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81화 (181/350)

181화

사천성주의 토벌령이 사천에서부터 중원의 동쪽으로 퍼져 나가고, 그 토벌령에 이름 적힌 청성의 공식 입장문이 발표됨에 따라 중원은 거세게 요동쳤다.

일단 사천에 있던 문파들이 동요한 건 물론이요, 감숙, 중경, 호북, 호남, 운남, 등등 사천에 조금이라도 붙어 있다 싶은 곳은 전부 관심을 보였다.

‘자네 그거 들었나? 사천성주가 직접 녹림에 대한 토벌령을 내렸다네.’

‘응? 산적들에 대한 토벌령이 아니었나?’

‘이 사람아, 이 시대에 산적하면 곧 녹림이요. 녹림하면 곧 산적인 것을 모르는가?’

분명 산적 토벌령이었지만, 민중에게는 녹림 토벌령이라고 확고히 그 이름이 새겨졌다.

‘허, 그 녹림을 말인가?’

‘그렇다네. 양민을 괴롭히고, 힘없는 백성의 고혈을 착취하며 생업을 위협하는 그들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고 하더구만.’

‘그래 봐야 사천에만 국한된 일이 아닌가?’

‘그게 아니니까 이 난리가 아닌가! 이번 토벌령은 무려 무림인들을 대거 고용하여 전 녹림의 산적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것과 같다네!’

그리고, 그 토벌령은 무림인을 결집시켜 벌이는 대규모 전면전이 되었고,

‘자, 잠깐만. 무림인들을 결집시킨다고?’

‘그렇다네. 사천 무림뿐 아니라, 전 중원의 무림인들을 사천에 결집시켜 그 힘으로 대대적인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일세.’

‘그… 그걸 관에서 허락해 주겠나? 가뜩이나 만가쟁패라 불리우는 현시대를 황궁에서 좋게 보지 않을 텐데…….’

‘사천성주가 뒤를 봐준다고 하지 않나? 나도 처음에는 그게 걱정이었는데, 알아보니 사천성주께서 본인의 직인을 찍으며 윤허한다고 발표하셨다네!’

‘그 뜻은 설마!!’

‘그렇다네. 자네가 생각하는 게 옳네.’

하룻밤 사이에 어떤 문파가 멸망하고, 또 하루아침에 어떤 문파가 새로 생겨난들 전혀 놀랄 일이 아닌 만가쟁패의 시대에 크나큰 파문을 불러일으켰으니,

‘무림맹(武林盟)이 부활하게 된 것이지!’

바야흐로, 전 중원의 시선이 서쪽 사천으로 쏠리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흐름에 발작한 또 다른 인물이 있었으니,

“공자님!! 진짜 미쳐버리셨습니까요?!”

“어허?”

이 자식, 선 넘네?

당유혼의 눈매가 팍 일그러지는 게 보이자 괴성을 지르던 하윤호는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아니, 공자님! 어찌 이런 일을 제게 일언반구 언질도 주시지 않고 진행시킬 수 있습니까요!”

우리 사이에 어떻게?!

“어이가 없네. 우리 사이가 뭔데?”

“운명 공동체 아닙니까요, 운명 공동체!”

진짜 억울하다. 요새 일이 많아서 눈 잠깐 돌리기 무섭게 또 사건 하나를 만들어왔다.

그것도 어쭙잖은 작은 사건이 아니라, 전 중원이 뒤흔들릴 만한 대규모 사건을.

‘어찌 이렇게 일을 잘 키워내지?’

이런 것도 재능이라면 이놈은 역사에 전무후무할 재능이라고, 하윤호는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정말 실망입니다요, 공자님!!”

“뭐가 또?”

“이렇게 되면 무림맹이 결성됩니다요! 그렇게 되면, 정파의 힘이 득세하게 되실 것은 모르는 것입니까요?!”

“…나 정파인데?”

“옙?”

“아니, 잠깐만. 너 그 눈 뭐냐?”

진심으로 충격받았다는 눈빛.

상상도 못한 흑막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보이는 저 흔들리는 동공을 보라.

“고, 공자님께서 그런 말씀을…….”

“와, 우리 집처럼 유구한 역사의 정파가 어디 있다고!!”

천하제일 의협지문을 대체 뭘로 보는 걸까.

