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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76화 (176/350)

176화

“율기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참으로 요상한 곳입니다. 이것저것 듣고 싶은 말이 많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럴 여유는 없어 보이는군요.”

“그, 그렇지.’

당율기의 말이 옳았다.

팔이 녹아내렸던 거인은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지만, 그렇다 해서 아직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뭘 하면 됩니까?”

“우리가 저 거인의 발을 붙잡아줘야 한다. 그러면 홍수월 촌장이 저 마도사가 설치한 술수를 해체해 주실 거야.”

“꼭 발목만 붙잡아야 합니까?”

“음?”

순간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의아해하는 당지명에게 당율기는 비릿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저희끼리 잡아보지요.”

“그건…….”

“그거 좋지!”

거인에게 일격을 맞고 나뒹굴었던 당불퇴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당주 형님. 율기 녀석도 왔으니 저희가 저걸 잡죠?”

“허…….”

잡자고? 저 녀석을?

‘가능할까?’

당지명은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의 답은 곧 찾아낼 수 있었다.

“좋지.”

가능하겠는걸?

“잠깐! 자네들 진심인가?”

그 말을 들은 적웅이 당황해 물었지만,

“먼저 갑니다!”

당불퇴는 일어서자마자 곧장 거인을 향해 쏜살처럼 달려나갔다.

남겨진 적웅은 당황해서 그 뒤를 쫓아가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당지명이 그의 어깨를 잡아채며 말했다.

“이쪽은 괜찮습니다. 율도 촌장 쪽을 도와주십시오.”

“자네들 괜찮겠나? 저 거인은 알다시피…….”

“알고 있습니다. 저 거인이 끔찍하게 강하다는 것은. 하지만.”

당지명은 어느새 그의 동생들과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전사도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셋이 뭉치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허…….”

그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던 적웅이지만,

“알겠네.”

차마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율도촌장 쪽을 돕지.”

그 길로 적웅은 괴인의 술수를 해체하기 위해 다른 쪽에서 술법전을 펼치던 홍수월을 돕기 위해 달려갔다.

그렇게 남은 당지명은 곧 거인 쪽을 바라보며 두 소매를 가볍게 털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무공명(武功名) 미정(未定).

거미의 춤.

광란(狂亂).

그가 손을 흔들자 수십 줄기의 은사가 거인을 향해 몰아쳤다.

고통에서 막 벗어난 거인은 당불퇴와 막 주먹을 부딪치는 중이었다.

콰앙!!

“한 주먹은 할 만한데?!”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치자 당불퇴는 두 걸음을 물러났고 거인은 한 걸음을 물러났다.

거기까지는 분명 거인의 이득이었지만,

휘리릭―

휘몰아친 은사가 거인의 전신을 휘감자 핏물이 튀며 거인의 몸 여기저기에 자상이 생겨났다.

‘무슨 괴력이…….’

당율기가 등장함으로써 삼인방은 삼재진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그들의 모든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니, 당불퇴가 주먹을 맞부딪치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영향이었다.

그럼에도 거인의 괴력은 무시무시했다.

은사에 온관절이 뒤틀리고 목울대가 썰리며 괴이한 각도로 꺾이기까지 했으나 쉽게 넘어지지 않고 버텼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딱 잡고 있으쇼, 형님!”

두 걸음 휘청거렸던 당불퇴는 곧장 균형을 바로 잡으며 달려 나가 거인의 가슴팍을 후려갈겼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파괴적인 권풍이 명치 부위를 후려치자 거인 역시 피분수를 뿜어냈다.

“끄어어……!!”

“너도 피는 붉은 색이구나?”

이미 붉은 피로 새빨갛게 범벅이 되어 있던 당불퇴가 씨익 웃었다.

“끄아아아!!”

그에 거인이 입을 쩌억 벌렸다.

또 피를 토하나 싶었더니, 그 안에서 빛무리가 생성되었다.

‘뭐, 뭐여?’

뒷목이 찌르르 울리는 위기감이 들자마자, 호다닥 도망치려 한 당불퇴였지만,

‘아…….’

하필 그의 뒤에는 당지명이 있었다.

‘지명이 형님은 이거 못 피하는데?’

결심은 빨랐다.

그의 중단전이 웅혼한 기운을 뿜어 냈고, 삼재진의 기운이 합쳐져 단전에서 올라온 내공과 뒤섞였다.

세 개의 기운이 뒤섞이며 용트림을 해대니, 당불퇴의 눈에서 번쩍 안광이 발했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삼재권(三才拳).

내뻗어진 주먹과 거인의 입에서 쏘아진 광선이 부딪친 건 동시였다.

콰아아앙!!

