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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74화 (174/350)

174화

촉수에 휘감긴 흑접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매캐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게, 딱 봐도 제대로 꽂혔다 싶다.

“죽었니?”

제발 그랬으면 좋겠지만, 설마 그랬을 리는 없겠지.

“죽어라, 좀.”

촉수 끝에 느껴지는 감각에서 버둥거리는 적의 생존이 느껴진다.

그럼 어쩔 수 있겠어.

“죽을 때까지 죽여라.

콰콰콰쾅!!

돋아난 촉수 다발이 연신 대지를 후려쳤다.

한때 제단이었던 것은 황폐화된 황무지로 바뀌어 갔고,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파파팟!!

그 사이를 가르는 검은 바람이 촉수 무더기를 슴풍슴풍 잘라버렸다.

- 감히이……!!

무너지는 돌덩이 사이에서 개같이 부활한 흑접이 허공으로 펄럭펄럭 날아올랐다.

여기저기 찢어졌던 날개와 몸뚱이는 그 찰나에 수복되었지만, 하도 처맞았더니 몸이 후들후들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부르르 떨어댔다.

- 장강의… 계획을… 방해한 것… 너였구나……!!

“뭐야, 그걸 이제 알았어?”

생각보다 정보가 느리구나?

“왜, 위기감이 드냐?”

- 웃기지… 마라… 내게는… 거룩한… 은혜가… 있다……!

수십 개의 촉수에 엉망진창으로 찢기고 뜯어지고 부서져도 끝끝내 부활하는 자원.

그거 하나 믿고 꺼드럭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아, 그거?”

이거 정말 같잖아서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게 그렇게 좋은 거면. 좀 나눠 쓰자.”

우웅―

다시금 두 자루 촉수가 돋아나 쏘아졌다.

흠칫해서 피하려던 흑접은 순간 그 방향이 자신의 쪽이 아니자 이내 비웃으려는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 어… 으?

하지만 놈의 답답해 터진 의지가 전해지기 전에 내가 뻗은 촉수는 애초의 목적을 다했다.

내가 노린 것, 그건 다름 아닌,

- 이… 놈…! 더러운… 손을… 치우지… 못할까……!!

녀석이 그렇게 무한히 증식할 수 있던 근원, 붉은색 돌이었으니까.

“더러운 손이라니. 그리 말하면 장강에 있던 너희 친구가 슬퍼하지 않겠냐?”

물론 지금은 지옥에서 개처럼 구르느라 그럴 여유도 없겠지만.

꿀렁꿀렁―

“오호.”

힘이 느껴진다.

잘렸던 촉수가 모두다 절단면으로부터 재생을 시작하고, 반으로 잘렸던 것은 두 갈래로, 세 갈래로 나뉘었던 것은 여섯 갈래로 자라났다.

좋은데?

“네가 무한 재생이면, 나는 무한 증식이다.”

마수에게는 고유의 권능이 존재한다.

저기 저 시꺼먼 나비놈이 재생이라면, 팔초어 마수의 능력은 증식.

답도 없이 촉수를 뽑아대던 능력은 내게 넘어왔고, 야산의 잡초마냥 슴풍슴풍 돋아나는 촉수는 붉은 돌의 힘을 받아 계속해서 흑접을 덮쳐 갔다.

- 그아… 건방진……!!

똑같은 무한한 자원을 사용하고 있다지만, 재생은 결국 방어적인 권능이었다.

몰아치는 검은 바람은 위협적인 공격이지만, 그것이 따로 권능이라 불릴 만한 수준은 아닌 만큼, 권능을 통해 무한히 증식하는 촉수들의 세례를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고,

퍼억!

- 이익……!

퍽―

- 놈……!

찰싹!

- 그, 그아악……!

“고놈 참 찰지구나?”

결국 한 방 한 방 촉수에게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찰싹, 찰싹!

- 으아아……!!

촉수에 따귀를 얻어맞는 경험이란 어떤 기분일까?

대여섯 대쯤 얻어맞은 흑접은 마침내 이성의 끈이 뚝 끊겼는지 전방위로 검은 바람을 불러일으켜 촉수들을 몰아내더니 돌연 위쪽으로 솟구쳤다.

