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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91화 (191/350)

191화

창천검룡(蒼天劍龍) 남궁수.

용검도호라 불리며, 현 정파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리는 이었다.

잠룡전이 아직 비상하지 못한 용들의 전장인데, 이미 창천을 나르는 용인 남궁수의 우승은 정해져 있다는 등… 수많은 소문과 존경을 휩쓸고 다니는 젊은 검수.

그런 그가 홀로 긴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

그가 있는 곳은 정천맹 내부의 별채.

그중에서도, ‘특별한’ 손님들만 모신다는 최고급 별채가 남궁세가에게 주어졌고,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그는 그 별채의 중앙에 있는 긴 복도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선.’

심호흡.

크게 숨을 들이마신 그가 폐부에 산소를 가득 채운 뒤 입을 열었다.

“아버님, 소자입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낭랑한 목소리가 별채 내부에 퍼져 나가고, 곧 답이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마찬가지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장중하게 퍼져 나가는 것은, 그들 가문이 어릴 적부터 교육받아 온 제왕의 품격이 바로 그러함이기 때문이었다.

제왕가(帝王家).

그것이 남궁세가를 달리 부르는 호칭이니, 어릴 적부터 그렇게 자라길 교육받아 온 남궁수는 당대의 제왕이요, 검왕(劍王)인 그의 아비의 부름에 따라 이 별실 내부로 들어섰다.

“왔느냐.”

고풍스러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천맹 내부에서도 남궁세가를 접객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고 한껏 꾸민 별실이 바로 당대의 남궁가주, 남궁명의 별실이었다.

하나,

“표정이 좋지 않구나. 혹, 이 내부의 격이 그리 좋지 않아서더냐?”

남궁명은 그 모습이 별로 마음이 들지 않는지, 무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쩌겠느냐, 이들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 고작해야 이 모양인 것을. 그들의 모자람을 이해하는 것 역시 제왕의 품격이겠지.”

이해해 준다는 듯 말한 남궁명은 이내 자신의 앞쪽 좌석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앉거라.”

그 말이 떨어짐에 남궁수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좌석에 앉았다.

자신의 아비와 마주한 자리.

다른 가정이라면 당연 화목해야 할 터지만, 남궁수에게 있어 이만큼이나 불편한 자리가 많이 없다 싶었다.

“어떠하더냐.”

무엇이 말일까.

주어가 싹둑 잘려 나간 불친절한 질문이지만, 남궁수는 그것이 무엇에 관한 질문인지 감히 물을 수 없었다.

그 정도는 익히 짐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아비가 표방하는 교육 지론이며, 실제로도 남궁명은 종종 남궁수에게 이런 의뭉스러운 질문을 던지고는 했다.

그렇기에, 남궁수 역시 이 질문은 미리 예상한 바 있었다.

애초에, 이 자리에 와서 받을 질문을 스무 개쯤은 생각하고 온 그였으니까.

“변화가 느껴집니다.”

“어떠한 변화이더냐?”

“새 시대가 열릴 것이고, 그 시작이 이곳으로부터 일어날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실제로도 이후 협의정천의 시대가 열릴 것임을 안다면 놀라운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는 대답.

하지만,

“삼 점이다.”

움찔!

돌아온 답은 차가운 것이었으니, 고작해야 십 점 만점에 삼 점밖에 되지 않는다는 답은 저도 모르게 남궁수의 고개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 말에 남궁명은 미간 사이를 살짝 좁히다 물었다.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정천맹 때문입니다.”

“쯧쯧. 우습구나.”

오답이었다.

“겨우 정천맹 따위에 본가가 움직였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그래, 훗날 오늘을 가리키며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이름으로 정천이라는 두 글자를 넣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고작해야 그뿐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더 큰 것을 바라보는 남궁세가의 가주는 자신이 여기는 정답을 말했다.

“그건 바로, 여기가 사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그들 가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 가문이라면…….”

“사천당가(四川唐家). 한때, 시대의 중심에서 천명을 거머쥐었던 이들이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된 그 이름을, 오롯이 기억하는 제왕가의 가주가 두 눈에 이채를 발했다.

“너는 그들을 경계해라. 이제 빛바랜 왕좌가 되었으나, 한때 제왕의 자리에 오른 이는 분명 그 이유가 있다.”

“그들이… 그 정도의 저력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까?”

믿기지 않아 묻는 남궁수의 말에, 남궁명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직접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직접, 너의 두 눈으로 그들의 모습을 뇌리에 새기도록 해라.”

