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85화 (185/350)

185화

‘…또 너냐.’

청원은 요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두통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찾아오는 걸 느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일의 원흉은 저놈이 아닐까 싶었다.

‘저놈이 나타나면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겨우 망해 가는 문파 일으켜 세워놨더니 가진 사업체는 다 뺏기고 하는 일마다 망했으며 싹수는 더럽게 없어도 재능 하나는 제일인 아랫놈이 반기를 들고 있다.

그 모든 시발점을 따지자니 역시나 문을 활짝 열고 들이닥친 저 사악한 마귀 놈이 문제라는 것이 확실했다.

“어휴, 왜 그렇게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세요?”

“…헛소리하지 마시게, 공자.”

상념에서 벗어난 청원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공자, 아무리 그대라지만 이리 안하무인격으로 맹주전에 들 수는 없네. 그대는 강호의 도리도 모르시는가?”

“아, 강호의 도리? 그거 좋죠. 그런데 제가 지금은 무인이 아니라 성주님의 사자로 왔거든요.”

아, 진짜라니까? 그렇게 의심 가득한 눈으로 보지 말라고.

먹물도 채 마르지 않은 서찰을 보여주자 우리 맹주님의 표정은 오늘도 천변만화하며 좋아죽으려 했다.

“…하. 성주의 사자 자격, 좋지.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인가?”

“아, 그 일 이야기 하기 전에, 저 녀석 보내주시죠?”

“뭐?”

예기치 못한 당유혼의 말에 우두커니 서 있던 진혁수와 더불어 맹주 역시 벙찐 표정으로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어차피 맹주님도 청성이 잘나가면 좋잖아요. 나도 청성이 잘나갔으면 좋겠거든요.”

“…거절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본도가 딱히 그 제안에 응할 이유는 없는 듯한데…….”

“거절하시면 거절하는 거죠. 다만, 좀 속상하긴 하네요. 저는 성주님의 대리이며, 성주님의 사자로서 찾아왔고, 성주님께서는 장문인과 함께하기로 결정하셨기에, 성주님이 원하는 대업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시길 원하는데, 성주님의…….”

“그만!! 알겠네, 출전시겠네! 출전시키겠으니 그 말 좀 그만하시게!”

한 번만 더 성주라는 단어를 꺼냈다간 발작을 일으킬 기세였다.

역시 성주님이야, 성능 확실하다니까?

“그쵸? 야, 너 됐단다. 이제 가라.”

“으, 음?”

갑작스레 출전 기회를 얻게 되자 당혹스러운 듯 주변을 슥슥 둘러보던 진가 놈은 이내 여기서 더 있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깨달은 지 고개를 숙였다.

“…하면, 제자는 이미 물러가겠습니다.”

그렇게 진혁수가 후다닥 물러서자 홀로 남게 된 집주인은 손님맞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본론을 꺼내주시게.”

“급하시네요. 뭐, 여튼 간에… 요새 고생 좀 하신다죠?”

“성주께서… 출범이 늦어지심에 심기가 좋지 않으신가?”

최대 물주의 눈치를 보는 불쌍한 하청업자의 눈빛이 일렁였다.

다 늙은 노인네가 저러는 모습을 보자니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어?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그런 그를 위해 그나마 위안되는 이야기를 하자.

“아뇨? 성주님은 좋아하시는데요?”

“그럴 리가?”

“진짜예요. 정천맹이 생각보다 더더욱 유명세를 끌어들일수록, 모아드는 관심과 쏟아지는 찬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거든요.”

사실상 이미 본전은 뽑을 대로 뽑은 게 이문학의 현실이다.

‘애초에 그 양반은 입 턴 것 말고는 한 게 없거든.’

비용은 광형상단과 장강수로상단에서 다 댔으니, 성주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다.

“성공만 하면 돼요. 녹림 토벌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여기서 더 미루어진다고 해도 성주님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실 거예요.”

“…그럼 자네는 대체 왜 온 건가?”

“청탁 좀 넣으려구요.”

“…뭐?”

이거 뭐 하는 새끼야?

청원의 표정이 살벌하게 굳자, 당유혼은 헤헤 웃으며 손을 휙휙 저었다.

