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98화 (198/350)

198화

“끄아아악!! 자, 잠깐! 혀, 형님!! 파, 팔!!”

“이 자식아! 팔을 빼라니까? 겁먹어서 팔을 안으로 말아버리니 이걸 당하지, 인마!”

금나수에 당한 구중보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꾸엑!”

“아니, 이 멍청한 놈이? 앞을 보고 달려들어야지, 인마.”

짐승처럼 달려들다 복부에 발차기 한 방 얻어맞고 무릎을 꿇은 구중보가 입에서 침을 질질 흘려댔다.

“자, 피해 봐라!”

“이걸 어떻게 피합… 끼에에엑!!”

쏟아지는 젓가락 세례를 피하지 못한 구중보가 정수리에 하나가 꽂힌 뒤 땅바닥에 쓰러졌다.

“열심히도 하는구만.”

그 모습들을 보던 당불퇴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배우는 거지.’

현재 구중보는 사실상 차양당 방계들의 공동전인이라 불릴 만했다.

비록 그들이 당가의 무공을 알려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더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 기술이나 비기, 수법 등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어떤 상황에선 어떻게 대처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거나, 어떤 상황에선 눈 딱 감고 내지르는 게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거나.

무지막지한 실전과 수련, 훈련 등으로 다져진 뼈에 새길 조언들을 방계들은 아낌없이 나눠주었고,

“나, 나 죽어…….”

실제로도 구중보는 그것들을 뼈에 새기고 있었다.

‘그래도, 확실히 처음보다는 빠르게 나아졌어.’

구중보가 당가에 들어온 지 거진 일주일이 흘렀고, 그동안 방계들이 돌아가면서 한 수씩을 선사한 결과 그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경지가 한 단계 오른 건 아니지만… 부족하던 점이 빠르게 보완되고, 원래 가지고 있던 장점이 더더욱 예리해졌지.’

그저 빠르게 높은 산을 오르다 보면 놓치기 쉬운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방계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깨져가며 찾아갔고, 그들과 맞서 싸우며 한 방씩이라도 욱여넣기 위해 자신의 장점을 다듬어갔다.

그러다 보니 붉은 바위 일족의 전사들도 흥미를 가지고 하나둘 끼어들기 일쑤였고, 덕분에 당불퇴가 직접 끼어드는 것은 일과 수련이 끝난 뒤 밤중 그에게 영약을 먹일 때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럼 그동안 당불퇴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면,

“…음, 그러니까. 그날 처음 만났을 때는 변화된 점이 있냐 없냐를 먼저 찾아보라는 거지?”

뒤적뒤적.

“가장 눈에 띄는 것부터 칭찬하다가 중요… 칭찬에 밑줄…….”

스윽스윽.

“일주일에 한 번씩 선물… 끙, 뭐 이렇게 할 게 많아?”

여심지론(女心之論)이라 쓰인 책자를 탐독하고 있었다.

“이 자식 이거, 약팔이 하는 건 아니겠지?”

책자의 정체는 구중보가 매일 같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도 조금씩 조금씩 남는 시간 동안 편찬해 낸 당불퇴의, 당불퇴를 위한, 당불퇴만의 여심 공략서였다.

“낯 간지러운데 말이야…….”

평소 당불퇴라면 부끄러워서 못할 말들이 잔뜩 적혀 있는 서적이지만,

“큼, 크흠… 적 소저.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지 않소? …내 심장이 그대에 대한 연모의 마음으로 타오르는 냄새가.”

그 나름대로 열심히 내용을 탐독하고 연습했다.

지나가던 방계들이 그걸 모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구역질을 해댔지만, 당불퇴 나름대로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불퇴라고 여심 공략에만 몰두하고 스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준비됐냐?”

“자, 잠깐 마음의 준비 좀…….”

낮에는 공동 스승들에게 끊임없는 가르침을 받는 구중보였지만, 밤이 되면 당불퇴의 지도 편달을 받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귀원일기공이 없는 이상 독을 먹는 것만큼은 당불퇴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준비는 무슨, 빨리 먹어.”

“꾸에엑, 우에엑!!”

이제는 독을 먹이는 걸 숨기지도 않았기에 구중보는 매일매일 고역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이제는 제법 소화에 시간이 줄어, 약 반 시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끄에에에…….”

기진맥진한 구중보는 오늘도 매일과 같이 흙바닥 위로 털썩 쓰러졌다.

무슨 놈의 노폐물이 계속 계속 나오니 침상을 더럽히지 말란 이유였다.

“으으… 죽겠다…….”

어떻게 매일매일 사경을 헤매나 싶었지만, 구중보는 그에 한탄하기보다는 오늘의 이 지옥 같은 과정이 지났으니 이제는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얌전히 밤하늘의 별들을 눈에 담았다.

“…중보야.”

그 모습을 막연히 바라보던 당불퇴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뚱한 표정을 지었다.

“옙, 형님.”

벌떡 상체를 세워 대답하는 구중보.

한결같은 그 빠릿빠릿함에 당불퇴는 이전부터 품던 의문이 마침내 한계치에 도달한 걸 떠올리며 물었다.

“넌 뭐가 그리 급해서 이리 죽을 고생을 사서 하는 거냐?”

“예?”

“그렇지 않냐? 네 가문도 어디 가서 그렇게 꿀릴 정도는 아니라며?”

패왕보.

처음에는 어디에 붙어 있는 곳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일주일 넘게 같이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구중보에 대한 관심이 생겨 알아보게 되었다.

그 결과는,

‘분명 가세가 기우는 것은 맞지만, 결코 작은 문파는 아니야.’

