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83화 (183/350)

183화

【 정천맹 】

사천에서 난리가 일어나던, 당가에서 방계들끼리 모여 작당을 하던.

그 모든 것은 당불퇴에게는 남 일이었다.

“휴가다!!”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불침번 노릇도, 짐꾼 노릇도, 약초꾼 노릇도 없는 오롯한 휴일.

당불퇴는 곧장 자신의 휴가를 만끽하기 위해 삑삑이를 머리 위에 얹은 채 시내로 향했다.

“주모, 국밥 한 그릇 주십쇼!”

그렇다.

당불퇴는 국밥충이었다.

“삑삑!”

“얘 것도 하나 주세요!”

“그 새랑은 또 왔나 보네? 이번에도 말아줄까?”

“삑!”

“그렇다고 하네요!”

그렇다.

삑삑이는 부먹충이었다.

우물우물―

‘오늘 뭐 하지?’

당불퇴는 날이 밝자마자 시내로 나와 국밥 한 뚝배기를 깨버리며 오늘의 일정을 생각했다.

자고로 모든 일은 속이 든든해야 밀어붙일 수 있다고, 하루 일정 역시 배를 채우고 생각해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당불퇴는 차곡차곡 계획을 세웠다.

‘점심에는 적 소저를 만나야겠다. 요즘 수련하느라 너무 못 만난 것 같단 말이지.’

그릇에 고개를 처박으며 국밥을 흡입하는 와중에도 당불퇴는 나름 건실한 계획을 세워가고 있었다.

이건 다 당유혼 덕분이었다.

‘대형이 막 나가는 것 같아도 머릿속엔 다 계획이 있단 말이야. 나도 그걸 본받아야겠어.’

하나하나 차곡차곡 오늘 일정이 정리되어 가는 것과 반대로 국밥은 바닥을 드러내 갔다.

“크, 잘 먹었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은 당불퇴는 기분 좋게 배를 두드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귀에 누군가의 괴성 어린 발작이 들려온 것도 동시였다.

“주방장 나와! 이딴 걸 음식이라고 가져왔냐!!”

누군가 국밥이 맛이 없었나 보다.

진심 어린 분노가 들려오자 당불퇴는 괜히 시무룩해졌다.

‘진짜 맛없나? 난 맛만 좋은데…….’

평소 형제들에게,

“넌 이게 맛있냐?”

“이게 사람이야, 누렁이야?”

“우리 집 누렁이도 거를 것 같은데…….”

등등의 말을 들어온 당불퇴는 괜히 쭈글쭈글해졌다. 휴가를 나오자마자 찾아올 정도로 당불퇴 선정 최고의 맛집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 저리 외치니 시무룩해진 것이다.

‘외지인인가?’

확실히 사천인이 아니라면 사천의 요리에 대해서는 불만을 품을 수 있다. 광형상단 사람들을 통해 사천의 음식이 향신료가 강하다는 사실 정도는 전해 들었기에 요즘 정천맹이다 뭐다 하며 들어오는 외지인이라면 화를 낼 수 있다고 여겼다.

‘어쨌거나 돈 내고 먹는 음식이잖아.’

무전취식하는 것도 아니고, 비싼 돈 내고 먹는 음식이 마음에 안 든다면 화를 낼 수도 있는 노릇.

‘당장 대형만 하더라도 우리가 차려온 밥이 맛없다고 밥상 엎은 게 몇 번인데…….’

즉,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당불퇴는 현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암만 국밥집 주인장이 아는 사이라고는 해도, 고객의 정당한 권리까지 침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얌전히 계산이나 하고 나가려는데,

“그럼 음식이지. 네놈 같은 돼지새끼 입에 들어갈 여물이겠느냐?”

“뭐? 감히 어떤 놈이… 응? 네 녀석은?! …패왕권, 구일엽!!”

“구일엽, 네가 아주 미쳐버렸구나. 이곳 사천 땅에서는 네가 그렇게 꼬리 만 개처럼 머리를 비벼대는 종남파도 없는데 어찌 이리도 깝죽대느냐!”

어째 일이 좀 커져 갔다.

‘얼씨구야?’

웬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이 저들끼리 서로를 소개하며 웃기지도 않은 별호를 읊어대더니, 무식하게 내공을 풀어헤치기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뜨뜻한 국밥을 퍼고 있던 국밥 동호회 회원들은 속이 더부룩해지며 안색도 급속도로 나빠져 갔다.

‘이건 두고 볼수 없겠구만.’

결국 당불퇴는 본인이 직접 나서기로 결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이, 너희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

여긴 신성한 국밥집이라구?

