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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73화 (173/350)

173화

끝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그 괴물 녀석한테 씹어 먹히는 최후를 맞이하지 않더라도, 사실 나는 녀석의 앞발에 짓눌리는 순간부터 이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여기까진가?’

마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주는 육체의 부하.

마수와의 전투에서 축적된 부상.

나태의 사제를 초살하기 위해 공동에 가득한 마기의 흐름에 끼어들었던 대가.

그 외의 등등이 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고, 마지막 순간에는 이미 몸뚱어리에 존재하는 뼈가 절반쯤은 박살이 나 있었다.

그렇게 죽음을 직감할 때 시야가 암전하더니 온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여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가 입을 열었는지 혹은 닫았는지도 불분명했다.

서 있는 것인지 누워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그저 어둠 속에 정신만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듯했다.

‘설마… 벌써 죽은 건가?’

그렇다면 실로 허무한 최후였다.

웃음도 나지 않는 그런 한심한 죽음.

‘어째서지?’

방심했던가?

그렇게 되물어본다면,

‘아니, 그럴 리가.’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여유도 없었다.

그런 오만한 생각 따위 터럭만큼도 자라나지 않았었다.

‘나는 항상 철두철미했다.’

하오문을 이용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전부 수집했다.

암기통과 철갑 방어구 등을 온몸에 휘감듯이 하며 만전을 기했고, 새로운 공간에 들어설 때도 언제든 기습에 대응할 수 있게 준비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도 언제나 오감을 예민하게 세웠고, 적의 증원군을 예상해 퇴로 확보에도 철저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

‘내가… 약해서구나.’

약해서 졌다.

강해지려고 노력했다 생각했는데, 정말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외딴곳에서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 빌어먹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언제 마교도놈들이 고개를 들고 야욕을 드러낼지 모르기에 정말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다.

예전이라면 귀찮다고 가문의 문지방을 벗어나지도 않았을 내가, 직접 발로 뛰며 저 머나먼 장강까지 다녀왔다.

그런데, 그런데 여기서 이런 허망한 최후를 맞이한다고?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던 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음에도, 끝까지 발버둥 쳤음에도 이룰 수 없다면 결국 그게 그 사람의 그릇이다.

내 그릇은 여기까지란 소리였다.

‘아….…’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물에 젖은 솜처럼 온몸이 무거웠고, 나의 의식은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듯했다.

할 만큼 했고, 할 수 있는 만큼 했는데…….

그런 생각만이 뇌리를 가득 채울 때,

-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낯선 목소리가 사고 속에 끼어들었다.

그것은 불협화음이었고, 옥에 티와 같아서, 흐리멍덩한 의식 속에 선명하게 그어지는 궤적과 같았다.

‘뭐, 뭐야? 누구야?!’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고, 감았는지 떴는지 몰랐던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여전히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두 눈을 뜰 수는 있었고 어둠 속 너머에 있을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마주한 것은,

-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마찬가지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거대한 눈.

맑기도 하며, 음험하기도 한.

탁하기도 하며, 순수하기도 한.

포악하기도 하며, 자비롭기도 한.

온갖 감정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공허하기도 한.

그런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는… 설마, 탐(貪)이냐?’

설마 싶어 묻자,

- …….

눈동자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는 듯했고,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 눈빛이 얼마나 시리고도 아픈지, 나는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감상을 느껴야만 했다.

‘뭐, 뭐야? 눈 안 치워?!’

관음증 있는 변태 자식인가?

나는 괜히 부끄러워져 버럭 소리쳤지만,

‘…아.’

내가 녀석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동안, 그 눈동자에 비추어진 나 역시 바라볼 수 있게 된 순간 멍하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 구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더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저 눈동자 속에 비추어진 나를 바라본 후에야 내가 가지고 있었음에도 몰랐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라고 묻는다면,

‘…다 변명일 뿐이지.’

어떤 답을 하던 전부 비루한 핑계요, 변명일 뿐.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눈을 꼭 감았다 떴다.

어둠은 온데간데없고, 보이는 것은 포악하게 벌어진 아가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끔찍한 풍경뿐이었다.

* * *

끝이다!

흑접은 그리 생각했다.

이것으로 이 괴이하고 수상하지만, 또한 막대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를 집어삼키며 자신은 더더욱 강해질 것이다.

‘나는… 더욱… 진화한다… 더욱… 위대해… 진다…….’

위대해지는 것은 그와 같이 하늘이 내린 마(魔)를 따르는 자들에게만 내려지는 거룩한 은혜.

이미 직전 한 번 그 감동을 몸서리치게 체험한 흑접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열망은 어마어마한 것이었고, 동시에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진화는… 많은… 대가를… 필요로… 한다…….’

격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격상(格上)의 제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한 번 진화한 자신에게 그만한 제물을 쉬이 구할 수 없는 것일 테지만,

‘이자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멍청하여 자신이 가진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자고로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

무지(無知)는 죄이니, 곧 그것이 이놈이 죽어 자신의 먹잇감이 될 이유였다.

그렇게 입을 쩍 벌리고 포식을 시작하려는데,

콰아앙!!

