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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01화 (201/350)

201화

명한일은 분전했지만 결국 패배를 피할 수는 없었다.

‘검이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검막을 펼쳐 능히 효율적인 방어막을 구사할 수 있었다면 소모품인 암기가 다 바닥날 때까지 버틸 수 있었겠지만, 창은 검보다 그 활용 범위가 낮아 그렇게 정교한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어 이런 결과가 나온 듯했다.

‘박투라면 검보다 창이 낫지만, 암기라면 창보다 검이 나을 테니 말이야.’

다시 한번 무의 세계에 대한 심오함을 느끼며 당불퇴는 비무장 아래로 내려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도, 조금은 실망이지만.’

무기의 특성이 어떻건, 결국 무인의 수준에 따라 승패는 갈릴 수밖에 없다.

본선에 진출한 상대라면 무언가 달라도 확연히 다를 거라 기대했건만, 솔직하게 별 차이를 못 느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우리가 그만큼 강해진 건가?’

그간 보냈던 끔찍한 시간을 떠올리자면 분명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그럼에도 무언가 아쉬운 속내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내려가려는데,

“이보시오! 이보시오!!”

누군가 뒤편에서 열심히 자신을 부르는 게 들려왔다.

“응?”

뒤를 돌아보니, 쾌남 상의 청년 하나가 십년지기 친구라도 보는 듯 열심히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설마, 나?’

어릴 적 사천에 살다가 이사 간 양반인가 싶어 멈춰서니, 청년은 호다닥 달려와 자신 앞에 멈춰 섰다.

“으하하, 당불퇴 소협. 맞소?”

“그렇긴 한데…….”

당신은 누구슈?

“만나서 반갑소! 당신을 너무나도 보고 싶었소.”

“뭐, 뭔 소리여?”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그 의도(?)가 심히 불순(?)한 말에 당불퇴가 학을 떼자 상대는 하핫― 웃으며 말했다.

“아아, 너무 그리 의심스레 볼 필요는 없소. 나는 평범하게 당신의 활약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사람일 뿐인데, 하필 당신과의 대전은 한참이나 남은 게 아니겠소? 그래서 못 참고 이리 달려왔을 뿐이오.”

어딜 봐서 평범한 건지.

당불퇴는 마냥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상대가 자신을 응원해 준다니 마냥 싫은 기색만 드러내기도 힘들었다.

“큼… 그렇다면야 괜히 소리 질러서 미안하오. 한데, 어찌 찾아오셨소?”

“아아, 별거 아니오. 자, 우리 한 판 붙읍시다.”

미친놈 맞잖아?!

누가 보면 밥 한 끼 같이하자는 줄 알겠다.

“…미안한데, 저리 가주시겠소?”

“엥? 어째서?”

“어째서라니! 누가 봐도 제정신 아니잖아, 당신!!”

호전적이고 싸움 붙는 거 좋아하는 당불퇴도 지키는 선은 있다.

여기서 괜히 비무랍시고 쌈박질을 벌였다간 당가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따를 테고, 그렇게 되면 대형에게 처맞는 것은 분명 자기 자신이 되겠지.

뻔히 미래가 보이는데 당연 좋아할 수 없는 법.

“저, 정말로?”

당불퇴가 단호히 고개를 젓자 상대는 하늘이 두 쪽 난 듯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말을.”

“으으으……!”

두 주먹을 꼭 쥐고 부르르 떠는 상대.

이러다 미친 척 달려드는 건 아닌가 싶어 도망칠 구석을 찾고 있는데,

“공자님!!”

“찾았다! 여기다!!”

어디선가 그를 구원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런! 벌써 들켰나?”

‘드, 들켜?’

쾌활한 웃음을 지은 사내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한쪽 벽면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상황이 좋지 않군. 어쩔 수 없지, 꼭 높이 올라오시오. 그때 한판 붙어봅시다.”

“그러니까 뭘…….”

어처구니가 없어 반박하려는 그때,

스릉―

“……!”

사내가 자신의 도를 뽑아 드는 순간, 그의 기세가 일변했다.

“내 이름은 팽천강.”

콰콰콰쾅!!

일도양단(一刀兩斷).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벽을 허물어트린 사내, 팽천강은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오호도(五虎刀)라고 불리고 있소.”

타타탓!

그 말을 끝으로 팽천강은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을 넘어 사라졌고,

“또 놓쳤어!!”

