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 흐름 】
“후아… 역시, 우리 집 공기가 최고구만.”
고작 하루도 안 돼서 집에 돌아왔지만, 무슨 며칠 밤낮을 고생한 것 같았다.
그만큼이나 그리운 당가의 공기에 당불퇴는 씨익 웃으며 드러누웠고,
콕콕―
“악! 왜 또!”
곧바로 머리를 쪼아대는 삑삑이의 부리 공격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야만 했다.
“삑삑.”
“뭐? 상 달라고?”
“삑.”
“아니, 네가 뭘 잘했다고?”
“삑삑삑!”
“…아, 그건 인정이지.”
혼란스러운 전장, 그곳에 갑작스레 나타난 당율기의 등장은 전부 이 녀석 덕이란다.
‘아니, 잠깐.’
“야, 전부 네 덕분은 아니지. 네 녀석이 그 숲길에서 율기가 바로 올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해준 건 맞지만, 너한테 그 사실을 말해 준 건 세희 소저잖아.”
사연은 이랬다.
당가 내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적세희는 갑작스레 불길함을 느꼈고, 그것을 경시하지 않고 당율기와 삑삑이를 찾아갔더란다.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에 독을 연구 중이던 당율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삑삑이의 도움을 받아 숲길을 달려왔단다.
“삑―”
조목조목 사건 경위를 따지니 삑삑이는 마음에 안 드는지 팔짱을 끼듯 양 날개를 포개고 고개를 한쪽에 돌리더니 침을 찍 뱉었다.
진짜 볼 때마다 뭐 이런 새가 다 있나 싶다.
“으휴. 그래도 뭐… 네 도움이 적은 건 결코 아니었으니까. 옛다, 받아라.”
“삑삑!”
녀석이 삐쳐버리기 전에 주머니에서 가지고 다니던 육포 쪼가리를 하나 던져주자 삑삑이는 또 좋다고 그것을 부리에 물었다.
이빨도 없는 녀석이 잘도 먹는구나 싶어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금 팔베개를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진짜 정신없이 흘러갔어.”
저렇게 평화롭게 흘러가는 구름은 이 땅에 있었던 소란을 알고나 있을까?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눈을 감고, 거인과의 일전을 복기했다.
‘녀석은, 강했지.’
당연하게도, 혼자서는 답이 없었다.
육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당지명이 은사로 관절을 엮어 갖은 제약을 걸어주었음에도 자신이 일방적인 손해를 봐야만 했다.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율기 녀석의 상성이 좋았던 덕분이고.’
거인은 신체 능력은 뛰어났지만 독에 대한 저항력은 약했다.
물론 약하다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에서의 이야기지만, 처음 당율기가 흩뿌린 극독에 팔이 녹아내리기도 했고, 환현붕괴의 진으로 소환한 독사에 머리가 녹아내려 죽음에 이르렀으니 순수하게 율기의 공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율기 녀석. 맨날 음침하게 방구석에 처박혀서 뭘 하나 했더니… 아주 무시무시한 걸 만들어냈어.’
육체적인 능력은 자신이 제일이고,
암기를 다루는 능력은 당지명이 제일이며,
독을 다루는 능력은 당율기가 제일이다.
삼총사로 엮여버린 자신들은 처음에는 이렇다 할 차이가 없었지만, 지금에서는 이렇게 각기 다른 색채를 띠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분명 좋은 일이다.
다만,
‘…뭔가, 나만 엄청 뒤떨어진 것 같은 기분인데.’
스스로에 대해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단순무식.
단순하고 또 무식하지만, 대신 기본 능력치 자체가 가장 좋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그러면 또 엄청 좋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셋 중에서야 제일 좋겠지만, 지난번처럼 난적을 만났을 때는 딱 앞에서 처맞으며 버티는 고기 방패 역할이 끝이다.
사실 그마저도 적웅이 더 뛰어나다는 걸 떠올리자면, 당불퇴로서는 발 뻗고 누울 곳이 없는 신세였다.
‘뭐지? 나 설마 실업자가 돼버린 것?’
벌떡!
“삑?!”