조용히 상황 인지를 도와주자 둘은 서로를 돌아보다 버럭 소리쳤다.

“어디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네놈은 누구냐!!”

“허 참, 그 소리를 우리 대형이 들었으면 너희는 오늘 여기서 묫자리를 알아봤어야 했을 텐데…….”

운도 좋은 놈들이다.

그나저나,

‘내가 누구냐고?’

갑자기 신상 명세를 조사받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자신도 저렇게 별호를 외쳐야 하나 싶었지만,

‘…그건 좀 부끄러운데.’

아직 완전히 무림인이라 자신하기 떨떠름한 당불퇴로서는 패왕권이니 백학검객이니 자기 별호를 저렇게 외쳐대는 사람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당불퇴 님이시다.”

괜히 무안해서 뒷머리나 벅벅 긁으며 그리 말했다.

그러자,

“오오오!! 당불퇴 님이시다!!”

“당가의 푸른 야수!!”

“물러서지 않는 남자!!”

어째 더 부끄러운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아, 아니 잠깐만. 이 사람들이 지금 뭐라 하는 거야?!’

잘 생각해 보니 자신이 심심할 때마다 외치고 다녔던 대사들인데, 그게 남의 입에서 들으니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그리고,

“뭐? 푸른 야수?”

“물러서지 않아?”

“미친놈, 저딴 것도 별호라고…….”

“저놈은 부끄러움도 없는 건가?”

빗발치는 조롱과 비난.

‘아니, 너희가 할 말이야?!’

억울함이 솟구쳤지만, 어째 주변 분위기는 그걸 도와주긴 개뿔 오히려 부추기만 하고 있으니,

“…야, 너희.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라.”

치솟는 분노를 꾹꾹 눌러 삼키며 조용히 경고하는 게 최선이었다.

물론,

“같잖군. 싫다면 어쩔 텐가?”

“별 괴상한 별호를 좋다고 불러대는 놈이 훈수질이군.”

저들은 그걸 들을 생각이 없었지만.

“…아. 역시.”

대형, 당신은 항상 옳습니다.

“세상은 넓고, 맞아야 할 놈은 많다.”

“그래, 너희들 같은 놈들은 좀 맞아야 말을 듣지.”

“그게 무슨 개소… 커억!”

콰앙!!

발악적으로 소리치던 장산해가 굉음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졌다.

함께 있던 구일엽은 그 모습에 딱딱히 굳어버렸다.

‘저놈이, 겨우 한 수에?’

평소에 자주 틱틱거리고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 간의 우열이 잘 가려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로 장산해는 자신이 인정할 만한 절정 검수였고, 구일엽으로서는 그런 그가 한 방에 나가떨어진 모습에 대번에 경각심이 일었다.

“…이놈! 비겁하게 기습을!!”

“기습은 개뿔. 내가 뭐 뒤빵을 놨냐, 독을 뿌렸냐, 암기를 던졌냐? 정정당당하게 앞에서 갈겼는데 뭔 소리야?”

“이 비겁한 놈! 하지만 나, 패왕권 구일엽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쩐지 평행선상을 달리는 대화 끝에 스스로를 패왕권이라 소개한 사내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나의 맹호패왕권을 받아라!!”

맹호패왕권(猛虎覇王拳).

맹호출림(猛虎出林).

패왕보의 상승 절기이자, 섬서 땅에서 구일엽을 백 대 고수로 만들어주었던 성명절기가 펼쳐졌다.

세찬 기세와 함께 뻗어지는 일권!

그리고 그걸 마주한 당불퇴의 입장에서는,

‘…이딴 게, 맹호패왕권?’

전혀 사나운 호랑이 같지도 않았고, 패왕 같지도 않았다.

눈앞의 사내는 분명 무게 중심도 잘 잡혀 있고, 주먹을 내뻗는 호흡도 안정적인 것이 꽤 열심히 수련한 것 같지만…….

‘느려.’

요즘 상대해야 했던 대진운이 워낙에 극악이라 그런지, 당불퇴의 눈에는 지루함마저 깃들었다.

“그래, 받아주마.”

콰아앙!!

주먹 대 주먹의 맞승부!

그 결과는 당연히도,

“크아아악!!”

섬서의 패왕권, 구일엽의 패배였다.

“그으으으…….”

바닥을 몇 번 구른 구일엽이 장산해의 곁에 사이좋게 쓰러지고, 그 둘의 모습을 본 당불퇴는 절레절레 고래를 저으며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냈다.

“여기 계산이요.”

