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86화 (186/350)

186화

청원과 헤어진 당유혼은 곧장 하윤호에게로 향했다.

“옙? 검룡도호를 알고 있냐 말씀하셨습니까요?”

갑작스러운 방문과 갑작스러운 물음에 하윤호는 순간 얘가 뭔 말을 하는 건가 싶은 표정을 짓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히 알고 있습죠. 용호상박의 주인공들 아닙니까요. 창궁검룡 남궁수는 이미 녹림칠십이채 중 하나의 산채를 단독 토벌한 경험이 있고, 오호도 팽천강은 갓 성년이 되었을 때 장강수로채의 수채를 단독으로 토벌하며 주가를 올렸습죠.”

그 외에도 서로가 경쟁하듯 위업을 쌓아 올린 두 명이었다.

“걔네들이 진짜 정파에서 차기 천하제일인 후보로 꼽히고 있다는 것도 진짜고?”

“그렇습죠. 만가쟁패의 현시대에 존재하는 기라성 같은 천재들 중에서도 단연 특출난 둘을 꼽으라면 그 둘 아니겠습니까요?”

뭐, 사파까지 따지자면 더 늘어나겠지만.

하윤호는 뒷말을 덧붙였지만, 이미 당유혼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잠깐만, 그럼 당가는? 그 뭐냐, 추풍인가 춘풍인가 하는 마적 떼도 잡았는데? 걔네들도 구패인가 뭔가라며!”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닙죠.”

비교할 걸 비교하라고.

“애초에 야차전은 구패 중에서도 하위권이지 않습니까요. 게다가, 추풍대는 그런 야차전의 무리 중에서도 말석에 가깝고, 심지어 그때는 제 상태도 아니고 패잔병 무리에 가까웠잖습니까요?”

그런 추풍대를 단독 토벌한 것도 아니고, 광형상단을 비롯해 인근 중소문파의 무인들을 전부 끌어모아 수적 우세와 미리 준비한 함정으로 격퇴한 당가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냐고.

아주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하윤호의 언행에, 당연하게도 당유혼은 납득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역시… 역시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구조야!!’

생각해 보면 그랬다.

감숙에서 양민을 위해 마적 떼와 맞서 싸우고,

운남에서 붉은 바위 일족을 위해 독물들과 싸우고,

장강에서는 내전 진행 중인 수채들과 싸우고,

사천에서는 사이한 의식을 진행 중인 마교도들과 싸우기까지 했지만,

‘어느 하나 명성을 날리기에는 좋을 게 없잖아!!’

첫 번째는 양민들이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고양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역할을 축소시키다 보니 줄어들었고,

두 번째는 이민족 사회라 중원에 그 명성이 퍼질 일도 없으며,

세 번째는 애초에 추풍대주의 가면을 쓰고 갔던 경우고,

네 번째는 스스로가 그 공로를 은폐시켰었다.

‘이유 없는 경우가 없다지만, 이렇게까지 우리가 손해를 봐야 하다니!!’

천하제일 의협지문 사천당가.

사실, 그건 천하제일 호구지문의 다른 말이 아니었을까?

“으으…….”

분하고 또 분해서 이를 갈았지만 뭐 어쩔까. 여기서 혼자 이빨만 자근자근 갈아봐야 노후 대비만 망칠 뿐인 것을. 애써 분루를 삼킨 당유혼은 핏발 선 눈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도 이번 비무대회에 사람을 내보내냐?”

“헤헤, 그렇습죠. 공자님의 도움으로 저희가 조서당을 맡게 되었지만, 그래도 무력 대대에 인원을 파견시켜 놓으면 좋지 않겠습니까요?”

“그럼 역시 홍단, 그녀를 보낼 거야? 그러고 보니 요즘 안 보이던데.”

아무래도 그녀부터가 떠올라 묻자 하윤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는 현재 사천에 없습니다요. 다른 임무를 맡아 출장을 떠난 상태이고, 비무 대회 역시 그 아이에게 맡기지는 않을 생각입니다요.”

“그래? 후계자처럼 생각하는 것 같던데.”