당불퇴가 갑작스레 일어난 덕에 옆으로 밀려 나뒹굴어진 삑삑이가 비명을 질렀다.
분하다는 듯 도도도 달려와 신발을 콕콕콕 찔러댔지만, 작은 아기 새가 그러든 말든 당불퇴는 결심했다는 듯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안 되겠다. 이럴 땐 역시 대형에게 가야지.”
당불퇴는 생각했다.
“엄청나게 강한 기술을 배우는 거야. 지명 형님처럼 화려하거나, 율기 녀석처럼 화끈한 걸로.”
자고로 답 안 나올 때는 대형에게 가자!
대형이라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으로 쪼르르 달려간 당불퇴였고,
“예? 대형이 없다구요?”
꼭두새벽부터 당가를 벗어난 당유혼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당가였다.
시꺼먼 나방놈에게 만천화우를 때려 박아 죽음을 선물한 뒤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막 위쪽에서 시설의 주요 장치를 박살 내고 내려온 녀석들에게 실려 당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단순히 몸만 홀라당 빠져나온 건 아니었고, 당가로 돌아가는 즉시 인력을 데리고 와서 내부에 있던 청성파의 무인들도 구해 낼 수 있었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진혁수에게 그들의 인솔을 맡겨놨으니 집으로 돌려보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라면, 그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지.’
씁쓸한 일이지만, 이미 그들 대부분은 마교도의 사악한 의식에 제물로 바쳐졌기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 방법이 없었다.
홍수월 역시 그들에게 걸린 저주를 해제하려 했지만,
“…틀렸습니다.”
씁쓸히 고개를 젓는 것으로 많은 답을 대신했다.
“후우우…….”
그나마 살릴 수 있는 이들은 최대한 살려보았지만, 그건 과연 다행일까 불행일까?
‘그들의 뒤처리도 난해하니.’
어쨌건 마교에서 꿍꿍이를 꾸미던 소굴 하나를 박살 냈다.
그곳이 마교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녔는지는 몰라도, 자신들이 계획 중 일부가 틀어졌으니 이곳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이라면 뭘 꼬나보냐며 눈알을 찔러버리겠지만…….’
지금의 당가는 함부로 마교의 시선을 받을 여력이 없다.
그래서,
‘진혁수. 녀석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대외적으로 이번 사건은 청성파에서 해결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당가 하나만으로는 마교도들의 수작질을 막기 힘들지만, 사천삼주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는 청성파에게는 마교 놈들도 쉽사리 손을 뻗기 힘들겠지.
‘그래, 그게 지금의 현실이다.’
아직까지 힘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강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여기까지 저러는데 몰랐단 말이지.”
다른 곳도 아니고 사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교도들이 음흉한 수작질을 벌인 소굴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특히,
“벌써 두 번째 마수를 봤단 말이야.”
삼십 년이 흐르고, 마교도 놈들은 얼마나 꽁꽁 숨었는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발견한 마교도 소굴들마다 마수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마수가 결코 흔한 게 아닌데…….”
마수(魔獸)는 희귀하기로 따지면 영수(靈獸)보다 더한 개체들. 가뜩이나 숫자도 적은 데, 그 적은 놈들이 저기 십만대산 깊은 곳에 분포해 있다 보니 더더욱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삼십 년 전에도, 대전장이라 불릴 만한 곳이나 십만대산 본산에서 있었던 최후의 결전에서나 보았던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이렇게 흔히 널려 있을 수 있다고?
“게다가, 준성체는커녕 아성체도 되지 못한 마수들이 외부에 나와 있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다.
“…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결국 고민하다 고개를 돌린 당유혼은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헤헤, 이제 손 내려도 좋겠습니까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 딱 들고 서 있는 하윤호가 있었다.
“내가 언제 손 들고 있으라고 했냐?”
“그럼 내려도…….”
“허허, 내리시려구요?”
“…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요!”
파팟―!
빛보다 빠르게 두 손을 올리는 하윤호.
‘저게 진짜 하오문 지부장이 맞냐.’
절레절레.
암만 생각해도 답이 없는 것 같았다.
“진짜 너무하지 않냐? 그냥 흔한 사교도 소굴이라며, 당가의 명망을 드높일 기회라며?”
