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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03화 (203/350)

203화

잠룡전 삼십이 강은 많은 파란을 가져왔다.

사천에서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전부 잠룡전을 주젯거리로 삼는다는 것은 이젠 굳이 두 번 말해 진부한 이야기.

그리고, 여기 그 파란을 정면으로 맞은 남자가 있었다.

“형님, 저 녀석 상태가 영 이상한데요?”

“어째 맛이 가버린 것 같습니다.”

“엥? 그건 평소랑 다를 바 없다는 뜻 아니야?”

“…그런가?”

당불퇴.

자신들의 형제가 영 좋지 않은 상태를 보이는 모습을 보며 차양당 방계들은 저마다 모여 쑥덕거렸다.

“놔두거라.”

그리고, 그런 당불퇴를 이해하는 유일한 한 명.

그래도 그들의 대형이라고 오늘만큼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당지명이 쓴웃음을 지었다.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으니까.”

웬일로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린 두 다리.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눈.

잠에 취한 듯 아닌 듯한 저 모습이 어쩌다 나온 것인지, 당지명은 그 답을 분명 알고 있었다.

‘충격이겠지. 격이 다른 두 괴물을 두 눈으로 보았을 테니.’

창궁검룡과 오호도.

이번 삼십이 강에서 마주한 그들은 당지명의 눈에도 차원이 다른 천재들이었다.

‘대형께서 늘 우리들에게 말했던 괴물들.’

언젠가 당유혼이 그들에게 이리 물은 적이 있었다.

“지명아, 지명아.”

“예, 형님.”

“내가 어째서 너희 셋을 이리도 뻔질나게 사천 밖으로 데리고 다니는 줄 아느냐?”

그에 당불퇴가 곧장 손을 들고 답했다.

“그야 당연히 부려먹으시려구… 끄아악!”

그리고 곧장 처맞았다.

“어휴, 이 은혜도 모르는 금수 같은 새끼. 다, 너희 잘되라고 그러는 거 아니냐.”

그 뒤로 한동안 하늘 같은 대형의 넓고 높은 뜻을 모른다고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던 기억이 뒤따랐지만, 그건 잠깐 넘어가고―

“너희에게 넓은 세상을 경험시키려는 거다.”

대형이 했던 가장 중요한 말들을 떠올렸다.

“에…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이 사천 땅만 해도 엄청나게 넓은데.”

그토록 처맞았음에도 할 말은 하는 남자, 당불퇴가 꿋꿋이 물었다.

당연하게도 또 한대 얻어맞을 줄 알았던 당지명이었지만, 웬일인지 그날 대형은 손을 올리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그래, 사천은 넓지. 하지만 문제는 세상은 그보다 더 넓다는 거다.”

세상은 넓다.

정신없이 대형의 뒤를 쫓아 온 세상을 뛰어나기만 했던 자신들은 미처 알지 못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욱 어린 대형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 세상에서 너희들은 상식을 초월하는 존재들을 만나게 될 거다. 사람들은 그들을 천재(天才)라 부르겠지만, 너희들은 그들을 천재(天災)라고 부르게 될 거다. 그리고, 그마저도 머지 않아 이리 부르겠지.”

규격 외의 ‘괴물’이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대형 자기 자신을 이르는 말이라 생각했건만…….’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대형이, 사실은 스스에 비해 더럽게 약해 빠져 도움이 되기보단 번거롭기 그지없는 자신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보여주려 했던 괴물이 어떤 것들인지.

‘검룡과 도호. 그들이 바로 그러한 괴물이겠지.’

항상 그들이 출현할지 몰라 경계했던 자신은 그나마 충격이 덜했다.

매번 당주라는 직책의 무게감을 등에 얻고, 알게 모르게 당유혼을 언젠가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라 여겼던 당지명은 그나마 면역이 있었다.

‘하지만 저 녀석은 그렇지 않을 테지.’

대형이 언제나 변하지 않고 거기 있을 것이고, 그 뒤만 따라가면 된다 생각한 당불퇴는 그러지 못했다.

‘처음 본 규격 외의 괴물. 그들에게 벽을 느꼈을 거다.’

너무나 높아, 마주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고개가 꺾이고 두 다리에 힘이 빠지게 되는 그런 벽.

