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주먹이 날아든다.
시야를 가득 메우며 날아드는 주먹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당불퇴는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끝이다…….’
패배.
그 명확한 사실에 당불퇴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응?”
어째, 시간이 지나도 예상한 충격이 느껴지지 않자 조금씩 눈을 떴다.
그러자,
“뭐, 뭐 하슈?”
어느새 세 걸음 뒤로 물러난 채 다시금 전투 태세를 취하고 있는 이태백이 보였다.
“금강권문은 거짓된 승리를 탐하지 않소.”
“거짓된… 승리?”
“당신을 잘 알지 못해 긴가민가했소. 나는 당신의 이전 경기도 보아 왔기에, 오늘은 다른 권법을 펼치는 것이 혹여 나를 대비해 새롭게 준비한 무공인가 싶었으니.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
금강(金剛).
“이제 헛된 미혹에서 깨어나, 원래 당신의 무도(武道)로 돌아오는 게 어떻겠소.”
“……,”
그 이름처럼 단단한 눈빛의 사내의 일침이 폐부를 헤집었다.
‘미혹… 인가?’
어쩌면 알고 있었다.
오호도 팽천강에게 받은 충격에, 자신도 그처럼 되고 싶었다는 것을.
하지만,
“젠장, 빌어먹게 고맙군. 덕분에 확실히 알았소.”
당불퇴는 때려죽여도 당불퇴라는 것을.
“보답이라고는 뭣 하지만, 다시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수다.”
“훌륭하군.”
그 대답이 퍽 마음에 드는지 이태백은 씩 미소 지었다.
‘멋있구만.’
같은 남자로서, 질투가 날 정도로 멋있는 그 모습에 당불퇴는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끙…….’
이전까진 몰랐는데, 이렇게 다시 차분히 내공을 끌어올리니 조금 전까지의 방식이 얼마나 무식하고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공을 억지로 부딪치고 충돌시켰던 여파로 혈도는 어느새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기의 움직임도 덕분에 들쑥날쑥했다.
괴물 같은 육체를 가진 자신이기에 이 정도지, 아무나 함부로 따라 하려 했다간 불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답게 가자, 나답게.’
무식하다 불릴지 몰라도 우직하게 온 힘을 한 점에 집중시킨다.
“거,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해놓고 미안한데. 내가 지금 상태가 영 좋지 않수다.”
“그래 보이시는군. 해서, 설마 기권하지는 않겠지?”
“그야 물론이지.”
기권이라니. 암만 병신같이 길을 잃고 헤맸어도 그딴 머저리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이 한 방으로 끝내겠수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훌륭하오.”
그것참 마음에 드는 답이라.
이태백 역시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남자라면, 주먹 대 주먹이지.”
“역시, 뭘 아는구만?”
둘은 동시에 내공을 끌어올렸고, 또한 똑같이 오른손에 그 힘을 집중시켰다.
초식의 교환이나 심리전, 허초와 실초의 현혹 등은 없는 주먹 대 주먹의 진권승부(眞拳勝負)!
“그럼, 가리다!”
“얼마든지!”
미혹을 일깨워줄 때의 언변은 어디 갔는지, 담백하게 승부를 결하기로 결정지으며 이태백이 주먹을 내뻗었다.
금강권(金鋼拳).
정권(正拳).
금강권(金剛拳).
구구구구!
변초 따위는 없는 진격일변도의 일권!
그에,
번쩍―
두 눈에서 광망을 토하며 당불퇴 역시 주먹을 내뻗었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콰아아앙!!
주먹 대 주먹의 승부!
“크아아아아!!”
“오오오오!!”
기합과 기합이 부딪쳐 폭발하는 그 승부의 결과는…….
콰아앙!!
“…크학!!”
“크윽!”
폭발과 함께 나가떨어진 둘은 동시에 그 결과를 깨달았다.
‘…이겼다.’
‘…졌군.’
조금 전 격전을 떠올리며, 바닥을 나뒹군 이태백이 씁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의 단단한 몸 대신 박살 난 경기장 외벽.
