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96화 (196/350)

196화

죽는 줄 알았다.

이 말을 대체 오늘 몇 번이나 했을까?

하루 종일 이 산 저 산 뛰어다니며 험지란 험지는 다 다니며 온갖 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 이거 맞나?’

구중보는 자신이 수련을 하는 건지, 아니면 자살 명소를 찾아다닌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해야 했다.

‘주먹 한 번 안 휘둘러봤는데… 벌써 이 시간이라니…….’

털썩―

쓰러지듯 땅바닥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낯설다. 사천의 밤하늘이… 너무나 낯설어…….’

낯선 타지에서 경험한 오늘의 고행.

솔직히, 처음에는 자신을 떨쳐 내기 위해 일부로 괴롭힘을 일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어. 이 미친 가문은 진짜로 이런 식으로 수련을 하는 거였어…….’

우선 손목 발목에 찬 수갑부터가 그러했다.

“응? 나도 같은 걸 차냐고? 아니, 당연히 다르지.”

철컥―

“내 건 묵철이라는 특수 소재라서, 열 배 정도는 더 무거울걸?”

당불퇴 장난처럼 들어 올린 손목 발목에는 거무튀튀한 금속재 쇠고랑들이 착용되어 있었으니, 그걸로 주변 나무를 두들기니 무슨 수십 근 철구로 후려친 것마냥 쩌저적 나무가 박살 났었다.

‘어떻게 그 큰 아름드리나무가 부서지냐고…….’

수갑과 족갑은 기본 시작에 불과했다.

“어, 불퇴야. 네가 산의 초입엔 어쩐 일로… 아, 저 사람 수련시켜주는 거냐?”

“그래, 당적삼 네놈들이 방치하고 떠난 뒤처리를 하는 중이시다.”

처음에는 당불퇴가 자신을 데리고 사람이라면 일평생 한 번이라도 발 디딜 일 없을 험지만을 전전했다 생각했건만, 오다가다 만난 방계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은 오히려 왜 이렇게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있느냐고 놀라워했다.

‘원래라면, 더 깊은 험지까지 가는 게 형님의 평소 수련 경로라고 했지…….’

뿐만이 아니었다.

“크으… 좋다.”

“뭐야, 벌써 중량 다 쳤냐?”

“아니? 미쳤냐? 이제 몸풀기 끝낸 거지.”

“그치?”

당가에 들어온 지 이제 고작 하루에 불과하지만, 그 하루 만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이 가문의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미쳐버린 게 분명해.’

그들이 행하는 수련은 어릴 적부터 패왕보의 가주 자리를 잇기 위해 혹독한 수행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구중보의 시점에서도 정신이 나간 수준이었다는 것.

그건 그간 그가 대문파에 가지고 있던 잘못된 열등감을 깨부수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간 패왕보가 그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부족하기에, 영약 등을 챙겨 먹지 못해 내공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만약 다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사천당가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 자신에게 부족한 건 절대적인 수련 양이었다.

‘밥 먹고 숨 쉬듯이 수련한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것이었구나.’

일상생활의 모든 게 수련이었다.

하다못해 이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와중에도 온몸에 수십 근 족쇄를 매달고 있으니, 수련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생각에 멍하니 별 헤는 밤을 보내고 있자니―

“여, 나 왔다.”

달그락달그락 소리와 함께 당불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습니까, 형님!”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당불퇴가 오자마자 구중보는 잽싸게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그 모습을 보며 당불퇴는 생각했다.

‘처음 만남은 좀 그랬지만… 확실히, 보면 볼수록 괜찮은 놈이야.’

솔직히 처음에는 자신들이 하는 수련을 조금만 시키다 보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사정 봐주지 않고 몰아친 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진짜 죽을 뻔한 경험을 그렇게 겪고도, 꿋꿋하게 따라왔다.’

기본은 된 놈이랄까.

이쯤 되니 당불퇴 역시 뭔가 의욕 같은 게 치솟는 기분이었다.

“됐어, 다시 앉아.”

“에이, 형님이 서 계시는데 어찌 않겠습니까?”

“앉아야 다음 차례가 되니까. 이거 받아.”

“이게 무엇입니까?”

당불퇴는 맨몸으로 오지 않았다.

돌연 반 시진 휴식 시간을 주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돌아온 당불퇴의 두 손에는 약탕기가 들려 있었는데, 그가 내민 대접에는 진갈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육체는 찢겨지고 부서진 뒤 재구성되며 강해지는 법. 잘게 찢고 자근자근 박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붙이는 것도 만만치 않게 중요해.”