그것이 바로 패도를 걷는 제왕가의 숙명.

“잊지 말거라. 결국, 이 시대를 제패할 것은 우리가 되리라는 것을.”

‘…라고, 했던가.’

남궁수는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창천(蒼天).

저 푸른 하늘은 자신의 머릿속이 어떤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지 관심이 없다는 듯 도도히 흘러갈 뿐이었으니,

“…검룡?”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궁수는 뒤늦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내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보, 본인은 귀, 귀주 땅에서 온, 삼절검 이휴라고 하, 합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자신의 삼 차 예선 상대인 낭인 검객.

보아하니 비무대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무어라무어라 말한 것 같지만, 실로 안타깝게도 남궁수의 귀에는 닿지 못했다.

“…그렇군요.”

뭐라 말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음에도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상대방은 창천검룡과 말을 섞었다는 그 하나만으로 기쁜 듯 얼굴을 붉혔다.

실로 하잘한 일이다.

자신은 상대를 바라보지도 않는데, 상대는 저리도 좋아하다니.

‘애초에, 바라보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지.’

같은 자리에 서로 마주하더라도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면 이만큼이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남궁수가 어릴 적부터 질리게도 익혀 온 제왕도(帝王道)였다.

“아들아, 네가 걷는 길은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고독한 외길이다.”

그렇기에,

“홀로 걸어 쟁취하거라.”

남궁수는 지금껏 누구와도 함께한 적이 없었으니,

“두 선수는 준비가 완료되면 신호를 주시오.”

심판을 맡은 청성의 무인이 뭐라 말하든, 상대방이 서서히 기세를 끌어올리든 남궁수는 신경 쓰지 않고 검을 뽑아 들어 저 하늘을 향해 가리켰다.

“하면, 시작하겠소!”

그리고 그 모습을 신호로 알아들은 심판이 승부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

“아.”

제왕검형(帝王劍形).

천검세(天劍勢).

콰아아앙!

“크아아악!!”

비명과 함께, 상대방의 무릎이 비무장 바닥으로 내리 찍혔으니,

“차, 창천검룡, 승(勝)!!”

시작과 동시에 결판이 나버렸다.

* * *

“다음 참가자는 비무대로 올라와 주시오!”

마지막 삼 차 예선.

열 개도 넘는 비무대 중 하나에서 심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기다리고 있던 당불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웃차! 내 차례구만!”

마지막 삼차 예선부턴 드디어 일대일 비무였다.

여럿이서 난전을 펼치는 것도 좋지만, 말 그대로 무(武)를 겨루는 데 일대일만 한 게 있을까?

기대에 가득 찬 당불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비무대 위에 올랐고,

“이 악적!!”

올라서자마자 들려온 외침에 저도 모르게 움찔해서 뒷걸음질 쳐버렸다.

“아니, 또 왜?!”

하늘을 우러러 떳떳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몸인데, 왜 요즘은 보는 놈들마다 악적이라고 칭하지?

“사특한 가문의 후손이여! 감히 본문에 저지른 무도한 행위를 두고도 그리 떳떳할 수 있더냐!!”

“아니… 그니까, 너희가 왜 억울해하냐고.”

이번 상대는 다름 아닌 아미파의 비구니였다.

머리를 밀고, 가사를 두른 여승은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두 눈에 분노를 활활 피어올리고 있었는데, 다른 문파는 몰라도 사천삼주 중 하나인 아미파의 여승이 저리 화를 내니 당불퇴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악적! 당신을 벌하겠다!!”

“하아… 보아하니 진심 같은데.”

암만 봐도 많은 대화가 필요한 듯하지만,

“말로 할 생각은 없소?”

“악적과 나눌 대화는 없다!!”

암만 봐도 대화가 통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 그러시겠지.”

그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심판의 시작 소리와 함께 비구니는 매서운 권풍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요새는 참 많이도 보여.’

이번 잠룡전에 출전한 만큼, 저 여승은 아미파 내부에서도 많은 기대와 촉망을 받는 인재일 것이다.

내뻗는 주먹은 온갖 험한 수련을 다 받았는지 거칠거칠하기 짝이 없고, 그와 함께 뿜어지는 기세 역시 실로 웅장하기 그지없었으니.

하지만,

‘너무, 단순하잖아.’

주먹질이라면 참 징하게도 맞았다.

특히, 그들의 대형 당유혼에게 쥐어 터질 때 날아드는 주먹은 보고도 못 피하는 게 오 할이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변화구로 꽂히는 게 남은 오 할이었다.

