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87화 (187/350)

187화

방계들의 반응은 분명 예전이라면 옳지, 옳지 하며 박수를 쳐줄 만한 것이었다.

괜히 명예니, 뭐니 하며 깝죽대는 놈들이 있었다면, 당유혼 본인이 직접 어깨에 가득 찬 힘을 물리적으로 빼내 줬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지 않나.

‘이놈들이 대체 누굴 닮아서… 아니, 아니구나.’

힘을 가져도 그것을 세상에 자랑하지 않는다.

평셍 오롯이 자신의 가문을 지키고 살뿐,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거 완전,

‘사천당가, 이 더러운 사천박이들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잖아?’

음습하게 구석탱이에 박혀서 독이랑 암기만 만지작거리며 놀고 히히거리는 게 일생인 사람들의 가문.

생각해 보면, 방계들 중 몇몇 역시 이번 정천맹 창설로 어깨에 힘을 넣고 다녀야 한다 했지만 그게 자기 집에서나 잘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의 발로였지, 그 이상을 바랐던 적은 없다.

‘…그런데, 그런 이놈들을 데리고 뭘 하라고?’

생각해 보니,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잖아?

“그리고 후기지수 대회라면 대형이 나가셔도 되잖습니까?”

“위명을 높이는 수준이 아니라 저 하늘에 별 대신 박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안 해요, 안 해.

하나같이 손을 내젓는 모습에 당유혼은 머릿속에 뭔가 뚝 끊기는 걸 느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

무언가 심히 고장 난 듯한 웃음.

귀찮은 기색 팍팍 드러내며 고개를 젓던 방계들이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것도 그때였다.

“…얘들아.”

“옙!”

“말씀하십쇼, 대형!”

“너희들 고독이라고 알고 있냐?”

“고독이라면…….”

“그야 당연히…….”

고독은 항아리 속에 온갖 독물을 집어넣어 서로 싸우게 하고, 그중 가장 독한 놈을 선별해 내는 것이다.

독물을 다루는 당가이니 그 사실을 모를 리는 없다.

다만, 그게 왜 하필 여기서 나올까?

“그래, 여기까지 말했으면 이제 너희들도 이해했잖아. 딱 한 놈, 딱 한 놈만 제일 독한 놈이 비무대회에 나간다. 그리고, 무조건 우승을 가져온다.”

“예?!”

“아니, 이렇게 갑자기요?!”

“이건 폭거입니다!!”

당황한 방계들이 서둘러 항변했으나,

“그 항아리 속에 나도 들어가 줄까?”

“……!!”

그 한마디가 모든 걸 제압했으니,

“자, 시작해 보자. 항아리는 그 연무장 단상 위다. 내려오는 놈은 나한테 뒤지는 거야. 아, 물론. 탈락하는 놈도 뒤진다. 탈락하는 순으로 나한테 처맞는 거라 생각하면 돼.”

스르르…….

그 강렬한 의지를 뒷받침하듯, 당유혼의 등 뒤로 수백 개의 천골저들이 떠올랐다.

“무슨 허공섭물을 저딴 데 쓰고 있어!!”

몇몇 방계들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그때,

“이얍!!”

“죽어라!!”

슬쩍슬쩍 눈치만 보던 방계들 몇몇이 주변에 있던 형제들을 기습했다.

“어억?!”

그대로 단상 밑으로 떨어진 첫 번째 탈락자.

“네, 네가 어떻게 나를……!!”

배신감에 찬 눈으로 자신을 떠민 형제를 올려다보지만,

“미안하다. 나라도 살아야지 않겠냐?”

돌아온 것은 매정한 답변뿐,

그리고.

“이야, 첫 번째 탈락자 발생?”

귀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퓨퓨퓨퓨퓻!!

“끄아아아악!!”

천골저 세례가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

모두의 표정에 공포가 어렸으니,

“젠장!! 덤벼!!”

“이 자식들아, 안 그래도 평소에 너희 다 마음에 안 들었어!!”

생존을 향한 강렬한 욕구가, 가장 살아날 확률이 높은 활로를 쫓아 분출됐다.

다들 가지고 있던 암기와 독을 사방으로 흩뿌렸고, 몇몇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뒤로 빠졌다.

어떻게든 생존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퓨퓨퓩!!

“끄아악!!”

“으악!! 어, 어째서!!”

“지면 죽는다. 안 싸워도 죽는다.”

물러서는 이들의 뒤통수를 향해 천골저가 뾱뾱 꼽혔으니,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다투는 지독한 생존 혈투!

그 사실을 깨달은 방계들은 저마다 독과 암기를 뿌리다가,

“안 되겠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무조건 패배할 확률이 높다!”