본선 십육 강부터는 후기지수의 규격을 벗어난 이들이 발한 여파로 관중들이 다칠까 봐 설치한 그것은 분명 비무장 밖에 외치한 것이었으니―
‘장외 패로구나.’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 여기까지 날아와 처박혔으니, 그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아쉽구나.’
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게, 더 싸운들 결과는 같았지만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오니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짙게 깃들었다. 또한, 사문의 명예를 등에 지고 나온 주제 괜한 오만으로 이런 결과를 가져온 선택에 대한 여운도 함께 남았다.
그때,
“웃차… 괜찮으시오?”
비무대 위에서 뛰어 내려온 당불퇴가 다가와 그에게 손을 내밀어왔다.
“…….”
멍하니 그 손을 바라보고 있으니,
“큼큼, 아쉽구만. 비무장이 조금만 더 넓었으면 좋았을 텐데.”
멋쩍은지, 뻗은 손과 반대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그가 괜스레 비무장을 휙휙 둘러보며 소리쳤다.
“에잉, 운이 너무 좋았잖아? 비무대가 조금만 더 넓었으면 결과를 모르는 건데…….”
마치 관중들에게 이 승부가 사실은 무승부라 말하고 싶은 듯, 자신에게 내민 손을 회수하지 않는 그 모습을 보며 이태백은 씨익 미소 지었다.
‘아니, 아쉽지 않을지도.’
역시, 그때 주먹을 거두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리라.
터억―
“금강권문의 이태백이오.”
그 손을 맞잡고 일어서며 말하자,
“…아.”
당불퇴는 뒤늦게 이해한 듯 마주 웃으며 답했다.
“사천당가의 당불퇴. 거… 나중에 시간 남으면 우리 집에 놀러오시겠수?”
“가면 뭐가 있소?”
“큼, 뭐… 여러 가지 있지 않겠소? 지금 바쁘면 나중에라도 놀러 온다면, 내 책임지고 사천 땅을 안내하리다.”
진짜 잘 아는 국밥집도 있고.
뭐라뭐라 궁시렁거리는 당불퇴의 모습에 이태백은 역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괜찮은 인연이군.’
“승자! 당불퇴!”
이윽고 승자를 알리는 심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다시금 관중들의 함성이 폭발했다.
그 함성에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다가, 쓰게 웃으며 내려왔다.
‘쯧, 결국 이것도 답이 아니었네.’
좋은 인연을 만든 것도 사실이고, 승부에 이긴 것도 자신이지만, 다음 경기에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 괴물 놈들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대형이라도 있으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자꾸만 채워오는데,
“와아아!!”
“또 일어났어?!”
“이게 몇 번째야?!”
비무장을 내려오는 그의 귓가에 열띤 함성이 들려왔다.
지금까지는 자신을 향한 함성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걸 깨닫자 저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보았다.
“저 녀석은…….”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비무대에서 일어서는 사내를.
벌써 몇 번째 반복하는 것인지 힘이 풀린 두 다리로 후들후들 떨면서도, 꿋꿋이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내를.
“젠장!! 힘내라!!”
“할 수 있다!!”
온 관중의 환호와 함성 속에 또다시 주먹을 움켜쥐는 사내.
그 사내의 이름은,
“구중보?”
비공식 차양당 공동전인, 구중보였다.
* * *
창궁검룡 남궁수.
그의 다음 대진 상대가 구중보라는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 패왕보의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젠장, 왜 하필…….”
“끄응… 좀 더 뒤에 만났으면…….”
패왕보는 그 이름만 들으면 피도 눈물도 없이 패도(覇道)를 걷는 이들의 모임 같지만, 사실은 정 많고 눈물 많은 순박한 아재들의 모임이었다.
당장 지금도 구중보를 둘러싼 덩치 큰 아재 삼촌들이 세상 오만 걱정 근심 다 가진 표정으로 한숨을 빽빽 내쉬고 있었으니까.
“…그, 저기… 중보야.”
“네, 삼촌.”
“그… 내가, 뭐 네가 못났다는 건 아니고.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있잖아…….”
