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월영검대.
그 이름값이 주는 영향력은 막대했다.
비록 직계가 아닌 방계들이 소속된 검대라고는 하나, 동시에 그 방계들 중 제일의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또한, 그 역할이 가주를 지키는 최측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권력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는 무림이란 세계에서는, 가문 내에서 손에 꼽히는 권력자가 된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그 제안을 받은 게 방계조차 아닌 인물임을 따진다면,
“…내,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건가?”
“잘못들은 게 아닐세……. 나도 너무나 놀랍군.”
관중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지금, 남궁가의 소가주가 외인에게 남궁의 성을 내린다는 제안을 한 것이니까.”
그 자존심 높고, 오만하며 고고하기로 유명한 남궁세가가 외인에게 자신들의 가문에 들어올 것을 제안한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소가주가 직접.
남궁세가의 무공 한 자락만 얻어도 평생 여한이 없을 것이라 여기는 무인이 차고 넘치는 무림에서, 그들 가문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중소 문파의 무인들에겐 꿈에도 그릴 소원과도 같은 것.
피와 땀으로 젖은 구중보에게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몰렸다.
그에 구중보는,
“거절합니다.”
단칼에 거절했다.
“…어째서?”
제안을 한 남궁수조차 이런 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런 답을 한 거지?”
믿기지 않아 묻자, 마찬가지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구중보가 말했다.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만……. 멀쩡히 아버지 어머니 다 있는 집안의 가장을 남의 집에 양자로 들어오라는 게 말입니까?”
그냥 미친 소리지.
굳이 뒷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 뜻이 전달되는 표정에 남궁수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어이가 없군. 진정, 그대가 한 말의 뜻을 알고 있소?”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합니까? 싸우는 와중에.”
흰소리도 이런 흰소리가 없다.
싸우는 와중 별말을 다 듣는 듯한 구중보의 말에 남궁수의 안색은 굳다 못해 썩어버렸다.
“진정…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길 즐기는 사내로군.”
거참, 나 술 좋아한다 해도 그러시네.
남의 집 양자로 들어가는 취미 따위 없는 구중보는 서서히 노기를 터트리는 상대를 보며 마지막 각오를 다졌다.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남궁세가 월영대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는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한 달 전에 같은 제안을 받았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승낙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혈육 외에 새로 여기기로 한 가족들이 있거든.’
조건 없이 자신을 받아준 그들, 사천당가.
만가쟁패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그들이 남궁세가와 부딪칠 것임을 알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마지막 최후통첩.
그에 구중보는 자신의 주먹을 꽉 움켜쥐어 보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그렇군. 그렇다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린다.
여전히 검집에서 뽑혀 나오지 않은 검이 저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쭉 뻗어졌다.
“제왕(帝旺)의 검을 목도하라.”
제왕검형(帝王劍形).
제왕현신(帝王現身).
하늘에서 검이 떨어졌다.
너무나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검(天劍)과 같았다.
쿠구구구구구!!
막대한 압력이 전신을 내리눌렀고, 그 속에서 온몸의 근육과 혈도가 괴로움에 비명을 내질렀다.
‘제왕의… 검!’
그럼에도 부릅뜬 구중보의 두 눈은 검 끝을 좇았다.
시야를 가득 메워오는 그것을 보며, 구중보는 이를 악물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다면… 나는……!’
베이고 부서지고 찢긴 곳에서 핏물이 흘러 나와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몸뚱어리가 신음을 토해 내도, 그 걸음은 결코 물러나지 않으니―
‘패왕의 권이다!!’
결코 물러나지 않을 일권(一拳)을 내뻗는다!
패왕권(覇王拳).
패왕불퇴(覇王不退).
구구구구구!!
“……!’
천검(天劍)을 밀어내는 패도적인 권격이 날아들었다.
그 둘이 부딪치는 순간 남궁수의 눈은 찢어져라 크게 뜨였다.
‘아직도, 이런 힘이 남아 있다고?’
만신창이의 상태.
가만히 서 있는 것만 해도 경이로운 일이건만 상대가 내뻗는 주먹은 갈수록 강맹해지고 있으니―
‘위험하다……!’
울려 퍼지는 감각의 경종 속 남궁수는 검병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비무장 바닥이 그 여파로 박살 나고, 피어오른 먼지 연기 속에서 하나의 인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나가떨어졌다.
‘아…….’
자의가 아닌 타의로 나가떨어진 구중보는 저도 모르게 한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졌구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될 결말쯤은 사실 불 보듯 뻔한 것.
그럼에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패배가 들이닥치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쉽다…….’
조금만 더 잘했다면, 곧이어 닥쳐올 차디찬 추락과 함께 이 씁쓸함을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게 공상에 가까운 망상임을 알기에 구중보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이제 곧 일어날 차가운 바닥과의 충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순간,
턱―
차갑고 딱딱한 바닥이 아닌,
“야, 인마.”
따뜻하고 든든한 두 팔이 그를 받아냈다.
“내가 끝까지 눈 감지 말라 했지.”
“…혀, 형님?!”
허겁지겁 눈을 떠보니,
“이거,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겠구만?”
어느새 나타난 당불퇴가, 도저히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형님… 혀, 형님… 저…….”
그 모습을 보자, 이 악물고 참아왔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저는… 저는…….”
죽도록 분했고, 참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졌다.
패배했다.
그토록 열심히 노력했는데, 고작 여기서 멈춰버렸다.
그에,
“잘했다.”
“……!!”
당불퇴는 더더욱 활짝 웃으며, 그리 말했다.
“넌 물러나지 않았고, 최고로 멋진 주먹을 날려 보였다.”
