러운 사술에 현혹되어 있는 상태라면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주먹부터 날렸겠지만, 보아하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것 같긴 해도 아직 정신은 멀쩡해 보였다.

우선은 바깥이 어찌 돌아가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미친… 그렇다면 너는 그 함정을 파훼하고서도 스스로 걸어들어온 것이냐?”

“함정은 멍청하게 당할 때야 함정이고. 그러는 넌 실종됐다는 녀석이 왜 여기서 나오냐?”

“나는…….”

진혁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 네 말마따나 멍청하게 함정에 빠졌다.”

이놈의 사정 역시 지지리도 고약했다.

하오문이 제공해 주는 정보를 통해 쉽게 쉽게 수상한 마을로 도달한 당가 일행과는 달리, 사문의 조력 따위는 일절 없이 홀로 이곳으로 향해야 했던 진혁수는 마을을 찾는 것부터가 고난이었다.

온갖 들짐승과 마주하고 길답지 않은 길을 오가며 사라진 사형제들의 흔적을 찾아야 했고, 그렇게 겨우 이 마을에 도착하니 깊은 밤이었더란다.

겨우겨우 인심 좋은 줄 알았던 마을 사람들을 만났나 싶어 하룻밤 묶을 곳을 얻으니, 갑자기 땅바닥이 쑥 꺼지며 이곳 지하에 갇혀 버렸다.

이 녀석의 출신이 청성이 아니라 당가였다면 절벽이든 함정이든 등반하듯 올라타서 탈출했겠지만, 아쉽게도 도 닦는 문파에서 절벽 타는 법은 안 가르쳐주셨단다.

“…해서, 여기 갇혀 있었다.”

그나마 가져온 벽곡단 몇 알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

실로 짠 내 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놈 참. 그럴 거면 안으로 들어가 보지 그랬냐?”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에 했겠지.”

툭 하니 묻자 녀석은 씁쓸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저 안쪽 구역으로도 진입했었다. 그래 봐야 한 시진도 버티지 못해 도망쳐야 했지만.”

“흐음?”

도망쳤다고?

“…그래. 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변명을 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저 안에는 괴물이 있다. 이 꼴, 이 상태의 나로서는 도저히 그 괴물을 감당할 수 없어 이곳에서 또 다른 사교도가 있다면 습격해 제압하고 인질로 삼아볼 요량이었다.”

“괴물?”

이런 오만한 놈이 괴물이라 부르며 쉽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 인정한다고?

그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진혁수가 먼저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건 괴물이라 밖에 부를 수 없겠지. 적어도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뭐?”

인간이 아니라고?

“좀 더 자세히. 자세히 말해 봐. 무슨 근거로 그게 사람이 아니라 판단한 거지?”

“근거라…….”

그 말에 진혁수는 씁쓸히 웃었다.

“아무렴. 덩치가 일 장에 달하고, 팔다리에는 사람 몸통만 한 굵은 쇠사슬을 동여매고 다니는 그것을 어찌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쇠사슬에… 일장에 달하는 덩치?

“생김새는? 생김새는 어찌 생겼지?”

“그건 모른다. 놈은 전신을 거대한 넝마로 뒤덮고 있어서 자세한 생김새를 알 수 없었으니까.”

“뭐 그딴 끔찍한 혼종이 다 있어?”

누가 사교도 놈들 아니랄까 봐, 온갖 이상한 것들을 다 키우는구만.

어휴, 할 수 없지.

“응? 잠깐! 뭐 하는 것이냐!”

“뭐 하긴, 어찌 생긴 놈인지 상판이나 보러 가려는 거지.”

어떤 끔찍한 얼굴을 숨기고 있는지는 직접 넝마를 벗기는 수밖에.

“지금까지 내 말을 뭐로 들은 거냐!! 지원군을 요청해야 한다! 너와 같이 온 이들을 불러와야 한다는 뜻이다!”

“걔들은 퇴로 막아야 한다니까?”

“이 자식아!! 지금 퇴로를 막고 있을 여유가 없다니까?!”

“어이가 없네. 네가 데려온 인원이냐?”

남의 집 병력을 왜 지네 집안 병력처럼 쓰려하니?