개중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그 하나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뿐이지,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다.
“혹시…….”
“기권하지 않겠냐구요?”
“…….”
구중보가 먼저 묻자 차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슥 주변을 둘러보니 아재 삼촌들이 전부 고개를 돌린 채 먼 산만 바라보는 게 그들의 생각 역시 어떠한지 알 만했고.
“다들 비슷한 생각이신가 봅니다.”
“…끙, 중보야. 우리 마음 알지?”
“우린 진짜 네가 걱정돼서…….”
“압니다, 알아요.”
알고말고.
그래서 딱히 섭섭하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지난 비무를 함께 구경하러 다녀온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고, 그 때문에 사천당가까지 찾아가 수련을 하고 온 것이니까.
그 덕분에 실로 많이 강해졌지만,
‘오히려 더 잘 알게 됐지.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 승산이 없다는 것을.’
그때는 감히 가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대와의 간극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어렴풋이 상대가 어떤 괴물인지 보일 정도였다.
“중보야.”
홀로 마음을 정리하고 있자니, 지금껏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구일엽이 입을 열었다.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하마.”
“가주님!”
“보주님!!”
“아니, 형님. 진심이십니까?!”
작게는 가주요, 크게는 보주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형님인 구일엽의 말에 장로들이자 삼촌인 이들이 반발했다.
“애 다리 하나 부러트릴 일 있습니까?”
“상대는 창천검룡입니다, 창천검룡!”
“어허,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라. 남자라면 패배를 알면서도 부딪쳐야 할 때가 있는 법이야.”
그럼에도 그들은 진압하듯 구일엽은 중후한 목소리로 답했고,
“그래서 깨지셨습니까?”
“그래서 처맞으셨던가?”
“그래서 혼절하셨는지?”
“…이 망할 것들이.”
여전히 불만 가득한 삼촌 아재들은 단체로 입을 삐죽거렸다.
‘풋…….’
그 모습에 구중보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저 정겨운 모습을 당가에서도 익히 보았다.
그래서 그들에 녹아들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에게 배운 것을 진심으로 마음에 녹일 수 있었다.
역시나, 그래서였다.
“장로님들. 아니, 삼촌들.”
구중보는 두 눈에 이채를 발하며 말할 수 있었다.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이번에 정말 큰 가치를 하나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지난 이 주간 얻은 최고의 소득.
“지금은 소가주로서, 이후는 가주로서. 그리고 언젠가 패왕보를 이끌고 섬서의 협의(俠義)를 지킬 이로서.”
그 모든 자리의 주인으로서,
“저는 결코 물러나지 않는 법(不退)을.”
별과 같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선언했고, 그 선언에 장로들은 차마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그렇게 구중보는 자신의 선언과 다짐을 지키기 위해 비무대에 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짜 괴물이구나.’
일주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찾아온 비무.
자신의 앞에 마주 선 채 검조차 뽑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무형의 압박감이 전신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상대가 얼마나 괴물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그에 적잖이 감탄하고 있을 때,
“기권하시오.”
불현듯 상대방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응?”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드니 어느새 눈을 뜬 남궁수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해왔다.
“훗날 한 가문을 이끌 소가주라 들었소. 구태여 여기서 부상을 입지 말고 기권하시오.”
마음의 부상을 입을 걸 말하는 것인지, 육체의 부상을 입을 것을 말하는 것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배려심이 참 눈물 나게 감동적이구만.’
구중보는 씨익 웃으며 두 주먹을 쥐었다.
“거부하겠습니다.”
“…….”
두말 없이 자세를 잡는 모습에 남궁수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것일까, 아니면 두 번의 배려는 없다는 것일까?
대신하여, 심판이 시작 소리를 알림과 동시에 서서히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스스스―
그에 단전에서 있는 힘껏 내공을 끌어올리는 구중보를 향해 검극을 겨누었으니,
“꿇어라.”
제왕검형(帝王劍形).
제왕지세(帝王之勢).
콰아아앙!!
오연한 선언과 함께, 구중보의 두 무릎이 땅바닥에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