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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72화 (172/350)

172화

“이거구나.”

어디까지 도망친 건지, 추격전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하지만 추격전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흔적을 다 남겨놨잖아.’

그 거대한 동체가 바닥을 쓸고 간 자리에는 커다란 홈이 파헤쳐져 있었다.

찐득찐뜩한 체액과 독액은 녀석을 쫓는 이정표가 되어주었고, 그 이정표를 따라오니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여기가 네 마지막 은신처냐?’

문을 닫을 여유도 없었는지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는 흉흉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지하 공간의 가장 핵심적인 심처가 아닐까?

“그리고, 끝을 볼 장소겠지.”

혹시 모를 기습을 대비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워낙 빠른 놈이라 언제 뒤통수를 후려갈길지 모르기에, 전 방위로 천마살을 발동시킬 준비를 끝마친 채.

끼이익―

철문이 낡은 비명을 토해 내며 열렸고, 이윽고 내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알… 아니, 고치?”

그건 분명 하나의 고치였다.

유충이 성충이 되기 위해 실타래로 스스로의 몸을 휘감아 만드는 고치가 거기 있었다.

다만,

“…이미 늦었나.”

그 고치는 반으로 쩍― 갈라져서는, 안에 있었을 진득진득한 액체를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발목을 잡혔다지만 꽤 오랜 시간을 소요하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 왔… 구… 나…….

혀를 차고 있자 측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의 육성이 아닌, 의지를 직접 뇌에다 쑤셔 넣는 상위 종족 특유의 방식이었고, 그런 이능을 선보인 존재는…….

“…나비?”

놀랍게도, 온몸이 반쯤 녹아내려 몸부림치던 유충이 아닌, 이미 완전히 변태 과정을 끝마친 성충(成蟲) 상태의 검은색 나비였다.

“이 모습… 승급에 성공했구나.”

마수라고 다 같은 마수가 아니다.

무인에게도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 등의 급수가 나뉘듯 마수에게도 급수가 나뉜다.

당연하지만, 개기에 따라 승급을 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는 순간 마수는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바로, 지금처럼.

- 과연… 너는…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는 흑접(黑蝶).

녀석의 몸에는 부상이나 상처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말이 돼?’

지가 무슨 무협지 주인공도 아니고. 깨달음 한 번 얻는다고 그전까지 누적된 피해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고? 이거 사기 아냐?

- 실로… 기이한… 인간… 위대한… 근원을… 품은…….

내가 흑접을 바라보는 동안 흑접 역시 그 거대한 눈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마치 신기한 생물을 바라보는 듯했고, 나라는 존재를 찬찬히 관찰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다 죽어가던 놈이, 변신 한 번 했다고 다 이겼다 생각하는 거냐?”

저놈은, 이제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소리였다.

- 이해… 하지… 못 하는가? 지금… 내게… 깃든… 이 힘을…….

나비로 변했음에도 여전히 의지의 전달은 굼벵이같이 느릿느릿했다.

하지만 이전까지 느껴지던 게 답답함이라면, 지금 느껴지는 것은 여유.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확정 지은 상대에게는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여유의 근거로는,

‘저거겠지.’

반으로 쩍 갈라져 있는 고치 너머, 이 공간의 중앙에는 거대한 붉은색 돌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 시설이 존재하는 이유인가?’

온 주변의 마기의 흐름이 저 붉은 돌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 눈치… 챘는가? 저것이야말로… 내게… 맡겨진… 위대한… 사명…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거룩한… 은혜…….

그 돌을 바라보는 흑접의 눈에는 탐욕스러운 감정이 가득했고, 그건 실로 역겹기 그지없었다.

- 나는… 은혜로… 새로이… 태어… 났으니… 너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뭐래, 쥐어 터지다가 겨우 도망친 게.”

- 후후… 부정하고… 싶겠지… 지금의… 내게… 너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의문이… 드는군…….