언제나 정신 나간 성장세를 보이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주변을 놀라게만 했던 방계들이기에, 타인을 보며 이토록 놀란 경험은 결코 많지 않았다.

‘지금껏 만난 괴물 같은 존재들이라 해봐야, 우리보다 훨씬 경험이 많거나… 애초에 인간이 아닌 진짜 괴물들 뿐이었으니까.’

타인을 놀라게 하는 데 익숙했던 당불퇴로선 타인에 의해 놀라는 것에 면역이 없었던 것이다.

‘청성의 진혁수. 그자도 놀랄 만한 성장세를 보였으니…….’

저 겉은 거칠어도 속은 여린 녀석이 저리 놀라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어도 그리 이해 못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리 생각하며 당지명은 문득 여기 없는 그들의 대형이 생각났다.

‘이럴 때 함께 계셔 주셨으면 참으로 좋으련만…….’

그들의 대형인 당유혼은 잠룡전의 시작 전부터 바쁘다는 이유로 어디론가 사라져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당가에 돌아오지 않은 지도 며칠이 지났으니―

‘쉽지 않겠구나. 나 역시도 마땅히 해줄 조언이 없으니…….’

당지명으로서는 그저, 자신의 동생 녀석이 너무 큰 좌절에 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 *

당불퇴가 자신만의 번뇌에 빠져 허덕이는 동안에도 일주의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십육 강 비무 일정이 다가왔다.

그리고 운명은 실로 얄궂게도,

“뭐야, 첫 경기가 나잖아?”

그나마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당불퇴는 비무대 위로 올라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불퇴야, 괜찮겠느냐?”

당지명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당불퇴는 피식 웃었다.

“킁, 지금 저 걱정하는 겁니까?”

당불퇴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솔직히,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 자신이 영 상태가 이상하다는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인데, 평생 함께해 온 형제들이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니까.

“거참, 어지간히 얕보였나 보구만? 형님, 저 당불퇴입니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오로지 이름 석 자만 뱉고 가슴을 쾅쾅 두들기는 모습에 지켜보던 방계들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래야 당불퇴지!”

“당가의 푸른 야수!”

“패배의 상징!”

“잠깐만, 마지막은 뭔가 이상한데?!”

잇따르는 격려 속에 당불퇴는 비무대 위로 올랐다.

‘가자.’

당지명은 단순히 그가 위축됐다 생각했겠지만, 사실 당불퇴의 속내는 그보다 더 복잡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나였다면 가능했을까?’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상상과 가정이 떠올랐다.

잠룡전에서 보았던 칼잡이들의 솜씨가 계속해서 맴돌았고, 자신이었으면 그걸 똑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제 기다려줄 만큼 기다려준 것 같은데. 시작해도 되겠소? 금강권문의 이태백이오.”

‘…아.’

그러다가 정신 차리니 어느새 상대 비무자가 마주 선 채 포권을 해왔다.

“…당불퇴요.”

한 박자 늦게 마주 인사하자, 이태백이라는 사내는 물끄러미 당불퇴를 바라보다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게 다른 생각에 빠져도 쉽게 상대할 만한 사람은 아닐 거요.”

“응? 아… 미안하게 됐소.”

자신의 상태를 꿰뚫어오는 상대편의 말에 당불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하다 들켰음을 깨닫고 몹시 미안함을 느꼈다.

‘이놈 불퇴야, 사람 앞에 두고 뭐 하는 거냐?’

정신 차리자, 정신.

짝짝―

볼을 두들기며 두 주먹을 쥐자 상대 역시 마주 주먹을 쥐며 임전 태세에 임했다.

‘금강권이라고 했지?’

듣자 하니 이쪽도 십이재(十二材)라 불리는 신진 고수였다. 자신과 같은 흔치 않은 권사(拳士)라는 사실이 평소라면 당불퇴의 흥분을 돋우기 딱 좋았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다른 사실이 뇌 속을 가득 메웠다.

‘그럼 외공의 고수인 건가? 좋아, 딱 좋은 상대야.’

상상했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아른거리는 팽천강의 일격을.

‘상대가 그때의 그 벽이고, 내가 팽천강이 된다.’