- 놈… 더러운… 수작으로… 권능을… 부린들… 네놈과… 내가… 같을… 듯… 싶더냐……!!

위기감이 경종을 울렸다.

‘큰 거온다!’

거친 폭풍이 몰아치던 공동 내부가 돌연 잠잠해지더니, 바깥으로 뻗어나가던 기류가 흑접을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흑접이 두 날개를 활짝 펼치자 몰려든 검은 바람이 새까만 구체를 형성했다.

흑접무(黑蝶舞).

흑색만월(黑色滿月).

흑색 구체는 등장과 동시에 주변 색채를 전부 흡수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지하 공동의 허공에 검은색 보름달이 떠오른 것 같았고, 그로부터 파괴적인 기운이 사방으로 뿜어졌다.

‘오의인가?’

권능 외에도, 그 개인이 갈고 닦아 피워낸 기량의 꽃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인에게 무공이 있다면, 마수에게도 오의는 존재하니 저 검은 보름달이 바로 그것일 터.

그렇다면,

“질보다는 양이지.”

질보다는 양으로 간다.

꾸물꾸물꾸물!

붉은 돌의 힘을 뽑아냄과 동시에 촉수 증식으로 회전시킨다.

삽시간에 일백 개도 넘는 촉수가 증식하고, 검은 보름달이 뽑아낸 파괴의 파동에 맞아 부서져 갔다.

닿자마자 가루가 되는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촉수의 증식 속도는 파괴되는 속도보다 빨랐다.

- 헉… 헉…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의 필살기가 무위로 돌아간 것을 깨달은 흑접이 다시금 땅으로 내려앉으며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너도 당해 보니 더럽지?”

그 기분 잘 안다.

“내가 그랬거든.”

암만 무공을 갈고 닦아 펼치면 뭐 해?

‘무한 재생이랍시고 다 처맞으면서 버텨버리면 답 없던데.’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똑같은 전략으로 돌려주자 흑접은 극찬을 참지 못했다.

- 이 비겁한… 놈……!!

“응, 고마워.”

세상에, 마교도에게 그런 극찬을 받다니?

이거 가문의 영광인걸?

- 그… 아……!!

쩍 벌어진 아가리로 게거품을 물던 흑접은 이내 벌떡 날아오르더니 소리쳤다.

- 허세… 부리지… 마라……!!

“허세?”

- 지상에… 네… 동료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아, 걔네?

“그래서?”

피식 웃으며 되받자 흑접은 연신 몸을 부르르 떨었다.

- 그들… 에게… 이곳… 에서… 만든… 것들을… 보냈다… 그들의… 신변이… 걱정… 되지… 않나……?

“아하, 뭐라는 건가 했더니.”

지극히 마도교스러운 남의 집 걱정이냐?

“남의 집안 걱정하기 전에, 너희 집안부터 걱정하는 게 어떨까?”

내가 이제부터 가정 집기 다 부술 예정이거든.

- 이익… 어디서… 허세냐……!

“허세라니.”

- 애써… 부정… 하고… 싶은가……! 아니면… 그들을… 그만큼… 믿는… 다는… 거냐……!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딱히 현실 도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믿음이냐면…….

“것보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지.”

- 네놈에… 대한… 믿음……?

“그래.”

누가 키운 놈들인데 말이야.

“밥값 못하면, 내 손에 먼저 뒤지는 거야.”

* * *

“…흡?!”

“…헉?!”

“왜 그러십니까?”

앞서가던 방계의 두 형제들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몸을 부르르 떠는 걸 본 홍수월이 깜짝 놀라 물어왔다.

그에 둘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너냐?”

“형님입니까?”

“넌 아니군.”

“형님도 아니네요.”

“그렇다면…….”

“대형이겠네요.”

오들오들 떨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아니 뭐, 별건 아닙니다만…….”

“저희 대형이, 저희 밥값 못하면 잡아 죽이겠다고 벼르는 것 같아서요.”

“예?”