“아이 참, 들어봐요. 맹주님도 정보 집단 하나 필요하지 않아요?”

“정보 집단? 그야 필요한데, 그걸 자네가 어찌… 잠깐.”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일었다.

이놈들이 말하는 정보 집단이라는 게 설마,

“하오문을 넣으시죠?”

“…미쳤군. 자넨 진정으로 돌아버린 게야.”

“에이, 뭘 또 그렇게 말씀하실까?”

“정천맹에 사파를 집어넣는 게 망이 되나?”

“왜 안 돼요?”

이 양반이 또 거하게 착각하시네.

“정천맹의 근본은 사천성주님의 칙령이에요.”

“…….”

그 말에 청원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그래, 우린 아직 그 정도지.”

정천맹을 통해 무림에서 청성의 지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그 구심점에 청성을 두려 한 청원이지만, 그 정천맹은 결국 청성의 힘이 아닌 사천성주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청성이 먼저 존재하고 그를 통해 구심점이 되는 게 아니라, 사천성주의 힘으로 만들고 그 구심점에 청성을 집어넣는 게 그의 현실.

“알겠네. 그리하도록 하지. 이름은 무엇으로 하면 되겠나? 정천당? 정천단? 사천당? 앞으로 정천맹의 진정한 주인 되실 곳이니 원하는 대로 말해 주시게.”

“어허, 우리 맹주님 말씀 참 섭섭하게 하시네.”

왜 갑자기 급발진을 하고 그래?

우선 진정제 몇 발을 투약하기로 하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이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이유? 물론 그러시겠지. 이 노인네의 어떤 행동이 또 성주님의 눈 밖에 나셨나?”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지금 성주님의 눈 밖에 난 건, 다름 아닌 최근 급속도로 늘어나는 성도 내의 거지 놈들이거든요.”

“거지……?”

그 단어에 청원의 표정이 급변했다.

“요 근래 후기지수 비무대회에 집중한다고 모르셨죠? 성도 내에 은근슬쩍 거지 놈들이 머릿수를 불리고 있더라구요.”

거지들이 늘어난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개방(丐幫)… 놈들이군.”

“아무래도.”

개방.

천하삼대 정보 집단의 마지막 일 좌다.

하오문이 사파고, 흑상은 그딴 거 없다면, 개방은 정파 소속의 정보 집단이었다.

오로지 거지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문파이며, 덕분에 정파 내에서 가장 많은 머릿수를 자랑한다고 알려진 그들은 원래라면 사천 땅에 제대로 된 지부도 없는 이들이었다.

왜?

‘이문학, 그 양반이 쥐잡듯 다 때려잡았으니까.’

그들로 인해 정보 누설이 일어나는 걸 학을 뗀 사천성주가 이미 십 년도 전에 하윤호와 손을 잡고 그들을 사천성 내에서 축출시켰었다.

하지만 이번에 녹림 건으로 대대적으로 무림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그들 역시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좀 곤란하거든.’

개방이 가진 무력은 사실 그리 뛰어나지 않다. 구파일방이라 칭해지는 열 개의 방파 중에서도 말석을 다투는 게 현실이고, 인구수는 가장 뛰어난 주제 고수의 숫자는 오히려 가장 열세였다.

하지만 그들은 구파일방임과 동시에 천하삼대 정보 집단이라는 게 문제였다.

‘정보를 취급하는 이들이 보이는 변수는 꽤 곤란하거든.’

다른 놈들은 받아들이면서 개방만 쳐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십 년 전에야 서로 사활을 걸고 개싸움을 벌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지금 그들과 대놓고 척을 지는 건 또 다른 정치전을 야기할 수 있기에 이문학 역시 꺼리는 편이었다.

“그들을 견제할 세력이 필요해요.”

“그게 하오문이라는 것이군…….”

이건 청원으로서도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분명 개방의 정보력은 집단을 꾸리기에는 필수지만, 그가 터 잡은 곳에서 개방과 손을 잡는다는 건 사천성주와 척을 지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성주가 내게 지원을 해주는 만큼 나 역시 성주의 체면과 위신을 생각해 줘야겠지.’

결정을 내린 이문학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소. 이름은… 조서당(鳥鼠黨) 정도로 하겠소.”