섬서에서 알아주는 가문이며, 매일매일 경쟁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그들의 가주는 지역 내 명사의 반열에 드는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랑은 경우가 다르지.’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이 이 끔찍한 수련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기울어진 가세를 되살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진짜 사천당가가 쪽박을 차던 시기이며, 가주가 직접 산으로 들로 약초를 캐러 다녀야 할 정도로 답이 없던 상황이었기에, 전대 가주에게 큰 빚을 진 그들 방계들은 하루라도 빨리 가문에 보탬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너는 그리 급할 필요도 없잖아?”

패왕보는 다르다.

그들에겐 그리 급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구중보가 이렇게 매일매일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구타를 당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형님형님 하며 허리를 조아릴 이유도 없을뿐더러, 정말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떠밀 이유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묻자,

“하하… 이것 참, 쑥스럽네요. 음, 그리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형님께서 제 가문에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뜻이니까.”

구중보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하지만.”

그는 저 별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제게도 이유는 있습니다.”

이 고생을 다 하고, 자존심을 전부 짓밟아가면서도 강해져야 하는 이유, 그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확언했다.

“그게 뭐지?”

“세간 사람들은 지금 시대를 일컬어 만가쟁패의 시대라고 하더랍니다. 저 하늘의 별처럼 많은 이들이 앞다투어 더 나아가기 위해 내달리는 시대, 패(覇)라는 글자가 더 없이 어울리는 시대, 그럼에도… 제 가문에는 너무나 가혹한 시대.”

옅게 지은 미소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본가는 패왕(覇王)을 스스로 자처합니다. 그 연유는 저희 가문의 개파조사께서, 당시 혼란스럽던 섬서 땅의 사파 무리를 패도(覇道)로써 제압하며, 섬서 양민들에게 평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 합니다.”

“흠… 수단으로서의 패도라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우습게도, 패왕보의 가주들은 대대손손 그 성격이 온화하고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꺼려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양민을 지키기 위해 사파 무리와 맞서기를 꺼려 하지 않았고, 특히나 그들의 선조 때에 그 시대상의 혼란이 가장 극심했을 때는 스스로 패도를 걸어 협의를 실천했다.

“실은, 저희 가문은 패도도 군림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법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이 웃으며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순수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다면 다들 족하다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협객이구나.’

당불퇴는 속으로 읊조렸다.

요즘 시대에는 쉬이 찾아보기 힘든 이들이요, 눈 씻고 보아도 드문 가치였다.

스스로도 영 눈꼴 시리는 것들은 참아주기 힘들어 주먹을 휘두르지만, 그것도 결국 딱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나, 저들 패왕보는 설령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라도 그곳에 불의가 싹튼다면 주먹을 휘두르길 망설이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세상이 참 지난(至難)하다 싶은 요즘입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는 패왕보에게 너무나 버거웠다.

“군림하고 싶어 하는 이들로, 타인의 것들을 앗아가고 싶은 이들로 넘치는 세상입니다. 거짓과 위선, 기만과 모략이 만연하고, 정정당당하게 두 주먹과 한 자루 철검으로 무(武)를 겨누는 게 한낱 질 나쁜 농담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세상이 참으로 숨쉬기 퍽퍽하게 느껴지더라, 이 말이었다.

“다들 앞다투어 나가려 하니, 패왕보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뒤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뭐… 사실, 저와 가주님, 그러니까 제 아버지께서는 그 역시 나쁘지 않더라 여겼습니다. 원래라면, 말입니다.”

“뭔가 다른 일이 있었나 봐?”

“저희 보다 잘난 이들이 저희 앞에 있는 것이야 자연의 법도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만, 그 잘난 이들의 심성이 비뚤어져 있다면 가만히 받아들여 줄 수 없지 않겠습니까.”

구중보는 장난스레 웃었다.

좋게 말해서 비뚤어져 있다지, 구중보가 보아온 이 시대의 패권 도전자들은 다들 남의 약점을 물어뜯고 약한 살을 파내는 이리떼나 다름없었다.

“패도(覇道)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본가가 한동안 잊어왔던 그 길을 누군가는 다시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에, 저희 부친께서는 너무나 좋은 신 분입니다.”

먼 곳에서 만난 고향 친구가 설령 변했다 하더라도 반가움이 앞섰고, 자신을 때려눕힌 상대가 옳은 일을 했다면 자신의 아들을 선뜻 맡길 정도로.

“그렇기에 제가 나서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 길을, 네가 걷겠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의 말에 망설임은 없었다.

당불퇴는 멍하니 그런 구중보를 바라보았고,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별을 바라보는 구중보의 눈에는, 그 별보다 밝은 반짝임이 간직해 있는 것을.

‘그렇구나.’

지금은 당가 방계들의 공동 전인이요, 동생 같은 신세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따지자면 자신들과 같이 뒤따르는 이들이 아닌 그들의 가주님처럼 이끄는 이었다.

이리저리 처맞고 다니며 이리저리 얻어터지고 다녀도 그가 빛을 잃지 않는 건, 한낱 육신의 쾌락이 아닌 진정한 쾌락을 위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크게 될 놈이로구나.’

언젠가 그들의 대형은 말했다.

세상은 결국 타고날 때부터 차이가 있음에, 잘난 놈, 못난 놈 따로 있고 괴물 놈, 천재 놈 또 따로 있다는 것을.

그들 대형을 보며 한 번쯤 생각해 보았던 것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녀석을 보자니 또 다른 생각이 든다.

“…그러더냐.”

심드렁하게 내뱉은 말에는 기대감이 일었다.

자신이 키웠다고 말하기에는 뭐 하지만, 그래도 그 길에 영향을 어느 정도는 주었다고 할 수 있는 이가 보일 것을.

“그래, 한번 보여줘 봐라.”

“훗, 물론입니다.”

구중보는 자신 있게 단언했다.

그리고, 약속된 이주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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