그런 그때 비하자면 지금 뻗어져 오는 주먹의 권로(拳路)는 너무나 단순하였으니,

‘일부러 맞아주기도 힘들겠어.’

마주 손을 내뻗은 당불퇴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이 최고 위력을 발하기 직전 그 손목을 휘감듯 잡아챘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사복수(蛇伏手).

뱀처럼 내뻗어진 손이 여승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슨?!’

당혹스러운 표정이 지어짐과 동시에 당불퇴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상대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큭!”

완전히 균형이 무너진 여승은 그대로 넘어지나 싶었으나, 그 찰나의 순간 이를 악물며 반대쪽 손으로 땅바닥을 짚으며 몸 전체를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부웅―

칼날과 같이 발길질이 날아들어 당불퇴의 안면부를 노려왔다.

그마저도 당불퇴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피했고, 그 틈에 몸을 일으킨 여승은 재빨리 균형을 잡고 재차 주먹을 뻗어왔다.

“이것도 막아봐라!!”

복호권(伏虎拳).

맹호출림(猛虎出林).

그것은 실로 숲속에서 호랑이가 뛰쳐나오는 듯한 권격이였다.

걸음걸이도 안정되어 있었고, 내공의 분배 역시 깔끔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권격이란 말이 실로 어울리는 일격이었지만,

‘어째 한번 본 것 같은데…….’

이제 와 겨우 호랑이 정도로는 당불퇴에게 큰 감흥을 주기 힘들었으니,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삼절격(三絶擊).

눈부시게 마주 뻗은 세 번의 연격이 여승의 권격과 연이어 맞부딪쳤다.

파앙!

일격에 그 기세를 흐트러트리고,

쿠웅!

이 격에 그 자세를 무너트리니,

쩌엉!

삼 격에 빈틈을 만들어낸 당불퇴는 어렵지 않게 거리를 좁혀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허억!’

그 사실을 눈치챈 여승의 눈에 물든 것은 당혹감.

스스로 생각해도 완벽한 일격이라 생각한 것이 너무나 쉽게 파훼되고, 자신의 간극으로 들어온 상대방의 모습이 너무나 크게 비추어졌다.

‘마, 말도 안 돼, 이렇게 쉽게……?’

뻗어져 나오는 주먹이 시야를 메워옴에 여승은 너무나 서러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자신의 패배는 고작해야 개인의 슬픔이지만, 자신이 이 자리에 선 것은 사문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함이었으니,

‘억울… 해…….’

그 역임을 다 하지 못함에, 여승은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다가올 고통에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그런데,

“…응?”

정작 느껴져야 할 고통은 오지 않고, 세찬 권풍조차 느껴지지 않아 잠잠했으니, 여승은 저도 모르게 눈을 떴고,

“괜찮아요?”

어느새 넘어질 뻔하다가 자신을 바쳐 안은 당불퇴와 그의 품속에 안긴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앗?”

“훗, 이제야 좀 사람다운 반응을 보여주시네.”

마지막 순간, 모든 걸 체념한 듯 놓아버린 여승의 모습에 일격을 날리길 포기한 당불퇴는 머쓱하니 제자리에 섰다.

그러자 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쓰러지려는 여승이 보였고, 그녀가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기 전 재빨리 안아 든 모습이 바로 지금이었다.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닙니다. 악적이라 불릴 만한 짓을 한적은 더더욱 없구요.”

“예… 예?”

“고생했습니다.”

굳이 마지막 일격을 날리지 않아도 승부는 결정지어진 바, 조심스레 그녀가 설 수 있도록 도와준 당불퇴는 심판의 판정이 나자마자 곧장 연무장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의 뒤편에서 여승이 알 듯 말 듯한 시선을 던지는 걸 느끼지도 못한 채 곧바로 뛰쳐 내려간 당불퇴는 채신머리 다 집어던진 모습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인을 향해 달려갔으니,

“적 소저! 저 보셨습니… 헉?!”

“흥!”

그곳에서 본 건, 운남의 따듯한 기운을 품고 있는 적세희의 모습은 개뿔,

“네, 봤습니다. 아주 잘 봤지요.”

북풍한설보다 더더욱 차가운 기색을 보이는 적세희의 모습뿐이었으니,

“예, 예? 그, 그럼 왜 그 모습인지… 저, 저 엄청 잘 싸우지 않았습니까?!”

“예. 잘 싸웠지요. 아주, 자알~ 싸웠습니다.”

아무래도, 무언가 크게 잘못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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