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97화 (197/350)

197화

“…헉!!”

구중보가 정신을 차렸다.

‘뭐, 뭐지? 내가 왜 여기…….’

눈을 뜨고 가장 처음 본 풍경은 낯선 천장이었고,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지난날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아! 그래, 나는 당불퇴 형님이 주신 약탕을 먹었다. 그런데, 그 안에 든 약력이 너무나 강대한 나머지…….”

어?

“잠깐만, 그건 단순히 영약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드문드문 이어지는 기억.

‘크윽… 영약의 기운이 너무 강하다! 대체 얼마나 좋은 걸 먹이셨길래……. 자, 잠깐… 이건 약 기운이 아닌 것 같은데? 이건 독…….’

지끈!

강렬한 두통이 사고의 연속을 끊어먹었다.

당혹스러운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드르륵―

“일어났냐?”

문이 열리며 당불퇴가 등장했다.

“혀,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어떻게 된 거긴. 약 먹다가 기운을 다 감당 못해 쓰러진 거지.”

“헉! 정말입니까?”

그 말에 구중보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럼 제가 어떻게 이리 멀쩡한 것입니까? 운기행공 중 의식을 잃는 건 주화입마에 이를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일 텐데…….”

“그건 내가 대신했으니까.”

“예? 형님께서 말입니까?”

구중보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설마, 추궁과혈의 수법을 펼치셨단 말입니까?”

추궁과혈이란 엄청난 의학적 지식을 지닌 이가, 내공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고 타인에 혈도를 대신 두드려줘 내공을 흐르게 하는 방법이다.

단순히 혈도를 물리적으로 두드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정확한 순간 정확한 지점을 두들겨 줘야 할 뿐더러 적절한 내공 배분 역시 필요로 하기에 지대한 체력과 내공 소모는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대문파의 장로들이나 할 법한 일인데…….’

징―

구중보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맺혔다.

물론,

‘추궁… 뭐? 그건 또 뭐 하는 거야?’

당불퇴는 그딴 거 몰랐지만.

‘뭘 혼자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알아서 좋은 쪽으로 오해하고 있다면, 굳이 나쁜 쪽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구중보는 알아서 감동하고 오해했고, 당불퇴는 그런 가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몸이 꽤 가벼워졌을 거다. 혈도 내 노폐물이 상당 부분 제거되었을 거고, 약력이 제대로 흡수되었다면 내공 역시 상당 부분 증진되었겠지.”

“오오! 정말입니다, 형님!”

“그래, 그래야지.”

약력이 잘 흡수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온몸의 근육을 잘게 잘게 찢어버리는 수준으로 밀어붙였다.

굶을수록 밥을 잘 먹는 것처럼, 인간의 육체 역시 극심한 부상을 입을수록 수복을 위해 다량의 내공을 원하는 법.

원래라면 다 흡수하지 못하는 주제 이상의 것은 체외로 배출되어야 하나 그 이전에 하루 종일 몸뚱이를 박살 내놔서 단전에 자리 잡지 못한 내공도 육신에 대부분이 흡수된 듯했다.

“어쩐지, 전신이 뻐근하지만 몸은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뒤통수도 얼얼하긴 한데, 이것 역시 얻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형님!”

“어… 그래…….”

전신이 뻐근한 건 전신을 두들겨 패서 그렇고, 뒤통수가 얼얼한 건 어제 옮기다 실수로 난간에 찍어서 그렇지만…

‘이것도 뭐… 굳이 말 안 해도 되겠지?’

오늘도 당불퇴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다 쉬었으면 일어나.”

“앗! 수련하러 가는 것입니까?”

“수련도 수련이긴 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밥 먹으러 가야지.”

밥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

* * *

여기 두 마리 짐승이 있었다.

“삑삑삑삑!”

한 마리는 새 주제에 맹렬하게 고깃덩이를 쪼아대는 아기 새였고,

“와구와구와구와구!”

한 마리는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음식물을 흡입하는 짐승이었다.

“혀, 형님?”

“우적우적우적… 음? 왜, 밥이 입맛에 안 맞아?”

“아니… 그건 아닌데…….”

당불퇴가 가져와 준 밥은 맛있었다.

원래 공동 배식이라고 당가의 식사를 담당하는 아주머니가 대용량으로 해주신 걸 통째로 들고 와 나눠 먹는 것으로, 당불퇴 공인 ‘우리 집 밥맛 좋아!’라고 한 집밥이었다.

실제로도 국이든 반찬이든 첫 수저를 떼었을 때 그 맛에 감탄하기도 했었고.

