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당불퇴의, 당불퇴를 의한, 당불퇴를 위한 대 연애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선 널찍한 공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구중보가 먼저 물었다.
“형님. 혹시 어디까지 해보셨습니까?”
“뭘 어디까지 해?”
“후우… 보아하니 입술 박치기도 안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헙?!”
이, 입술 박치기?!
“어, 어떻게 그런 나, 남사스러운 일을…….”
“허… 남사요?”
이 양반 이거…….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도 옛말인지 오래입니다. 손은 잡아보셨습니까?”
“손이야 뭐… 큼, 크흠!”
아직도 기억이 난다.
보름달이 환하게 뜬 날 밤, 초원 위에서…….
“회상은 그만하셔도 됩니다. 충분히 문제가 뭔지 알겠으니까.”
“무, 문제라니!”
손 한 번 잡은 걸로 머릿속에서 가극 한 편 뽑아내려는 당불퇴를 제지한 구중보는 자신이 형님으로 삼기로 한 상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 여심에는 진짜 무지하구나.’
하긴, 그러니 이 나이에 이 정도의 강함을 얻었겠지만.
“형님의 연인이 누구십니까?”
“여, 연인?! 연인까지는…….”
“아닙니까?”
“아닌 건 또 아닌데…….”
답이 없다.
‘이 사람은 안 되겠다.’
패왕보의 후계자 구중보.
섬서의 무수한 여심을 훔쳤던 답화공자로서, 그리고 또 차마 한 남자의 두 눈 뜨고 못 봐줄 청춘을 위해서,
“형님, 잘 들으십시오.”
그는 결정했다.
“공략 들어갑니다.”
여심에 대한 속성 강의를 시작하기로.
반나절이 지났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지요.”
“끄, 끝이야?”
“일단은요.”
“크학……!”
하루 종일 무공 수련을 해도 끄떡없는 당불퇴지만, 단 반나절 만에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
말 그대로 뇌를 쥐어짜는 듯한 경험이었다고 할까?
그래도,
‘확실히, 이 녀석은 전문가다.’
열과 성의를 다하는 건 덤이고, 그 밑에 탄탄하게 깔린 빠삭한 연애 지식이 느껴졌다.
여심에 대해 문외한인 당불퇴마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속성 강의에 그는 몇 번이나 찬탄했고, 이걸로 끝이 아니라 말하며 열의를 불태우는 모습에는 당불퇴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끄응, 좋다. 네 무공, 확실히 봐주마.”
“헉!! 그게 정말입니까?”
다음 날 교보재로 뭘 준비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구중보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물론이지. 너 그런데, 밤이 늦었는데 안 돌아가 봐도 되겠냐?”
“아, 죄송합니다. 밤늦게까지 폐를 끼쳤습니다.”
“폐까지는 아닌데… 근데 그 반응을 보니 안 돌아가도 되나 보다?”
“그렇죠. 나이가 몇인데 외박 정도는 허락 맡았습니다.”
실은 워낙 외박이 잦았기에 이젠 크게 개의치 않는 것이지만.
“그래? 그럼 당분간 여기서 숙식해라.”
“예?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이주 안에 효과 보려면 별수 있겠냐.”
여기서 자고 가라.
“가, 감사합니다!”
“감사까지는. 그럼… 일단 머무를 곳부터 찾아봐 주마.”
옛날에야 방계들이 같은 건물 내에 옹기종기 살았지만,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가세가 회복되니 이제 하나하나가 개인실을 받게 되었다.
원하면 아예 각자가 별채를 지을 수도 있게 됐는데, 당불퇴 역시 워낙 붉은 바위 일족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그들의 장인들이 함께 도와 별채를 올린 상태였다.
“넌 여길 써라.”
안내해 준 곳은 작은 별실.
붉은 바위 일족의 장인들이 손님이 오면 모시라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딱히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역시, 인생 알 수 없는 것이구만.’
구중보에게 쉴 곳을 안내해 준 뒤 당불퇴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휴식을 취하려는 목적은 아니었고,
“흠, 내가 무공을 가르친다니…….”
당장 내일부터 할 일에 대한 진지한 고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처음은 아니긴 해.”