이해하지 못한 홍수월이 의아해하자 당지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게 있습니다. 한데, 목적지에는 이제 도착한 것입니까?”

“아, 그렇습니다.”

“흐, 이제 저것만 뚫으면 끝이란 뜻이구만.”

당불퇴는 피와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들이 걸어온 길에는 무수한 마물의 시체가 가득했고, 그들이 앞으로 가야 할 길 앞에도 수십이 넘는 마물이 반기듯 그득했다.

처음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남은 곳으로부터 여기까지.

벌써 수백도 넘는 마물을 뚫고 여기까지 도달한 당불퇴지만, 그의 얼굴에는 피곤보다는 투지가 가득했다.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수월은 작게 감탄했다.

‘처음에는 조금 불안했는데 말이지요.’

“쓸 만할 거예요.”

당유혼은 툭 던진 그 말과 함께 이들을 홍수월에게 맡겼다.

솔직히 첫 감상은 조금 걱정된다는 게 사실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은 물론, 박학다식한 지식과 주변에 흩어진 정황 증거들을 분석해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에, 짧은 순간 결단을 내리고 움직이는 행동력까지. 모든 걸 갖춘 그분과 달리 이들은 여러 가지로 부족해 보였으니까.’

당지명은 당주라는 이치고는 결단력과 평정이 부족해 보였고,

당불퇴는… 그냥 어디가 많이 모자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은 여기까지 돌파해 오며 산산이 깨졌다.

“먼저 갑니다! 천천히들 따라오슈!”

첫 번째로 당불퇴의 경우는 생각은 모자라 보였지만, 그걸 채우고도 남는 용맹이 있었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믿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무(武)라는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무인의 무혼(武魂)을 증명하듯 맨몸으로 수십의 마물 사이로 뛰어들길 망설이지 않는다.

그리고 당지명은,

“불퇴야!! 뒤쪽!!”

무공명(武功名) 미정(未定).

거미의 춤.

광란(狂亂).

파파팟!!

그가 손을 휘두르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비천은사(秘淺隱絲)들 수십 가락이 장내를 휘저었다.

당불퇴의 뒤편에서 접근하던 마물들은 그 거미줄에 휘말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허물어졌고, 정작 그렇게 목숨을 구한 당불퇴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천역덕스럽게 낄낄 웃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놀라울 정도로 시야가 넓다.’

마치 수십 년간 합격을 연마하기라도 한 이 인조처럼.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의 마물이 몰려와 일어난 혼전 속에서도 당지명은 비천은사를 휘둘러 당불퇴를 십여 번도 넘는 사경에서 구해 냈다.

뿐만 아니라,

“법사님, 뒤쪽!”

퓻!

“아… 감사합니다.”

당지명은 여유가 남는다면 홍수월과 적웅에게 몰려오는 마물들도 쳐냈다.

당장 자신의 앞가림하기도 벅찬 난전에서 함께하는 모든 동료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전장 시야 장악력이 압도적이라는 뜻.

‘과연, 이게 당가의 저력이라는 건가?’

처음에는 망해버린 율도국의 유민들인 자신들과 같이 당유혼 하나뿐인 가문이라 여겼지만, 이제 보니 하나하나가 한 가지씩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훗, 놀랐나 보군.”

그리고, 적웅은 그런 홍수월을 지나쳐가며 미소를 흘렸다.

“예?”

“나도 처음에는 자네와 같았네. 일족의 은인인 당유혼 소협만 특별하다 착각했었지.”

그것이 깨지는 데는 오래 가지 않았고.

“그들 가문은 하나하나가 모두 다 특별하다네. 그리고, 그건 자네와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

어깨를 두들겨주는 손길에는 든든함이 느껴진다.

기죽지 말라는 듯 행동으로 말한 적웅이 물밀듯 몰려오는 마물의 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홍수월은 뒤늦게서야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소문대로이십니다.”

사천당가.

선대에서부터 연이 이어져 온 가문.

지금은 비록 그 이름 아래 의탁하는 신세가 됐지만,

‘그러니 더 잘해야겠지. 그 이름에 누가 되지 않으려면.’

진언을 외우는 홍수월은 주변으로 바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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