다만,

‘…눈앞에서 이런 괴이한 풍경이 일어나니, 도저히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지가 않습니다…….’

이미 밥공기를 네 개째 비우고 아예 솥 채로 밥을 퍼담는 당불퇴를 앞에 두고는 차마 하지 못한 말.

그걸 속으로 삼키자, 당불퇴는 참 희한한 녀석이구만―이라 하며 가마솥에 손을 뻗었다.

“진작 진작 많이 먹어두는 것도 훈련이다.”

“예……?”

지금 이렇게 짐승처럼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는 게요?

혹시 치악력 강화라도 하는 건가… 싶어 묻자, 당불퇴는 어느새 네 공기째를 한입에 털어 넘기는 묘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너, 야전 경험 있냐?”

“야전이라면… 아직 없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당불퇴 역시 구중보와 비슷한 나이대지만, 그에게는 동년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 있었다.

“언제 적이 들이닥칠지 모르고, 언제 또 싸워야 할지 몰라. 그러니까, 먹을 수 있을 때 든든히 먹어둬야 해.”

운남에서 천년혈주와 싸울 때 그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다면…….”

존경해 마지않는 당불퇴의 말이었기에 구중보는 더는 토를 달지 않고 넙죽넙죽 밥을 삼켰다.

그렇게 둘 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선 구중보가 말했다.

“그럼, 배도 꺼트릴 겸, 좀 달려볼까?”

“예! 알겠습니다, 형님.”

언제나 새로운 배움을 갈망하는 구중보는 힘차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사, 살려줘!!’

네 시진 후 그 결정을 후회했다.

‘대체… 언제까지 뛰는 거지?’

“헉… 헉… 혀, 형님……!”

“왜?”

“저, 저희 언제까지 뛰는 겁니까?”

“조금만 더 뛰면 돼.”

“크하아악!!”

저 말만 벌써 몇 번째 듣는 것인가.

배도 꺼트릴 겸 시작된 구보는 이미 소화를 넘어 무언가가 있었다는 흔적을 뱃속에서 지운 수준이었다.

어제 기껏 영약을 먹어 내공과 체력을 늘렸다 생각했건만, 늘어난 건 오늘 자에 팔에 차는 족쇄의 무게도 마찬가지였다.

‘주, 죽을 것 같아……!’

덕분에 오늘도 한계를 시험하듯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구중보였고, 그의 눈이 뒤집히기 직전까지 가서야 앞서가던 당불퇴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좋아, 여기까지.”

“크하악……!”

관성에 의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구중보.

그 모습을 보며 당불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근성이 있어.’

이번 달리기는 딱히 목표가 정해진 게 아니었다.

그냥 죽을 만큼 달리는 게 목표였고, 진짜 구중보가 지쳐 쓰러져 죽기 전에 멈췄다.

그때까지 달릴 수 있다면 합격, 못 달리면 불합격이라는 아주 간단한 시험.

‘진짜 죽기 전까지 몰아붙였는데, 따라오는군.’

이 역시 대형이 자신들에게 선보였던 교육법이었다.

언제나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까지 밀어붙이고, 그 한계와 맞서 싸워 뛰어넘게 만든다.

그만큼 빨리 강해질 수단도 없기에 당불퇴 역시 그 교육법을 채택했고, 지금 한계에서 직면해 허물어진 구중보는 숨을 헐떡이며 세상이 세 개 네 개로 분화하는 모습을 체험해야 했다.

‘죽을 것, 같… 아…….’

“힘드냐?”

“그걸 말이라고…….”

“죽을 것 같아?”

“그, 그럴 것 같…….”

“아니야. 생각보다 사람은 쉽게 안 죽어. 너도 어제 여러 번 경험했잖아. 죽을 것 같은데, 진짜 쉽게 안 죽는 거.”

울컥―

위대한 형님에 대한 존경심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당불퇴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정말 죽을 것 같다면 일어나.”

“예, 예? 좀 쉬, 쉬면 안 됩니까?”

“응, 안 돼.”

내가 왜 굳이 여기까지 몰아붙였는데.

“언제나 위기의 순간은 가장 급박할 때 온다. 실전에서 그럴 경우는 백 번 중 한 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네가 무인으로 살아가는 한 그 순간은 무조건 온다. 그리고, 죽을 것 같은 훈련이란, 오로지 그 한순간만을 위해 있는 비효율적인 것. 또다시 비효율적인 것을 체험하기 싫으면 지금 일어나.”

그리고, 주먹을 쥐고 덤벼.

“……!”

구중보의 두 눈이 커졌다.

‘무인으로… 살아간다…….’