“이젠 아예 벽을 부수셨는데?”

“젠장, 수리비가 얼마야?!”

뒤늦게 도착한 무사들은 통탄의 한숨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개중 하나가 당불퇴에게 다가왔다.

“끄응… 괜찮으십니까?”

“아… 예……. 그런데 당신들은…….”

“하북팽가입니다. 혹시, 저희 도련님께서 곤혹스러운 일은 만들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됩니다.”

명가의 무인들임이 분명한데도 먼저 저자세로 고개를 숙여온 그들은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건네왔다.

“약소하지만, 저희의 성의 표현입니다.”

“성의… 표현이요?”

느껴지는 무게감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닌데?

“이 일이 귀하께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팽가의 무사들은 당불퇴가 누군지 알아보는 기색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일이 워낙 잦은 듯 무척 익숙해 보였지만.

그렇게 사건 처리를 어느 정도 끝낸 뒤 팽가의 무사들은 떠나갔고,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당불퇴는,

“…이게, 오대세가?”

겨우겨우 충격에서 헤어나와, 씨익 미소 지었다.

‘진짜, 어마어마하잖아.’

자신이 방심했었던가?

실망스럽고 아쉽다 생각한 자신이 이렇게 멍청해 보일 수가 없었다.

“상대가 없어? 아쉬워? 큭큭큭… 이렇게 한심할 수가 있나.”

손이 잘게 떨렸다.

그 이유는 분명 숨길 수 없는 충격 때문일 터.

‘조금 전 그 도격이 내게 향했었다면… 과연, 나는 막을 수 있었을까?’

찰나의 순간 펼쳐진 도격은 감히 반응할 새도 없이 벽을 부숴버렸다.

전투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특유의 열기와 흥분이 식어 있었다 변명하자면 그건 참 너절한 것.

상대는, 자신을 아득히 상회하는 고수였다.

“하… 진짜, 같은 세대가 맞는 거냐?”

대형 이후로 이렇게 큰 충격을 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청성의 진혁수도 자신보다 고수이기는 해도 이렇게까지 벽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이게, 대형이 말했던 규격 외의 천재라는 거구나.’

재능도 우습다 말하고, 노력은 조소하는 하늘이 빚은 실수.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렀을 때, 당불퇴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놀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용호상박이라고 했던가?

당불퇴 역시 그 찬란한 명성은 들은 바 있다.

그래서 더더욱 보고 싶었다.

‘남궁세가. 그들이 하북팽가랑 쌍벽을 이룬다고 했지?’

대진표를 보니 마침 또 다른 남궁세가 검수의 비무가 곧 예정되어 있었다.

한 문파에 참가 제한을 두었다지만, 남궁세가 정도 되는 곳은 당가와 마찬가지로 두 명이 참가할 수 있게 해주었고, 덕분에 다른 하나 역시 결코 실망스럽지 않을 대전이 되리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아니지, 실망이 아니지.”

금세 처맞아 놓고 또 자만하고 있다니.

“가볼까?”

나는 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당불퇴는 호다닥 뛰어갔다.

* * *

남궁영.

그는 방계들로 이루어진 월영대(月影隊) 소속의 무인이었다.

방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 직계들보다 더한 무위를 가진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월영대였다.

동시에 그렇기에 방계들만이 들어서는 곳이었다.

재능과 무위로 따지면 직계보다 더한 이들이 소속되지만, 그들의 존재 의의는 어디까지나 직계들을 지키는 경호와 필요시에 따라 처분되는 요인 암살을 위해 존재하는 곳.

당장 남궁영이 이번 비무에 출전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대공자께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소는 전부 배제한다.’

남궁세가는 언제나 제왕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방해물이 되는 것은 제거되어야만 하고, 그 역할은 남궁영의 것이었다.

‘오호도, 그가 가장 위험하지.’

다른 이들은 크게 개의치 않지만, 팽가의 오호도만큼은 남궁세가에서도 눈여겨보는 상대였다.

남궁수가 승리를 취하더라도 아슬아슬한 승리는 용납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압도적인 승리를 취하여야만 하며 남궁세가의 이름을 드높여야만 했다.

그를 위해 남궁영은 어떤 방식으로든 비무에서 오호도에게 부상을 남긴다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 자신의 소임을 되새기고 있을 때,

“당신, 나와 동류군요?”

그의 귓가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

고개를 드니 미소 짓고 있는 상대방이 보였다.