거인이 뿜어낸 광선은 뼛째로 갈려나가도 이상할 게 없을 위력이었지만, 그래도 당불퇴는 버텨냈다.

다만, 그 반동으로 움직이지 못해 휘청거리다 거인의 이어진 후속타에 맞고 날아갔을 뿐.

“불퇴야!!”

“크학… 나, 괜찮수!”

곧 죽을 것 같지만 기어코 일어서는 당불퇴의 앞을 당지명이 가로막았다.

막 달려들던 거인이 번쩍 주먹을 들어 올리자, 당지명은 비천은사를 하나로 뭉쳐 휘둘렀다.

찰싹!

뭉쳐진 은사는 채찍처럼 거인의 무릎 관절을 후려쳤고, 지금까지처럼 힘 대 힘으로 부딪치는 줄 알고 무게 중심을 한껏 들었던 거인은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쿠당탕!!

“와, 형님. 치졸하십니다!”

“극찬으로 알아들으마.”

한 번 거인의 시선을 돌린 당지명은 곧장 뒤로 내뺐다.

어차피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

곧장 일어선 거인이 자신을 넘어트린 당지명을 쫓으려 할 땐, 대신 당불퇴가 달려들고 있었다.

“크아아아!!”

‘큭?’

거인의 힘이 더욱 강해졌다.

분노하며 더 강해지는 건지, 혹은 저 붉은 기둥의 힘을 흡수하며 더욱 강해진 건지?

조금 전엔 그래도 할 만했던 주먹 다툼이 제법 힘들어지자, 당불퇴는 빼액 소리쳤다.

“율기야, 아직이냐?”

“아니, 이제 끝났어.”

당율기의 목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

막 당불퇴를 짜부라트리려던 거인이 돌연 흠칫 몸을 떨었다.

“크륵?”

거인의 눈에 의혹이 감돌았다.

어느새 숲속에는 자욱한 운무가 깔려있었다.

거기까지면 그러려니 하려 한 거인이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주먹을 내뻗던 위치에 있던 적수가 사라져 있었다.

그때,

“여기야.”

흠칫―

감각이 경종을 울리는 뒤편, 문득 돌아본 자리에는…….

거대한 뱀이 포악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으니,

환현붕괴(幻現崩壞)의 진.

개방(開放).

환상과 현실이 무너진 틈에서,

콰직―

뱀이 거인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 * *

거인이 피 분수를 뿜어내며 쓰러진 것과 홍수월, 적웅 쪽이 적 마도사를 처치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원래 홍수월은 한창 마도사와 술법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한쪽은 벽을 유지하고 거인을 강화하고 술법을 뿌려대고 있었다면,

한쪽은 벽을 해체하고 술법을 뿌려대고 있었다.

해야 할 가짓수만 따지자면 홍수월 쪽이 편해 보였지만, 마도사에게는 마석의 가호가 있었다.

‘화력이…….’

마석의 가호를 받아 몰아치는 술법의 난사는 마도사 측에게 우위를 주었다.

마도사의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새긴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리고, 적웅이 난입해 온 것은 그 직후였다.

“내가 익힌 비술은 이쪽과는 계통이 다르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게 무엇인지는 알겠군.”

저벅저벅―

두명의 술사들이 한창 서로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덤덤히 걸어온 적웅이 비술을 발동시켰다.

쿠구구궁!!

혈웅이 강림하고 그의 등 뒤로 불타오르는 듯한 핏빛 곰의 형상이 새겨졌다.

“혈웅이시여!!”

외마디 외침과 함께 적웅의 손이 휘둘러지자, 혈웅 역시 흉포한 앞발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붉은 벽이 크게 뒤흔들렸고, 마도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 상위 존재!’

그 모습을 본 홍수월 역시 탄성을 흘렸다.

이건 상성 문제였다.

당불퇴와 적웅의 강함을 비교하자면 고작해야 한 수 반에서 두 수 차이였다.

그 수준 차이는 일대일의 경우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였지만, 위력만 따지면 이 벽을 부수는 게 불가능하다는 데서는 엇비슷했다.

하지만 적웅이 강림시켜 싸우는 혈웅은 한 단계 상위의 존재.

그가 휘두른 발톱은 술법의 핵이 되는 연결을 뒤흔들었고, 그 순간 마도사와 홍수월의 표정이 급변했다.

‘지금!’

그건 아주 찰나에 불과했지만, 홍수월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풍월주(風月主).

월현(月顯).

홍수월의 등 뒤로 달과 같은 빛무리가 떠오르더니 그 속에서 뻗어 나온 창백한 월광이 붉은 벽을 뒤덮었다.