지금쯤 붉은 바위 일족의 마을에서 먹을 걸 얻어먹고 있을 삑삑이라는 선례가 있긴 했다.
“하지만, 걔를 가르칠 때랑은 또 다르겠지.”
당불퇴는 스스로를 알았다.
무식하고, 무지하며, 무도했다.
아는 게 없고, 알 생각도 없으며, 길도 없었다.
일단 들이박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게 자신의 방식이기에 남을 가르치는 데는 별다른 소질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안 되지만, 가르치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힌 사람을 잘 알잖아?”
이류는 무슨, 삼류에 불과한 무인 서른세 명을 단 일 년 만에 하나도 빠짐없이 절정 고수로 키워낸 이 시대의 일타 강사.
처맞을 때는 이를 갈았지만, 결국 돌아보니 그가 옳았다는 걸 깨닫게 하는 진정한 참 스승.
도저히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가 있었으니,
“대형의 방식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당불퇴는 단순하게 결론을 내렸다.
* * *
말똥말똥.
구중보는 거의 반쯤 뜬눈으로 밤을 샜다.
‘내가, 강해질 수 있을까?’
스스로가 생각해도 무모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세를 드높이기 위해서라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가문으로 찾아와 제자로 삼아달라니.
그만큼 절박했기에 한 행동이지만, 솔직히 아직도 이게 맞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았다.
‘아니다. 약한 생각하지 말자.’
이미 스스로 선택한 길.
그르든 틀리든 이 주 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자자, 조금이라도 자자.’
조금 있으면 새벽이 될 테고, 그때부터 수련을 하려면 지금이라도 잠을 자둬야 한다.
그렇게 애써 눈을 붙이는데,
콰앙!
“중보야, 잘 잤냐!”
문을 걷어차며 호쾌하게 등장하는 이가 있었으니,
“혀, 형님?”
수면용 소복을 입고 있던 구중보는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친 당불퇴의 차림새를 보고 당황해서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너 잠이 많구나? 아직도 그 차림이고.”
“예, 예?”
“수련하려면 일어나야지.”
“……?”
꼭두새벽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상대방은 진심이 가득 해 보였다.
“원래면 마보부터 시작인데, 너도 어릴 때부터 했을 테니 그건 재끼기로 했다. 자, 이걸 차.”
철컥―
그리고는 쇳소리 가득한 주머니를 하나 건네오는데,
“이게 무… 허업?!”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받으려던 구중보는 허리가 앞으로 쑥― 꺾이는 기이한 경험을 체험했다.
“짜식, 생각보다 허약하구나?”
“이, 이게 뭡니까?”
“발목과 손목에 차면 돼. 근력과 체력을 올려주는 데 효과가 확실하지.”
내용물을 보니 통짜 쇠로 만들어진 수갑이 보였다.
두 수갑 사이로 쇠고랑만 연결되어 있으면 훌륭한 죄인 수감용 수갑이 될 텐데…….
‘무슨 무게가…….’
안쪽을 가죽으로 덧대 그나마 손목이 끊어지지는 않게 배려한 그걸 차자 벌써부터 몸이 무거워졌다.
게다가, 착용해야 할 것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으니,
“자, 이것도 들어.”
그다음으로 주어진 것은 묵직한 지게.
“이, 이건 왜…….”
“뭐하긴, 지게를 어디다 쓰겠냐?”
지게를 쓰는 곳은 하나뿐.
“약초 캐러 가자.”
그들은 산을 올랐다.
* * *
“헉… 허억… 헉!”
죽을 것 같다.
아니, 그냥 죽는다.
확실히 죽는다.
수련 시작 반 시진 만에 구중보는 주마등을 느꼈다.
“혀, 형님… 저, 정말 이게 맞습니까?”
“힘들지? 원래 처음은 다 그래.”
“히… 힘든 것도 힘든… 허억?!”
투르륵―
말하던 와중 밟고 있던 절벽의 돌조각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니, 이젠 나무 사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지면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죽는다!! 떨어지면 무조건 죽어!!’
저 나무들이 수면과 같았고, 그 사이로 몰아치는 소용돌이가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야야, 돌아보지 마. 돌아보면 현기증 나.”
“아니……!!”