“지원군이 필요하면 네가 불러오든가. 애초에 여기 청성파 앞마당 아냐?”

“그, 그건…….”

그 말에 진혁수의 안색이 검게 죽었다.

“힘들 거다……. 아마도…….”

“쯧쯧.”

왜 힘든지는 굳이 안 들어도 알 만했다.

“됐고. 갈 거면 따라와라. 너희 동생들 구해야지.”

“뭐……?”

“네 동생들 안 구할 거냐?”

“그, 그 말… 설마 나를 도와주겠다는 말이냐?”

“흠, 그렇게 말하면 낯 뜨거운데.”

그런 낯간지러운 말은 취향이 아니다.

말하자면 뭐,

“겸사겸사?”

“……!!”

진혁수의 눈이 부릅 뜨였다.

상상도 못한 곳에서, 너무나 든든한 지원군이 떨어진 격이었다.

“네놈…….”

사실 반쯤 포기했었다.

사문마저 이득에 비해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손을 놓은 상황에서, 전혀 상관없는 이가 돕겠다고 나서다니.

“…어째서냐?”

“응?”

“어째서냐고 물었다. 너와 관련도 없는 일에,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드는 거냐?”

허허, 이 녀석 보게.

‘딱, 사명이 녀석한테 내가 묻던 말이네.’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고.

돈 안 되는 일에 뛰어들고.

관련 없는 일에 덤벼든다.

별 상관도 없는 일들에 온갖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끼어들던 녀석에게 질리도록 물었고, 질리도록 답을 들었다.

‘만약 녀석이라면 할 말은 정해져 있겠지만…….’

협의라든가,

대의라든가,

정의라든가,

귀에 딱지가 눌러앉도록 생긴 이유들은 많겠지만, 그건 도저히 내 취향이 아니거든.

“그냥.”

“…뭐?”

“그냥, 짜증 나잖아.”

내가 왜 굳이 끼어드냐 묻는다면, 그 이유는 진짜 간단하다.

“여긴 사천 앞마당이거든. 웬 약쟁이 놈이 우리 집 앞마당에서 좌판 깔고 사짜 냄새 풀풀 나는 약을 팔고 있으면, 당장에 달려가서 좌판을 걷어차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겠냐?”

미운 놈은 쥐어패 줘야 한다는 간단하지만 확실한 논리.

“너…….”

진혁수는 그런 내 논리에 감탄했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가자. 미약하지만, 도움을 보태마.”

“진작 그랬어야지.”

의견이 모아지고, 녀석이 도망쳐 왔다는 통로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제법 들어왔다 생각했는데, 안으로 길이 더 있었군.’

당연하지만, 불쾌 지수는 더더욱 솟구쳤다.

‘약물이 더욱 짙어졌군. 진법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고.’

이쯤 되면 어지간한 사교도 놈들이 만들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덩달아 이놈 표정도 썩어 문드러지고 있고.’

“버틸 만하냐?”

“…신경 쓰지 마라.”

“그럴 만한 안색이 아닌데?”

그나마 진혁수의 내공이 정순해서 버티고 있는 거지, 어지간한 놈들이 왔다면 진작 뇌가 약향과 사술의 영향으로 절여졌을 거다.

“…발목은 잡지 않도록 하마.”

“걱정 마, 잡으면 바로 걷어차 줄 테니까.”

“그거 빌어먹을 정도로 고맙군.”

대충 그런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나누며 걷고 있는데, 앞쪽에서 낯선 기척과 함께 기이한 소음이 들려왔다.

‘소음?’

드르르륵… 드륵…….

쇳덩이가 바닥을 긁는 듯한 그런 소리.

그러니까,

“…놈이다.”

진혁수가 낮게 경고성을 발했다.

직후, 회랑의 저편에서 거대한 덩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지하의 통로가 결코 좁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대부분을 채울 만큼 거대한 체구.

그리고,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귀… 찮… 아…….”

한 글자씩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 때,

‘…잠깐만, 뭐라고?’

어쩐지 익숙한 대사가 당유혼의 몸을 우뚝 굳게 만들었다.

“조심해라. 저 녀석은…….”