“…….”
“아, 그래 사교도 소굴이기는 했지. 그게 그냥 사교도가 아니라, 마교도 새끼들 소굴이니까 그랬지.”
지방 잡교인 줄 알았더니 태평도 운동이라도 일으킬 황건적 무리 수준의 세력이라서 문제지.
“너희 진짜 정보 단체 맞냐?”
“그… 일단은 하오문 간판을 달고 있기는 합지요…….”
와, 저걸 진짜.
오늘부로 현판 때버릴까?
“…됐다. 이거나 받아라.”
말해 봐야 무엇할까.
설마 마교도가 사천에 있겠냐며, 외부로 인력을 다 파견시켰더니 사람이 부족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것들은 등한시했다는 그에게 마교도 소굴에서 가져온 마석 파편을 던졌다.
“이게… 그 마석이라는 것입니까요?”
“그래.”
눈치 빠른 홍수월이 챙겨온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마기를 증폭시키는 기능이 있어서 각종 마도(魔道)에 사용될 뿐 아니라, 갈아 먹이면 평범한 사람도 마인으로 둔갑시키는 희대의 기물.”
그런 끔찍한 게 제조되고 있었다.
“계속해서 생각했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던 건지.”
마교도 놈들은 대화가 안 되는 놈들이라 문답무용으로 다 처죽였다.
애초부터 고문도 통하지 않는 놈들이라 입 아프게 말 섞기보다는 그곳에서 구해 온 정황 증거들로 추론하는 게 빨랐으니까.
“혹시, 지난 삼십 년 이내 무림에 급작스레 강해진 세력 중 특별히 수상한 놈들이 있나? 개중에서도 특히나 성정이 폭급하고 패도적인 세력이 말이야.”
그 말에 하윤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짐작 가는 게 없어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문파라면… 너무 짐작 가는 곳이 많습니다요.”
“쯧, 그런가?”
만가쟁패의 시대.
이름만 들어도 온갖 크고 작은 놈들이 제 잘났다고 치고받기 좋을 듯한 이름이다.
오히려 패도적이지 않은 놈이 없는 게 더 이상할 지경.
“차라리 유순한 놈을 찾아 조져 봐?”
“…공자께서는 마교도가 무림 내에 파고들었다 확신하십니까요?”
“이쯤 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냐?”
내가 마교도에 학질이 생기는 인간이라 그러는 게 아니다. 사천 앞마당까지 전진 기지를 깔아버리는 놈들인데, 다른 곳에는 세작 간첩 깔아둔 게 하나도 없을까?
“확실히… 조금 더 신경 쓰겠습니다요.”
“많이 신경 써야지.”
자고로 마교도는 독버섯과 같다.
잘 자라던 명문 무가의 후손도 어느 날 옆 동네 무가의 후손이 자신보다 잘났다는 소문이 돌면 열등감에 차올라서 흑화해버리면 되는 게 마교도거든.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전부 다 파내버려.”
그래야 그나마 직성이 풀리니까.
“아… 옙.”
고러취 고러취.
몇 번이나 언질을 주고서야 만족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린 당유혼은 만족스레 웃음을 지으며 떠나갔다.
그리고, 낯선 방문객이 떠나간 자리, 언제나처럼 충성심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던 하윤호는,
“홍단.”
어느새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복검이자, 그림자 무사를 호출했다.
스륵―
“말씀하십시오.”
그림자에서 솟구치든 나타난 홍단.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윤호가 무겁게 입을 떼어냈다.
“네게 어려운 부탁을 해야겠다.”
“지부장님의 말씀이시라면 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나이다.”
“그러지 말 거라…라고 하고 싶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혹시, 지난 삼십 년 이내 무림에 급작스레 강해진 세력 중 특별히 수상한 놈들이 있나? 개중에서도 특히나 성정이 폭급하고 패도적인 세력이 말이야.”
그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른 문파는 분명 많았다.
하나 가장 먼저 떠오른 문파는 분명 있었으니,
“네가 직접, 본문의 본단에 다녀와야겠다.”
그것은 바로, 하오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