패왕권인지 나발인지 등을 때려눕히며 부순 기물 파손비까지 포함해 낭낭히 넣었다.

낯선 외지인들의 난리에 오늘 장사 종 쳤나 싶던 가게 주인은 싱글벙글해져서 돈주머니를 건네받았고, 오늘도 당가 푸른 야수의 위명은 널리널리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런 일은 단순히 한 곳에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감숙삼절? 몰라. 여긴 사천이야, 인마.”

“태을정검? 칼잡이면 칼이나 휘두르지 왜 여기서 행패야?”

“탈백륜? 야야, 정신 사납다. 그런 거 꼬치구잇집에서 날리지 마라.”

사천 여기저기서 소란을 피우던 이들이 방계들에게 적발되었다.

그들의 소란은 방계들에게 진압되었고, 집으로 돌아간 방계들이 오늘 참 요상한 사람을 다 만났다고 이야기를 시작하니 하나둘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도?”

“야 너두?”

“너희들도?”

허허.

“이거 문제네.”

“그러게. 외지인 놈들이 와서 행패라니.”

정천맹인지 나발인지, 솔직히 별 관심도 없는 방계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의 대형이 뭔가를 했다는 것 정도야 알지만, 그들의 대형이 뭔가를 해서 놀랄 만한 일을 만드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일일이 관심 가졌다가는 관심 가진 사람만 손해니까.

다만,

“가만 놔둘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소란을 피우면 대형이 화내시지 않을까?”

문제를 만든 요인이 대형이 만들어낸 수작으로부터 발원했다는 게 그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결국 방계 서른세 명은 쪼르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집단지성을 구축했다.

“암만 생각해도 가만 놔둘 수는 없다.”

“나도 동의해.”

“대형이 뭐라 하면?”

“그럼 처맞지 뭐. 어차피, 뭐 안 해도 뭐라고 하는 게 대형이잖아.”

“그건 맞지.”

어쩐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집단 지성이었지만, 어쨌거나 방계들의 의견은 한곳으로 모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들의 지성은 한데 모이자마자 놀랄 만한 행동력을 선보였다.

“좋다. 너희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나 역시 맏형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우선 우리의 행동 지침을 정하자.”

주축이 된 것은 당지명이었다.

이미 동생들의 여론이 확고해진 이상, 애매하게 빼기보다는 그들의 행동이 괜히 탈선하거나 엇나가 폭주해 버리지 않게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지침을 왜 정합니까?”

“아무나 쥐어팰 수는 없잖아.”

“그럼 안 됩니까?”

“대형처럼 살고 싶냐?”

“그건 좀…….”

이번 기회로 손맛을 본 방계들이 자기들이 당한 걸 그대로 풀고 싶어 하는 걸 적당히 어르고 달래며 나름의 방침을 정했다.

첫 번째, 괜히 아무 싸움에나 끼어들지 않는다.

두 번째, 평범한 무림인들 간의 다툼에는 끼어들지 않는다.

세 번째, 힘없는 양민들을 괴롭히는 이들만을 벌한다.

정하고 보니 별것 없었지만, 그래도 꼭 지켜야 할 규율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정하자.”

“이름은 어째서입니까?”

“괜히 본가의 이름을 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문제가 생겨도 어디까지나 우리끼리의 일탈이라고 선을 긋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지만, 당지명으로서는 최소한 그 정도라도 해야 한다 싶었고, 다들 듣고 보니 그럴듯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름을 뭐로 한답니까?”

“예전에 대형이 우리에게 해준 말을 기억하느냐?”

아직 당가가 못살던 시절, 당유혼이 그들에게 영단을 가져다주며 말한 적이 있다.

“우리 같은 놈들도 용(龍)이 될 수 있게 해주신다 하셨지.”

“아…….”

그 말을 다들 기억했다.

어쩌면 그저 흘러가듯 한 말일 수도 있고, 사기를 북돋아 주려고 해준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그들과 지금의 그들은 확실히 달랐다.

“저희가… 저희를 정말 용이라고 자칭해도 될까요?”

“뭐 어떻더냐, 이번에 사고 치는 놈들을 보니 저마다 검룡이니 패왕권이니 창절이니 하며 온갖 허세를 부리던데.”

“하긴 뭐.”

별호란 당장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기 위해 붙여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그러니까,

“잡룡단(雜龍團). 우리는 이제부터 잡룡단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당지명은 자신들의 이름을 결정했다.

과거에는 최악 최흉으로 불리었고,

미래에는 최강 최흉으로 불리울 집단이 처음으로 무림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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