“그러면?”

“합공! 이다!”

파파팟―

평소 삼재진을 펼치던 셋씩 뭉쳐 삼인조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결과,

“아니, 왜?”

“야 이놈들, 왜 우리만……!!”

당가 삼총사라 불리던 삼인방을 각기 분리시켜 협공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왜긴 왜야! 가만 놔두면 어차피 너희끼리 다 해 먹을 테니까 그렇지!”

“우리가 병신도 아니고 가만히 우리끼리 싸워주다 너희랑 당주 형님한테 정리당하는 결말을 맞이해 줄 것 같냐?!”

철저히 당가 삼총사가 삼재진을 형성하는 걸 방해하며 에워싸는 그들.

당지명이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돌아봤지만,

“아이고, 잘한다! 아주 잘한다!”

당유혼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으니―

“됐다! 대형한테 허락 맡았어!”

“조져버려!!”

방계들의 눈물겨운 혈투가 시작됐다.

“핫하- 죽어라!”

몇몇은 사이좋게 암기를 뿌리고,

“이거나 먹어라!”

몇몇은 또 독을 뿌려댔다면,

“크악!! 교, 교대해 줘!!”

“비켜, 내가 막고 있을게!!”

또 몇몇은 교대로 당불퇴의 육탄 공세를 막아 내고 있었다.

“이 찰거머리 같은 놈들이!”

“당가에 너희만 있는 줄 알았냐!”

당가 삼총사가 선구적으로 만들어낸 전투법은 기본적으로 다른 방계들에게도 전파되었고, 가장 효율이 좋은 방식으로 전투가 진행되었다.

항상 자신들만 써먹던 술수에 자신들이 당하니 당지명으로서는 어질어질해질 수밖에 없었고, 어느새 눈떠보니 장외 몰수패의 현실까지 몰려 있었다.

‘이, 이대로는……!!’

느껴진다.

뒤통수를 겨누고 살벌하게 느껴지는 예리한 젓가락 끝의 날카로움이!!

장내에 공포가 물씬물씬 피어오를 때,

“으아아아아아아아!!”

괴성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흐흐흐, 그래. 이 더러운 놈들아, 한번 해보자는 거지?”

그 외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당율기.

셋 중 가장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졌던 그는 가장 먼저 위기에 몰리고 있는 지금도 아슬아슬한 최후를 느끼고 있었다.

그게 그의 인내심을 뚝 끊기에는 충분했으니,

“형제들아! 어찌 나 혼자 갈 수 있겠느냐!!”

우리, 다 같이 가자!

“뭐, 뭐야?”

“저 자식 막아, 저거!”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위험하다 싶은 생각에 그들은 불길함의 원흉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당율기는 그보다 한 발 더 먼저 움직였으니,

“웃?! 우리가 펼친 삼재진의 기운이!”

“말도 안 돼, 어째서 저 녀석 멋대로 움직이는 거야?!”

삼재진을 펼친 건 자신들인데, 정작 당율기가 그것을 멋대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후 자욱하게 펼쳐지는 운무가 연병장을 가득 채웠으니―

“자, 잠깐만, 율기야. 아니지? 너, 너… 그, 그거 아니지?!”

“멈춰!”

“흐하하, 시작은 너희들이 했다!!”

“이거 순 미친 새끼 아니야?!”

넘쳐나는 기류를 전신으로 뒤덮은 당율기가 광인처럼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다 뒤져라!!”

환현붕괴(幻現崩壞)의 진.

개방(開放).

진짜로 초필살기를 갈겨버리는 당율기 덕에, 거대한 뱀의 형상이 장내를 뒤덮었고,

콰콰콰콰쾅!!

“으아아아악!!”

“도망쳐!!”

비명과 야유성, 무언가 무너지는 굉음만이 자욱하게 울려 퍼졌다.

후두둑―

무너진 단상의 돌 더미에서 먼저 일어난 것은 당불퇴였다.

“당율기 이 미친놈…….”

천하의 그 자신조차 치를 떨게 만든 당불퇴는 온 주변이 무너진 흔적을 보다 이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자신을 응시하는 당유혼에게 소리쳤다.

“형님, 이거 어떻게… 합니까?”

그에,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예?”

“빨리빨리 계속해, 결말을 봐야지.”

턱짓으로 슬쩍 가리키니, 그곳에는 막 돌 더미 속에서 고개를 드는 당지명이 있었다.

“…형님, 아직 살아 계셨수?”

“삼강오륜도에 따르면, 형만 한 아우가 없다지 않느냐.”