그와 함께 붉은 벽이 얼음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적웅은 이때임을 깨닫고 내부로 진입했다.

‘흠!’

벽 안쪽은 아예 다른 공간이라도 들어온 듯 대기에 존재하는 마력의 농도가 달랐다.

그래도 적웅은 혈웅의 가호를 받고 있기에 버틸 만한 했고 순식간에 마도사의 지근 거리로 접근했다.

“이익……!!”

마도사는 깜짝 놀라며 마석에서 기운을 뽑아냈다.

그의 머리 위로 불길한 구체가 생성되기 시작했고, 적웅 역시 그것을 목도했다.

술수를 부리는 자 중에서도 육체파인 적웅으로서는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은인이 말했지.’

“상대방이 뭘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뭘 하는 것 같으면 기다려주지 마라.”

방계들에게 내려준 당유혼의 금언은 붉은 바위 일족에게도 착실히 새겨졌다.

“끝내지.”

혈웅이 발톱을 휘둘렀고, 마도사는 단말마도 내지 못하고 찢겨 죽었다.

외우던 주문이 취소된 것은 덤이었다.

“뭐야, 이쪽도 끝났네?”

당불퇴와 나머지 삼인방이 후다닥 뛰어왔을 때는 홍수월이 마도사의 최후를 확실하게 확인 사살하고 있었다.

“예. 이제 남은 것은 이 마석을 파괴하는 것뿐입니다.”

마도사의 특기가 다 죽인 줄 알았는데 부활이라는 것을 잘 아는 홍수월은 철저하게 마도사를 저승으로 보냈고, 당불퇴는 고개를 끄덕인 뒤 붉은 기둥 앞으로 다가가 섰다.

“대형, 큰 거 들어갑니다!”

권풍이 몰아쳤다.

* * *

마도사와 홍수월이 상황의 급변을 동시에 눈치챘든, 당유혼과 흑접이 무언가 달라졌음을 눈치챈 것도 동시였다.

- 뭣……?

“흐, 말했지? 너희 집안부터 걱정하라고.”

붉은 마석으로 흘러들던 무한한 마력의 흐름이 끊겼다.

이제 무한 재생이건 무한 증식이건 유한의 영역으로 떨어졌다는 소리다.

- 가소… 롭다… 그렇다 해서… 결과가… 바뀔 것… 같으냐……!!

그들의 주변엔 잘린 촉수가 수도 없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 속에서 당유혼은 피 칠갑을 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마력의 유동이 끊기기 전 재생을 완료한 흑접만이 쌩쌩했고, 흑접 역시 그 차이를 노리기로 결정했다.

‘놈의… 남은… 여유도… 얼마… 없을 터……!’

흑접은 남은 기운을 끌어모아 당유혼을 향해 돌진했다.

그에, 당유혼 역시 남은 마력을 끌어모아 증식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잘려 널브러져 있던 촉수들이 순식간에 증식하며 흑접을 노렸다.

‘흥… 예상… 안이다…….’

순식간에 시야가 차폐되었지만, 흑접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 역시, 여기까지 내다본 건 마찬가지.

오히려, 이렇게 나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흑접무(黑蝶舞).

흑색만월(黑色滿月).

다시금 흑접의 전신이 검은 만월로 화하였고, 천지사방으로 검은 달빛을 내뿜자 그에 맞은 촉수들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하면… 더 이상… 증식할… 수도… 없겠지……!’

이제 남은 건 순전히 나약한 몸뚱이뿐.

순식간에 당유혼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흑접은 그 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데, 그때 흑접의 눈에 보인 것이 있었으니,

‘웃… 어……?’

당유혼의 입가에 걸린 짙은 조소.

어째서?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을 해소할 여유는 없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다면, 그 전에 적을 격살하면 될 뿐!

흑접은 애써 불안함을 떨쳐내며 이 위험천만한 적의 머리통을 짓이기기 위해 하강했다.

그런데,

- 그… 어?

쿠당탕!!

하강인 줄 알았던 것은 추락이었고, 흑접은 추하게 바닥을 나뒹굴고 나서야 자신의 날개가 다 녹아 사라져 버렸음을 깨달았다.

“어느 새냐고?’

그의 속내를 대신 답해준 당유혼이 양손 가득 암기를 꺼내 쥐며 말했다.

“촉수 사이에 천마살을 섞었다. 촉수에 잡히면 찢겨 죽는 거고, 촉수를 부수면 천마살에 날개가 녹아 내리는 거지.”

- 아…….

지독한 양자택일.

애초부터 자신에게 승산은 없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당가칠대금기(唐家七大禁忌).

만천화우(萬天花雨).

지하 공동에 흩날리는 꽃비만이 그의 시야를 채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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