“어흑…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요. 이렇게 되면, 녹림을 자극하게 되는 것을 모르십니까요!!”

“자극은 개뿔. 아주 박살을 내주려고 이러는데 고작 자극이 대수냐?”

“아니, 공자님. 그러시다가 진짜 녹림투왕을 자극하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요?”

녹림투왕(綠林鬪王).

이 혼란의 시대, 녹림의 정점에 오른 인물의 이름이었다.

“내 참, 내가 살다 살다 별 산적놈들 우두머리 눈치까지 살펴야겠냐?”

“살펴야지요!! 공자님, 진정 녹림을 장강수로채와 동일선상에서 보십니까요?”

왜 이래, 이거 진짜?

“아무리 장강수로채와 녹림이 같은 구패로 분류된다지만, 구패끼리도 가진 세력은 하늘과 땅 차이인 경우도 있습니다요! 삼십 년 더 전에는 모를까, 지금은 그 세력비가 완전히 역전된 지 오래입니다요! 특히, 녹림투왕은 일백 번의 생사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무패(無敗)의 투왕(鬪王)! 그 오만한 남궁세가의 검왕마저도 감히 어찌하지 못한다는데, 어찌 그를 감당하려 하십니까요!”

고놈 혓바닥 참 기네.

말이 너무 길어서 중간부터는 다 듣지도 않았다.

다만,

“걔가 그렇게 세냐?”

딱 하나만은 꽤 인상 깊게 들려오긴 했다.

“남궁의 그 오만한 놈들이 인정할 정도로?”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요?!”

쾅쾅―

가슴을 두드린 하윤호는 속에 천불이 나서 김을 뿜어대듯 버럭버럭 소리쳤다.

“녹림의 투왕이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십왕(十王)의 일좌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요!!”

* * *

어디선가 정보상 하나가 속에 난 열기를 주체하지 못해 난리를 칠 때,

또 다른 정보상 하나는 속에 자란 뱀이 그 똬리를 풀며 웃고 있었다.

“…걸작이군.”

어둠 속, 촛불 하나에 의지해 서신을 읽고 있던 냉막한 사내는 입가에 차디찬 미소를 그렸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

그는 자신을 천생 상인이라 여겼다.

세상 만물에 가치를 매기고, 그 가치에 따라 사고파는 재능은 자신이 천하의 일절(一絕)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런 상인의 직감이 일 년 전 최대의 촉을 발휘했다.

당유혼.

갑작스럽게 이 세상에 뚝 떨어지듯 나타난 아직 어린 사내.

그 사내를 마주한 순간 상인의 직감이 경기라도 일으키듯 부들부들 떨었고, 그의 이성을 마비시킬 듯 소리쳤다.

당장 이 사내를 잡으라고!

상인은 그 본능의 외침을 우습게 보지 않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확인해 사내의 행보를 추적했다.

그의 개인실 안에는 사내가 보인 행보 하나하나를 적어놓은 문서가 산을 이루었고, 그에 따라 그 행보가 뻗어 나갈 곁가지에 놓일 것들을 대비한 문서들이 또 가득했다.

그리고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일호(一號).”

상인의 부름에 어둠 속에서 흑의인 하나가 뚝 떨어지며 부복했다.

“명을 받듭니다.”

“네가 혈채들을 데리고 직접 움직여야겠구나.”

혈채(血債).

피 묻은 돈이라 불리우는 그들은 하오문의 복검과 같았다.

정보 상인들이 가진 비수이며 보검이요, 무형의 정보를 유형의 힘으로 환원시키기 위해 부리는 무력이었다.

“이걸 가지고 산장으로 가거라.”

그런 그에게 상인이 내민 것은 날 없는 검자루.

낡고 먼지 쌓였으며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검자루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폐품과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아는 일호의 눈에서는 깊은 놀람이 비쳤다.

“진심이십니까?”

“그래, 가서 검채(劍債)를 받을 시간이라 전하거라.”

빙긋 웃는 상인의 말에 일호는 한 번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무수히 사라지는 인기척 속에 상인은 빙긋 웃었다.

‘즐겁다. 진심으로… 즐겁구나.’

어둠을 향해 뻗은 손이 촛불에 비추어져 흐릿한 윤곽을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 천하가 바로 이러했다.

그동안은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했으나, 이제 드디어 그것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한 거상이라면… 천하(天下)에서 가장 값진 것을 탐할 줄 알아야지.’

