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92화 (192/350)

192화

* * *

당불퇴가 찜찜한 승리를 맞이하는 동안, 당지명 역시 자신의 맞수를 맞이하고 있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드디어 네놈들을 벌할 기회를 얻게 되는구나.”

바득바득 이를 갈며 줄기찬 증오를 뽑아내는 상대, 점창파 출신의 검수 이강을 보며 당지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구려. 무엇이 그대에게 그런 분노를 심어준 것이오?”

“놈!! 잡아떼는 것이냐? 지난 일 년 네놈의 가문에 받은 수모를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일 년이라…….”

참 우습다.

당문이 저들 세 문파에 의해 핍박받은 기간은 그 수십 배에 달하는 데 고작 일 년이라니.

‘뭐, 따져봐야 별 의미는 없겠지만.’

무림에서 은원이란 물고 물리는 헝클어진 실타래와 같은 것. 일일이 따져봐야 머리만 아파질 것임을 알기에 당지명은 굳이 상대와 같은 분노를 품지 않았다.

‘품을 의미도 없지만.’

한때는 저 역시 원망한 적이 많다.

어째서, 어째서 자신들의 가문을 이리도 핍박하는가?

한때 함께 마교에 맞서 싸웠다는 전우라 들었건만, 어째서 이리도 자신들을 못살 게 구는가.

그들의 대형이 오기 전까지 홀로 분에 못 이겨 잠들지 못했던 지난밤들이 수십 수백 일이 넘는다.

하나, 대형이 오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는 원한을 가질 가치마저 잃은 이들.’

이미 추월해 버린 악연을 돌아보기에는 아직 당가가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그렇다면?

“잘됐군. 덤비시오. 나 역시 그대들에게 시험해 보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뭐?”

“그대들의 절기가 저 해도 쏘아 떨어트리는 찌르기의 일절, 사일검법(射日劍法)이라지? 이전부터 견식해 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겼군.”

“이놈이!!”

감히,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무예를 한낱 실험 대상으로 본다고?

“그 오만한 주둥아리를 꿰어주마!!”

시기적절하게 비무를 알리는 시작 신호가 들려왔다.

진작부터 기수식을 취하고 있던 이강은 시작과 동시에 섬전처럼 검을 뻗어왔다.

‘글쎄, 가만히 맞아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

물론, 준비하고 있던 것은 당지명 역시 마찬가지.

그가 두 소매를 흩뿌리자 소매 폭에서 빛살과 같은 투사체들이 날아들었다.

‘흥, 암기냐?’

쾌속무비하게 날아드는 투사체들이지만, 이 정도는 예상한 바.

당문이 독과 암기를 다룬다는 것쯤은 같은 사천에 사는 이웃으로서 모를 수가 없는 일이고, 이강의 검이 순식간에 대 여섯으로 분열되는 듯한 속도로 투사체들을 마주 쏘아 떨어트렸다.

퍼퍼퍽!!

“호오?”

‘과연, 속도 하나로는 무림일절이라 칭해지는 쾌검이구나.’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암기들을 쳐내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검 끝으로 암기들의 끝을 요격한다는 건 쉽사리 믿기 힘든 개념이었다.

물론, 감탄스럽기는 해도…….

‘지독히 비효율적이군.’

굳이? 라는 생각이 드는 방식.

‘하면, 숫자를 늘려보면 어떨까?’

다시금 두 손이 바삐 움직였다.

이번에는 날아드는 투사체의 개수가 족히 두 배에 이르렀으니,

“이놈이?”

이강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또다시 그것들의 끝을 정확히 맞춰 격추시켰다.

“같잖구나! 네놈들이 자랑하는 암기술이 고작 이 정도냐?”

“응? 우리가 자랑하는 암기술이라고?”

“비겁하기는! 네놈 가문의 성명절기조차 부정하고 싶은 것이냐?”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확실히 당가의 상징이라면 독과 암기가 맞기는 했다.

다만,

“음, 그대가 쏘아 떨어트린 걸 한번 보겠나?”

“뭐? 그게 무슨… 뭐, 뭐야?”

상대의 말에 코웃음 치면서도 무심코 바닥을 일견한 이강은 순간 흠칫해서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건… 저, 젓가락?!”

“아니 정식 명칭은 천골저(穿骨箸)라는 것이기는 한데… 그래도 자랑한다고 하기는…….”

아무래도 좀 그렇지?

“이이익!! 이 명예도 모르는 놈아!! 어찌 신성한 비무에서 이따위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짓을 할 수 있느냐!!”