답화공자라는 별호로 불리는 구중보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무인이라는 것만은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패왕보의 후손으로서, 무인으로 살아가다 무인으로 죽어가는 것이 그의 목표이자 꿈.

“끄으으…….”

어제 다 회복되지 못한 육체가, 오늘 또 누적된 고통에 비명을 내질러도 그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목구멍으로 다시금 그것들을 집어넣은 채 일어섰다.

“바로… 덤비면, 되겠습니까?”

풍전등화(風前燈火).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이 흔들리면서, 형형색색 타오르는 그의 눈빛이, 당불퇴의 입꼬리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당연하지.”

* * *

끄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어느 날부터인가, 당계에는 재미난 일이 하나 생겼다.

바로, 매일같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이가 새롭게 세 들어왔다는 것.

처음에는 또 어느 방계 하나가 그들의 대형에게 처맞고 벽에 박히는구나, 생각했던 이들도 하나둘 그 소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쟤냐?”

“근성 하나는 좋네.”

매일 같이, 하루 종일 울려 퍼지는 비명.

목청도 좋아서 우렁차게 들려오는 그 괴성에 가까운 것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어찌 된 사연인지 알게 되는 순간 방계들은 하나둘 그 진원지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당불퇴 녀석, 진짜 진심으로 가르치네.”

“거의 대형이 우릴 가르치던 수준인데?”

이제야 당유혼이 방계들을 직접 가르치는 일이 없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몸에 각인되어 쉽게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들 대형이 어째서 하루하루 자신들을 그리 몰아붙였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대형은 우리에게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알려주려 하신 거지.”

당유혼이 당가에 온 지 어언 일 년이 넘었고, 그사이 참 많은 것이 변했다.

당가는 번창했고, 사실상 예전의 성세를 꽤 많은 부분 되찾았다 봐도 무방했다.

그 덕분에 그저 막내 무리에 불과했던 그들 차양당의 방계들은 이제 새롭게 들어오는 붉은 바위 일족이나 율도국 유민들, 그 외의 인력들에게 꽤 대접을 받는 수준이 되었다.

‘그간 우리가 가르침을 받기만 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돕게 된 거지.’

가세가 확장되고 가문이 커진다는 것은 당연 그 책임도 무거워진다는 말이며, 그 짐은 가문의 인원 모두가 나눠지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대형에게 주어진 짐은 특히나 거대했으니, 이제는 예전처럼 당유혼에게 방계들이 직접 가르침을 받는 일이 거진 없어졌다.

‘대형은, 여기까지 보신 거야.’

그래서 당유혼은 그들을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인다는 건 말이나 쉽지,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알아보는 것은 그만큼이나 힘들며, 괴롭고, 위험한 일이니까.

‘잘못하면 한 방에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당유혼이 있어 방계들이 정말 죽지 않을 때까지 그들을 밀어붙이고, 받아주고, 잡아주어 왔다.

덕분에 방계들은 진정 자신들의 한계가 어디인지, 어디까지 가면 딱 한 걸음 더 내디뎠을 때 나 진짜 죽겠구나, 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게 있어 우리들은 이제 스스로를 익히 한계까지 내몰 수 있게 된 거고.’

계속된 자가 발전은 결국 당유혼의 안배 아래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추억이네.”

“그러게 말이야.”

그런 과거를 돌아보는 방계들은 하나둘 추억에 젖어 들었다.

원래 과거는 미화된다고,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못할 일이지만 적어도 그때의 기억들이 소중하지 않냐면 그건 결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였다.

“저 녀석 저거, 주먹 뻗는 게 영 마음에 안 드네…….”

“발길질은 어떻고? 나였으면 저기서 일단 급소를 까고 봤다.”

“암기술이 좀 마음에 안 드네. 일단 각이 나왔으면 던지고 봐야지.”

서른세 명의 방계들.

다들 비슷비슷한 훈련을 받았으나, 점점 각자의 개성이 나뉘어져 특기가 분화되게 된 그들은 오고 가고 볼 때마다 구중보에게서 부족한 면모가 눈에 들어옴을 느꼈다.

“어떻게 생각하냐?”

“뭘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나서는 것 말이야. 불퇴가 싫어할까?”

은근슬쩍 누군가 화두를 던졌다.

다들 마음속 한편에 근질근질한 걸 찾기 힘든 모습.

그에,

“싫어할 수도 있지.”

“그치?”

“그런데, 싫어하면 지가 뭐 어쩔 건데?”

우리 쪽수가 몇인데 말이야.

“그것도… 그치?”

“그치, 그치.”

“흐흐흐흐…….”

방계들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마음껏 베풀어주고픈, 추억에 젖은 웃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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