그리고 잘 붙이려면 그런 재료가 있어야 하고.

“잠깐만 기다려봐. 대충 다 달였으니까.”

약탕기의 크기는 상당히 거대해서 사람 몸통만 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뚜껑을 열어젖히니, 수십 가지의 약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재에 그리 박학하지는 않은 구중보지만,

“어엇? 혀, 형님! 이건 적하수오가 아닙니까? 게, 게다가 저건 설명초?”

그런 구중보도 알 만한 약초들이 여럿 보였다.

그러니까, 싹 다 비싼 약초들이란 소리였다.

“설마… 이걸 저에게 먹이시려는 겁니까?”

“그럼, 갖다 버리려고 가져왔겠냐?”

“형님……!”

구중보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어찌 이런 귀한 것들을……!!”

단 하루의 인연이라 여겼다.

순전히 자신의 억지로 맺어진 인연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당불퇴가 꺼낸 것들은 결코 하루의 가벼운 인연에서는 제공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크흑… 죄송합니다! 제가 형님의 진심을 오해했습니다!!”

감동의 눈물을 줄기줄기 흘리는 구중보였고,

‘…뭐래는 거야?’

그걸 본 당불퇴는 약탕기를 달이면서 애써 떨떠름한 표정을 숨겼다.

‘그냥 창고에서 대충 보이는 대로 챙겨온 것뿐인데……?’

지금의 사천당가는 예전의 성세를 대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과거 사천당가가 운영하던 약초장을 팔 할 이상 회수했으며, 장강수로상단과 광형상단을 통해 대륙적으로 약초와 독초를 입수해서 창고에 적재해 두었다.

덕분에, 이미 당가의 창고에는 어지간한 구파일방 오대세가에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약재들이 악성 재고 수준으로 쌓여 있었다.

‘이것도 총관님이 어서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간 건데…….’

더 놔두면 썩어버리기 직전의 것들만 챙겨왔다는 사실을 알면 구중보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굳이 말 안 하는 게 낫겠지?’

애써 행복한 상상에 빠져 단꿈을 꾸는 사람을 깨울 필요가 있을까 싶었기에 굳이 더 말하지는 않고 조재가 완료된 약사발을 내밀었다.

“마셔. 마시고 곧바로 운기행공을 시작해.”

“감사합니다, 형님!”

구중보는 별다른 의심 없이 당불퇴가 내민 약 그릇을 넙죽 받아마셨다.

꿀꺽꿀꺽―

목울대를 통해 약액이 넘어가고, 구중보는 곧바로 가부좌를 튼 자세로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형님이 주신 은혜, 단 한 방울도 허투루 쓰지 않으리라!’

스스로의 각오를 한층 더 단단하게 하면서.

한데,

‘오오… 엄청난 약력이다. 이 정도면 족히 일 갑자의 내공을 선사한다는 영약에 버금갈 정도가 아닐… 응?’

운기행공을 통해 혈도로 흡수되는 내공을 보며 감탄 또 감탄을 하고 있는데,

‘헉… 무, 무슨 약력이…….’

약력을 내공으로 환원시키며 그 끝을 헤아리자니, 도저히 그 끝이 보이지가 않았다.

‘이, 이건… 너무 많잖… 크어억?!’

결국, 약력은 구중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가볍게 넘겨버렸으니―

‘위… 위험해! 이러다간 주화입마가……!!’

그의 이성마저 노도처럼 몰려오는 약력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한편,

“음, 시작이구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불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풀었다.

구중보는 이것이 오늘 일과의 끝이요, 영약을 먹고 운기행공만 돌리면 된다 생각했지만, 당불퇴는 이것이야말로 수련의 계속이며 가장 큰 난관이라 여겼다.

“그나저나 이 녀석. 진짜 독에 대해 모르는구만?”

만약 알고 있었다면, 결코 이렇게 벌컥벌컥 들이키지 못할 것들이 다량 섞여 있었을 텐데.

‘뭐, 그게 대형이 우리에게 전수해 준 교육법의 핵심이지만.’

강해지기 위해 뭐든 한다.

일상의 모든 것을 수련으로 치환한다는 것은 먹는 것조차 수련으로 치환해야 한다는 뜻.

단순히 체력을 보충하고 양분이 될 걸 흡수하는 게 기존의 식사라면, 당가의 식사는 죽을 각오하고 먹는 게 식사였다.