“후계자라…….”

그 말에 하윤호가 옅게 웃었다.

“그건 아직 미정이지만… 그렇다 해도 그 아이에게 바라는 건 무재(武材) 같은 것이 아닙니다요.”

“호오, 그 말은 무재를 기대하는 이가 따로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요. 공자님은 모르시겠지만, 사천지부에서 기대를 거는 아이가 이제 곧 산장(山場)에서 돌아올 것입니다요.”

“산장?”

그건 또 뭐야?

어디 하오문의 비밀 수련장 정도 되나?

“옙? 설마, 산장을 모르십니까요?”

“내가 너희 비밀 수련장을 어떻게 알아?”

“허허허……. 산장이 하오문의 비밀 수련장이라니.”

그랬으면 참 좋겠구만, 하는 표정으로 하윤호가 입을 열었다.

“산장은 만검산장(萬劍山場)을 뜻합니다요. 모든 낭인들의 전설이자 우상이며 우두머리인 낭왕(狼王)이 은거한 곳이며, 그에게 배움 한 줄 얻기 위해, 혹은 세파에 지친 매검자(賣劍者)들이 속세에서 떠나기 위해 자신들의 검을 비석처럼 박아놓고 깃든 곳이 바로 만검산장입니다요.”

“돈 받고 고용되는 낭인들의 문파라는 거 아냐?”

웃긴 노릇이다.

은퇴할 거면 은퇴하지, 굳이 산에 틀어박혀 세력을 일구기까지 했으면서 은퇴한 척이라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요. 하지만, 만검산장은 단순히 청부를 받는 곳이 아닙니다요. 그곳에 속한 퇴역 낭인들과 매검자들은 더 이상 돈을 받고 일 처리를 해주지 않습니다요.”

“그럼?”

“검채(劍債). 그들이 무림에 있을 시 진 빚이 있을 때, 그걸 대신해 주는 경우밖에 없습니다요.”

“그것참 골 때리는 놈들의 집합소네.”

낭인과 매검자란 무엇인가.

돈 하나만 보고 자신의 무에 대한 자존심도, 검에 대한 자긍심도 모두 팔아버리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속세와 세파에 치이고 또 치이다 그 색이 바래 다 탄 재처럼 꺼져서 차곡차곡 축척된 산장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 놈들은, 괜히 잘못 걸리면 진짜 귀찮아지는데…….”

이미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놈들이라 그런지, 이성적 판단을 통해 행동하기보다는 그들이 아직 색채를 가지고 있을 때 정해 놓은 규칙을 기준으로 행동한다.

이미 내용물은 죽어 없고, 껍데기만이 남아서 다 죽은 시체마냥 움직이는 놈들.

이성과 합리 따위는 저 머나먼 어딘가에 버려둬 버린 놈들은 대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아무래도 그렇습죠. 만검산장은 전투력만 따지면 구패 중에서도 상위권이니까요.”

“역시나.”

“게다가, 그들은 검채만 맞다면 구파일방이든 오대세가든 들이받는 걸로도 유명합니다요. 실제로, 만검산장의 일부 검수들이 검채를 갚겠다며 관군과 정면충돌한 일화도 있었습니다요.”

“뭐 그런 미친놈들이 다 있어? 아니, 어떻게 그 짓을 하고도 그 산장이란 곳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거야? 황군은 그놈들 잡으러 출동 안 했어?”

“잡을 이들이 있어야 잡지 않겠습니까요.”

뭐?

“일의 전모는 어느 고관대작의 횡포에 멸문한 가문의 생존자로부터 시작됩니다요. 멸문지화의 사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온 힘을 다해 만검산장으로 향했고, 당시 아버지의 유품이던 검채(劍債)를 바치며 가문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려달라고 애원한 뒤 죽음을 맞이했답니다.”

그다음 날, 만검산장에서 열세 명의 검수가 산을 내려갔다.

그들은 고관대작이 기거하는 가문으로 향했고, 그 가문을 지키던 위병은 물론이요 관련된 모든 이들을 참살했다.