그러니 네가 먼저 가라.

당지명은 문답무용으로 두 팔을 휘둘러 천골저를 흩뿌렸다.

이미 단상이고 나발이고 남아나지 않게 되었으나, 그런 것쯤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남지 않게 된 순간이었다.

“핫! 부진장강곤곤래도 모르십니까? 항상 장강의 뒤 물이 앞 물을 치는 법이랍니다!”

천골저 수십이 날아왔지만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것들을 전부 쳐낸 당불퇴가 씨익 웃었다.

그러자,

“그 말, 대형한테 하는 말이냐?”

“……?!”

당지명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훅 하고 찔러왔다.

“아, 아니 그런 말이! 자, 잠시!! 대형! 아닌 거 아시죠?!”

“빈틈!”

예리하고 묵직한 일격에 당불퇴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당지명은 비천은사를 휘둘렀다.

“이런 치졸한!!”

“극찬으로 받아들이마!”

허공을 완전히 수놓고 휘둘러지는 은사는 당불퇴의 퇴로를 전부 점하며 전신을 후려쳤다.

이미 한 가닥, 한 가닥 내공이 듬뿍 담긴 은사는 더 이상 실 쪼가리가 아니라 수십 개의 몽둥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래도 형제간이라 절삭력을 살리지는 않았으나, 그것들이 당불퇴의 전신을 두들기자 내공을 둘러 보호했음에도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충격이 들이닥쳤다.

“포기해라,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을 거다.”

심지어 장소마저 유리했다.

처음에는 비천은사로 두들겨 패던 당지명이지만, 효율의 문제인지 효과의 문제인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연무장 바닥 파편을 휘감아 내려찍기 시작했다.

당불퇴가 하도 잘 버티니까, 주먹만 한 짱돌로 내려찍기 시작한 것이다!

‘지, 진짜 더럽게 싸우네!!’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는 당불퇴지만, 당가에서 더럽다― 라든가, 치졸하다― 라든가, 그런 것은 전부 당유혼어로 번역되어 잘 싸운다― 라든가, 싸움 좀 치네 와 같이 환원된다는 것을 알기에 아득바득 이를 갈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이판사판이다!!’

두들겨 맞고 두들겨 맞고 또 두들겨 맞던 당불퇴의 눈에서 안광이 희번덕 빛났다.

‘저 새끼 저거 위험한데?’

딱 봐도, 어딘가 돌아버린 것 같은 눈빛에 당지명은 주변에서 사람 몸통만 한 큼직한 돌덩어리까지 뽑아 휘둘렀지만,

“으아아아!!”

어느새 검푸른색에 뒤덮인 당불퇴는 그딴 것쯤은 몸으로 들이받으며 거리를 좁혀갔다.

“이 미친놈이, 중단전까지 쓰냐?!”

이쯤 되면 진짜 생사결!!

형으로서의 자존심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먼저 선을 넘은 동생에 대한 깊은 분노라 해야 할까.

당지명 역시 중단전을 끌어올리며 비천은사를 휘둘렀으니,

“뒈져라, 좀!!”

“으아아아아!!”

두 형제는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며 부딪쳤고―

콰아앙!!

화려한 폭음과 함께 메케한 흙먼지를 만들어냈다.

“으으으…….”

“끄으으…….”

그 결과는,

“뭐야, 양패구상이냐?”

어느새 가져온 당과를 입에 우적우적 씹어 넣으며 구경하고 있던 당유혼은 그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쯧쯧 혀를 찼다.

“이럼 재경기를 해야 하나…….”

기절한 둘이 들었다면 한 번 더 혼절했을 끔찍한 혼잣말이 장내에 울려 퍼질 때,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아저씨가 웬일이에요?”

적웅이 난리가 난 장내로 걸어 들어왔다.

“정문을 순찰 중이었는데, 정천맹이라는 곳에서 자네에게 직접 보낸 서찰이 있다길래 대신 전해 주러 왔다네. 한데, 이게 무슨 난리인가?”

“아, 별거 아니에요. 애들끼리 수련 좀 하느라고.”

암만 봐도 ‘별거’지만, 이 정신 나간 가문에서 괜히 상식적 판단을 기대한다는 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 줄 알기에 적웅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저 서찰의 내용이나 뭔지 들어볼까 기다리는데,

“엥? 뭐야?”

당유혼은 서찰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허허 웃었다.

“당가에서 참전할 수 있는 인원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네?”

즉,

“녀석들. 굳이 안 싸워도 된 걸 싸웠구만?”

그 서찰에는 어느 쪽이든 기절한 이들이 들었다면 다시 한번 까무러쳤을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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