눈앞의 이 단단한 사내를 팽천강이 부쉈던 벽이라 생각하며, 단전에서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사나운 호랑이 무리처럼!’

쿠르르르르!!

산에서 돌 굴러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주먹이 내뻗어졌다.

그 기이한 굉음에 이태백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두 팔을 겹쳐 공세를 막아냈으나, 그 여력을 완전히 흘려보내지 못해 뒤로 쭈욱 밀려났다.

그에,

“뭐야, 저 자식 왜 저래?”

“뭐 잘못 먹었어?”

지켜보고 있던 방계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녀석 특기이자 제일 잘하는 게 일점집중(一點集中) 아니었냐?”

한 점에 모든 걸 집약시켜 날리는 일격.

남들은 그에 따르는 막대한 부하와 고통에 흉내 내지도 못할 것을 해내는 무식하지만 확실한 파괴력이 당불퇴의 강점인데, 지금 녀석은 스스로가 그 강점을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물론, 관중석에서의 그 대화가 들릴 리 없는 당불퇴는,

“와아아아!! 최고다!!”

“저 녀석, 오호도의 도법과 비슷한데?!”

‘좋아, 먹혔어!’

그저 관중의 함성 소리와 상대가 뒤로 밀려났다는 사실만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이 느낌이다.’

지난 일주일간, 당불퇴는 그저 충격에만 빠져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 그때 보았던 일격을 복기하고 분석하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았다.

‘나는 지금껏 그저 한 점에 모든 힘을 집중시켜왔다. 하지만… 그래선 그 힘이 나오지 않아.’

어째서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당불퇴는 생각했다.

‘폭발이었어!’

단순히 내공을 한점에 모아 응축시키는 게 아니라, 한점에 내공을 모아 폭발시킨다.

그 폭발적인 힘을 주먹에 담아낼 수만 있다면 무시무시한 일격이 완성되는 것이다!

‘다시 간다!’

쿠르르르르!!

또다시 돌 구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먹이 내뻗어졌다.

미간 사이를 향해 날아드는 정직한 일 권에 이태백이 가슴 앞에서 두 손을 겹쳤다가 올리며 그 일격을 쳐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위력을 완전히 상쇄하진 못해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야 했고, 당불퇴는 지금이 기회라 여겨 곧장 따라붙으며 연타를 갈겼다.

콰콰쾅!!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쳤다고는 믿기지 않는 살벌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이태백은 계속해서 뒤로 쭉쭉 밀려났으니― 당불퇴의 심장은 저도 모르게 빠르게 뛰었다.

‘된다!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

비무장 경계까지 상대를 몰아친 끝에 당불퇴는 마지막 일격을 위해 내공을 집중시켰다.

‘끝이다!’

그리고, 속으로 그 마지막을 외치는 순간,

“흠!”

지금까지 쭉쭉 밀려나기만 했던 이태백의 눈에 돌연 이채가 깃들더니 그의 전신으로부터 무지막지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뭐?’

바위처럼 굳건하고 무쇠처럼 단단한 기세.

사람이 아닌 금강석을 향해 달려드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 때, 이태백은 두 다리에 힘을 단단히 준 채 마주 주먹을 내질렀다.

금강권(金鋼拳).

금강저(金剛杵).

콰아아아앙!!

맞부딪친 주먹이 굉음을 토했다.

당불퇴가 내뻗은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내공이 연신 폭발을 일으켰으나, 이태백이 내찌른 주먹은 폭발 속에서 끄떡 않고 날아들었다.

‘헉?!’

지금껏 연신 균형을 잃고 뒤로 물러났던 게 거짓인 것처럼, 이태백은 단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은 채 반대로 뒤로 밀려나는 당불퇴를 추격했다.

금강권(金鋼拳).

연격(連擊).

삼정권(三正拳).

이어지는 세 번의 연타.

“큭!”

당불퇴 역시 허겁지겁 마주 주먹을 내찔렀지만,

콰콰쾅!!

어떤 폭발이 일어나든, 이태백의 묵직한 철권(鐵拳)은 단순하지만 정직한 권로를 그리며 당불퇴의 주먹을 밀어냈다.

‘이거, 위험……!’

위기감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끝이오.”

두 눈에, 이태백의 주먹이 태산(太山)처럼 크게 비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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