붉은 돌을 바라보던 흑접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는 듯하더니 물어왔다.

- 어째서… 너에게… 위대한… 은혜가… 깃든… 것이지?

뭔 소리야?

이 자식이 뭘 잘못 먹었나 싶었다.

‘내게 위대한 은혜? 아, 그렇구나.’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 했지만, 곧 생각하기를 관뒀다.

자고로 마교도란 이해 불가의 존재다.

이놈들은 입만 열면 헛소리요, 사람의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 독을 뱉어대니 말을 섞는 게 멍청한 짓.

“네 궁금증은, 저승에 가서 먼저 가 있는 천마한테나 풀어라!”

곧장 지금까지 대화하는 척하며 준비해 뒀던 천마살을 퍼부었다.

자고로, 마교도와 나눌 것은 독과 암기뿐이라고?

푸화아악―!

승급하며 얼마나 빨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피해 낼 범위를 전부 덮어버리면 회피할 수도 없겠지.

천마살은 음유한 물결이 되어 허공에서 부유하는 마수의 전방위를 뒤덮어 갔다.

하지만 그 순간,

- 하찮… 다…….

부드럽게 일렁이던 흑접의 날갯짓에서 거대한 바람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바람은 검은 색채를 띠고 있었고, 그렇게 불어닥친 검은 바람은 천마살을 전부 날려버렸다.

‘뭐?’

암만 마교도 놈들에게 성능 확실한 천마살이라지만, 그것도 닿아야 의미가 있는 것.

검은 바람을 일으켜 천마살을 전부 날려 보낸 흑접은,

콰아아앙!!

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면에서 나타나며 앞발로 가슴팍을 내려찍었다.

“…커헉!!”

찰나의 순간.

두 팔을 겹쳐 방어 자세를 취하고 내공을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녀석의 발길질에 무자비하게 땅바닥에 처박혔다.

- 고작… 이 정도인가…….

흑접은 앞발을 뻗어 짓누르는 상태로 조소를 흘렸다.

유충 상태일 때보다 훨씬 가는 다리였지만, 그건 몸뚱이의 크기에 비례해서 가늘 뿐이었고 적어도 성인 몸통만 한 굵기는 됐다.

“이… 새끼… 발, 안 치워……?”

- 불신… 자여… 너는… 모르겠… 지만… 네게는… 위대한… 은혜가… 깃들어… 있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 이제는… 알 수… 있다… 그것은… 실로… 탐이… 나는 것…….

그 무게에 짓눌려 버둥거리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제 할 말만 하던 놈이 문득 강렬한 탐욕을 드러냈다.

“…뭐?”

그리고, 그 욕망의 종류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으니,

- 실로… 기대되는… 구나… 그것을… 취하면… 나는… 얼마나… 위대함에… 가까워… 질 수… 있을지…….

녀석의 거대한 몸뚱어리 정 가운데가 쩍― 갈라지더니,

- 내가… 받아… 가마…….

흉측한 이빨이 수백 개나 돋아난, 포악한 아가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새끼, 설마… 나를 잡아먹겠다고?’

그런 내 의문이 오해가 아닌 듯 쩍 벌어진 아가리 속에서 진액이 뚝뚝 흘러내렸고,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진액은 푸쉬쉬 소리를 내며 땅을 녹여버렸다.

“이런 미친놈이… 누가 누굴 먹어?!”

- 내가… 너를…….

먹어?

네가 나를?

“이게 미쳤나!!”

- 크르르르……!!

내 분노에 호응하듯 탐도 한껏 포효하며 권능을 발휘했다.

천마살이 퍼부어지며 나를 짓누르고 있던 녀석의 다리를 통째로 녹여버렸고, 그렇게 빈틈이 나자마자 가져온 암기통에 있던 비침을 있는 대로 집어던졌다.

푸푸푸푹!!!

“뒈져, 이 자식아!”

과녁이 크니 빗나갈 걱정도 없다.