무언가가 그를 강하게 후려쳤다.

- 그악……!

무한히 재생한다고 해도 고통은 어쩔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무한히 재생하기에 흑접이 느껴야 할 고통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으니, 당연하게도 흑접의 분노는 중첩되어 갔다.

- 의미… 없는… 반항을……!

사나운 포효를 내지른 흑접이 다시금 상처를 재생시키고 고개를 쳐들었을 때,

- …아?

그는 보고 말았다.

폐허 속에서 일어난 침입자와…….

“아아, 이거 이렇게 쓰는 거구나?”

그의 등 뒤에 자라난, 무수한 촉수를.

* * *

뒈지는 줄 알았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와, 진짜 조금만 늦게 정신 차렸으면 깨달음이고 뭐고 골로 갔겠네.’

일단 배때기에 하나하나가 도검보다 커다란 이빨이 쑤셔박혔다면 새로운 힘을 쓰기도 전에 이승을 하직할 수밖에 없다.

그럼 당유혼전기도 여기서 끝을 맞이하는 것이고.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독자 여러분!

당가의 당유혼 전기, 그러니까 당가유혼은 여기까지였답니다!

만약 내 인생이 한 편의 글이라면 대충 그렇게 끝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식겁했던 과거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후우, 아슬아슬했어.”

정신이 들자마자 깨달은 ‘권능’을 발동시켰고, 그것으로 녀석을 후려쳐 날려버렸다.

흑접은 출신이 벌레답게 채에 맞은 벌레마냥 날아가 저곳에 처박혔다.

- 크르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탐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알겠어, 알겠어. 좀 빌려 쓰자.”

차력(借力).

빌려오는 힘.

지금까지 나는 중단전을 통해 탐의 힘을 빌려오는 방식을 이전 하단전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부하로 사용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고, 진정한 힘을 십분지 일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니,

“이렇게 쓰는 거였지?”

이제서야 올바른 사용법을 깨닫고 그 진실한 힘을 발휘하자 내 등 뒤로 수십 개의 촉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정체를 숨겨 무엇할까?

“포식종의… 촉수.”

그건 바로, 탐이 장강에서 집어삼켰던 팔초어 마수의 권능이었다.

‘내가 참 멍청했구나.’

지금껏 방계들에게 가르침을 내릴 때는 중단전이 하단전보다 훨씬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입을 털어놓고, 정작 나 자신이 중단전의 사용 방식을 제한하고 있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어 일반 무인들이 사용하는 하단전처럼 ‘힘’ 그 자체를 뽑아올 생각만 했지, 그 힘이 가진 ‘본질’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나는… 탐이 삼킨 것들을 중단전을 통해 발휘할 수 있다.’

그 어마어마한 가능성에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이거 이렇게 쓰는 거구나?”

몇 번 더 발휘하니 촉수가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날아갔던 흑접이 재생을 완료하며 모습을 드러낸 것도 동시.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네가 말한 게 이거였구나?”

더러운 마교도 놈이 말했던 내게 숨겨진 가능성.

마교도 놈이라고 거짓말만 말할 줄 알았더니, 진짜로 진실을 말하기도 할 줄이야…….

“…아니지, 마교도 놈들이 도움 될 말을 할 리가 없지? 너 이 자식, 일부러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간사한 술수를 부렸구나!”

그래, 분명 그런 게 틀림없다.

마교도 놈이라면 진실로 거짓을 엮어 버리는 게 당연한 상식이니, 저 자식은 내게 혼란을 주려 했던 것이다!

- 이… 놈… 그 힘은…….

“뭐긴 뭐야, 널 쥐어 패줄 힘이지.”

이제와서 연기하려 해봐야 늦었다.

뽑아낸 촉수를 일제히 휘둘러 놈을 향해 후려쳤다.

콰콰쾅!!

촉수의 위력은 파괴적이었고, 그 속도는 충분히 쾌속무비했지만 문제는 흑접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

놈은 당황하는 척하다가도 순식간에 몸을 피해 촉수의 세례를 피해 갔고, 측면에서 나타나 날개 치기를 갈겨왔다.

원래라면 이 일격에 또다시 처맞고 벽에 박혀야 했겠지만,

“이 새끼, 역시 당황한 척 연기한 거였구나!”

자라난 촉수는 내 전신을 뒤덮듯 나선의 형태로 휘감겨 방벽을 만들어냈다.

녀석이 피할 수 없게 전방위를 천마살로 뒤덮었던 것과 같이, 녀석이 어디서 공격하든 막을 수 있게 전 방위를 촉수로 뒤덮은 것이다.

푸확!!

하지만 그럼에도 흑접의 공격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가장 강인한 신체 능력을 가진 나태종의 마수답게, 가장 얇아 보이는 날개가 예리한 도검처럼 촉수를 찢어발겼고 목전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반응하지!”

촉수를 가르며 느려진 날개 치기 공격은 충분히 반응할 만했고, 다시금 대여섯 개의 촉수를 뻗어내 녀석의 몸통을 휘감고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앙!!

지하 공동이 뒤흔들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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