혈겁을 깨닫고 달려온 또 다른 병력까지 포함해 총 일천여 명의 목숨을 거둔 그들은 그 자리에서 멸문한 가문의 생존자가 억울하다는 증거를 읊고 전원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미친놈들이군.”

“미친놈들입죠.”

열세 명으로 천 명의 정병을 상대했다?

무의 경지가 깊다면 못할 것도 아니다.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 차이가 벌어진다면, 병력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베어버린 숫자가 일천에 달한다는 것이다.

“일 인당 백여 명씩 베었군. 고작해야 수십을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백 명에 달하는 숫자를 베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사람은 사람이 아닌 머릿수로 보였다는 것이겠지요.”

말 그대로 미친놈들.

자고로, 그런 놈들은 얽히지 않는 게 상책이다.

“걔네들 우리랑 가까이 붙어 있냐?”

“다행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요.”

“후, 다행이구만. 그놈들이랑 우리가 얽힐 일이 없겠지?”

“헤헤, 설마 있겠습니까요? 그들의 검채는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것입니다요. 만검산장을 굳이 건들지 않는 이유가,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사라질 이들이기 때문이다…이지 않겠습니까요.”

“그치?”

괜히 걱정했네.

설마 그런 미친놈들과 부딪치는 일이 있겠어?

* * *

떨리는 마음으로 하오문을 떠나온 당유혼은 곧장 가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계 총 소집령이 떨어졌다.

“무슨 일이야? 너 뭐 들은 거 있어?”

“나도 전해 들었는데? 얘한테.”

“엥? 나도 그냥 모이라고만 들었는데?”

옹기종기 모인 서른세 명의 방계들은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싶어 구시렁거렸다.

그러고 있자니,

“다들 모였냐.”

그들을 한 데 불러 모은 당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척―

보무도 당당하게 단상 위에 올라선 당유혼이 오랜만에 연무장 위에 모인 방계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들 요즘 사천성 내에 한창 떠들썩한 이야기는 들었겠지?”

“그, 뭐시기냐. 정천맹인가 뭔가 하는 거 말입니까?”

“그래. 거기서 곧 후기지수 비무대회가 열린다고들 한다.”

끔뻑끔뻑―

‘이 자식들이?’

다른 가문 놈들이었다면 당장에 명성을 날릴 기회니 뭐니 하며 좋아 날뛸 텐데, 이놈들은 어찌된 게 물고기마냥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너희는 뭐 입신양명이니 뭐니 하는 거 없냐?”

“입신양명이요?”

“그래. 멋들어지는 별호를 얻는다거나, 당가의 이름을 만천하에 떨친다거나 하는 거.”

“어…….”

방계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아리송해졌다.

‘별호라고 해도…….’

이미 당불퇴의 별호가 당가의 푸른 야수니 물러서지 않는 남자니 하며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한참이다.

게다가, 당가의 이름을 만천하에 떨친다고 해도,

“에이, 대형. 저희가 비무대회에서 무슨 짓을 한들, 대형이 지금 하고 계신 상행보다 더 대단히 위명을 떨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리고 그 뭐, 명성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귀찮다. 명성이고 나발이고 다 귀찮다.

방계들의 심정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이미 잘하고 있는데, 여기서 굳이 우리가 개개인의 위명을 떨칠 필요가 있나?’

이들도 가문이 번성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당유혼이 오기 전과 비교해서 지금은 과장 안 보태고 백 배쯤은 번성한 상태다.

꿈이라고 해봐야 한참 전에 성취했다고나 할까?

“저희는 사천에서 일어나는 소란이 있으면 잠재우고, 양민들이 힘들어하면 도와주는 걸로 족합니다.”

“맞아요. 굳이 명성을 떨쳐서 뭐 한답니까? 제가 듣자 하니 명성 그거 괜히 많이 퍼지면, 자기도 유명해지겠답시고 덤벼드는 놈들만 많이 꼬인답니다.”

휘적휘적―

귀찮다는 듯 학을 떼는 모습들!

“와…….”

이놈 자식들, 대체 누구한테 배우고 자라났길래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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