그 변화를 미처 느끼지 못한 진혁수가 자신이 아는 정보를 알려주려는 순간,

콰아앙!!

갑작스러운 폭음이 지근거리에서 울려 퍼졌다.

“…너, 너?!”

그건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편에 있던 괴인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더니 한쪽 팔을 묶어놓은 거대한 쇠사슬로 당유혼을 후려친 것이다.

“이런 괴물 놈이!!”

그걸 본 진혁수는 경악하며 청운적하검을 펼쳤다.

붉고 푸른 검기가 괴인을 뒤덮은 넝마에 작렬했지만, 괴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느릿느릿 몸을 틀었다.

“귀… 찮… 아…….”

조금 전 보여준 쾌속한 동작이 신기루인 것만 같은 느릿느릿한 목소리와 몸동작.

하나, 이미 진혁수는 이 괴물이 얼마나 쾌속무비한지 알고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방어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콰아앙!!

‘…컥!!’

내리찍는 쇠사슬이 얼마나 빠른지, 미리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에도 제때 피해를 흘려내지 못해 울컥 피를 토했다.

‘이, 이놈!!’

속도는 곧 파괴력.

머리 위로 내려찍는 쇠사슬은 무슨 아름드리나무를 통째로 뽑아 들어 내리찍은 듯했고, 넝마 사이로 보이는 흉흉한 눈빛은 그대로 자신은 벌레처럼 짓이길 것만 같았다.

이미 엉망진창의 몸 상태.

이대로라면 끔찍한 결말이 예상될 때,

콰아아앙!!

조금 전보다, 더욱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괴인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인사를 받았으면, 돌려주는 게 예의지.”

“너 괜찮… 헙……!”

한 방에 골로 간 줄 알았다가 돌아온 당유혼에 반색하던 진혁수지만, 곧 그 모습을 보고 기함을 했다.

‘몰골이……!’

단 한 방 격중당했을 뿐인데, 의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고 온몸은 피 칠갑이 되어 있었다.

방어를 하긴 했으나 겉 피부가 다 쓸려 피 칠갑이 된 모습은 그만큼 끔찍했으니까.

하지만,

“당연히 괜찮지, 좀 까진 게 끝이야.”

검게 죽은 피를 퉤― 하고 내뱉은 당유혼은 아무렇지 않게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작전 변경이다. 넌 여길 빠져나가 나랑 같이 온 일행들에게 가라.”

“뭐? 도망치란 말이냐?!”

순간 울컥한 진혁수가 소리쳤지만,

“야.”

스산한 목소리가 울컥거리던 감정을 얼어붙게 했다.

“지금 객기 부릴 때냐?”

“그, 그건……!!”

진혁수도 알고 있었다.

나타난 적은 도저히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하다못해 몸 상태라도 평소와 같았다면…….’

며칠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으며, 식사는 물론 운기조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존재는 그저 걸리적거리는 방해물일 뿐.

무거운 무력감이 전신을 내리누를 때, 당유혼은 툭 하고 던지듯 첨언했다.

“그리고 말이야. 여기서 나가는 거라고 마냥 쉬운 것은 아니고, 그냥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건 더더욱 아니거든.”

“…무슨 말이냐?”

“가보면 알 거야. 조심해. 너 가지 말라고 발목 잡고 매달릴 것들이 한두 놈이 아닐 것이거든.”

“……!!”

매복해 있던 사교도들이 전부 다 몰려나온다는 것인가?

검병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땀방울이 턱 끝에 매달려 뚝― 떨어질 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밖의 일행들을 부르면 되겠나?”

“아니, 거기서도 난리가 벌어지고 있을 거다. 그들을 도와서 어떻게든 퇴로를 확보하고 있어라.”

“알겠다.”

마냥 도망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 그나마 한 가지 위안.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려는 진혁수를 향해 당유혼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첨언했다.

“아, 그리고 말이야.”

혹시나 말하지만,

“검을 휘두를 때, 망설이지 마라.”

검을 쥔 이들에게 있어 기본 중의 기본.

새삼스레 말하는 내용에 진혁수는 의아함을 느꼈지만, 괜스레 반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렇게 하지.”

진혁수는 그렇게 먼저 공간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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