‘강해질 수 있다면, 독까지 먹어야 하니까.’

“삑삑!”

“왔냐?”

구중보의 눈이 점점 흰자위를 보이며 까뒤집히는 동안 저편에서 삑삑이가 후다닥 날아왔다.

“넌 아직도 날 때마다 중단전을 써야 해?”

이젠 삑삑이도 날 수 있게 됐다.

다만, 그때마다 항상 오색 창연한 전신을 휘둘러서 온 주변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했지만.

“삑삑!”

“날면 그만 아니냐고? 그건 맞지.”

그래,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자, 시작해 볼까.”

구중보는 현재 실시간으로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 놔둔다면 반 시진은커녕 일각이 되기도 전에 죽음에 이를 것이다.

‘그게 참 귀찮아.’

당가의 방계들은 당유혼이 전수해 준 귀원일기공 덕분에 죽을 각오만 하면 어지간한 독은 다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무인들은 그랬다간 다 죽는다.

‘열심히 운기행공을 돌려봐야, 더 빨리 죽을 뿐일 테니까.’

암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막 나가는 당불퇴라지만, 그렇다고 가문의 무공을 함부로 타인에게 알려줄 수는 없었다.

애초에,

‘남은 시간은 이주 남짓. 그 안에 귀원일기공을 알려주려 했다간, 심법을 전수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다 가버리겠다.’

그래서 당불퇴가 택한 것은 더욱더 직관적인 방법.

“시작하자.”

당불퇴와 삑삑이의 눈에서 동시에 검푸른색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중단전을 활성화하며 그들의 기감이 더더욱 예리하게 활성화되었고, 그런 기감의 확장은 놀랍게도 근거리에선 타인의 체내에 흐르는 내공의 유동까지 관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나랑 삑삑이는 둘 다 감각이 좋아.’

이미 짐승 같은 수준이라 인정받은 당불퇴도 당불퇴지만, 적세희의 부탁을 받고 지난번 마교도들의 숲에서 자신들을 찾아낸 삑삑이의 감각도 중단전이 그쪽들로 활성화된 게 아닐까 싶은 수준이었다.

“막힌 걸 뚫고, 넘쳐나는 건 옆으로 흘리면 돼.”

“삑.”

알겠다고 대답하는 삑삑이의 부리와 당불퇴의 손이 동시에 움직였다.

퍼퍼퍼퍽!!

퓻퓻퓻!

쉼 없이 구중보의 전신을 두들기는 모습은 사람 하나와 새 한 마리가 사이좋게 한 명을 두고 쥐어패는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놀라울 정도로 미세하고 정밀한 내공 조절이 있었다.

‘이 녀석, 운기 행공이 왜 이렇게 느려?’

진작 도달해야 할 혈도에 약력이 도달하지 않아 일일이 두들겨서 약력이 이동하도록 도와줘야 했고, 툭 하면 경락 어딘가에 과하게 약력이 고여 혈도가 터질 뻔해서 그걸 또 풀어줘야 했다.

당불퇴의 이마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그 작업은 약 한 시진에 가까이 이어졌다.

그 결과,

“쿠에에엑!!”

구중보의 입에서 검게 죽은 울혈이 토해져 나왔다.

후두둑―

“…와, 이거 힘드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그냥 두들기면 되는 것도 아니고, 한 시진 동안 감각을 활성화시키며 손끝에 적절한 내공을 분배하며 요혈을 짚어야 하니 단순히 한 시진 동안 주먹만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삐익.”

기운찬 삑삑이도 지쳐서 벌러덩 나부라지며 두 날개를 퍼드득거렸다.

“알았어, 육포 잘 챙겨줄게.”

끝까지 자신의 일당을 잊지 말라며 엎어져 잠들어버리는 아기 새를 보며 당불퇴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이 녀석 도와주는 맛은 있었잖아?”

“끄으으…….”

완전히 눈이 뒤집혀 실신해 버린 구중보.

당불퇴로서는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죽을 둥 살 둥 하면서도 잘 따라온단 말이지.’

그 의지에서 절박함이 느껴졌고, 그 절박함이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누구라도 도우니 자신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려주길 바랐던 그 시절.

그 순간을 회상하며 당불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자식, 이렇게 고생했는데… 여심 공략법 제대로 안 알려주면 진짜 죽는 거다.”

괜히 쑥스러워 한 마디를 툭― 하고 뱉으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