내공을 동원해도 버거운 짐을 지고 산길을 올랐다. 단순히 산길만 오르면 양반이지, 이제는 암벽까지 등반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을 괴롭히려 일부러 이러나 싶었지만,
“먼저 갈 테니 따라와라.”
툭 하고 뱉듯이 말하고, 바퀴벌레마냥 뽈뽈뽈 먼저 암벽을 등반해 올라가는 당불퇴의 모습을 보니, 저게 한두 번 해본 실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미쳤어, 여긴 진짜 미쳤어!’
손목 발목에 착용한 족쇄도 보통 무게가 아니었다.
이런 수련이야 무가에서는 어릴 적부터 하는 종류의 것이기는 했지만, 그 중량 자체가 틀렸다.
‘그런데, 정작 이리 무거운 것들이 형님이 착용한 것의 반의반도 안 된다고……?’
“응? 내 거? 내 거는 안 되지. 이거 묵철로 만든 거라 같은 부피라도 네 것보다 열 배는 무거울걸?”
특수 금속을 손목 발목에 달고 사는 당불퇴는 등에 진 지게마저도 일반 목재 지게가 아닌 철재 지게였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스스로의 의지를 다진 구중보는 다시금 죽어라 암벽을 타고 올랐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끝이 아닌걸.
“왔냐?”
절벽을 다 오르니 이미 약초를 캐고 있던 당불퇴가 고개만 빼꼼 돌려 손을 흔들었다.
이미 그의 지게와 망태기에는 약초가 수북했으니, 구중보는 부르르 떨며 조금 전 구역에서 약초를 캐던 대화를 회상했다.
“야, 약초를 캔다는 말입니까?”
“말했잖아.”
“저희 수련하러 온 것 아닙니까?”
“수련 맞지.”
당불퇴는 당당했다.
“이게 속성 강의야, 인마. 우선 약초를 찾는 과정에서 기감을 발달시킬 수 있다. 영험한 약력을 지닌 약초나 독초는 미약하지만 다른 식물보다 보유한 자연지기가 짙지. 분명 차이가 있어 그걸 추적하는 게 첫 번째 훈련이다.”
뿐만인가?
“또 약초를 캐는 데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지. 잘못 캐면 뿌리가 상해 약효가 떨어지는 게 많아. 우리 같은 권사는 단순해 보이고 무식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세세한 부분에서 섬세함이 필요하거든. 손가락 끝, 마디마디에 적절한 내공 배분을 해야 잘 캘 수 있는 거야.”
바로 이렇게.
어디선가 팔뚝만 한 더덕을 캐내 보인 당불퇴가 씨익 웃었다.
‘이게 진짜 맞나……?’
터덜터덜 걸어가 옆에서 약초를 캐는 구중보였고,
“아니, 이 녀석아! 살살 캐라니까?”
“이파리! 이파리가 상하잖아!”
“잔뿌리! 잔뿌리 뜯기잖아!”
한 번 실수할 때마다 폭풍 같은 잔소리가 날아왔다.
“죄, 죄송합니다!”
그나마 이런 숲속에서 캐다가 잔소리를 듣는 건 양반이었으니,
“혀, 형님! 진짜 이거 맞습니까?”
“맞아! 팔지엽초는 이런 데서만 자라거든. 이거 보이지?”
절벽에 매달린 채, 절벽에서만 자라나는 특수한 약초를 찾아내는 건 매 순간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휘이잉―
한 번씩 불어오는 바람이 간담을 서늘하게 할 때면, 얼마나 땅 밟고 서 있는 게 고마움도 알 수 있었다.
당장 지금도 보라, 이렇게 바람이 온몸을 감싸는…….
“어… 어?!”
아니, 감싸는 게 아니잖아?
“으아아아악!!”
손이 미끄러져 추락하기 시작하는 구중보는 삶의 마지막을 느끼며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터억―
“야, 이놈아. 집중하라고 했지?”
그런 구중보를 잡아내는 당불퇴가 서로의 허리에 묶인 줄로 대롱대롱 매달린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지금 몇 번째냐?”
벌써 절벽에서 떨어지는 경험만 다섯 번째.
“어흐흐흑…….”
아무리 강해지고 싶다지만, 하루에 다섯 번 연속 죽음을 경험한 구중보는 눈물이 핑 도는 걸 느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