“모욕이라니, 거 말이 너무 심하구만.”

확실히 이런 거에 맞으면 기분이 나쁘기는 했다.

당장 자신들의 형제들이 직접 당해 보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나름대로 손에 제일 익은 게 이것인데 어쩌겠소.”

하도 젓가락만 던져대다 보니 이제 금속 암기류는 낯설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걸로도 결코 부족함은 없을 테니 한번 받아보시오.”

다시금 당지명의 소매 폭이 휘날리고, 이제 그 수가 물경 세 배에 이르렀다.

“큭?!”

점창파 검수 이강은 당황하면서도 그 손놀림만큼은 침착하고 신속히 움직였다.

과연, 명문 정파의 일대 제자가 딱지치기로 따낸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훌륭하군!”

그 모습에 당지명도 감탄하며 소리쳤다.

“감질나게 두 배, 세 배 올려봐야 의미가 없겠구려. 그러니, 화끈하게 열 배로 갑시다.”

‘뭣?!’

거, 거짓말이지?

믿기지 않아 두 눈을 크게 뜬 이강, 그런 그의 두 눈에 저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젓가락들이 보였다.

‘며, 몇 개야 대체……!!’

물경하기에도 수십을 가뿐히 넘기는 숫자.

저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 힘이 빠지는 걸 느낀 이강은 애써 이를 악물며 스스로 되뇌었다.

‘야, 약한 소리 하지 마라, 이강!! 너는, 너는 사문의 명예를 드높여야 하는 몸이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상황 속에서 이강의 의지는 더욱 밝게 빛났다.

십수 년 쌓아온 웅혼한 내공이 주인의 의지와 공명하며 단전으로부터 솟구쳤고, 그의 검이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저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사일검법(射日劍法).

난투섬(亂鬪閃).

파파파파파팟!!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요혈을 향해 내리꽂히는 것은 전부 쳐냈다.

시간차를 두고 떨어지는 일백에 달하는 암기를 일일이 쳐내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기예.

그것을 펼쳐내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와 같았으나, 그 찰나에 일백 번의 찌르기를 욱여넣는 것은 그의 모든 내공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으아아아아아!!”

머리가 새하얗게 될 정도로 미친 듯 휘두르는 검격!

쏟아지던 암기의 비도 드디어 그 끝이 보이는 순간, 이강은 스스로에 대한 인간 승리를 느꼈다.

‘해, 해냈ㄷ…….’

“대단하구려. 그걸 다 쳐낼 줄은 몰랐소.”

들려오는 찬사.

그리고,

“뭐, 거기까지기는 하지만.”

뽁―!

젓가락 하나가 날아와 그의 뒷통수에 꽂혔다.

부지불식간에 얻어맞은 일격에, 방어는커녕 회피 동작 하나 할 여유가 없었던 이강은 그대로 쓰러졌다.

“끄억!”

‘대단하긴 하군.’

그걸 굳이 다 쳐낼 생각을 하다니.

‘저 정도 속도면 그냥 피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다만.’

어쨌든 굳이 정면 승부를 해줬으니 당지명 입장에선 평소 궁금증도 해결하고 비무도 쉽게 이겼으니, 이득이었다.

“으으… 이, 이게… 만천화우……?”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강의 입에서 신음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허, 만천화우?”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만천화우라니, 내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겠소?”

대형이야 심심하면 뿌려대니 그게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기술인지 아는데, 만천화우는 원래 당가 칠대 금기에 속하는 기술이다.

“백우시(百雨矢)라고 하오.”

그냥 암기술일 뿐이지.

“그, 그런… 끄으윽…….”

“당지명 승(勝)!”

점창파 검수 이강은 허망한 표정으로 실신했고, 뒤늦게 승리를 알리는 심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흠.”

찜찜했다.

기껏 승리를 차지했음에도, 당지명의 표정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구파일방의 수준이란 고작 이 정도인가?’

당가는 사천삼주라 불리는 이들에게 모진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다. 아닌 척해도, 그런 삶을 살아온 당지명에게 그들 사천삼주는 끔찍한 굴레였고 한때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과도 같아 보였다.

하나, 그런 벽이 조금 전 너무나 쉽게 허물어졌다.

‘그럼, 우리가 그동안 한 고생은 무엇이지?’

대형 당유혼이 당가로 온 뒤 방계들은 매일 죽을 만큼 괴로운 고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시간이 결코 쉬운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대형이 오기 전의 시간이 그것보다 나은 건 또 아니었다.

‘그만큼 힘든 시간이었건만…….’

허탈하다는 게 솔직한 심경.