“딱 적당하고 좋네요.”

새랑 쥐.

하오문 녀석들에게 딱 좋은 이름 아닐까 싶다.

“그럼 잘 부탁할게요.”

할 일은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 볼…….

“잠깐, 묻고 싶은 게 있네.”

“예?”

“이번 비무대회, 자네도 나올 건가?”

아아.

갑자기 가는 사람 붙잡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저는 안 나가죠. 그럼 너무 반칙이잖아요.”

“흠, 그런가.”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마세요. 제가 안 나가는 거지, 우리 애들은 나갈 거니까.”

“차양당의 방계들을 말하는 것이군.”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녀석들이지만, 그렇다고 또 어디 가서 쉽게 처맞고 올 놈들은 아니다.

그런데,

“공자는 그들이 우승할 거라 생각하나?”

“세상은 넓으니 또 모를 일이기는 한데…….”

이 아저씨가 왜 또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

“후, 보아하니 이번 비무대회에 누가 참가할지 조금도 모르고 있는 듯하군.”

“그거 꼭 알아야 해요?”

“하긴, 자네는 이미 후기지수 수준을 벗어났으니 그런 여유를 보일 수 있겠지.”

청원은 그 심정을 이해했다.

자고로 규격을 벗어난 괴물은 그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오만함이란 아주 당연한 종족 특성과 같았다.

“자네들의 지원 덕에 분명 이번 정천맹은 예상을 벗어나는 수준으로 무림의 이목을 끌었다네. 사실상 이 중원의 정반대편에 있어 거리의 문제가 있거나, 실시간으로 분쟁 지역에 있거나, 봉문 상태의 문파가 아니라면 대부분이 참가했다고 해도 무방하지.”

“그야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검룡(劍龍)과 도호(刀虎)가 참가했네.”

쿠쿵!

…대충 이런 효과음이 나지 않을까 싶은 표정이다.

엄청 중요하다는 표정인 건 알겠는데,

“그게 누군데요?”

“…용호상박(龍虎相搏)을 모르나?”

“알면 안 묻죠.”

이 노인네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어?

“허허… 하긴, 자네쯤 되면 그런 반응도 이해할 수밖에 없지. 그래, 자네 입장에선 분명 우습겠지만… 그들은 현 정파에서 말하는 차세대 무림제일인들일세.”

창궁검룡(蒼穹劍龍) 그리고, 오호도(五虎刀).

“이야, 별호 한번 멋들어지게 지었네요.”

이름만 들어도 정체가 누구인지 알 만큼.

“자네가 방계들에게 가지는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네가 직접 나설 게 아니라면 그들을 경계해야 할걸세. 그들도, 이미 후기지수 수준을 벗어난 지 한참이거든.”

“후기지수 수준이라…….”

그런 놈들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세상은 넓고 천재들은 어딘가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당장 육언 그 양반도 그랬잖아?’

모든 능력치를 전부 지략 쪽에 박아서 그렇지, 분배만 잘됐다면 지금의 방계 삼총사 녀석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버거웠을 것이다.

“우리 걱정은 접어둬요.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그 쪽네 경쟁자도 쟁쟁할 것 같거든요.”

“적운자 말인가?”

“네. 사적인 감정이 강할 테니 제가 함부로 운운할 수는 없겠지만, 그 감정에 멀어 보검을 내다 버리는 건 좀 아쉽잖아요?”

사족에 가까운 충고이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당유혼은 이내 떠나갔다.

더 할 말도 없거니와, 앞으로 할 일도 잔뜩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검이라…….”

그가 떠나간 자리, 홀로 남은 청원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다가,

스르릉―

천천히 허리춤에 패용한 검을 뽑아 들었다.

그 검의 이름은 청성(靑城).

청성파의 이름을 상징하는 검이자, 장문인의 신물이기도 한 희대의 명검이었다.

“보검을 썩힘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

하나,

“그렇기에, 더더욱 보검의 끝이 향할 곳을 주의해야 하는 법.”

얼마 만에 꺼내 보는 검인지,

그 끝에 예리하게 빛나는 검광(劍光)을 바라보던 청원은 다시금 천천히 검을 거둬들였다.

그 역시,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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