그의 이름은 자영.

정보에 따르면 어느 일인 전승 문파의 후계자로, 독특한 검법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예선에서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무인. 기억할 가치는… 중하(中下).’

상대에게 매겨진 가치를 되새기고 있자니, 또다시 상대방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제게 매겨진 품질을 떠올리고 있으신가 보군요. 후후, 재밌네요.”

이번에도 남궁영은 딱히 답하지 않았지만, 자영은 상대방이 답하든 말든 홀로 계속해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재밌지 않나요? 남들에게 품질을 매기고 평가하는 우리지만, 사실 가장 먼저 그렇게 결정 지은 것은 우리 스스로라는 것을.”

그 말에 남궁영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인지, 상대방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에 꽂혀 드는 듯했고, 더 이상은 듣기가 버거웠다.

스릉―

그에 저도 모르게 검을 뽑아 들자, 상대방은 더더욱 밝게 미소 지었다.

“이런, 폐부를 건드린 것 같군요. 역시, 동류에게 들으니 더더욱 아픈 사실이죠?”

“…무엇이, 동류라는 거냐.”

긁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가?

남궁영이 저도 모르게 어색함을 느끼는 동안에도 자영은 여상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야 한 가지 아니겠나요. 평생을 쓰임패로서 쓰여지다 버려지는, 그런 기구한 인생을 말하는 것이지요.”

“……!”

알고 있다.

스스로도 인정한 바였다.

월영대, 고작해야 달 그림자에 불과한 그들의 삶은 고작해야 그것에 불과하니까.

그럼에도, 이미 몇 번이나 인정한 사실을 듣는 것은 왜 이리 불쾌한 것인지.

“꽃은 피어나기 위해서 있음인데, 때론 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있음이지요.”

그 순간 들려온 상대의 말은 결정적으로 남궁영의 평정을 깨트렸다.

“…지기 위함이라.”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네놈이 져버리는 것은 내가 좀 도와주도록 하지.”

겨눈 검 끝에 서서히 살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하하, 언젠가 그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네요.”

그에 자영 역시 자신의 쌍검을 꺼내 들었다.

“쌍검? 과연, 근본 없는 것들이나 사용하는 검술이구나.”

남궁영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걸리며, 그의 검에도 그와 닮은 서늘한 검기가 피어났다.

월영검법(月影劍法).

설령 방계가 익히는 검법이라 할지언즉, 그 방계 중에서도 최고의 자질을 지닌 이들만 익힐 수 있는 검법이다.

‘도구라 할지언즉, 누구에게 부려지는 도구냐가 또 다른 법이다.’

스스로가 타고난 운명이 빈곤하다 해도, 한낱 이름 없는 문파의 무인들보다는 낫다며 자조하는 남궁영이 서서히 검초를 전개해 나갔다.

그에,

“근본 없는 검술이라…….”

자영은 그 말에 머릿속에서 되뇌이는 누군가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안타깝지만, 네게는 다른 날고 기는 천재들이 가졌다 하는 찬란한 검재(劍材)란 없다.”

냉혹하리만치 차가운 평가.

하지만,

“대신하여, 네게는 누구보다 음울(陰鬱)한 검재가 있구나.”

그의 쌍검이 움직였다.

남궁영이 펼치는 월영검법보다 더더욱 서늘하고, 질척하며, 음울한 검기가 서로 뒤엉켰다.

넝쿨처럼, 진창처럼 휘감긴 검이 서로 엉키고 뒤섞이는 순간, 남궁영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원래라면 단숨에 상대를 베었어야 할 검기가 어느 순간 그 빛을 잃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의 검기가 더더욱 형형하게 빛난다는 것은 아닌데, 그냥 자신과 상대방 둘 다 빛을 잃고 저 깊은 아래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생긴 것만큼이나 불쾌한 녀석이군!’

짜증스레 생각하며 더더욱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하나, 그럼에도 그의 검은 점점 힘을 잃을 뿐이었다.

‘이게… 대체?’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만 같은 감각.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검을 휘두른 건지, 무의미한 발버둥을 치는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었고,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졌을 때,

“아무래도, 이곳에서 져버릴 꽃은 그대인 듯하군요.”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퍼억―!

둔탁한 충격이 그의 명치에 작렬했다.

“…끄, 으윽……?”

허망하기 짝이 없는 최후.

온 관중이 충격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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