천하를 취할 것이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 값어치를 매기고, 그것을 팔아치우며 저열한 조롱과 비웃음을 담을 것이다.

결국 세상 모든 것을 매각할 수 있을 때 그는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깨닫게 되겠지.

“자, 그러기 위해서.”

저 천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선은… 천하를 부숴볼까?”

* * *

두 명의 정보상이 정보를 얻게 되고, 한 명은 울며 또 한 명은 웃으며 그 정보를 세상에 굴리게 되자 빠른 속도로 세상은 변화를 인식했다.

세상 사람들은 다음 시대의 흐름이 사천에서 일어날 것이라 여겼고, 그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사천으로 향했다.

그들 중에는 청운의 꿈을 품고 철검 한 자루만을 품에 안은 채 겨우겨우 상경한 이도 있으나, 대부분이 시대의 거물이라 불리우는 이들이 많았다.

사천에서도 이용 가능한 이가 몇 없던 최고급 기루와 숙박 시설들이 장기간 투숙이 완료되었고, 이 흐름을 길게 본 이들은 아예 사천의 건물들을 통째로 사들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노난 것은 누구인가?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나지! 으헿, 으헤헤헤헤헤!!”

자고로 장사 중의 장사는 땅장사요, 땅장사의 기본은 부동산 알 박기니라.

당유혼은 이 계획을 구상하자마자 곧바로 당가의 자금을 최대로 활용해 사천 전역에 있는 사업체 및 대규모 건축물과 토지, 부지 그리고 숙박 업소와 기루들을 매입했다.

공격적인 매입 전략은 사천삼주가 자신들의 얼마 안 남은 생명줄이랍시고 이 악물고 손에 쥐고 있던 사업체들에게도 퍼부어졌는데, 돈으로 달래고 사천성주의 명으로 어르는 등 온갖 핍박과 협잡질로 그 성과를 톡톡히 내었다.

“독한 놈들. 진작에 내뱉지 말이야.”

도저히 이것은 팔 수 없다 버티는 놈들에게는 웃돈을 주거나 대규모 토지가 필요하지 않은 다른 사업체들을 넘겨주면서도 매매했다.

만약 그럼에도 매각하지 않는다면?

“그럼 나도 깡패가 되는 거야.”

긴급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병들이 하루하루마다 업소를 습격해 뇌물 비리가 이루어지고 있니,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니, 관아에서 회식을 하려는데 국가를 위해 헌신 좀 하라느니 등등으로 영업을 방해하니 그들로서도 피눈물을 흘리며 사업체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문학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숙박과 관련된 사업체들을 쓸어 담고 나자, 그것들은 한 달도 안 되어 몇 배에 해당되는 가격으로 재매각되었다.

“여윽시 우리 대문파님들이셔. 아주 돈이 많아?”

각 지역에 이름난 문파들은 자존심도 엄청났다.

이미 자신들의 지역에서 성장세가 한계에 달한 그들이었던 만큼, 그동안 분출되지 못하고 쌓이기만 하던 재력과 금력 등을 한껏 가지고 사천에 들어선 그들은 자신들의 자존심과 위명을 살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돈을 풀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천 땅에도 사천삼주라는 이름으로 세 개의 문파가 경쟁하듯, 각 지역에서도 확고한 우위에 선 패주는 별로 없어 여러 문파들이 경쟁하고 있는 게 만가쟁패의 현실이었는데, 그런 그들이 타지에 왔으니 무엇으로 자신들의 우위를 자랑하겠는가?

‘사천성주라는 걸출한 억제력이 있으니 무력 충돌은 절대 금물이지.’

그럼?

당연히 자신들의 재력으로 상대를 짓누르려 할 수밖에 없다.

‘가장 잘나가는 기류를 잡는 게 첫째요, 그중에서도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층에 자리 잡는 게 그다음. 그게 안 되면 차라리 부지를 사거나 원래 있던 장원을 매수해서라도 자존심을 세울 수밖에 없지.’

덕분에 부동산 매매 문서의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팔린 여러 장원들은 차곡차곡 당가의 곳간에 쌓였으니,

“으하하하! 이게 선견지명이 아니면 뭐겠냐고!”

당가의 자산이 한 달 만에 두 배로 불어난 건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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