분명, 잠룡전이 시작되기 전 대형이 자신들에게 말하기는 했었다.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다만, 아청점 이 세 놈들과의 승부는 생각보다 더 허탈할 거다.”

그들은 지난 세월 집단을 이루고 세력을 만들며 일신의 무위를 닦기를 게을리한 이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듯, 그들의 검은 녹슬고 검 자루는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던 대형의 말을 그때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들었다.

‘그냥 평범하게 그들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직접 맞부딪쳐보니, 그들이 자랑하는 무공에 얼마나 핵심이 되는 것이 빠져 있는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승리했음에도 오히려 당지명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때,

“다음 비무자 올라와 주시오! 청성파의 진혁수!”

이제 막 시작되려는 비무대에서 심판의 호명이 들렸다.

‘진혁수?’

자신도 아는 이름에 당지명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쓸 만한 놈이 있긴 하더라.”

동시에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대형의 목소리.

“진혁수라고, 너희도 알지? 그 쌍칼잡이.”

저도 모르게, 식었던 기대가 차오르는 당지명은 집으로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돌렸다.

* * *

“두 비무자는 준비해 주시오.”

심판의 외침에 따라 진혁수는 비무대에 올랐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자신의 상대는 구파일방 중 중위권을 자랑하는 종남파의 검수였다.

‘풍뢰검(風雷劍)… 마일영이라 했던가?’

조금 전 심판의 호명을 떠올렸다.

워낙 그동안 사천 외부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덕에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나왔다면 종남에서도 기대받는 신진기수가 아닐까 싶었다.

“청성의 진혁수요.”

그에 철검을 들어 올려 포권을 취하자,

“훗, 청성이라… 그 이름은 익히 들었지.”

상대는 마주 인사하는 대신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사천에 자리한 세 개의 방파. 그들은 일신과 문파의 무위가 아닌 세력과 정치, 협잡으로 그 자리에 올라 연합을 결성했다지? 암만 썩을 대로 썩은 이 시대이지만, 그들 중 제일이 그대들이고, 또 그대들 중 가장 정치에 셈이 밝은 게 청성이라 들었다.”

“…….”

시작 전 도발이라기에는 뼈가 있는 말이었다.

개인을 도발하는 걸 넘어 문파를 도발하고, 문파를 도발하다 못해 지역 자체를 도발하는 발언.

그에 진혁수가 입을 다물고 있자 마일영은 더더욱 조롱 섞인 비웃음을 던졌다.

“왜 대답을 않지? 스스로도 부끄러운가?”

“…뭐, 틀린 말이 아니니까 그렇소.”

“응?”

반박도 할 거리가 있어야 하지.

확실히, 진혁수가 생각하기에도 그간 자신의 사문을 비롯한 청성과 사천삼주는 무공이 아닌 세력과 집단의 협잡질로 그 자리에 오른 바가 컸다.

“그렇기에, 내가 개혁하려 하는 것이기도 하고.”

“우습군. 너 홀로 말이냐?”

“내가 누군지 모르오?”

“흐흐흐, 너 따위를 내가 알아야 하느냐?”

계속되는 조소 속에 심판이 비무의 시작을 알렸다.

“너 따위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아. 너는 그저 본문이 나아가기 위해 가는 길에 놓인 돌멩이에 불과할 뿐!”

마일영은 자신감 넘치게 소리치며 검을 휘둘러 갔다.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法).

일검단운(一劍斷雲).

종남이 자랑하는 천하삼십육검이 그림과 같이 펼쳐지며 철검이 내리 휘둘러졌다.

삼 장여에 달하던 거리가 일장으로 좁혀질 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진혁수의 모습에 마일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놈, 사천 따위의 촌구석에서는 감히 견식도 못 했을 쾌검일 거다!’

종남파의 촉망받는 기재였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감!

그리고, 마일영의 철검이 마침내 목전 앞에 다가왔을 때,

“느려.”

진혁수의 입술이 달싹이며 그의 양손이 움직였다.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단천일뢰(斷天一雷).

번쩍!

노을과 구름 사이를 가로지르는 한 줄기 번개가 일었다.

콰아앙!!

달려들던 마일영이 그 배의 속도로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고,

“크악!!”

쿠당탕!!

전신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비명을 토할 때, 언제 검을 뽑았냐는 듯 다시금 애검 청운(靑雲)을 회수한 진혁수는 산보라도 나온 듯 팔짱을 꼈다.

“다시금 소개하겠소.”

그리고,

“청성일검(靑城一劍). 진혁수요.”

오연히 선언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