“물러나지… 않았다……?”
“그래, 인마. 네가 도망치길 했어, 뒤로 밀려나길 했어?”
지금은 그저 잠깐 멈춘 것뿐이라고.
앞을 향해 쉼 없이 뛰어가다, 잠시 숨 좀 고르기 위해 멈춰 선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이제 푹 자라.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할 테니까.”
“아…….”
눈이 감겨왔다.
별달리 부드러운 위로도 아닐진대, 그 얼마나 편안한 말인지.
버티고 또 버티던 수마에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 감길 때, 당불퇴는 완연히 의식을 잃은 구중보를 안아 들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보고 있군.’
비무대 위에선 이쪽을 내려다보는 남궁수가 보였다.
“…….”
‘짜식, 입을 꼭 다문 게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봐.’
어찌 보면 동생이 밖에서 처맞고 온 꼴이지만, 딱히 화가 나거나 자신이 대신 복수해 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괜히 내가 건드렸다간, 욕만 죽도록 얻어먹겠지.’
저 녀석은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만 확실하게 느꼈다.
그저 느낌일 뿐이지만, 이번 비무에선 저 녀석과 연이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렇기에 자신과 구중보를 내려다보는 남궁수에게서 미련 없이 몸을 돌리며, 조금 전 광경을 머릿속에 기억했다.
‘건방진 녀석.’
그렇게 훌륭한 주먹을 보여줘서야,
“…형으로서, 분발하지 않을 수가 없잖냐.”
마음속에 피어난 의지의 불꽃이, 더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 * *
어디선가 그렇게 뜨거운 형제애를 불태울 동안, 또 어디선가는 차디찬 사형제의 애정 어린 덕담이 오가고 있었다.
“기권하시지요, 사형.”
“뭐, 뭐라?”
여기 이 자리, 남궁수의 비무 만큼은 아닐지라도 또 다른 사천인들의 관심을 몰아 받는 비무가 있다.
그건 바로, 같은 사문에서 나온 두 명이 맞붙는 비무!
“어차피 하나는 올라가 사문의 명예를 드높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그게 너는 아닐 거라는 기가 막힌 독설을 날리며 단두대 비무를 여는 진혁수가 그 주인공이었다.
“감히! 운 좋게 청성일검의 별호를 얻어냈다고, 이젠 위아래도 없는 것이냐!!”
“운 좋게라…….”
진혁수는 여상한 눈으로 자신의 사형, 청풍검(靑風劍) 여불해를 응시했다.
“그것이 정녕 운이 좋아서라고 여긴다면, 결국 사형은 여기까지인 겁니다.”
“이놈이!!”
채앵―
더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다.
비록 관중석까지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으나, 칼을 뽑아 드는 여불해의 광분 어린 모습과 후끈 달아오르는 그들의 분위기는 분명 전해졌다.
“청운적하검!”
“청운적하검!”
“청운적하검!”
요즘 들어 새롭게 생긴 별호를 연호하는 관중들, 그들을 돌아보며 진혁수는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줄 타는 법을 배웠으나, 아무래도 다음 대 청성의 이름을 드높일 이는 제가 되겠군요.”
“갈(喝)!!”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다는 듯, 일갈을 내지르며 여불해의 검이 휘둘러졌다.
청풍검법(靑風劍法).
능풍허도(陵風墟到).
바람을 타고 흐르는 듯한 부드럽고도 쾌속한 검법!
상단을 노리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중단으로 꺾어 들어오는 변칙적인 칼날이 심장 어림을 노려왔다.
하지만,
카앙!
어느새 뽑혀진 청운검이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는 듯 여불해의 검을 받아냈다.
“모르시겠습니까?”
“뭐……?”
“저는 사형의 검을 알지만, 사형은 저의 검을 모릅니다.”
그것이 당신의 패인입니다.
청운적하검(靑雲赤河劍).
적하유수(赤河流水).
퍼퍼퍽!!
“커헉!!”
휘둘러진 검집이 세 번이나 여불해의 몸에 때려 박혔다.
“기권하시지요, 사형.”
“이, 이놈이……!!”
다리를 얻어맞고 관절이 꺾여 제자리에 허물어진 여불해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감히, 사술 따위로!!”
“사술?”
진혁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른 말들이야 벌레 울음소리 정도로 치부하는 진혁수였으나, 그 말만큼은 마음에 동요를 이끌었다.
물론, 뭐만 하면 사술로 치부하는 정파 종특 사술증후군에 걸린 여불해는 그런 걸 알 리가 없어 다시금 자리를 박차고 달려들뿐이었으니―
퍼퍼퍼퍽!!
이번엔 전보다 더한 폭력이 날아들어 그의 전신을 두들겼다.
“크윽!”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사형?”
“다, 닥쳐라!!”
발작하듯 다시금 검을 휘둘러보는 여불해였으나,
퍼퍼퍼억!
“끄으윽…….”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게 더 이상 검이 아닌 검집뿐이란 걸 깨닫고 절망 속에 허우적거렸다.
그럼에도,
“자, 잠깐!!”
진혁수의 사정없는 매질은 멈추질 않았고,
“자… 잘못했다! 내, 내가 잘못했어!!”
여불해가 엎드려 비는 수준이 돼서야 겨우겨우 검집을 휘두르길 멈췄다.
“끄으, 으으으…….”
그렇게 맞고 맞고 또 맞다가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건지, 침을 질질 흘리며 실신하는 수준까지 가서야 여불해는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게 되었다.
“사술이 아닙니다, 사형.”
그런 여불해에게 다가간 진혁수가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청성의 검입니다.”
또렷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