수백 개의 비침은 녀석의 양 날개를 찢어발겼고, 그 안에 듬뿍 묻힌 극독은 마수의 몸뚱어리라 할지라도 한낱 고기덩어리처럼 녹여 내렸다.

“어디서 시건방을… 어?”

하지만,

- 크흘흘… 의미 없는… 저항은… 끝인가?

원래라면 고통에 몸부림쳐야 할 녀석은 음험한 조소를 흘려대고 있었으니,

- 보아라… 이것이… 위대한… 은혜…….

갈라지고 찢겼을 몸뚱이 사이사이로 은실 같은 게 보이더니, 잘리고 찢긴 것들을 다시 이어붙이고 없어진 곳에는 은실들이 스르르 뭉쳐 그 부위를 대신하였고, 그 끝에는―

- 나는… 죽음을… 거부… 한다…….

상처라고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는 원래의 몸뚱이로 돌아와 있었다.

“이런 미친. 무한 재생이냐?!”

삼십 년, 상대해 봤던 권능 중 가장 까다로운 것 중 하나.

칼로 베어도 들러붙고, 불에 태워도 자라난다.

머리를 부수든, 심장을 터트리든 뚝딱뚝딱 금세 손실 부위를 재생시켜 버리는 권능은 불사(不死)라는 단어를 연상케 했다.

‘물론, 진짜 불사는 아니지.’

그딴 게 가능했으면, 천마가 마교도 놈들의 우두머리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건 어디까지나 권능을 유지할 힘이 있을 때만 발동된다. 게다가 권능 중에서도 자원을 많이 먹는 축에 속하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권능. 하지만…….’

그 자원만 무한하다면, 불사를 흉내나마 낼 수 있는 것이 재생의 권능!

그리고,

‘하필 여기에는, 그 무한한 자원이 있다…….’

뒤편에 자리한 붉은 돌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오로지 흑접을 위해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 후후… 이제야… 깨달았는가…….

내 당황을 즐기듯 흑접은 천천히 날갯짓했다.

- 이 공간에서… 나는… 무적(無敵)이다… 너의… 그… 불경한… 독(毒)… 역시… 내게… 통하지… 않는다…….

‘개소리하는군. 통하긴 통하겠지, 의미가 없을 뿐.’

천마살이 극상성을 띄고 저 거대한 몸뚱이를 파괴해도, 그보다 더욱 빨리 부상을 수복할 뿐이다.

‘젠장, 그 사제 놈처럼 얼빠진 놈이라면 흐름을 어떻게 끊어보겠는데…….’

마수쯤 되는 상위 존재라면 그런 방식이 통할 리가 없다.

고작해야 중단전에 힘을 빌려와 쓰는 인간 따위와는 달리, 마수라는 상위 종족은 태생부터가 물속에서 태어난 물고기마냥 그 권능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니까!

- 절망… 하라… 그리고… 나의… 일부가… 되어라…….

“이거나 먹어라!”

답은 없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암기통을 전부 털어버리듯 가져온 암기를 전부 폭사하고, 중단전의 권능을 있는 대로 끌어와 천마살을 퍼부었다.

- 그아악……!!

마찬가지로 회피할 공간을 전부 틀어막은 공격이었기에 흑접은 온몸이 녹아내리고 찢기며 비명을 질렀지만,

- 의미… 없다……!

녀석은 그걸 있는 대로 다 처맞으며 꾸역꾸역 다가와 발차기를 갈겼다.

“커억!!”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나 역시 회피할 틈이 없어 다시금 벽에 처박혔다.

타닥타닥

전신이 천마살에 의해 타들어 가면서도, 흑접의 두 눈에는 탐욕의 귀화가 더더욱 이글거리며 피어올랐다.

- 나와… 하나가… 되는… 거다……!

어떻게든 몸을 버둥거리며 빼내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틈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쩌억―

녀석의 거대한 아가리가 벌어지며,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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